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진도 서북 포구들을 돌아 보았다. 전 보다 시설이 잘 되어 있었으나 낚시군들에 의한 환경 오염이 가중 되는 것 같았다.
잃은 양 한 마리
1981.8.15. 정인세 원장
마태복음 18장 10절서부터 14절까지. 당신들은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를 하늘에서 항상 모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두시오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었는데 그 중에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은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그대로 두고 그 길 잃은 양을 찾아다니지 않겠습니까? 나는 분명히 말합니다. 그 양을 찾게 되면 길 잃지 않은 양 아흔아홉 마리 양보다 오히려 그 한 마리 양이 주는 기쁨이 더 클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늘에 계신 당신들의 아버지께서는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도 없어지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도 없어지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늘에 계신 당신의 아버지께서는 당신들의 아버지께서는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도 없어지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다음에 마태복음을 중심으로 예수님이 돌아다니시던 발자취를 따라다니면서 주님의 마음을 생각해 봤습니다. 그동안 수양회 때문에 잠깐 중단되었던 것을 오늘 저녁에 다시 계속해서 말씀 드립니다. 여기 이 잃어버린 양 한 마리에 대한 비유는 누가복음 15장 3절서 7절까지에도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는 같은 뜻으로 비유를 여러 가지로 말씀 하셨지요? 잃어버린 양 한 마리에 대한 비유와 또 은전 한 푼 잃어버린 그 비유와 또 탕자비유 잃어버렸던 아들을 다시 찾는 그 비유 그 세 가지 비유는 다 하나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들에게 알려주시려고 하신 비유입니다.
이 잃어버린 양 한 마리에 대한 비유는 우리들이 대강 그 뜻을 짐작은 하지만 이 때 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유대 사람들 같이는 이해를 못합니다. 유대 사람은 아마 가깝게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수천 년 동안 자자손손이 양을 길러왔습니다. 그들이 양을 사랑하고 양하고 친밀히 지내는 것은 도저히 유대사람 외에 그 어느 민족도 그걸 이해를 못할 정도로 양을 한 식구같이 그 유대 사람들은 양이 일백 마리 있으면 일백 마리 양의 이름을 다 기억하고 어디서 그 자기가 기르는 양 가운데 한 마리가 울고 있으면 아 저건 어떤 양, 우리가 해피니 메리니 강아지 이름을 부르듯이 아 저건 메리 소리다. 이렇게 알아요. 그런 자기 자식들 같이 그렇게 알아요. 그런 사람은 양을 사랑하되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니 그림에서 보시는 거와 같이 목자 장 지팡이를 짚고 그러고 밤새도록 잠을 안자고 지키다가 혹시 이리가 한 마리 나타나던지 도적이 나타나면 생명을 걸어놓고 자기가 죽어도 후퇴하지 않고 싸우는 그 정도입니다.
그러니까는 그들이 그 양을 사랑하고 양에 대한 애착 그러니까 동시에 양도 또 그렇게 주인을 따릅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이야기가 많이 있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이 양을 기르는데 다른 사람이 주인의 옷을 빌려 입고 그러고 양 틈에 가서 양을 부르니까 양이 오지 않더라. 그래요. 옷만 바꿔 입어도 알 것 같은데 짐승이니까 목소리를 벌써 분간하더라고 그래서 자기 주인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리면 벌써 그냥 그쪽으로 가고 그렇게 사이가 긴밀해요. 우리가 그 유대인의 양치는 습관을 깊이 생각을 하면서 이 비유를 들어야 되어요. 또 예수님의 비유는 거의가 그렇습니다. 가장 그 유대인의 심금을 파고드는 비유를 많이 드셨어요. 실제적인 표현이시지요.
옛 말씀을 하시게 된 동기가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그 누가복음에는 그 동기가 밝히 기록되어 있어요. 언젠가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온 일이 있었다. 세리들, 예수님은 세리들을 기피하지 않으셨거든요. 또 여기 죄인들이라는 건 여러 가지로 좋지 않은 병을 가지고 있는 병자들, 유대사람들이 죄인 취급하는 병이 많지요. 나병이라든지 혈루 병 이라든지, 나병 이라든지, 모두 그런 것들 그런 사람들을 예수님은 특별히 사랑하시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몰려들었어요. 그 광경을 보고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저 사람은 죄인들은 환영하고 그들과 함께 음식까지 나누고 있구나. 저 참 알 수 없는 사람이다. 더럽게 봤지요. 예수님을 죄인들과 저렇게 저 더러운 것들과 함께 어울리는구나. 그것이 동기가 됐어요.
그러니까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비유로 말씀하셨다. 그 누가복음에는 동기가 기록되어 있어요. 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너희들이 모두 세리라든지 탕녀라든지 모두 이렇게 혈루 증 앓는 여자라든지 모두 병자들을 죄인취급을 하고 무시한다만 어떤 사람이 양치기가 양 백 마리를 데리고 있는데 그 중에 한 마리를 잃어버렸다고 하자. 그러면 아흔아홉 마리를 그냥 놔두고 한 마리를 열심히 찾으러 다니지 않겠느냐? 그거 잘못된 착각한 이들이 있어요. 아흔아홉 마리를 무시하는 거 아니에요. 그들은 안전하니까 그대로 두고 그 뜻이지, 버렸다는 것 아닙니다. 그리고 그 한 마리를 열심히 찾아다니다가 그 양을 찾게 되면 그 찾게 되는 때서부터 그 예수님의 마음을 이렇게 잘 나타내시고 계시지요. 찾게 되면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 양보다 오히려 그 한 마리 양이 주는 기쁨이 더 클 것입니다.
그 잃어버렸던 양 한 마리를 찾는 순간에 그 양치기 그 목자의 기쁨이라는 건 대단할 것 아니냐? 너희들도 그런 것 경험했을 거 아니냐? 너희들은 잘 알 것 아니냐? 그게 우리들은 모른다니까요. 해보지 않았고 그렇게 양을 사랑해 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몰라. 너희들이, 너희들이 양 한 마리를 잃어버렸다가 애를 써서 찾으면 얼마나 기쁘겠느냐? 대단히 기뻐할 것 아니냐? 누가복음에 보면 잔치를 버린다. 그랬어. 또 탕자의 비유는 더 심각하게 그냥 아버지가 뛰어나가서 그 더러운 자식을 부둥켜안고 집으로 데려가서 목욕을 시키고 새 옷을 입히고 송아지를 잡고 하듯 그렇게 그러지 않겠느냐? 그 왜? 그 말하셨는지 알겠지요? 내 마음이 그렇다. 그거에요. 지금 너희들은 이것들이 모두 죄인이다. 하고 가증스럽게 보고 더럽게 보고 그러는지 몰라도 나는 이것들을 다 그렇게 사랑한다. 그래서 이중에 하나라도 세리 중에 하나라도 문둥병자 중에 하나라도 이 병신이나 이 모두 보잘 것 없는 사람들 중에 하나라도 내게는 잃어버렸던 양 한 마리 찾은 것 같이 대단히 소중한 것이다. 이들이 이렇게 내게로 돌아올 적에 내 마음은 대단히 기쁘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 아니요? 그러면서 여기 이상스런 말씀을 한마디 하셨지요? 하늘에 그들의 천사들이 하나님 앞에 있다. 이건 조금 특수한 이야기인데 어저께 목사님 선악과 문제 때문에 천사들에 대해서 조금 비쳤기 때문에 조금 말하려고 그래요.
당신들은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우리들은 사람을 자기들도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예사롭게 여기거든요. 가령 요새는 그런 대문 앞에 와서 구걸하는 거지들이 없지만, 참 그 거지들에 대한 태도는 대단히 불손하고 아주 더럽게 여기고 무시하고 업신여기고 그렇지 않습니까? 거의가 그렇지요. 또 참 여기 들어와 있는 이들에게는 죄송스러운 이야기지만 몸이 불편한 사람, 팔이 이렇게 구부러졌다든지 다리를 절름거린다든지 그렇지 않으면 정신이 이상이 있다든지 혹은 저능이 되었다든지 무어든지 그런 병 가진 사람들 보면 어때요? 사지가 성한 때부터 그 양반들 똑같이 봐줍니까? 자기하고 똑같이 그걸 불쌍하게 생각하는 것도 멸시하는 마음이 잠재적으로 있으면 그건 벌써 차별하는 거예요. 불쌍하게 여긴다고 잘 하는 게 아니에요,
자기만 못하다 그런 잠재의식이 조금이라도 작용을 하면 그건 벌써 업신여기는 쪽이에요. 내 인격과 저 사람의 인격 내 생명의 가치와 저 사람의 생명의 가치가 하나님 앞에 똑같다. 그게 내 마음 가운데 아무리 정비를 해봐도 차별이 없어야 돼. 그렇게 되요? 내가 옛날에 아주 오래 전이지요. 여학교 선생 노릇을 조금 해봤어요. 그런데 그 계집애들 저희들끼리 업신여기고 차별하는 거 보면 참 우습거든. 콧날이 조금 오뚝한 놈은 콧날이 조금 낮은 놈을 업신여기고 얼굴이 조금 걀쭉한 놈은 얼굴이 조금 퉁퉁한 놈을 멸시하고 어찌되었든지 무엇이든지 자기만 조금 못한 것을 찾아가지고 멸시하는 습관이 있어. 공부하는데도 그럽니다. 아주 제까짓 게 하나라도 선생님이 물어보는 거 알았으면 대답 못하는 거 아주 입을 삐죽 거리고, 그런 계집애들이 있거든. 그런데 인간에게는 이상스럽게 본성적으로 그렇게 차별하는 것이 본성적으로 있는 모양이야.
그것도 죄의 근성의 하나지요. 어때요?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을 대하든지 똑같이 사실 성경대로 보면 모든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고 그랬습니다. 똑같이 보라는 정도가 아닙니다. 나는 저만 못하다. 그걸 양심 속에서 확실하게 다짐 하도록 또 자연히 그렇게 되도록 그게 습관화한 사람은 모든 사람이 낫다. 그건 사실은 마음의 각도에서 그런 거지요. 우리가 실제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여기 내 앞에 사람이 하나 나타났다. 합시다. 여러분이 그 사람에 친한 친구라면 죄목을 꽤 알거에요. 그러나 그 사람이 지은 죄보다 자기 죄가 더 자기가 많이 알거요? 지은 죄를 저 사람이 더 많이 알거요? 그 누구도 저 사람의 죄를 내가 다 안다 해도 내가 지은 내 양심의 죄에 행위의 죄 만큼은 모를 거예요.
그렇다면 정말 양심이 맑은 사람이라면 저 사람의 죄는 내 죄보다는 적다하는 게 보여 져요. 분명히 보여 져요. 어째요? 여러분 들이 어떤 사람을 대하든지 그 사람의 죄를 다 아는 재주는 없거든요. 내 죄는 내가 다 알아. 내 죄를 밝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죄가 뭔지를 모르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사람은 죄가 확실히 더 많다는 걸 기억을 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이든지 나보다 낫다는 것을 알거예요. 더구나 머리가 똑똑한 사람은 죄를 더 집니다 대개 보면 그럽니다. 멍청한 사람이 죄를 지을 줄 몰라요. 남을 해치려고 음모를 꾸미고 흉계를 꾸미고 그래도 그렇게 깊은 흉계를 꾸밀 줄 몰라 뭘 알아야지 원체가 대개 저능이 되고 머리가 둔한 사람은 욱하고 욕이나 한마디하고 그만이야.
뭐 두고두고 이렇게 복수를 할 계획을 꾸민다든지 언제까지 앙심을 품는 거는 희박해요. 그럼 그런 면만 보더라도 훨씬 죄가 적어요. 하나님 앞에 제일 큰 문제는 죄인데 지식도 아니고 똑똑한 것도 아니고 아는 것도 아니고 얼굴이 잘난 것도 아니고 돈 갖은것도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가장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경중을 다루신다면 죄에 문제일 텐데, 그러면 내 죄를 더 많이 발견하고 남의 죄를 적게 발견한다면 어떻게 내가 다른 사람을 죄를 정죄할 수 있냐? 그 말이에요. 그게 근본적으로 남을 업신여기지 못할 조건이 되요.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람의 양심은 흐려져 가지고 있어. 그래서 남을 업신여기는 거야. 그래서 남을 업신여기는 거는 마음으로나 말로나 행동으로나 해서는 아예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바리새교인이나 율법학자들이나 이들은 아주그냥 상식적으로 자기들은 의롭다 나는 바리새교인이다 하는 그 자체만으로 우쭐하고 자랑을 하고 그런 것들이 있어. 이렇게 우리가 집회를 해보던지 사람이 많이 모여 보면 그런 두 가지 사람들이 보입니다. 어쩐지 자기 잘난 거를 과시하고 싶어서 안달을 하는 사람, 나 잘난 거 누가 알아주지 않는가? 그건 참 가증스럽고 불쌍한 사람이야. 그런 인간들 혹시라도 되지 마시오. 어린 학생들도 학교에 가서나 어디 가서나 자기 잘난 거 좀 나타내려고 자기 똑똑한 거 좀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요. 그게 나는 제일 멍청한 사람이야. 제일 못난 사람이고 멍청한 사람이야.
그렇지 않아? 그건 왜 그런가? 그건 자기가 깨달아야 알아. 내가 아무리 멍청한 사람이라도 어째서 그럴까? 똑똑한 사람이 멍청한 사람이야. 이해가 안 돼. 그러나 그걸 깨달을 날이 올 것이야. 그러니까 그렇게 되면 다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남을 업신여기는 습관이 나쁘다. 하는 걸 조금 지적하는 것뿐이에요. 그런데 여기는 그 말씀을 하면서 사람들은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그런데 여기는 다른 이유를 하나 드셨어요. 제가 지금 들은 이유보다 다른 이유를 하나 드셨어. 그들의 천사들이 그들의 천사라는 게 누구에요? 세리의 천사, 가난한 과부의 천사, 문둥병자의 천사, 그것만 말입니까? 사람들에게는 다 호수천사가 있다고 천주교에서는 가르칩니다. 신교에서는 천사를 좀 경하게 여겨요. 일반으로 아주 무시하지는 않지요. 신교도 좀 경하게 여겨요. 그러나 여기 앉아있는 이들 한 사람 한사람에게 다 따른 천사가 있다는 거예요. 어때요? 그거 믿어져요? 나는 내 천사가 있어. 여기 앉아있는 이들 자기 천사가 있다니까요. 해남노인천사, 남천 댁 천사, 기장노인천사, 그렇지 않소? 수종 군 하나만 있어도 다들 자기가 뭐나 된 것처럼 하는데, 아 천사가 내 수종 군이야. 호수천사라고, 나를 지켜주는 천사가 있다는 거예요. 호위병이 있어.
높은 대통령이 호위 데리고 다니듯이 천사가 하나씩 있다는 거야. 어째 믿으셔? 보통 때 혹 그런 생각 한일 있어? 나는 귀찮아서도 그런 생각 안하고 보통 때 나를 따라다니면서 보면 이걸 참 어쩌나 나 먹는 것도 흉을 볼 거고 이건 천사 앞에서 이건 얼음물을 먹어야하나 안 먹어야하나 어쩌시오? 여러분들 옆에 천사가 따라다니면 귀찮겠소? 고맙겠소? 이거 누구 욕도 못하고 흉도 못보고 몰래 나쁜 짓도 못하고 이것 참 귀찮지 않겠소? 그런데 있다는 거야. 여러분 믿어? 덕자 양 천사도 하나 있다니까. 지키고 다니는 그 생각해 본일 있어요? 여기 말하고 있어요. 다 있다고. 이런 좀 어려운 문제에요. 그러나 그러시면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를 하늘에서 항상 모시고 있다. 이거 보시오. 여기 지금 김 아무개 천사가 그 사람을 지키고 그 사람을 모두 호수해줄 뿐 아니라, 보호하고 지켜 줄뿐 아니라, 그 천사가 하나님 앞에 가 있다는 거야. 그 문제가 크지 않소? 내 천사가 은근히 은연중에 나를 보호하고 지켜줄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 가있어. 내 천사가 내 천사라고 해 둡시다. 내 천사인지 나를 보호해 주시는 천사님인지 어떤지 그 천사가 하나님 앞에 가 있다니 자 이건 좀 문제가 커지지 않소? 그러니까 내가 지키고 있는 저 아무개가 지금 무슨 짓거리를 해요.
그리고 하나님한테 자꾸 일러바치고 있을까? 무얼 하고 있을까? 이렇게 되요. 나는 지금 천사 론을 이야기 하는 시간이 아니에요. 그 말씀하는 이유가 그거지요. 내 아버지를 하늘에서 항상 모시고 있다는 것을 너희들이 알아야해. 너희들이 보기에는 세리고 창녀고 아주 참 문둥병자고 거지고 요새로 말하면 구두닦이고 뭐고 참 하잘 것 없는 거지만 그 사람의 천사가 지금 하나님 앞에 있다는걸 너희들은 알아두어라. 그러는 거예요. 그러면 확실히 그건 글자 그대로 호수 천사거든요. 그 사람의 영혼을 지켜주고 감시하는 천신이야. 천사가 있어요. 그러니까는 어떻게 그 업신여길 수 있느냐? 그거지요. 다 있다는 거예요. 너희들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여러분들이 가끔 놀림거리로 삼는데 그 지능이라는 게 있어요. 사람에게는, 그 요새말로하면 아이큐라는 게 있어요. 그게 일정한 수준에 올라가지 않으면 똑똑하지 않은 사람취급을 해요. 그런데 그것이 한 30, 20, 10까지 뚝 떨어져 버리면 나이가 마흔 살이 되도 꼭 어린애 같은 소리로 애애하고 꼭 어린애 같은 소리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을 어떻게 보시오? 어때요? 여러분들 똑같이 대우 되요. 여기 그 양반 나왔다면 참 죄송한데 여러분들이 여기 세살동이라고 별명지은 사람 하나있지. 세 살 동이 나오셨어. 그 양반 여기 용서하고 들으시오. 그이가 40이야. 나이가, 그런데 하는 짓은 세 살짜리 밖에 안 되거든. 걸음 걷는 것도 그러고, 말하는 것도 그러고, 세 살 동이라고, 그러니까 항상 나도 그런 말 더러 했는가? 몰라도 죄송스럽게 생각해. 그 호수 천신이 하나님 앞에 있다는 말이에요. 그 말이에요. 그런데 너희들이 그 사람 업신여길 수 있느냐? 그 말이에요.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는 말이에요. 업신여기지 말라. 그 말씀 끝에 이렇게 잃어버린 양 한 마리 비유를 드신 거예요. 하나님 앞에는 대통령의 영혼이나 거지의 영혼이나 백만장자의 영혼이나 가난뱅이의 영혼이나 박사의 영혼이나 가갸거겨도 모르는 사람의 영혼이나 다 똑같이 보일 거 아니야? 하나님 앞에 가서는 무슨 신부라고 더 대우받는 거 아니고 목사라고 대우받는 거 아니고 장로라고 더 대우받는 거 아니고 무슨 장관이나 도지사라고 대우받는 거 아니고 그건 전혀 상관이 없어.
다 만 그 영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서 그 속에 넣어두신 그 영혼 그 것을 상대를 하셔. 그래서 그 영혼이 예수님의 피로 씻어졌으면 다른 조건은 아무것도 묻지 않으셔. 부잣집 대문간에 있던 나사로가 됐더라도 몸이 문둥이가 되서 질질 고름이 흐르고 뭐 일 년 열두 달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만 주어먹고 개가 와서 쭉쭉 핥은 그런 몸통어리라도, 딱 품에다 안아주신다. 우리는 그런 걸 항시 염두에다 두고 생활해야 돼. 만일 그것을 우리 양심 가운데 새기고 우리가 그런 태도를 사는 연습을 하고 산다면, 이 세상이 훨씬 달라져요. 절대로 남을 욕하거나 모욕적인 언사를 쓰거나 남을 무시하거나 차별을 하거나 그런 것이 전부 없어질 거예요. 학교에 가도 정치계에 가도 어디 뭐 이런 직장에를 가도, 모두 높은 사람도 없고 낮은 사람도 없고 똑같은 자리에서들 서로 존경하고 서로 자기를 낮추고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게 될 거야?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이 얼마나 부드럽게 될 거야? 얼마나 부드럽게 될 거야.
참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거 아닙니까? 그거 하나만 지켜져도 그거 하나만 지켜줘도 그런데 인제 한발 더 나아가서는 잃어버린 양을 찾는다는데 중심이 있으시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너희들은 그렇게 사람을 요새는 모두 과학 만능 주의가 되고, 물질만능 주의가 되서 사람의 생명을 파리 모가지보다 더 가볍게 여겨요. 근자에 와서 모두 히틀러라든지, 그런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이 그런 풍습을 남겨 놨는데 지금은 더욱 로봇 시대니 컴퓨터 시대니 그러게 되면 인간이라는 건 쓰레기 취급을 당해. 인격이라 건 천해지고 기계가 모두 해버리니까 사람이라는 거 있으나마나 없어도 좋다. 그러는 거예요. 자본주의는 그렇게 되는 거예요. 무서운 시대가 되 이때 이 말씀이 우리가 세워야 한다. 이 말씀을 우리가 기억해야 돼.
그러나 사람 인간사회나 소위 현대문명이라는 이런 사회에 대해서는 과학만능 시대에서는 금전만능 물질만능 시대에서는 그렇게 인격이 멸시를 당하고 사람을 차별을 할지 몰라도, 너희 아버지 되시는 조물주 하나님께서 또 전 인류를 죄 가운데서 건지기 위해서 오셔서 피를 흘리신 예수님께서는 그 하나도 쪼그만 어린애로부터 늙은이까지, 한 개의 생명도 허술히 하시지 않아. 그중에 하나만 돌아와도 크게 기뻐하신다. 이게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자꾸 제자들을 데리고 돌아다니면서 그걸 제자들에게 납득시키려고 너희들도 그렇게 해라. 너희들이 전도하러 돌아다닐 적에 절대로 그렇게 한 개의 생명이라도 세상 사람들이 업신여긴다고 따라서 업신여기는 그런 일들을 하지마라. 그들의 천사가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을 기억을 하고 한 개의 생명이라도 돌아오면 참 사랑하고 기뻐하고 그 예수님의 내 마음을 너희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야 한다. 그것은 곧 우리들에게 하신 명령이야.
너희들도 이 땅위에 사는 동안, 이런 단체 안에서나 어디 가서 전도를 하거나 그럴 적에도 밤낮 자기 손주새끼 등허리만 두들기지 말고, 밤낮 자기자식밖에 모르는 여기는 그런 사람 없지만 내 남편 내 아내만 붙들고 뭉개지들 말고, 모든 생명을 똑같이 보는 습관들을 하라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내 자식이 회개하면 기쁘지요. 그러나 누가 회개하던지 똑같이 기뻐하는 그 습관들을 하라. 그거에요. 어떤 형편에서 여기도 그런 어머니가 나와 계신지 몰라도 자기 딸들을 위해 기도하는 거 좋아요. 금식들도 많이 하셨지요? 그거 해야 해. 또 자기 가족을 정말 사랑한다면 그 영혼을 위해서 기도 해야지요. 그렇다면 남의 딸들도 위해서 금식들 좀 해보시라. 그 말이에요. 남의 딸들을 똑같이, 밤낮 내 자식, 내 자식, 자기 자식이 배 아픈 게 안쓰러우면 남의 자식 배 아픈 거 좀 안쓰러워 할 줄 알아라. 그건 조금 비약 이야기가 비약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것도 좀 알아라. 맨 자기자식 다칠까봐 벌 벌벌 그런데 이상하게 믿는 이들이 그러면 더 보기 싫어요. 세상 사람이 그러면 당연합니다.
세상밖에 모르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이런 말씀을 자꾸 듣는 이들이 맨 자기자식 아픈 거만 들여다보고 걱정하고 그건 참 병든 영혼이야. 그게 병든 영혼이야. 그런 사람은 도저히 차별 관념이라는 걸 버리지 못합니다. 차별관념 그래서는 안 돼. 똑같이 봐야 돼. 모든 영혼이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님은 다 똑같이 취급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돼. 모든 사람의 호수천사가 하나님 앞에 있다는걸 알아야해. 그리고 절대로 나하고 육신의 붙이가 있다 던지, 나하고 이해관계가 있다 던지, 그렇다고 조금이라도 더 생각하는 그런 습관을 버려버려야 해요. 그게 살을 떠나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의 아들딸이에요. 하늘나라는 그런 곳이에요. 하늘나라는 그런 곳입니다. 그렇지 않소? 또 친구들도 그래요. 저분 내 마음에 든다고 밤낮 붙어 다녀. 그러지들 말아요. 하늘나라는 그런 곳 아니에요. (끊김)
어떤 말을 듣던지 어떤 경우에든지 조금도 변하지 않는 그것이 거듭난 영혼이에요 거듭난 영혼이라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심장을 갖고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대해. 저는 그렇게 못해요. 해보려고 애를 쓰지요. 동일하게, 나도 시험에 조금 걸렸어요. 아직 저는 잘 모르겠어요. 어제 한 밤중에 서울에서 급한 전화가 왔어요. 내 누이동생 하나뿐입니다. 육신의 붙이 하나 남았는데 나보다 두 살 아래에요. 그런데 어떻게 어려서부터 내가 예뻐했던지 우리 아버지가 반대하는 걸 내가 여학교에도 집어넣어주고 또 남편을 골라서, 이상스럽지요? 부모님 제 껴놓고 내가 시집도 보내주고, 그래 나를 아버지대신 굉장히 따랐습니다. 예수 믿으면서 부터는 몰라요. 그 사람이 죽게 되었다고 혼수상태에 빠졌으니 인제 그 딸이, 딸들이 있어요. 시집간 딸들이 모두 모여서 나를 외삼촌이라고 그럴 거 아니에요? 내가 외삼촌이야. 아버지 소리는 듣기도 싫은 사람인데 인제 외삼촌이 운명하시기 전에 올라오셔야겠습니다.
그러고 한 밤중에 전화가 왔더라니까, 그래서 너희들 잠꼬대 하는구나. 속으로 생각하고, 나 지금 정신없다. 여기 손님들이 지금 꽉 차있는데 어디 오늘저녁 지내봐라. 하나님께 달렸으면 조금 더 보전하실 거고 그러니까 어디 낼 또 소식 듣자. 그러고 끊어버렸어요. 아까 또 저녁에 전화 연락을 해 왔기에 그 상태로 있다고 돌아가기 전에 좀 오라고 그래. 인제 두 가지 생각이 나지요. 이것 참 죄송합니다. 피곤한 여러분들에게 사사로운 이야기를, 그 영혼이 내가볼 때 늙은이 들이 돌아갈 때 꼭 나를 챙기거든 동광원 어른들도 그래서 내가 가서 기도드리고 나면 돌아가는 걸 많이 봤어요. 내 동생이라는 입장을 떠나서 아 이 영혼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가? 나 같은 것이라도 가서 기도해 주기를 바라고 죽지 않고 저렇게 혼수상태가 벌써 얼른 보기에도 24시간 가까이 기도를 하고 있는데 아 그렇다면 이걸 어떻게 하나 좀 당황이 됩디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급한 건 지금 내 앞에 할 일이 있어. 할 일이 있으니까 이건 공이야.
그래도 영적으로 볼 때는 내 동생을 떠나서 공이 되지. 그 영혼의 문제는 그렇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건 아니야. 가만히 보자. 그 영혼이 꼭 나를 만나고 이 세상에서 이렇게 갈리게만 꼭 그렇게 되어져있다면 나 볼 동안 기다리겠지. 나 볼일 볼 때까지 나 볼일 다 보고 하나님께서 자 이제 너 그쪽에 가봐라. 그럴 때까지 기다릴 거야. 죽지 않고 그러고 그러지 않고 가버린다면야 할 수 없지. 하늘나라 가서 변명을 하던지 달리해야 할 거 아니요? 현실적으로도 믿으니까, 그러니까 그러고 지금 말았어. 이상하게도 내 육신의 붙이라는 게 가끔 어떤 시험거리를 가장 어려울 때 잘 가져옵니다. 가장 어려울 때, 급하고 바쁠 때, 무슨 시험거리가 육신의 붙이 쪽에서 잘 옵니다. 나하고 가장 친할 때, 가까울 때, 그거 경계해야하는 거예요. 미리 의례, 아 이거 시험거리로구나. 시험거리로구나. 경계해야겠다. 그리고 아주 어떤 때는 반대로 갈수 있는 것도 일부터 안 갈 정도로 단호하게 하지 않으면 걸려요. 올가미에 걸린다니까요.
어찌되었던지 가장 가까운 것을 명확하게 정리해놓지 않으면 이렇게 넓게 살라고 하시고, 하나님의 아들딸답게 모든 사람과 영혼과 더불어 살라는 그 파계를 한다니까요. 안 지켜져요. 지극히 적은 내 인정이나 사사로운 물질에 대한 애착이나 자꾸만 이 손수건 하나가 내가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숨구멍을 탁 막아버릴 때가 있다니까. 그렇지 않습디까? 여러분, 지극히 적은 것이, 그러니까 여기 그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는다는 비유에는 그리스도의 마음이 들어있는 동시에 모든 영혼을 사랑하라는 뜻이 들어있어요. 모든 영혼을 사랑해.
그래서 한 개의 영혼이라도 너희들이 그렇게 사사로운 인정에 끌리지 않고 한 개의 영혼이라도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면 너희들은 같이 기뻐하자. 그 뜻이 있어요. 거기에 대한 그런 이야기는 제가 많이 했어요.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보면, 영혼 하나의 구원이 되면 큰 잔치가 열린다는 그런 장면이 나와요. 영혼 하나의 구원이 돼서 하늘나라에 가니까. 그냥, 그 단테라는 사람이 보니까 하늘나라가 지진이 난 것처럼 웅 웅하고 큰 산이 울리는 것 같은 소리가 나더라고. 이게 무슨 소리요? 하고 그러니까 어떤 영혼하나가 구원을 얻어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데 하늘나라에서 환영하는 소리라고,
어째 그 이해가 됩니까? 여기 앉아서 다리 절름거리는 이 또 혹은 그 석 달동이 밖에 안 되는 그 사람의 영혼이 하늘나라에서 구원받는다면 하늘나라에서는 큰 환영의 소리를 지른다고. 왜 그래요? 이야기가 자꾸 길어지는데, 히브리서 11장부터 12장까지 읽어보면 그 이유가 나와요. 한 사람의 영혼도 하늘나라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영혼이야. 꽉차있어요. 쉽게 예를 들면 여러분이 자식이 다섯이 있다고 합시다. 다섯이 있으면 그 중에 넷이 돌아왔는데 밥상을 차려놓고 보면 누구 생각나요? 하나 돌아오지 않은 자식 생각날 거 아니요? 그렇지요? 자식이 다섯이 있는데, 오남매가 있는데, 막내둥이가 아직 안돌아왔어. 그런데 아버지 생일인데 넷이 지금 앉아서 생일잔치를 한다면 그 아버지는 누구 생각만 하고 있겠냐 말이오? 그렇지요? 돌아오지 않은 막내둥이 생각하고 있지 않아요? 하나님의 마음이 그러시다는 거야. 온 세계인류가 다 구원을 얻었어. 그런데 하나 구원 얻을 영혼이 아직도 오지 않았어. 아직 오지를 않았다든지, 하나님은 그것만 생각하고 계시다는 거예요.
아 이제 왔구나. 아무개 왔구나. 그리고 기뻐하시지 않느냐? 말이야. 그걸 이야기 하는 거예요. 왜 그러냐? 하늘나라 식구가 다 모여야 천국잔치가 완성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겠소? 하나님과 같은 양반이 그거 하도 많으니까 몇 백 억인지 천억인지 모르니까 하나쯤 없는 거 그거 뭐 알지도 못하고 넘어가실 것 같소? 그럴 리가 없거든. 벌레 한 마리도 세는 분 네 머리카락까지 세지 않겠느냐? 예수님이 그러지 않았소? 그런 하나님이 아 하나님이 자기가 택한 백성을 하나쯤이라고 모르고 넘어가겠소? 그 하나 없는 게 큰 문제가 된다는 말이야. 하늘나라에서는 그런데 우리들은 자기 생명의 가치를 잘 이해하는 것 같으면서도 너무 천시해요. 내 생명하나가 하나님 앞에서는 얼마나 중요하다는 걸 모른다니까. 그래서 아무렇게나 살려고 그래. 아무렇게나 살려고, 거지 같이 들 살려고, 똥이나 주워 먹은 강아지 같이 들 살려고 그런다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딸들이라는 게 그래서 가치가 있는 것이야. 귀한 것이고, 그만 이야기 합시다. 찬송 뭐 하나 부를까요? 550장을 부를까요?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 화려한 천국에 불원에 가리니
나의 아들아! 사랑하는 아들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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