울금농사

첫눈이 오다 : 계명산 초기 좌담 일부

mamuli0 2025. 12. 4. 11:20

 을사년 첫눈이 대설 다새 전날 내렸다. 쌓이지는 않았지만 종일 조금씩 내렸고 우박도 내렸다. 추운 날씨인데도 울금 수확은 계속 되었다. 오늘은 골짝 논 작업을 하였다.

 

 

한) 예, 그것도 그랬지만. 나는 그때 가서 육이오 후에는 어떻게 되었냐하면 인제 광주에서 걸인 애기들을 좀 데리고 있었어요. 신입반이라고 원장님이 이름을 지어줘 가지고 그 사람들을 데리고 여기를 오는데 따라왔습디다. 시내로 나가서 극장 앞에서 어디 담요를 뒤집어쓰고 밤을 모르고 그렇게 살았는데

사) 왜 밤을 지냈어요?

한) 집이 없으니까. 그놈들이 나가자고 하는 거예요. 얻어먹던 습관이 되어서 농촌에서 일 안하려고 나가자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나갔어요. 같이, 그래가지고 다 어디로 흩어져버렸어. 도로 광주로 내려가 버렸어. 광주가 좋으니까 그래서 나 혼자 굴에서 살았지요.

사) 어디 굴이요?

한) 신촌 굴. 신촌에 쌍 굴이 있었는데 그때는 육이오 때 폭격을 해버려 가지고 그 가운데가 무너져버렸어. 하나밖에 사용을 못해. 제가 그 굴을 찾아가가지고 거기서 저기를 했는데 거기서 인제 뭐이냐 하면 얻어다 먹는 것이 아니고 광주에서 고 슬빈 씨라고 그분이 채소를 주워다 먹어요. 그리고 치즈라고 깡통에 담아서 내놨는데 그것을 먹다가 그것이 곰팡이가 나면 탁 엎어버려요. 그러면 노란 게 나와요. 그놈 가지고 채소 주어다가 고놈 넣고 끓여버리면 아주 고급 뭐가 되어버려요. 그런 것도 주워다 먹고 그때는 밥덩이를 내다 버렸어. 흰 밥 덩어리를, 그러니까 땡땡 얼어가지고 서울은 그러니까 그런 거를 주어다가 넣고 콩나물 꼭지 주어다 넣고 그런 거 끓여먹고 서울 신촌 굴에 사는데 그때 겨울이야. 추울 때 얼마나 춥던지 잠이 안와요. 그럼 가마니 떼기 하나 주어다가 뺑 돌려 쳐놓고 숯덩이 하나 주어다가 깡통에다 불 피워놓고 가만히 있어. 발 시려 우니까 헝겊 데기 주어다 동여매, 무릎도 동이고 그때는 통행금지가 있으니까 네 시만 되면 막 돌아다녀요. 그런 식으로 그때 지내다가 나중에 움막을 가마 데기로 주어다가 쳤어요. 움막을,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어떤 나환자들이 들어와 가지고 찾아왔어요. 그때는 나환자를 수용할 때야. 그런데 무엇이냐? 그 사람들을 거기다 재웠어요. 재우면서 예배를 보고 그랬어요. 그 사람들 어디 수용소에서 왔답디다.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이 피가 같으면 자기들하고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나는 그런 사람들하고 같이 살라는 목적이 아니고 예수님이 나환자를 낫게 해 준 데를 읽어주면서 그랬지. 그런데 인제 나보고 아침마다 춥지 않느냐고 문안을 와요. 그러면 애기들 딸 둘이 졸졸 따라다니고 그래요. 그러고 거기서 한참 살았는데 애기들이 구정이 돌아왔는데 둘이 옷을 좋게 입고는 세배를 한다고 왔어요. 이놈들 거지한테 세배하는 법이 어디가 있냐고 하니까 거지라도 세배하니까 괜찮아요. 내가 전부 구정이 돌아오니까 그러고 나와 있어. 그런데 아주 좋아가지고 가마떼기만 주어다 쳐놓으니까 좀 낫데요. 그래서 그 다음에는 뭔 사람들이냐고 이만저만 해서 있다고 보내라고 하데요. 굴지키는 사람이 나는 괜찮지만 그 사람들이 있으면 자기가 걸린다고 그래서 가라고 그러고 한참 사는데 희옥 씨 어머니가 최 씨 어머니가 능곡을 찾아왔다가 내가 거기 산다하니까 거기로 찾아왔어. 두 분이 그때 처음으로 봤었지. 그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거기서 살다가 한참 살다가 깡패를 만나버렸어. 학생 깡패라고 학생복 딱 입었데요. 그런데 때리면서 성경책도 다 뺏어가 버리고 또 꼬마들도 내가 많이 데리고 있어서 주위에서 동냥시켜서 먹는 줄 알고 앵별이 몇 명 잡았냐고 해서 하나도 없다고, 그러고 나니까 거기 살기가 싫어요. 그래서 내가 여기 가야지 못살겠다고 그 사람들한테 두들겨 맞아서, 희옥 씨 어머니하고 최 씨 어머니하고 동대문 그쪽으로 가면 굴이 있다고 가보라고 그래요. 그래서 거기를 한번 가봤어요. 가보니까 누가 하나 살고 있어 버리고 마땅치 않아. 그래서 도로 가는 거예요. 도로 내 가고 같은 거 짊어지고 가다가 종로 경찰서에서 잡혀 버렸어요. 기피자라고 머리를 이만큼 길렀는데 거기서 머리를 빡빡 깎아 가지고 군대를 보낸다고 보내버렸어. 그래서 종로 5가에서 걸려버렸는데 거기서 며칠간 살았지. 기피자 잡힌 사람들 하고, 그런데 전부다 신사들이고 나 같은 사람은 한명이나 두 명이나 되는 것 같아. 나는 금식을 해버렸지. 위장이 약해서 밥을 못 먹는다고 그리고 성경책을 딱 들고 갔지. 인제 그 사람들에게 뺏겨버렸는데 나중에 다시 사가지고 가니까 신체검사를 한다고 그래요. 며칠간 밥 못 먹으니까 순경들 마음대로 해. 이 환자가 밥을 못 먹고 있는데 죽이라도 끓여야지. 나중에 큰소리치면서 순경들 마음대로 해. 방송이고 어디 그런 사람들이 와가지고 그래가지고 아 나 이번에 군대 가서 큰 차 몰고 어쩌고저쩌고 하더니 신체검사 성동경찰서가서 일부 했어요. 훈련 가기 전에 그렇게 하니까 나는 거기서 다 그 사람들 떨어져 나가지요. 말만 그러지, 그때는 자유당 시대라 조금만 손써버리면 다 빼주고 그래요. 그런데 나도 거기서 떨어졌어요. 뭐냐 하면 떨어져 가지고 보낼까 말까 하다가 어떻게 나가라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나오니까 종로 경찰서 계장이라든가 순경이 성경책 들고 다니면 다냐고 회개를 해야지. 큰소리를 치데요. 나가가지고 도로 그리로 가가지고 인제 그 굴에서는 살수가 없어서 그 굴지키는 양반한테 어디로 옮겨 갈라는데 이만 저만 신촌 쪽에 나가면 기차 대가리를 거기 가보셨소? 이 선생님 인제 거기에서 살아요. 거기서 한참 살았어요.

 

사) 그 생활을 한 1년 가까이 하셨나요? 그 굴에서 사시고 그런 게?

한) 1년 더 살았는지 몰라요.

사) 그때는 신앙생활은 어떻게 하셨어요?

한) 나 혼자 성경보고.

사) 예배드리거나 자체예배?

한) 그런 것도 없고 혼자서 능곡이나 가면 주일날이나 가면 혹시 가끔 다니니까 그러면 몰라도 나 혼자 성경보고 뭐 일요일 따로 없어요. 항상.

사) 그런데 신앙생활하고 그 굴속에 사는 것하고 어떻게 관계가 있습니까?

한) 밑바닥 인생 공부. 그때 당시 내가 돈을 벌었다하면 벌었는데 ‘돈은 일만 악의 뿌리다’라는 그런 것을 동광원에 와서 배웠어요. 그 전에 돈을 벌어야 하는데 배우지를 못해서 돈을 벌어야 된다는 머리를 갖고 내가 노력 하다가 이 동광원을 만나가지고 돈을 벌면 안 된다는 거야. 못쓴다는 거야. 인제 물들어 버렸어 내가 그때 땅을 샀다면 하루 열 평도 사. 하루 천원도 고물 주워서. 그런데 땅 한 평에 백 원씩 했어요. 그때 아현동에 그런데 그걸 못 쓴다는걸 알고 안 해버렸어요. 일절, 그래가지고 하고 있는데 거기서 얼마큼 살다가 인제 광주에서 한바탕 살았고. 또 서울에서 한바탕 사니까요. 부산을 한번 가고 싶어요. 부산을 갈라고 머리를 이만큼 길러가지고 갈라고 생각을 하고 능곡에 가서 말해버리고 부산으로 간다고 말하러 가니까 이 선생님이 와계세요. 후두 결핵 걸려가지고 말도 못하고 거기 계신데 필담으로 인제 은현 씨라고 총무님이 있었어요. 그 양반이 필담으로 말을 잘 받아써요. 속필이라. 그 양반한테 써 가지고 가자는 거예요. 이 선생님 오신 거 생각도 못하고 말하러 왔다가 엉뚱한 다른 일이 생겨버렸지요. 한마디로 말하면 거기서 역전이 상당히 멀어요. 능곡에서 어떻게 해서 당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어쩌고 그런 걸 떨쳐버리고 내가 업고 갔어요. 업고 능곡역에 가서 거기서 신촌 역에 와가지고 신촌역에서 굴이 상당히 멀어요. 거기까지 업어다가 모셨지요.

사) 그게 몇 년도였지요?

한) 그걸 내가 모른다니까 그것을.

사) 돌아가시기 훨씬 전에?

한) 예, 훨씬 전이지요. 그걸 잘 몰라요. 그때 당시 굴에 오셔가지고,

박) 55년이나 되겠소. 내가 56년도에 올라왔는데 신촌 계실 때가 55년 54년 그 근방이야.

한) 거기 오셔가지고 무엇이 문제가 되었냐하면 아주 열이 불덩이같이 올라버렸어요. 얼음을 넣으면 녹아 버리고 녹아버리고 그랬어요. 그런 적이었는데 무엇을 알아냈냐하면 파계를 했지. 고기 같은 거 안 먹고 약도 안 먹고.

사) 그게 그때에요?

한) 예, 그게 그때에요. 내가 인제 심부름 했어요. 맨 처음에 예, 거기 오셔가지고 나를 희옥 씨 어머니가 돈을 댔어요. 그때 여기 계시다가 오셔가지고 무엇이냐 하면 꽁다리를 사가지고 온 거야. 조기 말라버린 거, 그것을 사다가 깡통에다 솥단지도 아무것도 없으니까 깡통 시꺼먼 깡통에다 끓여가지고 그놈을 놓고 기도를 하셨다는 것이야. 하나님의 뜻이면 넘어가게 해주시고 뜻이 아니면 머금고 나를 데려가 버리시오. 기도를 하고 먹었는데 넘어가버렸어. 그러니까 또 살았어. 지금 같으면 그 양반이 다 못 먹게 한다고 하는데 그걸 갔다가 의심하나도 없어요. 어딘지 모르게, 그래가지고 사람은 살고 나중에 몇 번 사오고 소 등심을 사오라고 하시더만 등심을 사가지고 조금 끓여서 마시고, 마시고 조금 수월해지는 것이 생겼어. 그래가지고 나는 원장님이 오시니까 동광원에서 나를 쫒아 내라고, 그러기 전에 거기 있는 사람한테 다 말을 다져봤어요. 인제 지금까지 고기 못 먹고 약도 못쓰게 했는데 그런 일을 해버렸으니까 필담으로 다 받아봐 그래서 다른 사람은 어떻게 말했는지 몰라. 나는 사람보지 않겠습니다. 그랬어. 성경 볼 줄 알고 믿은 줄 알았으니까 어디가도 하나님 계신 거 알았으니까 그 믿고 살겠습니다. 그런 뜻으로 했어. 다른 사람은 어떻게 말했는지 몰라요. 그런 저기를 했는데 원장님이 오시니까 나를 동광원에서 쫒아내라고 하십디다. 정 인세 원장님이 오시니까 이 선생님이 나를 동광원에서 쫒아내라고 그런 이야기를 하시면서 뭔 말씀 하시는가 하면 나를 김 상돈 장로님이라고 그전에 마포구 국회의원이었거든요. 그 교회를 보시게 되었어요. 원장님이 김 상돈 장로님 교회도 맡아서 보시게 되니까.

박) 새 가정교회.

한) 새 가정교회, 그 교회를 맡아서 보셨어요. 그러니까 말을 해가지고 땅을 빈터 하나 사가지고 나를 그곳으로 옮겨주라고. 그래서 거기 천막치고 옮겼어요. 오 장로님도,

박) 산 7번지.

 

사) 여기 어디에요?

박,한) 서울 아현동, 다 없어져 버렸지요. 지금은, 그때는 올라 다니지도, 신촌역에서 가면 이렇게 깔막으로 올라가요. 산꼭대기. 그런 저기로 거기다 옮겨가지고 거기다 천막을 치고 방을 드리고 거기서 한바탕 살았어요. 갈보리 어머니 금남 어머니 하고 한바탕 살았어요. 원장님이 그때 거기 교회 볼 때, 거기서 밥도 해드리고

사) 한 1년이요?

한) 교회는 몇 년 보셨을 거예요. 내가 살기로는,

사) 이 선생님 사신 게?

한) 이 선생님은 안사시고 그렇게 내가 살았다니까요. 내가 갈보리 어머니하고 나하고 살다가 갈보리 어머니 가시고 나 혼자 거기서 살다가 나중에 누가 살았냐하면 교회 집사님이 있었어. 이 집사님 이라고 그 분이 그 집에 살았어. 내가 한참 살고, 그런 저기를 하면서 문제를 제기하시고, 그때당시에 김 준호 선생이 같이 있었어요. 그때 굴에 그런 환경 목격 다 하고, 오 장로님도 오셔서 계시고 한나 씨 어머니도 와서 조금 계시고 왔다 갔다 했어.

사) 신촌 굴에요?

한) 예, 거기 말했던

사) 서울어머니도 같이?

한) 예, 모두 와서 왔다 갔다 하시면서 했지. 그리고 거기서 저리 옮겨 가가지고 거기서 김 준호 선생을 서울 어디에다가 입원을 시키려고 안식교 인천에 무슨 병원이 있던지 결핵 환자 수용 안 받아 준다고 또 입원실도 없다고 광주로 빨리 연락을 해서 제중병원에 되어가지고 그때 내려가서 같이 입원 하셨지. 지금까지 인제 그 고기는 그렇게 해주면서 우리의 공로로 구원받는 거 아니고 예수의 피로 이렇게 구원받는다고 그런 하시면서 지금까지 내가 잘못했다는 식으로 그 아픈 사람들은 고기도 먹고 약도 써야 하는데 그 춥고 보대끼고 하는데 그 잘못했다는 식으로 하시면서 내려가셔 가지고 파계를 하셨지요. 그런 저기를 뭘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사) 아현동 사시다가 동광원으로 다시 들어가셨어요?

한) 나요? 그렇다고 봐야지요. 능곡에 가서 한 1년 살다가 또 내려갔다가 여기 온 거는 군대 갔다가 한참 뒤에 라니까요. 군대 가기 전에 그렇게 왔다 갔다 한 거예요. 기피자 시절에,

사) 능곡에 한 1년 사셨어요?

박) 아니요. 56년도 11월 달에 올라와 가지고 그해 겨울 지내고 그 이듬해 3월 5일 날 여기에 왔지요.

사) 아 능곡으로 57년 3월 5일 날 계명산에 들어오시고 예,

박) 세 두 어머니 모시고 같이 들어와서 살다가 아까 이것 말하려다 여기다가 막처럼 하나 지어놓고 여기 내려와서 사는데 그 4-50명 식구가 어떻게 식구가 많아가지고

사) 그게 1년 뒤에 식구가 4-50명 된 거예요?

박) 아니요, 금방 금방 사람이 불었어요.

사) 어떻게 그렇게 불었지요?

박) 그래가지고는 여기 광주서 오기도하고 그래가지고 58년도에 떡 번지 개발했지요. 식구가 갑자기 몰려들기 시작하니까 인제 먹고 먹을 게 없어요. 그러니까 처음에는 몇 식구 모여서 사는데 먹을 것이 너무 없으니까 감자를 사다가 하지감자를 사다가 빵에다 쪄서 한쪽씩 먹고 죽으로만, 죽으로만 살고 그런데 차차 30명 40명 되는데 그것은 어떻게 먹느냐 하면 여기 서울 어머니 동생이 서울에서 합판 집을 하는데 부자거든요. 그 집에서 어떻게 우리 식구를 존경하는지 세상에서는 내 노라하고 사는 양반이 이집에 오면 요러고만 앉아 있어요. 그래가지고는 그 집에서 십일조를 한 달에 70만 원씩을 냈답니다. 그래가지고 그걸로 쌀 팔아서 조금씩 보태서 죽이라도 끓여서 먹고 보리도 그렇고 그래가지고 그 많은 식구가 식량이 너무 부족하니까 그렇게 먹고 살아도 쓰러지는 사람도 있고 개간을 시작을 했어요. 58년도에 개간을 저 산에다가.

사) 58년 봄부터요?

박) 예, 개간을 하기 시작해 가지고 금방 옛날에 절터라는데 4천 평을 개간을 하는데 나무를 막 쓰러뜨리고 개간을 했는데 거기다가 옥수수를 처음에 많이 심고 콩 팥 심어서 그걸로 주식에다 보탠 거예요. 쌀 조금 팔아다 놓은 거로.

사) 산도도 심고?

박) 예, 산도는 그 후에 몇 년 뒤에 심고 잡곡을 심고 그 해에는 옥수수를 많이 심어서 옥수수로 주식을 하고 그걸 말려놨다가 찧어서 도토리하고 같이 겨울에 밥처럼 그릇에 담아먹고 또 고구마는 심을 데가 없으니까 저런 밭 에다가 조금씩 심으면 아침에는 우거지 죽, 낮에는 우거지 밥이라고 해 놓은 것이 데굴데굴 밥 티 알은 어쩌다 보이고 저녁에는 고구마 하나씩 두 개씩 많이 먹어야 그렇게 먹고 잡곡만 하다가 한해에는 거기다가 4천 평에다가 벼를 심었어요. 산자락에 심어서 한 40가마니해서 내려오고 그렇게까지 못 먹어도 남의 도움 안 받고 죽만 먹으면서도 거기서도 또 절제하고 또 절제하고 거기서도 또 떼고, 떼고 떼어서 서울 삼각지 그런데 아는 집사님이 사는데 겨울이면 그런데서 배고파 죽는다고 난리데요. 옛날 세상에서는, 그것을 절제를 해서 모아서 놔두면 그런 사람들 갖다 주라고. 한번은 식사 당번이 화가 난거예요. 식구는 못 먹이면서 그렇게 한다고 화가 나서 그리 안 갈라고 미지 적 거리고 얼마나 혼이 나게 때리는지 그냥 해가 이렇게 다 넘어갔어. 그런데 서울 어머니하고 이 복순 언니하고 나하고 서이 그걸 이고 나간 거예요. 그 사람들 갖다 준다고 배고파 죽는다니까 갖다 줄라고 막 잔뜩 이고 나가요. 이녁 식구는 못 먹는 거 밤에 이고나가서 찾아가요. 거기가면 주 집사님이 사시더만. 이걸 배고파 죽는 사람들이 있다니까 줄라고 가지고 왔다고 시방 끼니를 못해서 굶고 앉아있는 사람도 있다고 그러고 막 반가워해요. 그러고 그걸 갖다 주고 집으로 돌아오고 그때는 한 40명 식구가 많은데 식량을 보리쌀 한 사람 앞에 반 홉씩 이지요. 그것을 주면 거기서 또 뗀다고요. 십일조를 그래가지고는 그걸 떼어가지고 주면 너무, 제가 창고에서 내지만 밑에 사람들이 식모 둘 데리고 식감이 있지요. 그 사람 둘은 매일 설거지하고 거기서 막 도랑가에서 장관이에요. 우거지를 쪼느라고 그러면 막 쪼는 소리가 난리에요. 그때는 도랑물을 그냥 먹었어요. 너무 식구들은 해주고는 싶고 먹을 것은 없으니까 한번은 곡식 내준 것을 부엌 앞에다 다 버려요. 화가 나서 남도와 준다고요. 먹을 거 없다고 이렇게 적게 준다고 먹이고는 싶고 화가 나니까 나한테 화풀이를 하는 거예요. 내가 곡식을 내주니까 내가 그럴 때 마다 내가 같이 그러니 저러니 하면 싸움이 되지요. 그러니까 그럴 때마다 하나님이 저에게 좋은 마음을 주셨지요. 내가 안 참으면 누가 참아 주겠어요? 어머니들 몰래 어머니들 나오기 전에 다 땅에서 줍고 했다고 그럼 누가 보고 와서 주어주는 사람도 있어요. 다 주워주고 어쩌겠냐고 하자고 그러지요. 그러면 자기도 그래놓고 후회를 하지요. 그렇게 해서 살고.

사) 그때 훈련 받았던 거예요? 40명 되는 사람이 와서?

박) 그렇지요. 전부 못 먹고 못 입고 밥만 먹으면,

한) 자기 집에서 아무것도 안하는 사람도 광주서 중학교 나오고 그런 사람도 여기 와서 나뭇짐하고,

박) 지게지고 산에 가요. 아침 먹으면 산에 가요. 그래가지고 너무 틈이 없으니까 산에 가서 바느질 할, 그때는 목면 옷을 입으니까 헤어지기도 잘해요. 그래가지고 바늘하고 헝겊하고 갖고 간대요. 산에 거기서 나무 얼른 해놓고 앉아서 꼬맨 데요. 꾀매 면 그러고 저 같은 사람도 그래요. 그때는 하나님이 잠을 안주셨는가 한시 두시면 다 깨요. 저녁에 11시까지 실 잇고 그래도 두 시간 자고 많이 자야 세 시간 자고 깨면 그때부터 일어나서 이것 꼬매 입어야 해요. 꼬매 입어야 일을 하지. 그 시간 아니면 할 수가 없어.

사) 초롱불 켜놓고?

박) 예, 초롱불 켜고 그 시간 아니면 할 수가 없지. 딱 시간이라는 건 그 것뿐이 없지. 새벽에는 네 시에 한동안은 한나 어머니가 완덕의 길이라고 이 선생님이 해 놓은 말씀이 있어요. 그걸 공부를 해. 그러면 세시에 일어나지요. 세시에 일어나서 한 시간 동안 예배시간까지 학생들 일어날 때까지 그 공부 한 시간 하고

사) 몇 명이요?

박) 큰사람들만 하니까 한 20명 되려는가? 학생들 어린사람들은 좀 더 자고 4시에 일어나. 일어나면 그때부터 또 실 잇는 거예요. 실이어요. 그리고 밤 11시까지 또 실 잇고.

사) 실 이어가지고 베 짜는 겁니까?

박) 예, 직접 짜지요. 실을 처음에는 삼도 심어서 그 삼도 한쪽에 있어요. 삼 심어서 솥에다가 세워놓고 저런 데서는 굴에다가 삶는데 솥에다가 해놓고 다발로 삶아가지고 삼베를 한동안 놨었지요. 그리고 목화 심어서 그것 가지고는 해당이 안 되니까 방직공장에서 목실 그런 거 한발씩 되는 거 그런 걸 남산 밑에 거기 옛날에는 찌꺼기 실을 파는 집이 있었어요. 남산 밑에 거기 가서 사다가 그것을 사러 가면 열 몇 관씩 스무 관씩 그렇게 사가지고 오면 그걸 다 풀어서 이어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