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금농사

상강 지나고 진도 울금 : 영혼문제와 육신 문제

mamuli0 2025. 10. 26. 11:30

 을사년 월동무 작황은 좋은편이 못되ㅗ 울금은 좋은편이다. 상강 지나고 치자밭 울금밭을 돌아보았다.

 

영혼 문제와 육신 문제

2000. 1. 26

‘여러분이 그 처지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고 나와 지금 같이 있다고 생각하고 고난을 함께 나누십시오. 학대받는 사람들의 슬픔에 동참하십시오. 여러분 그들이 당하는 슬픔이 어떤 것인가를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결혼과 그 서약을 존중하고 잠자리를 더럽히지 마십시오. 순결을 가지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부도덕한 자들이나 간음한 자를 심판하십니다.’

좀 더 봅니다. 여기 ‘돈에 매이지 말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십시오.’ 다른 성경에는 돈이라고 안하고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탐심으로 가지고 하느냐를 생각해라. 내 감정적인 요구를 채우기 위해서 일을 하느냐? 아니면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기위해서 일을 하느냐? 또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을 하냐? 내 몸만 생각하고 하느냐? 고거요. 돈에 매이지 말라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십시오. 내게 주어져 있는 것을 잘 관리하면은 필요한 것들은 하느님께서 주실 것이니까 내가 필요하다. 하면은 하느님이 더 잘 아신데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결코 내 기대를 져 버리거나 네 곁을 떠나지도 않겠다. 아까 아브람이 천사를 맞아 주는데 그 하느님은 내년 이 때 온다. 그랬지만은 항상 안 떠나는 거여. 우리에게도 하느님은 안 떠나요. 떠났다 그러면 숨을 못 쉬어요. 생명의 근원이시니까 사느라 다 계시지만은 내 생각이 떠나서 안 되어요. 우리는 어떠한 의심이나 두려움 없이 이렇게 말합시다. 주님이 나를 도우시니 나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인간이 나를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복음10장38절 손님대접이거든, 이게.

예수께서 마르다 자매를 방문하시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예수살렘으로 여행을 계속하시는 길에 한 마을에 들어갔는데 마르다라는 여자가 예수를 자기 집에 모셨다. 그 여자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마루에 앉아서 예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자 식사를 준비하느라고 정신이 없던 마르다가 예수께 와서 말했다.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보시고도 왜 가만히 계십니까?’

이 말씀하시고 계신데 동생하고 지금 대화를 하고 있는데 가만 계신다. 그래 이게 가만히 계신다는 말은 지금 큰일을 하고 있는데 그 오신 목적, 심방하는 그 목적을 이루고 있는데 자기는 가만히 있다고 그래요.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다는 게, 자기만 바쁘지 이 우리는 몸으로만 움직여야 만이 뭣 하는 거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기도 할 때는 가만히 앉아 있잖아요? 서서 하든지 기도는 뭐 누워서도 하고 길가면서도 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잖아요? 또 그 호흡도 쉬지 않죠? 숨은 쉬는 게 일하잖아요? 우리말로 ‘쉰다.’ 쉰다고 해요. 숨을 쉰다. 쉰 것이 일한 거라. 쉰 것이, 쉴 식(息)자는 숨을 쉰다는 식(息)자고 쉴 휴(休)자는 몸이 쉰다 말이에요. 그에 한국 글자도 인(人)변에 나무목(木)을 쓰니까 십자가 지는 일이지. 십자가지는 이 몸으로 활동하는 것이 영혼이 쉬는 일이에요.

그러자 식사를 준비하느라고 정신이 없던 마르다가 예수께 와서 말했다.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보시고도 왜 가만히 계십니까? 이렇게 보는 거여. 가만히 계신다. 이 저 목적이 다른 거여. 목적은 지금 밥 얻어 자시려고 지금 오신 것이 아니거든요. 가만히 계시니까, 어서 저를 도와주라고 말씀해주세요. 그럼 어떻게 되느냐? 예수를 어떻게 알아봤냐? 배고픈 게 어서 어서어서 시장기를 면하게 하라. 그래 빨리 도와줘야 안 되냐? 이제 아까 아브람, 종, 사라 어쩌면 그리 빨리 하냐? 빨리 하란 말 안 했겠지만 인자 한다 말이야. 아 했지, 는 이자 빨리 하란 말했어도 뭐 누구 도움 받으려고 한 게 아니냐? 각각 자기 종도, 아이 나 혼자 어떻게 손을 잡아가지고 어떻게 혼자 합니까? 그럴 텐데, 그런 말 없거든. 물론 저 종이 하나에게 매였지만은 삼 백 십팔 명이나 있기는 있어요.

여기는 안 나타났지만 훈련하는 사람, 그러자 주님이 말씀하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답답하기도 하다. 어쩌면 그렇게 마음이 어둡냐? 너는 여러 가지 일에 너무 얽매있다 말이야.’ 긍게 몸이 가만히 있을 새가 없어. 모두 정신이 말이야. 뭣도 봐야하고. 뭣도 해야 하고, 뭣도 해야 하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거든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무엇을 또 해야 혀. 시간이 모자래. 또 잠도 자야하는데 또 자버리면 또 그렇고 항상 시간이 모자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여러 가지 일에 너무 얽매여 걱정하고 있구나. 걱정 근심 걱정 모든 근심 걱정을 송두리째 하느님께 바치라고 했는데, 아 쪼금도 안 바치고 자기가 다 해결 할라고 그래 부지런히 해가지고 이 걱정 없이 해볼라 한 거야. 그럴라 하면 더 이제 더 생기지. 그래서 욥의 신앙 참 어쩌면 하느님이 걷어 가시기 전에는, 하는 일이 많아. 그래도 그 불평 안하고 잘했는데, 딱 가져가 버리니깐 아무 일이 없거든요. 이 감사 한 거야. 바쁘다고 뭐 핑계할 것이 하나도 없어. 아무 일거리가 없고 마음만 하나하고 통하지, 이 찬송하고 감사 했지. 무슨, 그렇지 보통 그걸 신앙했으면 일거리가 없어도 걱정, 있어도 걱정, 망해도 걱정, 적어도 걱정, 요만하면 족하다 할 때는 없어요. 왜 그냐면 욕심은 그것으로 만족이 있을 수가 없으니까 물질로 가지고 영혼의 만족은 채울 수 없으니까.

또 육신의 만족 만족이 없어요. 한도 끝도 없으니까 에덴동산도 그것도 욕심에 안차.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여러 가지 일에 너무 억매여 있구나. 얽매여 걱정하고 있구나. 걱정하고 동생과 정반대네. 참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일은 한 가지뿐이다. 관심, 마리아는 그것을 발견했다. 발견하였다. 아주 중요한 거 꼭 그 문제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러면 그 내용이 뭣인가? 여기 간주가 있거든요. 여러 번 들었어요. 어디요?

 

시편16편1절서11절. 5절 한 절로만 됐었는데.

‘참으로 관심을 가지야 할 중요한 일은 한가지뿐이다. 마리아는 그것을 발견했다. 나는 그것을 그에게서 빼앗고 싶지 않다.’ 공동번역에는 아무라도 그걸 빼앗을 수 없다. 그런 축복을 어떻게 욕심 부려도 소용없다. 관심, 관심 문제 요. 어제 아침에 한군데 발견했거든요. 관심이란 말을.

 

첫 순서 여기가 있고, 요한복음16장5절에 있어요.

성령이 하시는 일

‘나는 지금 나를 보내신 분에게로 간다. 그런데도 너희 가운데 아무도 내가 어떤 목적으로 가는지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다.’ 없고, 어떤 목적으로 가는지 왜 가시게 되는지. 왜 우리를 놓아두고 가시는지. 가면 우리도 같이 함께 간다고 꼭 가야한다 말이야. 가지 않으면 성령이 오실 수 없어요. 가야 성령을 보내요. 내 이름으로 구하라. 뭣이든지 내 이름으로 하라. 허명무실(虛名無實), 예수의 이름이 없어. 십자가가 없어요.

예수이름이라는 말은 예수이름 땜시 많은 고난을 받은 거여. 이것만 ‘주여, 예수님 이름으로 빕니다.’ 그런 뜻 아니 여? 예수의 그 정신, 예수의 가진 마음. 희생적인 마음, 사랑의 마음, 십자가로 통한 생활, 고난이여. 고난. 예수이름은 죽음이고, 죽음을 기쁘게 생각하는 거여. 전 인류를 대표해서 죽는 거여. ‘나는 지금 나를 보내신 분에게로 간다. 그런데도 너희 가운데 아무도 내가 어떤 목적으로 가는지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고 그 이유를 묻는 사람도 없구나.’ 걱정뿐이지, 왜 가는 가? ‘너희는 오직 슬픔으로만 차있구나.’ 감정이 슬퍼. 그러나 사실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더 유익하다. 안 떠나면 너희들은 끝이 없다. 희망이 없다. 성령을 받아야 돼,

그러나 사실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더 유익하다. 만일 내가 가지 않으면 돕는 자께서 성령 보혜사 돕는 자께서 오실 수 없다. 내가 가야 그 분이 오신다. 내가 가서 그 분을 보낼 것이기 때문이다. 내 이름으로 구하라. 그러면 무엇이든지 준다. 필히 성령 준다. 구하는 자식에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구하는 중심 내용이 뭐냐? 성령에는, 성령일까 죽음이야 죽음, 성령은 육체소욕의 반대니까, 죽이니까 우리가 구하는 것은 먹는 것 물질적인 거야. 영적인 건 못 구한다.

손 대접은 마르다와 마리아 누가 손 대접을 제대로 했냐? 마르다는 손 대접을 잘못하면 푸대접 한 거야. 먹기만 매인 사람으로 친 거야. 너무나 예수님의 그 고귀한 정신을 이해 못한 거다. 그래 우리같이 먹는 거만 알면 제일인줄 안다 말이야. 이 땅에 꺼, 그게 관심 뿐이여.

 

마리아는 정신문제 영혼문제 예수의 마음을 알아보고 받아들인 거여. 주시고 싶은 것을 마리아는 그대로 통한다 말이야. 받아야, 가만히 말씀 들으니 통하거든. 얼마나 심정이 기쁘고 감격할거여. 그래 고 막달라 마리아의 정신은 같은 거여. 그런 비유를 든 거여. 막달라 마리아가 얼마나 예수님을 알아 모시고, 총재산 총 정신 마음 목숨까지 다 바치잖아? 그 이상 더 통하고 그 이상 더 사랑할 수는 없어요. 피와 눈물로 다 바치잖아요? 털끝만치도 간격이 없단 거여. 예수와 그 사이 그 마음 사이가 다른 것이 없어. 똑 같아요. 그것이 복음이거든요. 이 복음적인 생활 율법적인 생활 행동으로만 하려면 복음 전에 그 마음 성령의 역사에 일치 되는 거야. 복음 하느님도 은총이고, 복음이고, 사명이 다 은총이고 복음입니다.

 

또 여기 관심, 그만 보고, 또 어디 있냐면.

고린도전서9장11~12절

우리는 여러분에게 영적인 씨를 심었어요. 영적인. 육적이냐? 영적이냐? 그야 마르다와 마리아의 사이도 그래요. 마리아는 영적인 면, 예수님의 그 마음 뜻. 마르다는 육적이란 말이에요. 음식 몸에 의한 것. 우리는 여러분에게 영적인 씨를 심었습니다. 그러니 그 보상으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요구한다고 해서 지나친 게 아니야.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야. 지나치겠습니까?

다른 설교자들도 그 썩을 것도 제대로 씹지도 않고도 받아먹는데 말이야. 영적인 것을 심었으면 물질적인 것 당연히 받아도 된다. 그러나 그랬잖아? 다른 설교자들도 그런 권리를 내세워 여러분에게 그런 요구를 하는데 하물며 영적인 걸 심은 우리가 하물며 우리에게 그럴 권리가 없겠습니까? 얼마나 있고도 남아요.

그러나 우리는 한 번도 이런 요구를 물질적인 요구를 내세우지 않고 모든 것을 여러분의 도움 없이 스스로 일해서 충당하였습니다. 혹시 그런 피해를 끼쳤다가는 여러분의 관심이 우리가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멀어질까가 염려한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당신께 드릴 음식일지라도 얼마간은 필요에 따라 가져도 된다고 말입니다. 그 뭐 법을 어긴 건 아니야. 당연해. 그러지만은 하느님의 제단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주께 바친 제물에 분깃을 나누어주신 것입니다. 주께서는 또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그 복음을 듣는 사람으로 부터 생활비를 얻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동전 한 푼 요구한 일이 없습니다. 복음에 장애가 되니까 관심이 복음에서 멀어질까 보니깐 안 받아요. 또 지금이라도 회개했으면 좋겠다하는 뜻으로 이런 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나는 여러분에게 무상으로 복음을 전할 때 얻는 기쁨, 이 받으면 기쁨이 없다 말이야. 무상으로 그저 받았으니까 그저 주니까 기쁨이 있다는 거야. 기쁨을 잃어버리기 보다는 차라리 굶어 죽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과 그 가치가 얼마나 틀리냐? 탕자 형이 생각하는 생명의 가치가 송아지만도 못하고 아우가 돌아온데, 아우에 대한 생명의 그 가치를 몰라. 송아지하고 비교가 되겠습니까? 우주 만물하고 비교, 한 영혼이 비교가 안 되는 거야. 하느님의 형상인데 말이야. 그런데 그렇게 가치관이 틀린다.

 

그러면 저기 17절

'만일 내가 자진해서 이 임무를 맡았다면 주께서는 내게 특별한 보상을 주시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택하셔서 이 거룩한 임무를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이거 다른 성경에는 없어요. 17절 이 거룩한 임무 거룩하게 하는 사명.

이 거룩하지 않으면 모두 물질적인 거든, 거룩은 영적인거야. 정신.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다. 구별. 순결.

 

18절

이런 상황에서 내가 받을 보수가 무엇이겠습니까? 누구에게도 부담을 주지 안 해. 폐를 끼치지 안 해. 진리적이어야 한다 말이야. 부담을 주지 않고 내 권리를 조금도 주장함이 없이 복음을 전한데서 오는 특별한 기쁨, 이것이 바로 내가 받을 보수입니다.

 

19절

아무에게도 보수를 받지 않는 만큼 나는 어느 누구에도 얽매이지를 않는다. 자유여.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되도록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려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 그 영혼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려는 것뿐이지. 내 육체생활을 하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에요. 이게 달라요. 전혀 관심사는 영혼이지. 육이 아니란 말이에요.

영혼문제가 해결되면 육은 저절로 해결돼요. 육의 문제만 해결하려면 영혼문제는 전혀 해결이 안돼요. 먼저 영혼문제만 해결되면 육신문제는 그 안에 다 완성이 되어버리는 거여. 사랑은 율법 완성이니까. 육체문제만 해결이 된 후에 영혼문제 해결해야겠다. 그건 안돼요. 그 문제 그거만 보고.

 

어제 아침에 발견한 건데 관심. 어제 같이 봤죠? 어딜 까?

갈라디아4장16절

그런데 지금 여러분에게 진리를 말하고 있다 해서 나를 원수처럼 여긴다 말입니까? 어디 인데 틀리냐 말이여? 눈이라도 빼어 줄라고 하고 예수와 같이 대한 사람 그렇게 열렬하던 사람들이 그 보수, 그 은혜로 은혜 갚으니까 진리를 말해야죠. 대접을 받았으니깐 무거운 짐인데 병신이니까 무거운 짐인데, 예수같이 대해주고 눈이라도 빼줄려고 그런 열성을 부린 사람들이 왜 그렇게 돌변 하냐? 이게 관심이 어디에 있었냐? 영에 있지 않다는 말이야. 육에만 있지 육에 물질에만, 여러분의 호감을 사려고 거짓교사들이 열성을 보이는 것은 여러분의 이익을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여러분을 나에게서 떼어내서 자기들에게 관심을 돌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세군데 있고 또 그런데 있을 거여. 관심 그러면 인제 바울사도에서 떼어나가는 그 사람들이 관심의 정신과 바울사도의 정신과 뭣이 달라요?

 

바울사도는 우선은 대접은 받았지만은 그건 영혼을 위해서 받은 거여. 그 안 받을 수도 있어요. 있지만은 가려서 그들을 접촉하는 것은 그 영혼을 건지려고 한 것이지. 뭐 몸을 뭐 대접받을 라고 한 것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들은 아 몸으로 그냥 막 눈이라도 빼어 줄 정도로 정성을 쏟았는데 말입니다. 이 참말을 하니까 진실로 말하니까 영적인 문제는 쪼금 말했다는 말이야. 그러면 그 일을 안 돌아오게 하려면 진리를 말 안하게 해야 되잖아요?

근데 영적문제를 해결하려니까 말 안할 수가 없잖아요? 또 돌아올 것도 알고도 했을 런지 몰라요. 알았겠죠? 왜 그러냐? 돌아가서 인자 그 대로 살아봐야 되니까 말로만 들어도 집에가 이해 안 되거든요. 이 인자 속아가지고 가서 살아보면 결과가 나타나요. 아 참 바울사도가 한 말씀이 진리였다. 인자 실패를 당할 일이 뻔하니까 그런 거니까 뭣이 사건이 있으면 무조건 없기만 바라지 말란 말이야. 그 사건을 통해서 여기같이 말이야.

그 재앙을 통해서 배나 발전해요. 전화위복이란 말이야 이사야나 어떤 성도도 그래요. 여기서 탕자만 모두 알거지가 되어버리잖아요? 그러니까 죄를 깨달았잖아요? 죄를 깨달았으니까 돌아왔지 형은 한 집에 살아도 아버지도 몰라요. 죄를 몰라요. 그게 막 미운마음이 나도 죄도 몰라요. 송아지 잡은 것만 원통하지. 그렇게 거리가 멀어요. 그래 우리 감정은 그렇다 그 말이에요.

어제 그 나발과 아비가일이 이랬다. 그걸 보고 성서 관, 성서 관 성경을 어떤 마음으로 보느냐? 그 얘기를 보고, 그럼 아까 아브람의 천사 맞이해서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했네. 마르다와 마리아는 누가 손님대접을 잘했냐? 마르다는 열심히 몸을 희생했지만은 손님을 푸대접한 거여. 그 인격을 몰라본 거여. 이게 자기가 지금 먹는 거만 준비하면, 먹는 거만 되면 될 줄 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 뜻을 받아들인 거야. 주시고 싶은 것을 가만히 말씀 듣고 받아들인 거여. 그 내용은 그랬다 그래요. 그 표현대로 하면 예루살렘은 지금 올라가는 길이니까 십자가 지러가는 길이거든요.

이제 마지막 심방이에요. 더 인자 시간이 없어요. 근데다가 남자 제자들은 사흘 만에 부활한다는 말 많이 들었어. 근데 딱 생각도 안하고 다 잊어버리고 사는데 너만은 귀동냥으로 들었더라도 너만은 기억한다. 그러니 내가 죽었다는 소리 듣고 놀래지 말라. 부활한다고 말하러 간 거야. 그러면 그걸 안 믿었으면 예수 죽었다고 절망해버려. 아이고, 이거 어쩔가? 이 그러지 않도록 고 말 하나 부탁하러 너는 꼭 그 말 잊지 말라. 나는 살아난다. 부탁을 한 거야. 그러니까 부활하게 됐지. 먼저 만나게 된 거야. 마음으로는 항상 예수를 사모한 거예요. 긍게 마음으로 예수, 손님을 대접하니 물질로만 저번 왜 요 문제가 나왔냐?

어제 그런 말 들었어요. 아 남원을 누가 가면은 손 대접을 누가 할까 누가 하냐? 아 그 식구들 많이 있지 않냐 말이야. 음식대접은 손님 대접인가? 그러면 그 영혼대접은 못돼요. 그 남원에서 찾아온 사람이 배고파서 찾아온 게 영혼문제로 찾아오지. 이 영혼문제에 대해서 자기들 요구가 있으면 잘 들어주는 거예요. 들어주면 또 저쪽에서 꼭 알아볼라 하면 요쪽에 서로 인제 주고받고 하지만은 전혀 지금 손 대접을 제대로 못한 거 에요. 그냥 오면 그냥 막 내 말만, 뭔 문제를 갖고왔냐하면 문제도 없으면서 오거든 그 내가 여기서 뭐 말만 했는데 인제는 김선생님 말씀은 들어주라는 거여. 들어주라 그 잘못된 것을 말하지 말고 잘못된 것을 스스로 보고 깨닫도록 하라는 거야. 저는 손 대접을 잘 못했어. 푸대접을 한 거야. 그냥 그렇게라도 그 것을 받는 사람, 또 좋아라 하니깐 어쩔 거여? 또 그렇게 자주 온 사람은 자기 먹을 거 이상으로 갖고 와 버리거든. 갖고 와요. 그렇고,

 

영적문제를 그 요구에 의해서도 문제의 해답을 받은 것이 그 이상 대접이 없어요. 영혼문제, 육체문제는 아무리 봐도 이건 해결이 없거든요. 끝이 없어요. 끝없는 족보얘기 땅의 것을 만나 만족할 수가 없어요. 왜 그러냐? 그런 체험을 안 해봤더라도 성경을 봐서 알지 않냐? 성경의 역사적으로 봐도, 우선 탕자로 봐도 그러고, 그렇고 인자 엇다가 대냐?

 

관심, 시편16편에 현대어 성경으로 대조해 봅시다.

1절

'하느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모든 영육 간에 복이라면 예수님뿐이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에게 있도다.'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뿐이에요. 물질적인 문제는 자꾸 뭣을 바쁘게 하면 무장들 바쁘고 더 정신 놓을 데가 없다. 일거리 자꾸 많으니깐 욕심 채워 놓으면 또 있거든. 이 모두 관리하려면 말이야.

그 욥의 생활이 그랬어. 십 남매 하나라도 매일 하느님 앞에 범죄 할까 봐서 번제를 지내게 되거든. 바빠요. 그냥 종도 많으니깐 모두 무얼 일을 시킬라 뭐들라 바쁜데 그래 그 바쁜데 서대지는 안했거든 자연스럽게 나간다. 종들도 자기 할 일 다 알아서 그래서 정신적으로도 바쁜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다 가져가 버리니까 인자 개운해. 아무 문제가 없잖아요?

당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 할뿐이야. 저희가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니 물질적인 거요, 여호와는 나의 산업 영혼이 간절해요.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마르다는 영혼만 관심 가져. 한 영적인 산업, 영적인 재산.

 

히브리11장

성도의 재산이 뭣인가? 애급의 모든 임금과 모든 보물보다 그리스도 하느님의 자녀들과 함께 역시 천대받는 것이 영적재산이라 말이야. 물질적인 그 부귀영화 왕이 되는 것 싫다. 그것보다는 그리스도 이름으로 멸시 받는 것이 성도의 재산이라.

“여호와는 나의 산업 나의 자녀소득이지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은 뭐이냐? 줄로 요 밖에 벗어나지 말라. 요 영의 세계에 있지 물질계로 벗어나지 말라. 물질도 영의세계 안에 있습니다. 잠깐 우리 영혼을 깨우치기 위해서 있는 것뿐이다.

조금 누려보고 아니면 버리라는 거야. 물질들은 영원히 살 것도 아니야. 나그네 생활입니다. 보면서 깨닫고, 깨닫고 버리고 깨닫고 가는 거지. 나의 분깃이 지키나이다.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은 거룩하다. 거룩, 거룩한 구역, 모세에게 네가 선 땅은 네 발로 선 땅은 거룩하다. 발의 신을 벗어라. 요거 발의 신이 아니라 정신 신, 정신 그릇된 정신을 버리라 그거야. 신은 신이지.

‘나의 기억이 실로 아름답도다.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어다.’ 하느님이 나를 훈계하셔야,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한다. 하느님이 훈계하신 내용이 뭐냐? 하느님이 나를 훈계하시는데 내 안에서 스스로 내 심장이 또 나를 교훈해, 가르쳐. 내 심장 각자 사람의 그 심장 이게 아까 마리아는 말씀으로 들으니까 그이 마음으로 받아들인데 자기 속의 마음이 예수의 마음하고 통한다 말이야. 주고받고 그 교훈을 받는데, 말씀을 들으면 교훈을 받아, 이렇게 하라. 너 잊지 마라. 나 부활한다. 말 네가 기억하고 있으니 꼭 그 잊지 마라. 하아아 그 감격이, 네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시며 네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다. 하느님이 항상 계신 거,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 마르다가 말씀 듣는 동안에 속으로 아주 기뻐했을 거 에요. 언니가 너무 어둡고 이해를 못할 거라. 내 육체도 안전히 거기에 있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신다.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이니라.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생명의 길이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다. 영원한 즐거움 영적인 즐거움 이렇게 관심이 달라. 마리아의 관심은 영적인 것이고 마르다의 관심은 물질적인 것이고 손님 대접은 영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지. 육체 우선, 뭐 배고픈 사람 같이 먹어야죠. 없으면 같이 굶고 그거지 특별히 뭐 그것가지고 해결은 없어요. 물질로 가지고 영혼문제 해결할 수 없어요. 영혼문제가 해결 되면 물질문제는 초월해버리니까 해결이 돼 있다.

 

거기 하나 정신자립 물질자립 경제적인 자립 정신적인 자립은

골로새4장12절 구역이 잘 된 거여. 구역이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니 저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한다. 그러면 기도 내용이 뭐냐? 그야 골로새 교인들을 위해서 에바브라라는 사람이 애써 기도해,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을,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한다. 그 이게 뭐냐? 구역에는 하느님의 뜻을 밝게 앎으로써 정신이 확신 확고부동해서 신앙이, 그렇게 기도한 거야. 모든 문제는 하느님의 뜻을 밝게 알아지면 해결이 된다. 주여, 주여 한다고 다 하느님나라 간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뜻대로 산 사람이 천국에 간다. 하느님의 뜻, 그러면 하느님의 뜻이 뭐냐? 하느님께서 이거 인도한 너희의 거룩함이다.

 

마태복음7장인데 말씀은

누가 내 어머니고 형제냐? 남자들 제자들에게 갔습니다. 누구든지 하느님 뜻대로 제자들같이, 뜻대로 사는 사람은 내 어머니요 내 형제요 자매다 그랬다 뜻, 거룩, 하느님의 뜻은 이거 인도한대로 거룩합니다. 거룩함은 뭐냐? 음란을 버린 것이다. 그게 거룩이야. 하느님은 모르는 사람같이 책임을 떠나 살지 않아요.

 

이건 정신의 자유입니다 골로새4장12절은 하느님의 뜻 밝게 앎으로써 모든 정신이 바로 선거여. 인자 경제자립 데살로니가전서4장11~12절

 

3절

‘하느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하느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쫓지 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거 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니라. 하느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부정케 살라고, 음란하게 살라고 부른 게 아니에요. 아니라 거룩하게 살라고 불렀어요. 성도답게,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린 것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느님을 저버린 것이다. 부정케 산 것은, 또 인자

 

11~12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조용히 종용하여 종용해 우리가 조용, 조용하죠. 국문으로 쓰면 조용히 쓰는데 한문으로 하면 쫓을 종(從) 순종이나 쫓을 종(從) 얼굴이요. 종용입니다. 종용, 순종한다 말이야,

자기 일을 하고 구역에는 뭐라 그러냐면 뜻을 세워 그 말이야. 뜻을, 아까 그 골로새4장12절에 11절에 하느님의 뜻을 자기 뜻으로요. 내 뜻은 포기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라면 뜻이 하나야지. 둘이면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겠어?

내 뜻은 버리고 하느님의 뜻이 뜻은 하나. 그래야 동요 없지. 뜻이 둘이면 항상 임금이 둘이면 어떻게 돼? 어떤 임금을 순종해요? 똑같지는 않을 테니까. 재물과 하느님을 겸할 수는 없다. 하나야지. 육의 요구와 영의 요구가 같이 만족할 수는 없다는 말이야. 서로 적대시하니까. 긍게 뜻을 세워보면 이 말이다. 하느님의 뜻을 자기 뜻으로 세워 살면 안 된단 말이야,

너희에게 이제 명한 것같이 뜻을 세워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여라. 바울사도는 손이 부르트도록 노동을 하고 그리고 또 3년 동안 밤낮으로 눈물로 훈계했다 말이야. 그러면 언제 육적활동을 하겠어? 밤에도 이 분 일하겠어? 낮에는 했다고 하더라도 그 정신이지 몸은 하난데 어떻게 육체활동하고 또 정신활동을 하고, 종용 잘 순종하고 진리에 순종한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벌어라. 이제 경제적인 자립이야. 인심 써라. 어느 외인을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라. 그만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