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현이네 휴가 보내기 3 : 오직 예수만으로

mamuli0 2019. 8. 16. 15:38

 순천만 습지를 보고 순천만 국가정원으로 왔다. 정원이 넓고 무더위에 지쳐 입구 앞 호수를 한바퀴 돌고 나와 돌산 숙소로 갔다.


 오직 예수만으로   


1980.07.31. 정인세 원장


 빌립보서 1장 21절 한절만 읽겠습니다. 내게는 그리스도가 생애(生涯) 전부입니다. 그리고 죽는 것도 내게는 이득이 됩니다. 다시 한 번 읽습니다. 내게는 그리스도가 생애(生涯)  전부입니다. 그리고 죽는 것도 내게는 이득이 됩니다. 빌립보서 1장 21절 말씀입니다. 


 


 이 시간을 갖게 된 것은 자매들이 원해서 오래간만에 만난 사람도 있고 또 이런 자리에 처음 나온 손님도 몇 분계시고 그런데 그냥 갈리는 것 보다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같이 생각하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하고 원하는 분이 계셨어요. 그래서 그 참 좋은 생각이라고 이렇게 그래서 이 시간을 갖게 된 겁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만났던지 오래간만에 만났던지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이런 자리 이런 시간을 허락하시지 않으셨으면 이렇게 만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락하셔서 만난 시간은 언제든지 두 번 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든지 이렇게 만났다가 한번 갈리면 우리가 죽기 전에 다시 만날 런지 안 만날 런지 또 이렇게 모여질 런지 그걸 모릅니다. 그러면 그 한번 밖에 없는 시간이라고 언제든지 그렇게 생각하고 우리들은 만나야 합니다.


 


한번 밖에 없는 시간을 하나님 앞에 가서 우리는 어떻게 보고할 수 있을까 하는 게 항상 문제가 됩니다. 그때 내가 너희에게 이런 시간에 이런 기회를 주었는데 그때 무슨 쓸데없는 이야기만 하고 흩어지지 않았느냐? 그때 무슨 이야기 했느냐? 뭐 내 앞에 조금이라도 기억에 남을만한 이야기 했느냐? 그걸 물으십니다. 꼭 그거 문제 되는 것이에요. 우리들은 공연히 만나서 모두 육신의 형편 집안 사정 세상 살림살이에 대한 이야기만 하다가 갈리지만 그건 하나님 앞에서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꼭 한번밖에 없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또 하나님 앞에 가서 반드시 보고 드려야할 문제를 우리가 생각 한다면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 밖에 없어요. 생각을 해보시오. 요새 세상이 이럴수록 더욱 그런 생각이 나거든요. 여기 지금 사도바울은 그리스도가 내게는 생애 전부라고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생애(生涯) 전부라 이렇게 말했는데 우리들도 적어도 여기 앉아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이 내 전부다. 이렇게만 되어 지기를 바라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여기 앉아있는 우리들은 인생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고 있는가? 대체 인생이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왔고 무슨 목적으로 살아야 하고 대체 우리가 오늘 저녁이라도 죽으면 어디로 갈 것이냐 하는 그 인생 문제를 깨끗하게 아주 분명하게 해결하고 있는가? 여기 앉아있는 우리 뿐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사람으로서 사람구실을 하려면 인생 문제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짧은 시간에 이야기하려니까 결론부터 달려 나갑시다. 인생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하는 데는 예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를 붙들기 전에는 예수를 알기 전에는 절대로 인생 문제가 깨끗하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생문제를 해결하는데도 예수는 절대로 필요하고 꼭 필요합니다.


 


예수님만 우리가 붙들면 내 인생문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틀리지 않고 깨끗하게 완전하게 해결이 되고 사라집니다. 그걸 믿어야 합니다. 그 외에 다른 것은 전부 낭비입니다. 또 가정 문제도 그렇습니다. 가정을 갖으려면 부부가 있고 부모 형제가 있고 자손들이 있고 그럽니다. 그러나 그 가정에 제일 필요한건 예수님입니다. 그 가정에 예수가 들어가지 않으면 그 가정은 참 가정이 못됩니다. 고기 덩어리가 모여 사는 것이지 진정한 의미에서 가정의 구실을 못합니다. 제가 결론만 이야기 한다고 그랬어요. 또 사회도 그렇습니다. 어떤 사회 던지 이런 단체라도 예수 빠지고도 잘들 삽니다. 그러나 예수가 꼭 끼어있어야 그 사회 문제가 해결이 되고 성공을 합니다. 나라도 그렇습니다. 이 국가도 지금 대단히 어려운 시련가운데 있지만 이 사람은 이렇게 해결 하려고 하고 그러고 저 사람은 저렇게 해야 한다고 그러지만 예수님이 들어가야 국가 문제도 깨끗하게 완전하게 해결이 됩니다.


 


요새 교육문제를 심각하게 하고 교육혁명을 일으킨다고 하지만 어느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상황 보면 그러나 교육에도 예수가 빠지면 교육이 제대로 되지가 않습니다. 제가 그 설명을 다 못해요. 많은 시간을 내어 가지고 증거를 대야하니까 어째서 그렇다. 아마 여기 앉으신 분들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거예요. 다시 말하면 가정 문제도 개인 문제도 국가 문제도 이런 교육이니 뭐 문화니 산업이니 경제니 어떤 문제든지 예수 없이 해결은 안 되어요. 예수가 반드시 들어가야 그 문제가 해결이 된다. 그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 이야기 하려고 하는 건 왜 그러냐 하는 걸 이야기 하려고 그래요. 어째서 예수 없이는 안 되냐? 하는 그 이야기를 하려고 그래요. 인생 문제도 그렇고 가정 문제도 그렇고 사회문제나 국가나 이런 문제가 안 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어째서 제대로 안됩니까?


 


사람이 사람 노릇을 못하고 정치가 정치구실을 못하고 교육이 교육을 제대로 못하는 것이 무엇 때문에 그럽니까? 죄가 그 속에 있어서 그래요. 죄가 그 속에 끼어있으면 암만 사람들이 사람 노릇을 하려고 거꾸로 서고 바로서고 수양을 하고 별 짓거리를 다해도 사람구실 못하고 죽어요. 막 말로 하자면 짐승같이 살다가 지옥으로 갑니다.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죄라는 문제를 해결을 해야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하는 것입니다. 이정치도 그렇습니다. 죄악성을 조금이라도 떠나야 정치가 올바로 되지, 죄를 속에다가 넣어놓고 헌법을 고치고 사람을 바꾸고 대통령이 갈리고 내각이 갈리고 해도 안 되는 겁니다. 정치가 바로 안 됩니다. 교육도 그렇습니다. 암만 교육환경을 부르  짖고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 봐도 죄가 그 속에 끼어있는 동안에는 교육이 제대로 안됩니다.


 


그러니까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예수밖에 없거든요. 그걸 우리가 잘 알지요. 예수님 외에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사람이 한국에나 땅 아래나 이 세상에 없어요. 통 누구도 죄의 문제는 손을 못 대요. 그러니까 반드시 예수가 들어가야 죄의 문제가 해결이 되고 죄 문제가 해결이 되어야 사람이 사람 노릇을 하고 가정도 제대로 되고 정치도 제대로 되고 교육도 제대로 되고 그러는 거야. 그러니까 예수가 꼭 들어가야 한다. 그것을 첫째로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또 어째서 예수가 들어야 되는가 하는 것은 우리가 완전한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지요. 그런데 예수님 외에는 완전한 사람이 없습니다. 암만 뭐 공자 맹자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어떤 성인이라도 다 음란 가운데서 나왔기 때문에 처음부터 완전하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시는 분들은 아닙니다. 제일 근본 문제인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동시에 죄 없는데서 나서 사람으로서 완전한 사람 노릇하신 분은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 외에는 완전한 인간이 고금동서에 없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항상 예수님의 인격을 흠모하고 예수님을 닮으려고 애쓰고 예수님을 배우고 예수님의 말씀대로만 살려는 성경에는 예수님 같은 사람이 된다. 그랬어요. 그래 예수님을 닮아가라고 그랬지요. 예수님을 닮으라고 그랬지요. 그리스도가 장성한 모양으로 그 겉까지 우리는 자꾸 인간성이 성장해야 한다고 성경이 가르쳤지요.


 


 어디까지 예수님이 완전하신거와 같이 너희들도 완전하게 되라 그게 목표에요. 다른 것을 우리가 표준으로 해가지고는 우리 인격을 완성 시킬 수 없습니다. 암만해도 되는 것 같아도 불완전해 그래도 우리가 예수님을 닮으려고 애쓸 적에 우리가 조금씩이라도 더 사람 구실을 할 수 있고 사람답고 사람 같은 생각을 하게 그렇게 되는 거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복잡하게 애들을 쓸 것이 아니라 간단하게 예수 붙들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사람 노릇한다.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우리는 예수님을 꼭 모셔야 한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지요. 또 어째서 우리가 꼭 예수님을 소유해야 하느냐?


 


 셋째 번 이유로는 예수님은 자기 뜻대로 산분이 아닙니다. 그랬지요? 항상 예수님은 기도하시면서도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렇게 완전하신 분이지만 언제든지 하나님 뜻대로, 자기를 비우고 자기를 버리고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종한 것이 예수님의 처음부터 끝가지 생활입니다. 우리 인간이 가장 완전하게 이렇게 예수님을 닮으려면 예수님과 같이 그렇게 내 뜻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그게 우리가 가장 완전하게 인생을 사는 길인데 그걸 믿음이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믿음의 모범이 되신 거예요. 그러니까 제일 오늘 세상에서 중요한 게 믿음이고 우리 믿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 믿음이 제일이다. 그러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실 수 있고 우리에게 그 완전한 신앙생활을 가르쳐 주신 게 예수님입니다. 이건 아주 큰 문제에요. 제가 참 이 말 한마디만 하고 이 시간에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말은 이 문제인데 지금 세상이 모두 흔들리지 않습니까? 나라마다 정치가 흔들리고 산업이니 경제니 하는 게 흔들리고 이 세상 흔들리지 않는 것이 어디가 있습니까? 따라서 사람, 사람들 마음이 전부 흔들리고 지금 뭐 이렇게 점방마다 가보면 물건이 팔리지 않아서 모두 도산지경에 있다고 그러고 중소기업이 뭐야 대 기업도 지금 전부 도산의 위기에 처해있거든요.


 


따라서 온 나라의 경제가 흔들리고 있는 거야. 뭐 석유파동이니 이런 거 말고 이건 전 세계적인 현상이야. 또 전쟁의 위기라든지 이런 것 때문에 전 세계 정치가 흔들리고 있지 않아요? 우리나라 정치도 지금 안정, 안정 뭐 말끝 마다 안정, 안정 하지만 어디 안정이 되어있습니까? 껍데기는 요렇게 조금 안정이 된 것 같지만 속으로는 큰 불안을 내포하고 있지 않습니까? 영원히 또 오늘 민주진영 공산진영 둘이 아주 그냥 참 큰 맹수들이 서로 으르렁 거리듯이 서로 잡아먹으려고 죽이려고 하는 거와 같이 어떤 나라 속에 들여다보면 적대세력이 있어요. 그래가지고 이쪽 세력이 밀고 들어가면 서로 저쪽 세력을 싹 밀어내고 또 요쪽 세력이 밀고 들어가면 저쪽 세력을 팍 누르고, 그러니까 세력을 잡고 들어앉았어도 불안 상태야.


 


언제 쫓겨날지 모르거든, 언제 죽을지 모르고 그러니까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이 있으면 오늘 저녁에는 여기서 자고 내일 저녁에는 저기서 자고 잠자리를 옮겨가면서 잠들을 자요. 그렇지 않은 나라가 몇이나 있어요? 언제든지 죽음의 공포가운데 있어요. 불안 가운데, 그러면서 나라를 바로잡는다고 하니 바로 잡아지겠소? 자기 자신의 잠자리 하나도 제대로 못 잡는 사람들인데 제 마음 하나도 못 붙들고 밤낮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들이 뭘 한다고 하니 어떻게 남을 붙들어 줘요? 그러니까 이게 근본 문제가 해결이 안 되어있어요. 그런데 이것을 해결하는 것은 믿음뿐이에요. 믿음,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을 든든히 믿으면 아까 여기 뭐라고 그랬어요? 읽은 대목을 보면 죽는 것도 내게는 이득이 됩니다. 이렇게 죽음을 초월하는 것이에요. 신앙이라는 것은 언제 죽어도 좋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내가 당당히 살고 있고 나 할 일 하고 있으니까 언제 죽어도 좋다. 이것이 신앙생활이야. 그러면 굶어 죽어도 좋고 금방 총에 맞아 죽어도 좋고 그렇게 되는 거거든요 그게 신자의 신앙생활이야.


 


그런 사람이 뭐든지 해야 정치를 해야 정치도 바로 되고 경제도 바로 되고 그럴 거 아닙니까? 또 적게는 한 가정을 유지하는데도 신앙이 그 가정에 들어가야 흔들리지 않는 거예요. 그러면 굶어도 웃으면서 굶어죽어요. 그 가정은, 그렇지 않은 가정은 돈만 의지하는 가정은 돈 떨어지면 부부싸움이 나고 울고불고 야단이나요. 이거 굶어 죽겠다고 그러고 신앙이 없이 돈으로 살려고 그러니까, 그렇게 되는 거예요. 또 개인도 내가 신앙 안에서 살적에 나라는 인간성이 확립이 되는 겁니다. 아까 두 가지 우리가 이야기 했어요. 죄 문제도 해결이 된다.  또 우리가 가장 완전한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 그게 예수님으로 된다는 건 신앙 때문에 그런다. 우리가 그래서 신앙으로 내 문제를 확립 하는 게 제일 바쁜 문제지요. 우리가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당황한 일이 생기면 그거 가지고 걱정하거나 그걸 내 지혜로나 내 수단이나 어떤 사람을 의지해서 해결하려고 그러지 말고 먼저 예수님 앞에서 내가 믿음을 바로잡는 거예요. 먼저,


 


그래서 그 이야기를 우리가 성경을 찾으면 많은데서 찾아볼 수 있지만 꼭 우리 한 두 군데만 얼른 보지요. 로마서에 보면 이런 말이 있지요? 이 세상이 다 하나님 앞에서 삐뚤어 졌다고, 다 삐뚤어 졌어요. 여기 보니까 올바른 사람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한 사람도 없다. 이 세상에서 마음이 똑바로 된 인간은 하나도 없다는 거야. 사람들의 마음이 다 삐뚤어 졌어. 이게 지금 로마서 3장 10절 이하에 있는 말씀입니다. 올바른 사람도 없다. 단 한사람도 없다. 깨닫는 사람도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모두가 삐뚤어져서 쓸모없게 되었으며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이 없다. 단 한사람도 없다. 이렇게 말하고 있지요.


 

   

하나님이 보시니까 하나님이 보시니까 신부도 목사도 장로도 뭐 수도한다는 사람도 다 마음들이 삐뚤어 졌다. 이 성경이니까 우리가 거짓말이라고 못해요. 대통령으로부터 장관 도지사로부터 급사까지 뭐 이 세상에서 박사로부터 거지까지 마음들이 다 삐뚤어졌다. 여기 말하는 저로부터 여기 앉아있는 여러분들 까지 하나님이 보시니까 마음이 다 삐뚤어 졌어. 마음들이 모두 삐뚤어졌어. 그래서 제일 큰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맺는 것이라고 그래, 성경에 보면 맨 그 이야기 아닙니까?


 

 


 그래서 먼저 하나님이 올바르게 하신다. 올바르게 하신다. 그래 이렇게 말했지요? 거기 아래 쭉 내려가다 27절에 보면 그러니 우리가 내세울 만한 것이 무엇입니까? 내세울만한 것이 뭐 있습니까? 삐뚤어진 인간들이 뭘 저희들이 한다고 이렇게 떠들 썩 합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되찾게 되었습니까? 어떻게 해서 그래 어떻게 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할 수 있었느냐? 그 이야기를 해 나가다가 이 30절에 가보면 그들의 믿음을 통해서 당신과의 올바른 관계를 갖게 해 주십니다. 이렇게 결론이 나왔어. 시간이 없어서 다 보지 못하고 이렇게 띄어서 봤어요. 우리가 믿는 그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이 너를 옳다 올바르다. 그리고 인정해 주신다고 그래서 그 사람들이 비로소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이렇게 똑바로 설수가 있고 똑바로 앉을 수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칼라일의 이야기를 제가 가끔 드렸지요, 먼저 너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해라. 그런 뒤에 올바르게 되리라. 내가 먼저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한 뒤에 정치를 해야 정치가 바로 되고 가정문제를 처리해야 가정이 바로 되고 내 인생을 똑바로 살수가 있고 사업을 해도 제대로 되고 무엇을 말을 해도 똑바로 말을 할 수가 있고 그런 것이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하지 않고 삐뚤어진 마음을 가지고 누구하고 말을 해도 다 삐뚤어질 거 아니냐? 그 말이야. 무엇을 하던지 다 삐뚤어질 것 아니냐? 그 말이야. 그 뻔 한일 아닙니까?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는 올바르게 하지 않고 자기 약간 그 하나님이 보시기에 유치한 되먹은 학문 조금 가지고 그렇지 않으면 그 경제력 하나님이 보시기에 쓰레기 같은 돈 몇 억 달러 같은 게 하나님 보시기에 쓰레기만도 못 한 거 아니요?


 

 

그것가지고 바로 잡아보려고 하거든. 나라를 바로잡아 본다. 교육을 바로잡아 본다. 지식이나 돈 갖고 바로잡아 본다. 그거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바로 잡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얽혀져 들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국가 경제나 세계 정치문제나 점 점 더 얽혀져 들어가고 있거든.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올바르게 해야지 그놈의 경제 조금 비켜놓고 교육이니 학문 좀 비켜놓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올바르게 하고 하면 아주 실 잘 풀어지는 것 같이 솔솔 풀어져 나갈 텐데 내 문제도 그렇게 해야 풀어지고 그걸 지금 말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문제를 가장 선명하게 모범을 보여주신 게 예수님이다. 그 말이에요. 그렇지 않아요? 제가 그러려면 지금 이 시간에 예수님의 생애를 전부 이야기해야 하는데 예수님이 어떻게 올바르게 사셨냐 하는  그걸 제가 이야기 안 해도 알지만 이야기할 시간이 있겠어요?


 

 

예수님은 처음부터 나시면서 부터 마지막에 내가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아버님이 보내신 그 사명 다했다고 그러고 십자가에서 운명하는 그 시간까지 전부가 하나님 뜻대로 살았거든. 전부가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자기 생애를 완결해 버리셨거든. 예수님보다 더 올바르게 산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게 예수님의 신앙 아닙니까? 그리고 우리보고 그 길을 오라고 한 거거든, 그래 우리는 예수만 꽉 붙들고 따라가면 바로 살아진다. 그 말이에요. 그런데 저부터 어디 그렇게 되요? 저부터 어디 예수님만 죽어라. 그걸 철저히 말 한데가 아까 그 빌립보서를 그래 제가 처음에  읽었지요. 그 위에서부터 봅시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희망은 내가 무슨 일에 있어서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전과같이 지금도 큰 용기를 가지고 살든지 죽던지 나의 온 생활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는 것도 문제가 아니고 죽는 것도 무섭지 않고 어찌되었든지 전 내 생활을 통해서 숨 한번 쉬는 거 이렇게 발 한번 움직이고 말 한마디 하는 것 전체가 그리스도의 영광만 드러내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 생애의 전 목표다. 이렇게 해서 바울사도가 위대한 생애를 산거예요.


 


그래서 내가 어찌하던지 살든지 죽던지 나의 온 생활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가서 내게는 그리스도가 생애의 전부입니다. 그렇게 말 했어요.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되는 거예요. 인생을 뭐 누가 뭐라고 해도 이런 소리 저런 소리 다 소용없는 소리이고 살든지 죽던지 내 전 생애로 그리스도의 영광만 드러낸다. 나는 예수가 전부다. 예수가 전부다. 그렇게, 그건 바울사도의 서신에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신앙 사상인데 고린도서에도 그걸 또 강조한 대목이 있지요? 거기는 우리가 좀 더 기억하기 좋게 강조해 주셨어요. 내가 여러분과 함께 지내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 특히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했어요. 바울사도는 내가 너희들과 함께 살고 있는 동안에는 예수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는 거야. 배가고파 죽게 되도 밥 먹을 생각도 안했다. 그 말 아니야. 뭐 어디가 몸둥어리가 위가 아린다. 배가 아프다. 그런 생각 했다는 거 없어요. 바울은 바울사도도 병이 몸둥어리에 많은 사람인데 그런 거 하지 않았어요? 내가 너희들과 함께 있을 동안에 예수 외에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예수는 어떤 예수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야. 영광의 예수가 아니고 고난의 예수 그 비참한 예수 저주의 예수 그 예수만을 나는 너희들과 함께 있을 때 생각하지 않았느냐? 그렇게 말하고 있는 거예요. 이것이 신앙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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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8월 12일부터 15일까지 여의도에서 연인원이 일천오백만 명이 모인다고 굉장히 전 한국교회가 떠들썩하고 있어요. 그러나 ‘나는 찾았네.’ 그것 뭐 붙이고 다닙디다. 뭐인지 아시오? 뭘 찾았다고 뭘 찾았단 말이요? ‘나는 예수 찾았다.’ 그 말이야. 좋기는 해. 좋기는 한데 정말 거기다 뱉지만 붙이고 다니는지 정말 찾았는지 그건 봐야지요. 연인원 일천오백만 명이 모여서 그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예수 만난 사람 있으면 그 집회는 성공한 거야. 외국 사람만 일만 오천 명이 들어온다고 그러는데 모두 대표들이니까 상당한 사람들이 오지요. 그렇게 하는데 예수를 참으로 찾았다면 그건 훌륭해. 그 집단은 성공한 거야. 그런데 일천오백만 명이 아니라 일 억 오천만 명이 모이고 예수 못 찾는 수가 있어요. 껍데기만 모이는 집회가 얼마나 역사가운데도 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되요. 그러니까 이제 다시 말하면 참 믿음으로 그게 이루어지느냐? 아주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들 갖습디다. 어찌되었든지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고 참 믿음으로 사랑으로 그래서 그냥 사랑이 폭발되어 가지고 삼팔선도 무너뜨려버리자. 그리고는 아주 최대의 정략들을 기울이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우리도 그거 기도해줘야 합니다. 기도해줘야 하지만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맺느냐? 그것이 우리가 큰 관심거리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그래서 지금 셋째 번으로 우리가 왜 예수님을 모셔야 하느냐?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하려면 예수님을 모셔야 하니까 예수를 잡아야 하니까 그렇다. 그렇게 말했어요. 우리가 이야기를 하면 끝이 없지요. 하나만 더 이야기 합시다.


   



 우리가 왜 꼭 예수님만 소유해야 하느냐? 예수가 제일 귀하냐? 그건 예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그렇다. 역시 이 말은 뺄 수가 없어. 역시 뺄 수가 없어. 지금 문제는 내 마음에나 네 마음에나 사랑이 없어서 문제가 생긴다는 걸 잘 알지요. 정치가 수단으로 되는 겁니까? 그 채근담에도 보면 의관에 굴하지 않는 의관 도라 그런 말이 있어요. 관리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관리들이 사랑이 뭔지 모르면 의관은 도적들이라. 백성들을 피를 빨아먹고 도적들밖에 안 된다고 다 옛날 유교에도 밤낮 하던 소리에요. 처음 나온 말 아니에요. 그러니까 사랑이 없는 정치는 다 도적질하는 거다. 그 말이야. 그런데 어째 여러분들 보시기에 지금 사랑으로 하는 것 같소? 오늘도 여기 관리가 아침에 꽤 바빴어요. 두 패로 다녀갔어요. 도청에서 두 패로 다녀갔는데 어땠습니까? 몰라요. 없다는 것도 아니야.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지만 사랑으로 관리노릇을 해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정치도 사랑으로 해야 한다. 정치도 사랑으로 해야 한다. 물론 교육은 그렇지요. 페스탈로치 같은 대 교육가는 사랑이 없는 교육은 인생과 상관이 없다. 그랬으니까 그러니까 교육도 물론 사랑으로 해야지요. 모든 게 다 사랑으로 해야 해요. 그러나 말로만 사랑으로 한다고 그 되는 거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정신이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정신은 물론 사랑이지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이지요. 그런데 그 사랑은 십자가의 사랑이야. 다시 말하면 희생을 보여주는 사랑이야. 내가 죽는 사랑 내가 (끊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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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재를 위해서 내 재물을 바치고 내 수고를 바치고 그것뿐이 아니야. 내 목숨도 바치고 물론 내 생명 전체를 바치는 게 사랑이지요. 그런 내 모든 것을 다 바치는 것이 그것이 지극한 사랑이지요. 그러나 그렇게 내 몸을 내주어 불사를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린도전서에 보면 그랬거든요. 그러니까 희생은 하기는 하는데 사랑으로 하는 것 그것이 예수님의 정신이 외에는 안 됩니다. 가령 공산주의자들도 공산주의를 위해 잘들 죽습니다. 그럼 죽는 게 잘하는 거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그들의 철학은 사랑이 아니고 증오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증오의 철학을 가지고도 잘들 죽여요. 잘들 죽습니다. 그럼 그 성공한 것 입니까? 그거 아니다. 그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들은 자유의 찾되 희생을 찾되 그리스도의 사랑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희생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 없이 사랑을 말하는 건 다 그건 썩어빠진 사람 거짓 사랑이야. 예수 없는 사랑은 부부간에도 가짜 사랑이에요. 속지들 마시오. 모자간에도 그래 어머니사랑같이 진짜 사랑이 어디 있겠소? 자식에 대해서  그러나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도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사랑할 적에 참 사랑이 되는 것이지, 그러지 않은 것은 가짜 사랑입니다. 절대 거기 속아서는 안 됩니다. 또 친구끼리도 물론 그렇고 이런 단체에서 구제사업 하는 것도 그렇고 그리스도의 심정 그 바울사도는 그리스도의 심정 이렇게 말했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가장 귀한 게 사랑인데 내 자신도 사랑이 없으면 만족이 없고 이 세상 사람들이 가장 요구하는 게 사랑입니다.


 


심지어 요즘 여러분들이 집집마다 매놓은 강아지를 봐도 알지만 강아지도 밤낮으로 여기 고양이 새끼도 맨 사랑해 주는 사람을 찾아요. 자기를 한번 쓰다듬어 준 사람이 지나가면 그냥 그 사람만 쫓아다녀 강아지도 지금 요구하는 거야. 지금 이 세상에 사랑을 요구하지 않는 건 없어요. 풀잎 하나도 날라 다니는 날 파리 하나도 전부 누가 나를 사랑해 주는가? 그걸 요구하고 있어요. 로마서에 가르쳐주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뭇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만물이 탄식을 하면서 기다린다. 그건 왜 그러냐하면 그저 맨 세상이 죽이는 판이고 증오이고 남을 희생시켜서 내 이익만 보려고 하는 세상이니까 그러니까 만물이 탄식을 하면서 나를 죽일 사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명을 희생하는 사람 나를 살릴 사람을 요구하는 거예요. 만물이 그걸 요구해. 희생하려고 그런데 그 정신이 다른 데는 없어요. 있는 것 같아도 없습니다. 생각을 해보세요. 동서고금에 예수님과 같이 내 죄를 깨끗하게 대변하시고 내 죄를 담당하신이가 누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내가 예수 믿는 거 아니요? 또 예수님은 나 뿐 아니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 어떤 추악한 사람이나 어떤 훌륭한 사람이나 외모로 보시지 않고 모조리 모든 사람의 죄를 깨끗하게 짊어지신 게 예수님 아닙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의 그 사랑은 끝이 없고 한이 없는 무한한 사랑이거든요. 그게 예수님의 사랑이야.


 


예수님을 소유하자는 건 그런 사랑을 소유하자. 그 말이에요. 어떻게 그럴 수 있겠소? 이렇게 쪼그라들고 지독한 이기주의고 자기 배고픈 거 먼저 생각하고 자기 아픈 것은 굉장하고 다른 사람 아픈 것은 아무것도 아닌 이런 지독하게 천박한 인간들이 어떻게 해서 예수님과 같은 그런 위대한 사랑의 성자가 될 수 있느냐? 이게 큰 문제라니까요. 그런데 예수님을 소유하면 그렇게 된다고 성경을 가르치고 있어요. 내 마음에 예수님을 모셔 들이면 예수님의 인격 예수님의 사상 예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온 것만큼씩 내 안에 사랑의 세계가 뿌리가 내라고 키가 자라고 가지가 뻗고 확대되어 나가는 거야. 그래서 내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내가 변화함을 받는 거예요. 그럴 적에 나는 예수와 같이 모든 사람을 위해서든지 누구를 위해서든지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인생이 되는 거야. 어떻게 그보다 더 인생을 완전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사실은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거든, 자기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자기 자녀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그거야. 그러지 않아요? 너희들도 내 아들 예수와 같이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죽어라. 그게 바울사도도 강조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도 요한복음 17장에 기도하신 것 보면 주제가 그거에요.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 같이 저들도 하나가 돼서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시옵소서. 그 안에 있으면서 예수님과 같이 살기를 가장 원하시는 거야. 그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인생의 최고의 목적이라고 우리가 성경 어디를 들춰보던지 그런 이야기야. 전부가,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를 소유하기 전에는 예수 안에 살기 전에는 도저히 그렇게 사는 재주가 없어요. 다른 방법으로는 그렇게 살수 없어요. 그러니까 예수는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소유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를 보던지 예수님을 소유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꼭 붙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벌써 시간이 되었으니까 우리가 끝을 맺어야겠어요. 여기 처음으로 만난 이가 있는지 내가 모르겠어. 그전에 보고도 잊었는지 또 오래간만에 만난 분들도 몇 분 안 되지만 있어요. 그랬다가 또 내가 인사도 못하고 그냥 가려는지도 몰라. 저는 때 없이 이렇게 돌아다니는 사람이니까 그래도 이 말 한마디만 서로 주고받으면 하나님 앞에서는 괜찮지 않으냐? 그런 생각이 들어. 또 그 사람 영혼도 나중에 나를 고발하지 않아 내가 만일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고 갈렸다면 성경에도 많이 있지 않소? 에스겔서에도 있고, 그 사람의 영혼이 나중에 심판대 앞에 가서 그때 아무개 만났더니 뭐 쓸데없는 소리만 하고 나를 보내버립디다. 그 고발 한다니까 여러분도 조심하시오.


   


누구를 만나서 쓸데없는 이야기만 하면 반드시 고발당해요. 성경 여러 군데 많이 기억 할 거예요. 그러지 않아요? 그 영혼이 고소한다고 하나님 앞에 가서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 하나만 참 어떻게 하던지 내 힘으로 하는 거 아니지만 참 성령이 도와주심으로서 그 사람, 사람 마음가운데 예수님 한분만 넣어줄 수 있다면 예수님만 그 마음속에 심어줄 수 있다면 절대로 후회라는 건 없어요. 후회라는 건 그 말 한사람이나 들은 사람이나 우리나 그 만났던 것이 후회가 날 리가 없어. 우리는 모든 기회를 그런 기회를 만들어야해. 이것이 왜 더군다나 간절히 요구되느냐 하면 지금 대단히 세계가 위기 가운데 있다고 하지 않소? 아까도 도립 뇌병원 원장도 여기 왔었고 또 사회과 담당하는 책임자도 여기 왔었어요. 그런데  그 문제가 지금 정신병자 문제가 아침에 조금 났었지요. 정신병자가 자꾸 늘어나갑니다.  이제 광주에다가 500명 수용할 수 있는 정신병원을 나라 비용으로 지어볼까 하는데 그렇게 안 될 런지 모르겠다는 그런 말을 해. 그까짓 거 한 동에 500명쯤 수용을 해도 13동이라면 그까짓 거 6-7천명 밖에 안 되는데 그건 참 새 발의 피에요. 그것 가지고는 어림도 없어요.


 


지금 불구자만 해도 일백8만 명 그중에서 반이 정신병자인데 6-70만 명이나 되는 정신병자에서 6-7천명이 수용해서 뭣이 해결이 돼? 그러니까 큰 일 났다. 그런데 나날이 늘어나는 게 정신병자요. 그거 왜 늘어나는지 아시지요? 세상이 사람들을 미치게 만들지 않아요? 장사하는 사람도 무슨 장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으니까 미쳐버리게 생겼고 모든 것이 교육도 그렇지 않소? 오늘 이랬다 내일 이랬다 하니까 미쳐버릴 것 같고 그래 자꾸 늘어나가는 게 미친 사람이야. 정신병자가 늘어. 또 막 이렇게 자동차 공해지 무슨 공장에서 나오는 것이니 무슨 연탄가스 공해니 해가지고 자꾸 불구자가 늘어나지 않소? 그런 것뿐입니까?  모든 문제가 사람들이 지금 모두 미치게 생겼다고 정신들을 못 차려요. 이런 이야기는 하면 끝이 없는 이야기이고 우리가 여러분들이 다 아는 이야기니까 할 필요도 없지요. 또 때 없이 우리가 했으니까 지금 모두 석유 파동이라고 해서 야단들이고 공해문제라고해서 야단들이고 그전에는 여기 오는 사람들 그런 소리 할 줄도 몰랐어. 관심도 없고 그런데 이제는  공해문제들이 커가니까 문제가 커졌거든. 농약 중독 문제가 어디를 가든지 농약 공해문제가 나오더라니까 그러나 그건 껍데기 문제야. 어디서 들었나? 함평 가니까 들었나? 누가 뭐 이렇게 농약 했다가 쓰러졌다고 그러면서 아주 두런두런해. 누구도 쓰러지고 누구도 쓰러지고 그건 껍데기 문제에요. 우리가 날마다 먹고 있는 쌀 속에 농 독을 농약 독을 자꾸 먹고 있는 우리들인데 그게 우리들 몸속에 쌓이면 한 팔도 못쓰게 되고 정신병도 생기고 그렇게 되는 거야.


 


농약이 모든 곡식에 지금도 몰라. 오늘도 여기 수박을 누가 사다놓은 거 같은데  수박 속에도 농약이 얼마든지 들어가 있다니까요. 그것들을 자꾸 먹거든, 안 먹는 재주가 없지. 안 들어간 데가 있는데 있소? 소가 풀을 먹으면 풀에가 농약이 있는데 소 살코기 속에도 들어가 있고 뭐 바다에 있는 생선 속에도 들어가 있고 우리가 먹는 음식 중에 농약의 독이 안 들어가 있는 게 없어요. 안 들어갈 재주가 없어. 공기 속에도 있고 그러니까 사람이 피해 다닐 재주가 없고 그러니까 문제가 끝이 없지. 그러니까 지금 애들 쓰는 이도 있어요. 농약을 안 하고 농사를 해보자. 그것이 사랑 아니냐? 사랑을 실천한다는 게 아주 어려워요. 실제로 여기서 지금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야기 했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 일상생활에서 그렇게 농약에서부터 먹는 것에 까지 실천하려면 아주 완전한 참 희생을 하지 않고는 되지를 않거든. 도저히 사랑을 실천한다는 건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할 수 없으니까 십자가에서 죽으신 거거든요. 우리가 죽은 각오를 하지 않고 내가 완전히 그냥 죽을 각오를 하지 않고는 이 사랑을 실천할 수 없는 거지요. 그러니까 이것이 오늘 얼마나 요구되는가 하는 것이 새삼 느껴지기 때문에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할 분은 역시 예수님 밖에 없어. 그러니까 우리가 어찌하던지 예수만은 꼭 소유해야 한다. 그런 이야기를 좀 해본 것입니다. 찬송 하나 부르실까요? 한 시간이 되었는데 주 예수 밖에는 귀한 것은 없네. 빨리빨리 부릅시다. 


 


 어떠한 목적으로 오셨던지 오래간만에 만나니까 반갑고 또 찾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가서는 다 만나기를 바랍니다. 저녁 예배 시간도 있으니까 이 시간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주기도 드리십시다.


예수님을 만나는 곳/김준호
 
예수님을 만나는 곳
                                                                                                                                                                                                                                                                                                                                                                                                                                                                                                                                                                                                                                                                                                                                                                                                                                                                                                                                                                            

마태 24:3-5, 눅 17:20-36 참조 '내가 그리스도다' 하여도 아무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예수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예수님은 사랑을 완성하는 영혼 안에 계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곳에 가야 만납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곳에서 만납니다.

제일 낮아진 곳에서 만납니다.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을 섬기는 곳에서 만납니다.

가장 약해진 영혼 안에서 만납니다.

죄인을 불쌍히 보는 눈물 속에 와 계십니다.

사랑으로 봉사하여 땀흘리며 고생하는 곳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제가 죄를 짓고 눈물을 흘릴 때 찾아 주셨습니다.

제가 고통을 당할 때 찾아 오셨습니다.

가슴속에 오셔서 은총으로 제 영혼을 평안하게 하셨나이다.

저들의 죄가 저들의 탓이 아니요. 제 탓이라고 항복하는 찰라

제 영혼이 안식하도록 은총을 내려 주셨나이다.

예수님, 어서 오시옵소서.

종이 항복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