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시래기 걷는 날 : 오직 은총으로

mamuli0 2024. 3. 10. 12:28

 지난 겨울 악천후로 시래기가 좋지 않다. 요즈음 매일 시래기를 걷고 있다. 진달래와 노란 수선화가 많이 피었다.  군대에 가있는 윤이가 휴가로 다녀갔다. 안방 문앞에 있는 탱자나무 잘나낸 가지를 태웠다. 

 

 

 

오직 은총으로

『동광원 사람들』/ 정인세 원장

이 글은 1971년 3월 18일 선생님 추모일에 계명산에서 정인세 원장님께서 하신 추도 말씀입니다.

 

꽃이 피고 잎이 피는 3, 4월이 되면 우리들의 영육을 사랑하셔서 피와 살이 마르도록 염려하며 사랑해 주셨던 이미 고인이 되었던 선생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이 되면 누가 모이라는 것도 아니고 이날을 무슨 날로 정하지도 않았는데 선생님이 그리운 사람들은 모여듭니다. 모이면 서로 이현필 선생님에 대하여 생각도 하고 한마디씩 말씀을 합니다.

저는 이 선생님의 말씀을 가장 멀리하고 안 지킨 사람입니다. 또 잘 몰랐고 멀리에서 뵌 사람인데 그분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분은 은총 가운데 사시면서 대단한 고신극기(苦辛克己)를 하셨고 노력하는 사람이었으며, 신비적 체험을 가진 분으로서 실제 문제에 밝고 철저하신 분이었습니다.

이 시간에는 이점에 대하여만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이 두 가지 문제는 조화되기 어려운 듯하고 많은 모순을 드러내지만 그분에게 있어서 어찌나 잘 조화를 이루고 그분같이 이 문제를 생활로써 아우르신 분은 드물다고 봅니다.

 

 

첫째, 그분은 은총 속에 사시면서 고신극기 하셨습니다. 누구나 그분을 대하고 그분 말씀을 들을 때는 은총 받으신 분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 없이 그렇게 말씀에 사로잡혀 사실 수 없고 주님의 각별하신 은총의 사랑을 입지 않고는 그렇게 사랑의 사람이 될 수 없으며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그렇게 지혜롭게 통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 하나하나가 성경 말씀에 근거했었습니다. 저도 그 점에 매력을 느낀 사람입니다.

보통 은혜받은 이들의 말씀은 학문이 매우 넓거나 웅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가장 쉬운 말로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으로 선명하고 친절하게 말씀하셔서 하루 종일 들어도 싫지 않고 마음이 흐뭇합니다.

성경 몇 장 몇 절이란 말씀을 일일이 안하셔도 모두가 성경에 부합합니다.

어떻게 그분은 종일 말씀하셔도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이것은 크신 은혜에 사로잡힌 까닭입니다. 또 그분의 말씀을 듣는 이는 누구나 심중에 깊이 사무치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감동하고 이해하게 되며 사랑을 느끼게 합니다.

그분 교훈을 받은 이는 누구나 그분의 사랑을 증거 합니다.

그분의 희생적 생애와 함께 주님의 사랑을 받은 분만이 줄 수 있는 점 때문입니다.

그분과 살아보고 배운 이는 누구나 그 지혜와 총명에 감탄합니다.

그분은 모든 사물의 원리를 다 깨우치셔서 정치인을 만나면 정치적 원칙을 지적하시고 경제인을 만나면 경제적 원리, 실제적인 문제를 친절히 가르치시고 교육자에게는 교육 정신과 방법을 말씀하시며 사업가에게는 사업에 대하여 농민에게는 농사짓는 법을 살림하는 여인에게는 반찬 만드는 일과 간장, 고춧가루, 깨소금 쓰는 법까지를 가르치시고 심지어는 옷 짓는 일까지도 가르치시며 화장실, 창고 짓는 법까지 모든 것을 말씀하실 수 있고 친절히 지도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초등학교만 마치셨고 만권의 서적을 읽거나 연구실에서 탐구하신 적도 없지만 사람의 마음 깊은 곳까지 통달하여서 만나는 사람은 누구나 문제를 풀고 갑니다. 이 모든 것은 오직 성령님이 함께하신, 모든 것을 통달하신 성령님에 의한 것입니다. 깊은 성경 지식, 깊고 거룩한 사랑, 무궁한 지혜를 풍족히 받으신 분이셨지만 그분은 노력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분같이 고신극기하신 분도 드물다고 봅니다. 보통 은총이라면 거저 되는 줄 압니다. 수고하고 애쓰지 않아도 알아지고 저절로 성인이 되고 기도도 지혜도 훌륭한 인격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줄 압니다. 사실 은총은 거져 되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은총을 받은 분 일수록 굉장한 희생을 지불하는 것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부모, 형제, 처자나 전토까지 버리고 성경이 지적한 대로 자기를 죽이고 십자가를 지고 놀랍고 무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은총을 받은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인 줄 압니다.

 

이 선생님의 고신극기는 뛰어났습니다.

그분과 그분을 따르는 이들을 고행주의자라느니 행함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이들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분은 음식 잡수시는 것을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잡수시는 것은 될 수 있는 대로 거칠게 적게 가능하면 안 잡수시려 하였습니다.

깨진 그릇에 가루를 조금 타 놓은 것이 며칠씩 되어 곰팡이가 나기도 하고 음식을 드시려다가 손님이 오시면 중지하거나 손님에게 드리시곤 하셨습니다.

곁에서 보기가 딱하고 민망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분의 옷은 언제나 헐벗었습니다.

심할 때는 살이 나오는 헌 옷을 손으로 감싸고 다니시고 떨어진 고무신짝을 끄시는 걸인 모습으로 다니셨습니다. 옷은 거지들과 바꿔 입기를 즐겨하신 것입니다.

잠도 못 주무시고 종일 가르치시고 성경을 보고 계셨습니다. 결핵을 앓으시는 중에도 병세 악화에도 안정을 취하지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며 말씀을 하시며 모든 일과 사람을 대하셨습니다. 병환이 깊어져서 후두결핵이 심하여 물도 넘어가지 않고 열은 매일 높아 숨쉬기가 힘들게 되어서도 필담으로 끈기 있게 가르치시던 일은 우리에게 생생합니다.

종일 쓰시면서 상대가 이해할 때까지 계속 글로 써서 말씀하셨습니다.

몸을 아끼지 않으셨고 괴로움을 모르셨습니다.

희생과 봉사는 그분의 사랑의 결과였습니다.

그분의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생애는 은혜 없는 이 참된 은혜 받은 경험이 없는 이가 보기에는 고행으로만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모든 말씀과 생애는 하나님의 크신 은총에 사로잡힌 결과요, 주 예수님의 사랑에 녹아진 결과입니다.

은총은 그분의 사생활을 없애고 주님과 같이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하여 소모하신 것입니다. 은총 없는 고신극기는 율법이 되고 불평 원망의 씨며 피곤하기만 합니다.

많은 수도자가 은총 없는 고신극기를 하려 합니다. 이는 은총을 헛되이 하는 인간의 작은 꾀에 빠져 은총을 잃어버립니다.

 

 

이 선생님의 생활에서 우리는 은총 안에 생활하시는 참모습을 보았습니다.

고신극기는 은총의 결과요, 은혜받은 이는 고신극기를 기쁘고 즐겁게만 합니다.

힘들고 고행이지만 쾌감을 느끼면서 즐겁게 수도를 할 수 있습니다.

유황불 속에서도 사자굴 에서도 찬송을 하고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면서도 감사할 수 있는 순교자의 생활은 은총의 사람들만 할 수 있습니다. 참 은총은 우리들의 육신과 세상을 멀리하고 죽게 합니다. 은총 없이 십자가를 질 수 없습니다.

 

둘째, 그분은 신비적 체험을 하시는 분이면서도 실제 문제에 밝았습니다.

신비주의자라는 비난을 많이 받으셨듯이 확실히 신비가였습니다.

그분의 신비는 깊은 산 중에서, 골방에서, 외로운 들에서 하나님과 단둘만의 깊은 교제에서 얻어진 것입니다.

화악산을 도장으로 삼았고 기도실로 알았습니다. 산 중의 토굴에서 그리고 숯막에서 금식하며 기도하셨고, 깊은 겨울 눈 속이나 어둠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날을 눈 속에서 단식하며 기도하셨고 하나님과의 교제와 대화에 빠져들고 주님 십자가를 깊이 명상하였습니다. 피조물의 세상을 떠나 신과 만나기를 원하셨습니다.

자기를 떠나 영과 영만의 교제를 하신 분, 항상 기도 중에 계셨고 성경 읽기에 골몰하셨습니다. 기회만 있으면 성인전을 읽으셔서 그 정신을 항상 살리셨습니다.

그분의 모습 말씀은 경건하고 거룩했습니다.

 

 

동정 문제를 해결한 것도 이 결과입니다.

동정은 그리스도의 비밀이요 음란은 사단의 비밀이라고 깨달으신 것도, 남녀 문제는 모든 문제의 시금석이라고 하신 것도, 성빈의 복음을 가르치신 것도, 깨끗한 사랑을 체득하시고 실천하며 교훈하신 것도, 모두 신과의 교제에서 얻으신 것입니다.

그분은 신의 비밀을 아시고 이것을 증거하시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동정을 가르치시고 이것이 복음이라고 외치고 가난을 가르치시고 사랑의 생애를 가르치신 것은 신으로부터 직접 배우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강하시고 담대하시면서도 겸손하고 자비롭고 온유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깊어지셨고 그 사랑을 친절하게 가르치셔서 우리 속에 깊이 들어왔습니다.

신비, 그분 생애에서도 잘 표현되는 것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신비를 무시한 사업이나 신앙생활-사회 참여는 너무 세속화를 조장하여 위태롭습니다.

우선 신과의 교제가 모든 기독교 활동이나 기독교 사업에서 그 토대가 되어야 합니다.

신과의 참 교제는 사람들과의 올바른 교제를 성립시키고 인생 문제를 개별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완전히 해결시킵니다. 이 점을 선생님은 체득하시고 가르치셨습니다. 후두결핵 위중으로 제중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매점 경영도 하시고 병원 운영도 조력하셨고 환우들의 요우회도 조직하시고 지도하시기도 하셨습니다. 환자 사이의 불화를 해소시키셨고 화목을 이룩하셨습니다. 어디든 가시는 곳마다 그곳에 화해가 이루어졌습니다.

선생님을 만나면 누구나 기쁨과 희망을 갖게 되었고 생의 의욕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인생문제, 직업문제, 사회문제의 의문을 풀어주셨습니다.

 

 

그분은 신비가였으나 현실적인 분이셨습니다.

기독교의 깊은 진리는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을 체험하셨고 몸소 실천해 보이셨습니다.

그 교훈이 살아서 움직이고 우리에게 힘이 되신 것입니다.

 

공론과 지식만으로는 아무 힘이 없으며 생활 없는 지도는 무력합니다.

그이 지도가 감화가 되고 순종케 하는 것은 그분의 깊은 은총, 자기의 희생적 체험,신과의 교제에서 얻어진 능력, 사랑의 체득이란 종합으로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오늘날 교계에서는 얼마나 천박한 교훈, 무책임한 설교와 전도 무책임한 지도가 성행합니까? 말뿐인 교훈, 형식뿐인 종교 생각하면서 배우고 깨닫는 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매마른 교리, 무자비한 율법, 시끄러운 사업, 알맹이 없는 교회, 열매 없는 교회, 학교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신앙도, 지식도, 열매도 없는 것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다시금 이현필 선생님의 생애와 교훈을 생각하면서 배우고 깨닫는 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