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추석전 동진과 길농원 : 악마와의 싸움

mamuli0 2019. 9. 8. 20:56

 추석전 길농원 사과는 아오리 수확이 끝나고 제 13호 태풍 링링의 강풍과 비를 맞아 상처를 입었다. 진도 일차 파종 월동무는 많은 비로 망가졌고 울금과 토란은 상처를 입었다. 약간의 나무와 시설물이 피해를 당했다.

 동진면 안성리에 가서 벌초를 하고 왔다.사람 사는 것이 헛된 일이 많다. 벼논들이 콩밭으로 많이 바뀌었다. 금년 추석이 일러 아직 과일이 익지 않은 것들이 많다.


 


 악마와의 싸움


1982.02.14. 정인세 원장


 10절서부터 에베소 6장 10절서부터 읽겠습니다.
 내가 끝으로 여러분에게 권고할 말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과 함께 살면서 그분에게서 강한 힘을 받아 굳세게 되십시오. 속임수를 쓰는 악마에 대항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무기로 완전무장을 하십시오. 우리가 대항해서 싸워야할 원수들은 인간이 아니라 권세에 악신들과 세력의 악신들과 암흑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의 악령들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나님의 무기로 완전무장을 하십시오. 그래야 악한 무리가 공격해 올 때에 그들을 대항하여 원수를 완전히 무찌르고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굳건히 서서 진리로 허리를 동이고 정의로 가슴에 무장을 하고 발에는 평화의 기쁜 소식을 갖추어 신고 손에는 믿음의 방패를 잡으십시오. 그 방패로 여러분 악마가 쏘는 불화살을 막아 꺼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구원의 투구를 받아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또한 열심히 기도하고 간구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청하십시오. 언제나 성령의 도움을 받아 기도하십시오. 늘 깨어 있으면서 끈기 있게 기도하며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십시오.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내가 말을 할 때에 해야 할 말을 하나님께서 주셔서 기쁜 소식에 심오한 진리를 대담하게 전할 수 있도록 간구해 주십시오. 나는 지금 갇혀있기는 하지만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명을 띤 사람입니다. 그러니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말을 대담하게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에베소서를 마지막으로 여기만 읽고 일단 끝낼까 그럽니다. 성도들의 영적 무장이라고 그럽니다. 우리 인생들에게는 항상 마귀의 시달림이 있고 죄와의 싸움이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더 큰 시험이 많이 있고 예수 믿고 예수님을 따라가려고 하면 많은 어려움과 장애가 부닥칩니다. 외적으로도 시험이 많지요. 천변지재도 있고 생활난도 있고 질병도 있고 전쟁도 있고 기근도 있고 많은 괴로움이 있어서 우리 신앙생활에 방해가 되지만 특별히 믿음으로 살아보려고 영적 생활을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하루에도 수없이 마귀가 방해를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 싸움을 어떻게 해서 이겨나가느냐? 하는 것을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여기 맨 먼저 주님과 함께 살면서 강한 힘을 받아라.  그런 말씀은 그 위에도 여러분 나왔습니다. 내적으로 속사람을 굳세게 해라. 심령이 강한 힘을 얻어라. 하나님께로부터 힘을 받아서 마음이 강건해 지기를 바란다. 먼저 영혼이 죄를 싸워서 죄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얻으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세상에서도 항상 싸움을 많이 하지만 가장 어려운 싸움은 악마와의 싸움이라고 그럽니다. 마귀는 강하고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우리보다 훨씬 지혜롭기 때문에 약간 우리의 지식이나 우리의 신앙 그런 정도 약한 믿음 가지고는 도저히 마귀는 대항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여기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싸우는 것은 이 세상에 있는 그 무엇이 아니고 권세의 악신들과 그 세력의 악신들과 암흑세계의 지배자 즉 하늘에 악령들이라. 너희들이 날마다 시험에 걸리고 넘어지고 싸우고 그러는 또 너희들이 항상 부닥치는 어려움의 대상은 하늘의 악령들 이라고 그랬습니다. 하늘의 악령들 우리들이 인생들보다 훨씬 강한데 눈에는 보이지 않고 우리가 결심으로나 말로나 행동으로는 막아볼 수가 없는 것이 이 악령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은 항상 괴롭고 불안하고 우리는 수없이 죄에 빠지고 또 그러고 성도들 간에 항상 시끄러움이 있고 분쟁이 있고 시기가 있고 질투가 있고 그 전부 악령이 그 마음가운데 들었을 적에 그런 것 아닙니까? 어떻게 해서 이것과 싸우느냐? 그러므로 지금 하나님의 무기로 원전무장을 하라고 그랬습니다. 세상에서는 총이나 칼을 가지고 적과 싸우지만 악마와 싸울 때는 총이나 칼로 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하나님의 무기라. 그럼 하나님의 무기는 무엇이냐? 거기 14절에서부터 그 무기를 한 일곱 가지로 구분해서 말씀 했습니다. 


   


 첫째는 진리로 허리를 동이라. 진리 진리라는 무기를 가져야 악마 마귀와 싸워서 이길 수 있다. 가장 마귀가 침투하기 좋은 것은 우리의 거짓입니다. 우리에게 거짓이 있을 적에는 마귀가 얼마든지 들어와서 분쟁을 일으키고 그럽니다. 우리가 경험으로 알거니와 거짓이 있는 곳은 항상 시끄럽습니다. 영적으로 만족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항상 시끄럽습니다. 그러니까 파리가 썩은 음식에 덤벼들듯이 마귀는 거짓 사회에 얼마든지 침투해서 싸움을 일으키고 시끄럽게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먼저 진리로 허리를 동이라. 이것이 마귀와 싸워서 이기는 첫째 방법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무기라 하나님의 무기는 진리 아닙니까? 믿는 사람은 항상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진리에 살고 진리에 순종해라.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 하시는 것 아닙니까? 진실 그러니까 우리가 무슨 어려움이 닥쳤던지 무슨 시험이 걸렸을 적에는 내게 거짓이 없나 그것을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상대편을 원망하거나 싸우거나 그럴 생각들을 하지 말고 먼저 내 자신 속에 거짓이 없나? 그 거짓이 무엇이든지 있을 적에는 거기서부터 모든 문제가 파생을 합니다. 그것을 놓아두고 그 생긴 문제를 해결하려고 그러면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먼저 내가 회개하는 마음으로 내 마음에 거짓을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진리로 허리를 동여라.


 


 그리고 정의로 가슴에 무장을 하라. 의에 흉배를 붙이라고 개역 성경에는 그랬지요? 가슴은 심장이 있는 곳이라. 적이 쳐들어와서 한번만 찌르면 즉사 하는 곳이 가슴 아닙니까? 가슴을 잘 보호해야 하는데 그것은 정의로 정의의 흉배를 붙이라고 그랬습니다. 의 이지요? 의, 불의라는 것은 항상 마귀편입니다. 한나라가 불의하면 그 나라가 망하고 가정이 불의한 재물로 부하면 그 가정이 전체로 망하고 내 생활이 불의한 것이 있으면 그것 때문에 내 안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파멸이 일어나는 것 아닙니까? 의라는 것은 옳다는 옳다. 하나님과 올바르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는다.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한다. 항상 내가 정의 편에 선다. 말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또 우리 생활이 내가 정의 편에 서지 않으면 실제로 자기 하는 일이 불의한데 내 마음이 불의한데 다른 사람이 나를 불의하다고 그런다고 덤벼들어봤자 아무 유익이 없어요. 더 불의가 강해질 것뿐입니다. 누가 네가 옳지 않다. 그러면 솔직하게 인정할 이유가 내게는 많이 있습니다. 나를 누가 도둑이라고 그러면 내 속에 도둑이 있는 것이고 나를 더럽다고 그러면 내 속에 더러운 것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고 나를 누가 거짓말이라고 그러면 내 속에 거짓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고 그것을 내가 언제 거짓말 했냐? 언제 도둑질 했냐? 언제 내가 그랬냐? 그것은 참 그것같이 바쁘고 끝없고 허망한 것은 없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지 그것보다도 내가 아무리 옳은 것 같아도 그런 지적을 받았을 적에는 내 안에서 그것을 찾아내면 얼마든지 그런 것이 나올 겁니다. 누구든지 왜 그러냐하면 우리는 그런 씨앗을 내 속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말씀 가운데 이 세상에 의인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네가 틀려먹었다고 하는데 만일 나는 틀린 것이 없다고 하면 성경에 대한 반역이 됩니다.


 


성경에는 다 삐뚤어졌다고 그랬는데 올바른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그랬는데 내가 올바르다고 어떻게 말해? 더군다나 내가 불의하면서 다른 사람의 불의를 말하는 것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거지. 이 세상에는 얼마나 그런 것이 많은가?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나는 더 지탄을 받고 더 심판을 받을 처지에 들 놓여있으면서 얼마나 다른 사람의 옳지 않은 것을 지적들을 하는가? 그러니까 이 세상은 점점 보기 싫은 세상이 흉한 세상이 되는 것 아닙니까? 의의 흉배를 붙여라. 이것은 악마와 싸우는 첫째 방법이라고 여기는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악마는 언제든지 불의편입니다. 악마는 언제든지 불의편입니다. 그래 내가 의롭지 못하면 하나님과 관계가 내가 올바르지 못하다면 내 양심이 올바르지 않다면 마귀는 언제든지 내 속에 들어와서 보금자리를 치고 나를 악마의 소굴로 삼을 것 아닙니까? 그러고 무엇을 한들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사람이라는 탈을 뒤집어쓰고 있는 이 동물들을 볼 적에 거의가 불의하다. 의로운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우리 이렇게 흐린 눈으로도 보게 되는데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은 의인은 하나도 없다. 그렇게 말 하시는데 우리가 거기에 대해서 무슨 항의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것을 생각을 할 적에 우리는 입을 봉해야 하고 그저 눈을 감고 귀를 막고 그저 죄인이로소이다.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죄인이로소이다. 이 불의한 종을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그럴 것뿐 아닙니까?


 


 무엇이 올바른 것이 하나나 있어서 그 다음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발에는 평화의 기쁜 소식을 갖추어 신고 그전 성경에는 복음의 신을 신고 그랬지요? 말씀위에 서라. 그 말 이지요? 내 생활 전체가 말씀위에 서라는 것은 참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그러나 우리 생활은 말씀위에 서있습니까 육으로 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지금 사는 태도들 세상위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말하고 보고 먹고 사는 것과 무엇이 다른 것이 있습니까? 똑같이 욕심 부리고 똑같이 정욕에 끌려 다니고 똑같이 거짓말들하고 똑같이 싸움들을 하고 그저 상대편이 욕을 한마디 하면 나는 두 마디 하고 무엇이 세상하고 다른 것이 있습니까? 어디 성경에 그렇게 하라고 그랬습니까? 밤낮 나는 옳다고 그러고 남의 잘못이나 지적을 하고 세상이 그러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디가 그 우리 생활터전이 복음위에 서있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남을 미워하고 어디가 성경에 누구를 미워하라는 데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복음위에 서있지 않습니다. 우리 생활태도가 근본적으로 복음위에 서있지 않습니다. 맨 남이나 평론하고 어디가 성경에 남을 평론 하라는 데가 있습니까? 남의 결점이나 보고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맨 이 끝이나 찾아다니고 자기 이익이나 도모하고 성경에는 자기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내 이익을 도모하는 것은 직접으로든지 간접으로든지 부끄러운 일이고 내 영혼이 죽는 일 아닙니까? 내 영혼이 죽는 일 아닙니까?


 


내 이익을 도모한 것 만큼 씩 내 육은 왕성해지고 내 영혼은 메말라져 가는 겁니다. 내 영혼은 자꾸 시들어져 가는 겁니다. 내가 희생을 많이 하고 내 육이 손해를 볼수록 내 영혼은 힘을 얻고 자유를 얻는 것 아닙니까? 그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이 나는 죽고 예수는 사는 것이 복음 아닙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복음의 신을 신으라는 것은 진리위에 서라. 그 말인데 우리가 길을 걸을 적에는 신을 신고 어디든지 활발하게 다니고 신발이 튼튼하고 잘 발에 맞을 적에는 길을 멀리 많이 걸을 수 있듯이 우리 신앙생활은 성경말씀으로 우리 생활이 무장되어 있을 때는 어디를 가든지 괜찮고 넘어지지 않고 씩씩하게 걸어갈 수 있고 잘 살아갈 수 있지 않습니까? 복음에 복음 위에서 이렇게 사는 사람은  복음의 기초위에다 내 생활을 둔 사람은 시련이 닥칠수록 바람이 불어칠수록 누가 나를 와서 험담을 하고 욕을 하고 잡아 흔들수록 더 강해져야 옳지 않습니까? 저 사람이 나를 때리면 나는 저 사람을 더 사랑하게 되고 저 사람이 나를 욕하면 나는 저 사람을 불쌍히 여기던지 위해줘야 기도를 해줘야 그래야 할 것이고  그것이 예수님의 가르침 아닙니까? 너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해라.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갖다 대라. 오리를 가자고하면 십리를 가라. 겉옷을 달라는 자에게 속옷을 줘라. 그것이 복음 아닙니까? 그럼 복음위에 사는 사람은 그대로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가 내일 부터는 또 공부를 며칠 시작합니다. 일 년 내내 열두 달 가서 말을 듣고 그래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고 자기 생활에 아무 적응성이 없는 공부는 참 따분한 것 이지요. 안하는 것 보다는 낫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복음의 신을 신는다. 그러는 것은 그 말씀 위에서 내 생활을 개혁해 나가는 것입니다. 한쪽 귀퉁이라도 내 생활을 성경말씀에다가 적응시켜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상한 사람을 봅니다. 그냥 일 년 열두 달 부흥회만 쫓아다니는 사람 또 일 년 열두 달 성경말씀이 좋다고 말씀만 들으려고 하루 24시간 붙어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사람이 다는 아니지만 그런 사람이 거짓말은 아주 떡 집어 먹듯이 잘하는 사람을 봅니다. 그래 그 지독한 모순이거든요. 지독한 모순이야 그런 사람이 욕심은 더 부리고 이중생활은 더하고 그런 것을 얼마든지 봐요. 저도 그런 사람이지만 우리가 그런 사람을 얼마든지 볼 적에 우리 생활이 대체 무엇위에 서있는가? 무엇위에 서있는가? 우리의 성질은 암만 회개를 하고 일생동안 30년 40년 50년 60년 동안을 믿는다고 하고 기도를 하고 그냥 뭐 몸부림을 치고 거꾸로 서고 바로섰다. 그래도 밤낮 그대로 있지 않소? 밤낮 그대로 싸울 것 다 싸우고 욕할 것 다 욕하고 욕심 부릴 것 다 부리고 여전하지, 무엇 때문에 그럴까? 어째서 그럴까? 우리 생활 기초가 잘못 놓였습니다. 그대로, 그대로 세상풍속대로 자기를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여기는 복음의 신을 신고 서있는 자리부터 고쳐라. 우리가 성경을 보면 그런 대목이 많이 나옵니다. 모세가 가시덤불에 불이 붙는 것을 보고 거기가 거룩한 곳인 줄 알고 가려고 그러니까 하나님이 네가 서있는 곳이 거룩하니 네 발의 신을 벗어라. 그랬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네가 신고 있던 세상 신발은 벗어버려라. 그 말 아닙니까? 그리고 새로운 생활태도를 취하라. 신을 벗으라는 말이 성경에 가끔 나오지요. 그것은 옛 생활을 벗어버려라. 그 뜻이야. 네 인생관이나 모든 생활태도를 고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장이라는 거야. 마귀와 싸우려면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힘센 사람하고 싸울 적에 내가 모래위에 가서 서서 싸우면 소용이 없지 않습니까? 저쪽에서 조금만 떠밀어도 버틸 힘이 없으니까 쓰러져 버립니다. 세상위에 가서 서서 마귀와 싸운다는 것은 그건 참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리위에 복음위에 내 생활이 서있을 적에는 마귀를 넉넉히 대항할 수가 있지 않겠느냐? 그래서 복음에 신을 신고 이렇게 말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평화의 복음 이라고 그랬습니다. 평화의 기쁜 소식을 갖추어서 신고 그리고,


 


 넷째 번으로 손에는 믿음의 방패를 잡으라. 우리가 사람을 상대할 적에 이렇게 부지불식간에 저쪽에서 나를 전쟁마당에서 별안간에 내 등허리로 와서 칼을 찌르고 또 어느 방향에서 별안간에 총알이 와서 내 머리를 꿰뚫고 나가듯이 마귀는 그렇게 별안간에 기습을 잘하는 것이 마귀의 습성입니다. 더군다나 저는 믿음이 약해서 요새 사람 만나기를 아주 두려워합니다. 참 죄송한 말씀이에요. 제가 이런 소리 하면 모두 여러분들은 오해하실 거예요. 사람 만나기를 아주 무서워합니다. 요새 그래 자꾸 피합니다. 없는척하고 신발도 감춰놓고 왜 이러는 고 하니 제 마음이 약해요. 그 사람들이 말 하는걸 내가 감당을 못해. 길고 어려운 문제들이 있지요? 재판을 해달라는, 내가 누구하고 지금 싸우고 있는데 저 사람이 나쁜 짓을 하지, 어떻게 해요? 그걸 내가 어떻게 재판을 합니까? 그 사람 말을 믿을 수도 없거니와 또 그 사람 말이 백퍼센트 다 옳다고 해도 옳다고 그래도 내가 어떻게 심판을 합니까? 제일 어려운 것이 남의 험 잡는 겁니다. 남의 험 다른 사람의 흉을 저쪽편이 아니라 누구든지 여러분들 그 당해본 이들은 알거에요. 어떤 사람은 내게 와서 한 시간씩 남의 흉을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꼭 이 내부 사람이 아니에요. 그 시간에 내가 고문당하는 시간입니다. 차라리 내가 옛날에 왜정 때 경찰서에 들어가서 거꾸로 매달리고 물을 먹고 두들겨 맞고 그런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나아요. 차라리 남의 흉을 한 시간씩 보고 앉아있으니 듣는 사람은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그 남을 죽이는 것 아닙니까? 그럴 때 나는 그 사람보고 차라리 칼로 내 가슴을 찌르라고 그래 징그러운 이야기지 그 남의 흉보는 것 듣기 좋은 사람 여기 있어요?  그런 법이 어디가 있어?


 


그러니 그것이 모두 이것이 무엇인 고 하니 믿음의 방패를 갖으라는 것 믿음으로 그걸 막으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방법이 하나밖에 없어 골방에서 기도나 하고 엎드리는 방법밖에 없다. 그럼요. 물론 기도하지요? 그런 말 들으면서도 하나님 저 입 좀 막아주세요. 저 사람이 벙어리가 되게 하던지 그렇지 않으면 내 귀 구멍을 좀 막아 주던지 그런 기도가 나와요. 그런 기도가 저절로 나와요. 하나님이 막아주셔, 물론 어려운 일을 어려운 일을 이렇게 겪을 적에는 언제든지 하나님을 의지해라. 이거에요. 믿음의 방패를 갖으라. 방패라는 것은 저쪽에서 칼이나 창을 가지고 나를 칠적에 아주 강한 쇠 쪽을 가지고 탁 막아내는 것이 방패입니다. 그래서 무사들은 왼쪽에는 방패를 들고 오른쪽에는 무기를 들고 그러고 전쟁을 하지요? 이걸 막아가면서 그걸 믿음이라는 거예요.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는 패가 아닙니까? 가만히 보면 어떤 때 그런 시련이 많이 오는가 하니 내가 방심하고 있을 때 아무 방패를 가지지 않고 무방비 상태로 있을 때 그런 시련이 잘 들어오더라니 까요. 내가 항상 기도하고 있거나 하나님 말씀 묵상하고 있거나 아주 그냥 내가 죽은 것처럼 있을 때는 건드려봤자 말해봤자 소용없거든. 그 사람한테 말해봤자 아무 반응이 없어, 이거 보시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내게 와서 흉을 본다고 그럽시다. 그럼 인제 두 가지 반응이 있을 때는 저쪽이 더 성합니다.


 


하나는 내가 들어줄 때, ‘아 그렇지, 그렇지 나쁘네. 그 사람 나쁜 사람이야. 그 죽일 사람이야.’ 그럼 좋아하지요? 그럼 이제 기름을 지르고 불을 지르는 것 같으니까 신이 나서 더하지요. 그런 때 하나있고 또 하나있지요? 뭐냐 하면 그쪽을 옹호해 줍니다. 하도 딱하니까 그런지 아닌지 몰라도 그 사람도 다 이유가 있을 것 아니냐고 그렇게 남을 흉만 보면 못쓴다고 그러면 또 난리가 납니다. 그쪽을 싸고도니까 자기를 나쁜 년으로 몰고 나쁜 놈으로 몬다고, 그런 두 가지 일 때는 반대 반응이 일어나 두 가지 일 때는 그렇지 않습디다. 그럴 때 내가 하나님께 맡기는 방법을 알면 좋을 텐데 뭐라고 하던지 그저 나를 죽여주시오. 하나님 그저 알아서, 알아서 하십시오. 하고 그저 귀로도 듣지 말고 눈으로 보지도 말고 이 혓바닥도 꽉 잡아매버리고 그러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있으면 좋을 텐데 그것이 어렵거든. 그 재주가 아주 그럼 인제 하나도 듣지 않으면 되거든 혼자 씨부렁거리라고 내버려두고 하나도 안 들으면 되는데 그렇게 하는 재주가 없거든. 뚫어진 귓구멍으로 자꾸 들어오거든. 그것이 내가 방패가 없어요. 아직도 내가 죽지 않았어. 감각이 없어 버리면 저 사람한테 가서는 암만 말해도 쓸데없구나 하고 안 올 거야. 그 다음에는 남의 흉보러 안 올 것 아니요? 예를 들면 하나 예를 들면 그렇다. 그 말입니다. 믿음의 방패라는 것은 나를 죽이는 태도를 가르치는 것이지요.


 


그래서 믿음으로 막으라는 거예요. 순전히 마귀니까 남의 흉보러 내게 오는 사람 그건 마귀지요. 그 사람이 마귀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속에 마귀가 있는 것은 사실 아니요? 동시에 나를 시험하는 것이거든. 이제 내가 흉만 들었어요. 무슨 예이던지 그렇다 그 말이지요. 그런 때는 이 믿음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하는 수밖에 없다. 그 말이지요. 이 믿음 이라는 것은 내 힘으로 내 지혜로 내 잔꾀로 그걸 적당히 하려고 그 사람을 달래 보내기 위해서 말해봤자 가만히 보니까 유익이 없어. 결국은 그 사람의 영혼에도 손해를 보고 내 영혼에도 손해를 보고 그저 그런 때는 하나님께 맡기는 수밖에 없어. 그 믿음의 방패를 가져라 하는 것은 네 지혜나 네 힘으로나 네 말로 대하지 마라. 그 말입니다. 그래 뭐라고 그랬소? 마귀의 화전이라고 그랬어. 그건 불화살을 불화살은 얼른 죽어버리니까 시원하기나 한데 이 저 그런 것은 아주 내 영혼을 굉장히 상처를 줘요. 그렇지 않아요? 그걸 막으라고 그 막는 길은 그 마귀의 악마의 쏘는 불화살 특별히 그 증오심 아주 그 증오심이라는 것은 옛날에 전쟁을 할 적에 화살 끝에다가 독약을 묻혀요. 화살 끝에다가 독약을 묻혀가지고 쏘면 그 화살이 요런데 살짝 요런 데만 살짝 하고 껍데기만 스치고 지나가도 독이 그곳으로 들어가요. 들어가서 피로 다 가서 그 사람이 죽어요.


 


뭐 이렇게 콱 박히면 그건 말할 것도 없고 그래서 화살에다가 독화살을 그런 말들을 하거든요. 그래 싸울 때 보면 말들이 독한 독약을 묻힌 화살과 같아 그래가지고 독기가 쉬 가시지 않는다니까요. 한번 이런데 살짝 닿으면 오래오래 몇 해씩 가. 그래가지고 서로 원수가 지고  그런 것을 또 속에다 품고 있으니 또 나오고 또 나오고 그러고 사는 것이 그것이 사는 겁니까? 누구를 나무래요? 그걸 누가? 마귀가 그러는 거예요. 자기가 지금 싸워야할 원수는 저쪽이 아니야. 어떤 세상 사람이 아니야. 환경이 아니야.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괜히 단체를 욕하거든. 단체가 나쁜 사람 되라고 누가 한번이나 가르쳤나요? 자기 속에 마귀가 있어서 그러는데 자기 속에 마귀가 있어. 그러는데 지금 그것이 문제들이거든요. 밤낮 아마 여러분들은 이런 말을 많이 들었을 겁니다. 시어머니하고 며느리하고 싸우면  시어머니는 그 다음부터 아주 며느리를 그냥 뒷그림자만 봐도 눈살이 찌푸리고 침을 탁탁 뱉고 싶고 또 며느리는 시어머니 목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쭉쭉 끼치고 보기 싫고 그렇게  될 겁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들을 할 겁니다. 며느리는 아이 이놈의 시집살이 지긋지긋해. 이놈의 시집살이 언제나 벗어버릴까? 그렇게 말할 겁니다.


 


또 아마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아이고 저년, 저년 언제나 꼬꾸라지는 꼴을 내가 언제나 보나? 급살이라도 했으면 그러고는 저주를 하고 어떻게 생각을 하시오? 그런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이 지옥이 아니겠습니까? 그럼 그 누구 탓이요? 어때요? 그거 시어머니 탓입니까? 며느리 탓입니까? 다 탓이지요? 자기 마음에 그것이 있는 걸 자기 마음에 지옥이 들어앉아서 그러는 걸 누구를 탓해? 그 가정이 따로 있나요? 시어머니하고 며느리가 모인 곳이 가정인데 그런데 그 이놈의 집안 식구 이놈의 집안 식구 욕을 해봤자 그거 누구 욕을 하는 거요? 자기 속에 마귀가 있어서 그러는데 우리가 그런데 사는 것은 지옥과 같은 거예요. 지옥과 같은 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그런 것을 대항하는 방법은 믿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니요? 결국 한마디로 말하면 믿지 않아서 그 문제가 모든 문제가 믿지 않아서 생기는 건데 믿음으로 그걸 해결하라는 거예요. 가만히 생각을 해봐요. 믿지 않는데서 나온 거 아니요? 그러니까는 믿음의 방패를 잡으십시오. 그 방패로 여러분은 악마가 쏘는 불화살을 막아 꺼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는 구원의 투구를 받아쓰고 구원의 투구를 받아쓰라. 그것은 소망 가운데서 살라는 의미가 되지요? 소망 가운데서, 우리가 세상만 이렇게 건너다 볼 적에는 아이고 참 아주 뭐 낙심이 나고 지긋지긋한 곳이 이 세상입니다. 도저히 세상에서 정치니 교육이니 하고 뭐 저녁마다 텔레비전 순서에 보면 애를 씁니다. 이 백성들을 가르치려고 그냥 이렇게 하면 되지 않겠냐? 저렇게 하면 되지 않겠냐? 자꾸 그러지만 뭐 어디가 뭐 얼마나 좋아지는 것 같습니까? 세상은 점점 거칠어지지 않소? 그러니까 낙심을 하지요. 조금 깨달은 사람은 왼쪽을 보나 바른쪽을 보나 소망이 없지요? 참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라. 그 말은 하늘을 쳐다보라는 말이지요? 하늘을 위를 쳐다보고 사는 거예요. 곁에 사람 보면 좋은 것 하나 없어요. 우리가 사람 건너다보면 그냥 차라리 여러분들은 이렇게 하늘을 쳐다보고 사는 연습을 해야겠어요. 차라리 방에 문을 닫아 걸어버리고 하나님하고 앉아서 이야기하는 법을 배워야겠어요. 이 구원이라는 것은 위를 쳐다보는 훈련입니다.  구원의 소망의 닻을 줘라. 위를 쳐다보고 사는 거예요. 그래서 자꾸 내 마음과 영혼을 들어 올리면 그 숨이 콱 막힐 듯 같은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마음에 평화를 우리가 회복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써라. 이렇게 그러고 거기까지는 어떻게 보면 소극적이고 나를 지키는 방법이 더 많은 것 같아요. 그 다음부터는 적극적인 면이 많이 나와요. 거기를 보면 성령의 칼을 받으라. 칼은 적을 치는 것 아닙니까? 지금까지는 전부 지키는 거야. 투구까지는 전부 지키는 것 아니에요? 그런데 그 다음 칼부터는 공격해 들어가는 거지요. 그걸 성경이 들어맞아 예루살렘에 모인 사도들에게 다락방에 딱 가둬놓으시고 성신 받을 때까지 떠나지 말라고 그러셨거든. 그 다음에 성신 받으니까 떠나라는 말 하지 않아도 저절로 문을 열어놓고 나와서 전도들을 했지요. 대담하게 전도들을 했지요. 우리가 이것이고 저것이고 성신 받으면 다 해결되는 거예요. 우리 아까 모두 이렇고 저렇고 이야기 한 것이 성신의 불만 받으면 뭐 미워하는 마음도 없어지고 원수도 사랑하게 될 것이고 뭐 남의 흉을 보라고 혀 바닥을 끌어내서 흉들 보라고 그래도 성신 받았다면 안 볼 겁니다. 성신 받았다고 그러면서 흉보는 사람은 그건 마귀 들린 거지. 성신 받은 것이 아닙니다.


 


 참 성신 받은 사람이 어떻게 상대편의 인격을 헐 수 있을 겁니까? 그렇게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성신 받으면 다 해결이 되는 동시에 그때는 적극적으로 내가 남을 위해서 일할 수 있지요? 그러기 전에 일 한다는 것은 참 마귀 심부름 밖에 안 되어요. 결과도 없거니와 열매도 맺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제 성신의 칼을 받으라. 이렇게 모든 무장을 든든히 진리의 허리띠로부터 구원의 투구까지 다 온 몸을 무장을 다한 뒤에 내 무장이 완전히 된 뒤에 그 다음에 성령의 칼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마귀와 싸워 이 세상과 싸우고 복음을 가지고 일을 하고 그러기 전에 됩디까? 어디? 저도 일생을 반성해 보니까 되먹지도 않은 것이 말을 하니까 효과는 고사하고 역효과만 나요. 어디가든지 내가 있는 장소는 더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나빠져, 내가 만난 사람은 더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자꾸 나빠지는 것 같고 내가 하는 일은 잘되는 것이 아니라 더 못되어 들어가는 것 같고 그것이 제 솔직한 심정이에요. 제 솔직한 심정, 왜 그러냐하면 이것이 안 되어 가지고 하니까 그렇구나. 성령을 의지해서 하지 않고 인간의 지혜나 꾀나 혈기로 하니까 그렇구나. 그것이 자꾸 느껴집니다. 자꾸 깨달아 집니다.


 


 여러분들이 혹시라도 저 같은 인간이 될까 해서 그래서 이 말씀 여러분들도 부디 이런 진리의 허리띠를 띠면서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쓸 때까지는 아예 일할 생각들 말아요. 가만히 엎드려서 진심으로 회개만 하면 되어요. 할 수만 있으면 사람도 만나지 말고 할 수만 있으면 방 밖에도 나오지 말고 될 수만 있으면 밥도 좀 먹지 말고 그 무장이 될 때까지는 꼼짝도 하지 말고 그럼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 성령님이, 성령님이 하라고 하시는 것만 하면 아마 틀림없이 하나님의 일들 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때 없이 자꾸 성경공부를 해봅시다. 성경공부를 해봅시다. 그럼 뭐 금년에 안 되면 내 년에 내년에 안 되면 저 내년에 십년동안 안되면 이십년 동안에 그저 죽는 날 까지 죽는 날 까지 그래도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그리고 이 마지막 번으로 이런 말씀이 있지요? ‘여러분은 또한 열심히 기도하고 간구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청하십시오.’ 이제 마지막에 기도입니다. 이 모든 것이 처음에서부터 끝까지 기도가 없으면 되지를 않고 또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합시다.


 


우리가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복음의 신을 신고 소망의 투구를 쓰고 다 했다고 하여도 기도 없이는 그것이 보전이 되지를 않거든요. 우리가 성신 받고 일 한다는 것도 계속해서 기도해야 그 은혜가 보전이 되지요.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산다는 것도 이 시간에 그렇게 살 수 있으려는지 몰라. 이 시간에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으려는지 몰라요. 그러나 기도 안하면 금방 날아가 버리는 걸 그 은혜가 그렇게 우리가 그런 것을 얼마든지 봅니다. 어느 사람 마음이 어느 때 보면 천사 같아요. 그가 말하는 것 들으면 참 기가 막히게 참 훌륭한 말을 해. 그런데 그 다음에 보면 금방 악마 같은 소리를 하거든. 야고보서가 말했듯이 어떻게 한 샘에서 짠물과 단물이 나올 수 있느냐? 네 입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창조하셨느냐고 착한 말만 하라고 창조하셨는데 그런데 어떻게 네 입에서 그렇게 악한 말이 나올 수가 있느냐고 그러는데 우리 사람의 입에서는 금방 아주 천사 같은 소리 하던 사람이 금방 악마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요. 어째서 그런가? 이거 기도의 등불이 꺼졌을 적에 그러는 거야. 기도하지 않으면 성신도 떠나버리시거든. 여기는 이 기도의 상태를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기도하고 간구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청하시오. 언제나 성령의 도움을 받아 기도하십시오. 언제나, 언제나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서 기도해.


 


그래야 진리의 생활도 지속이 되고 복음위에 서있는 내 발이 지켜질 것이고 그리고 믿음이 방패를 가지고 쓰는 것도 보전이 될 것이고 이렇게 성령을 의지해서 안하고 기도가 없으면 우리가 그걸 느껴요. 만일 이 안에 평화가 있다면 하나님이 주셔야 있지요? 기도할 적에 평화가 오지요. 그러나 만일 기도의 등불이 꺼져버리면 평화 없습니다. 마귀가 얼마든지 들어와서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 흔들 겁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시끄럽다. 이런 것을 생각할 적에 우리가 기도하지 않았구나. 그걸 즉각적으로 느껴요. 우리는 잠깐 일을 멈추고 하던 말을 그치고 그리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엎드려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것은 참 중요한 문제에요. 그래서 기도하는데 거기 기도에 대한 말을 제일 많이 했지요? 잘 보십시오. 18절에 여러분은 또한 열심히 기도하고 간구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청하십시오. 언제나 성령의 도움을 받아 기도하십시오. 늘 깨어있어 끈기 있게 기도하며 모든 성도를 위해서 간구하십시오. 얼마나 이 기도의 필요성 늘 깨어서 끈기 있게, 끈기 있게 성령의 도우심을 청해서 기도합시다. 자기만 위해서 기도하지 말고 같은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또 바울사도는 내가 지금 감옥에 갇혀있는 나를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무슨 기도를 하라고 그랬어요?


 


내가 강하고 담대하게 지금 감옥에 갇혀있으니까 낙심하기도 쉽겠거든. 조금도 굴하지 말고 이 환경에 내가 지배받지 말고 끝끝내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도록 나를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그래요. 여기서 보니까 무엇에든지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여기 말씀을 하고 있어요. 어때요? 우리의 지금 생활은 저부터 참 기도가 식어버려 꺼져버렸어요. 기도의 등불들이 꺼져버린 것을 새삼스럽게 느낍니다. 이 기도가 없으니까 마귀가 막 떼로 덤벼들어서 까마귀 떼 모양으로 마귀가 덤벼들어서 야단을 치는 것 아닙니까?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는 지금 요새 크리스챤 신문 교회연합신문 심지어 이 사회 신문까지도 제일 많이 다루고 있는 것이 통일입니다. 통일문제 삼팔선은 없어져야 한다. 우리 민족의 소원은 통일이다. 그런데 대개 목사님들이 쓴 글을 보면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모세가 홍해바다를 가르기 전에 그때 상태와 같다. 모든 것이 지금 그런 절박한 상태인데 이때는 사람의 무기로나 어떤 외교력이나 경제력 이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셔야 홍해바다가 갈라지듯이 이 문제는 해결이 된다. 기도해야 한다. 요새 제목들은 잘 잡히는 것 같아. 그 모두 기도해요. 물론 우리도 기도해야지요. 우리도 기도해야 하지요. 내 나라를 위해서나 삼팔선 문제나 남북통일을 위해서나 모든 것을 기도해야지요.


 


그러나 먼저 내 문제를 위해서 기도해야지요. 내 속에다 죄를 그대로 쓰레기통에 쓰레기 모양으로 꽉 넣어놓고 그리고 삼팔선을 위해서 기도한들 무슨 소용 있습니까? 무슨 효과가 날겁니까? 내 속에서부터 청소를 해서 해결되어야 하지요. 여기는 그렇게 기도를 해요. 또 우리가 복음으로 다 이 문제는 해결해야 한다. 그런 문제가 많이 나옵니다. 요새는 정치문제도 교육문제도 하나님이 없는 교육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런 말이 자꾸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육을 하나님의 뜻대로 해주시라고 기도하는 것도 좋지요. 그것도 좋지요. 그러나 내 속에 하나님이 없는데 그런 기도가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자기 문제가 먼저입니다. 자기 문제가 먼저에요. 여기 바울사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바울사도가 왜 기도를 많이 하는 이인데 에베소 교인들이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는지 몰라도 에베소 교인들에게 이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말을 할 때에 해야 할 말을 하나님께서 주셔서 기쁜 소식의 심오한 진리를 담대하게 전할 수 있도록 나를 위해서 간구해 달라고 나는 지금 갇혀있기는 하지만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명을 갖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말을 대담하게 말 할 수 있어야 한다.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다오. 이렇게 기도했어요.우리는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간구하십시오. 하나님의 도우심을 청하십시오. 우리 안에 내게 무슨 어려운 문제가 있느냐?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그냥 필사적인 기도를 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그런 기도의 문제가 너무나 많습니다. 언제나 성령의 도움을 받아 기도하십시오. 늘 깨어있으면서 끈기 있게 기도하십시오. 모든 성도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십시오. 또 하나님의 일꾼들 복음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 대담하게 하나님의 복음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우리들은 기도해야겠습니다. 이렇게 말은 하지만 우리에게는 확실히 너무 기도가 부족하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해야겠습니다. 찬송 부르십시다.

196장

HTML.구해 주소서

구해 주소서
 
구해 주소서
김준호


이 몸 먼지 구덩이 속에 고꾸라져 있사오니


주께서 약속하신 대로 나를 살려주소서


(시편 119:25 현대어)


우리의 마음은 먼지 속에 파묻혔고


우리의 배는 땅바닥에 붙었습니다


(시편 44:25 공동)


너무나 떨리어 이 몸 가눌 길 없습니다


야훼여!


어느때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오소서 야훼여!


구해 주소서


한없는 사랑으로 건져 주소서


(시편 6:3-4 현대어)


그 많은 고생과 불행을 나에게 지워 주셨어도


당신은 나를 되살려 주시고


땅속 깊은 곳에서 끌어내시리이다


(시편 71:20 공동)


그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배가 되어 일곱날의 빛과 같으리라


(이사 30:26 개역)


2015/01/06 연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