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월에서 둘 째 날 한림과 모슬포에 다녀왔다. 우리나라 최 남단에 있는마라도를 가려다 못갔기에 배편을 알고 싶었다. 날씨 좋은 날은 하루에도 다녀올 수 있음을 알았다. 다음 기회가 오면 다녀오기로 하고 이번에는 모슬포항을 보고 나왔다.
인류의 죄가 내 죄
1982.01.01. 김준호 선생
양부모 밑에서 살 때인데 너무 다복해서 너무나 행복해서 아무리 엄마가 도덕적으로 불순해도 엄마를 용서하고 감싸주고 너무 관대하게 엄마를 포섭해버리니까 엄마가 딸의 그 사랑까지 시기했다하지 않습니까? 저 애가 어쩌면 저렇게 나를 포섭하고 사랑하느냐? 아니꼽다. 어린것이 어쩌면 저렇게 나를 할머니마냥 나를 감싸줄까 참 그 어떤 참 못마땅하다. 그러니까 그 사랑하는 딸이 중학교 1학년인데 그 엄마가 자기 본남편 몰래 간부를 두고 사는 것을 보고도 그 어린것이 자기를 감싸주는 것을 보고 그 사랑에 너무 부끄러웠다. 이놈의 계집애야, 네가 내 딸인 줄 아냐? 네 애비는 살인자야 살인자. 네 애비가 우리 딸을 죽였기 때문에 네 아빠가 너를 역심으로 데려다 키운단다. 그래 고발했다지 않습니까? 실지 사실이 그러니까 자기 친부모인줄 알고 사랑하던 애기가 현재 저 엄마가 가짜엄마인줄 알고 자기는 이집 애기를 죽인 자기 아버지가 원수인 것을 알고는 그 말로하면 가슴이 얼어버렸지요. 가슴이 영도 이하로 내려갔다는 것입니다. 가슴에 어름이 들어가 버렸다는 거예요.
애기가 그러니까 깊은 산속에 가서 얼음 속에서 들어가 얼어 죽었어요. 너무 기가 막혀서 우리 아빠 우리 엄마인줄 알았더니 가짜 부모고 내 친 부모는 이집 애기를 죽였다니 아 우리 아버지 죄가 내 죄가 아니냐? 그거에요. 그러니까 아빠의 잘못이 어린 가슴에 상처로 남아 있어요. 아버지 죄라도 내 죄라하고 내가 죄를 알아야 하나님이 나를 용서한 것을 알 수 있지, 멀쩡히 내가 죄가 없는데 무슨 죄를 용서해 줍니까? 하천풍언 씨는 사생아에요. 자기 엄마가 기생출신 이니까 그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예수님을 사랑해 드렸거든요. 자기가 무슨 죄가 있어요? 자기 엄마가 나쁘지. 그러나 엄마의 부끄러움이 자기 부끄러움 아닙니까? 그래서 그런 신앙이 좋은 분이 되었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사연은 그렇게 되지요. 그 애기가 절망하고 얼음에 가서 얼어 죽어서 의사가 살렸는데 그 동안에 이 애기의 상처를 나서주기 위해서는 확실하게 알아주기 위해서 고아원에서 데려올 때 우리 딸을 죽인 그 사형수의 딸을 달라고 해서 분명히 가져왔는데 사건이 그렇게 되고 보자니까 고아원에 가서 원장님한테 물어보니까 그 애기를 줄려다가 너무 안 되었다 싶어서 아주 순박하고 깨끗한 피로 얻은 그 갓 난 자기부모가 대학생들인데 아주 순수하게 사랑하다 죽어버린 고아의 딸을 바꿔줬다. 그 족보가 달라졌지요. 이 애기는 당신 원수 애기가 아니고 아주 열렬히 사랑하던 어떤 남녀가 내버린 애기였다고. 그래 핏줄이 다르다. 족보가 깨끗하다고 다시 알아가지고 그 말해주는 거요. 아, 나는 너를 내 애기를 죽인 원수의 딸인 줄 알았더니 아니다. 너야말로 네 부모는 깨끗한 부모였다. 그래 안심하고 산다는 그 이야기에요. 자기 부모가 깨끗하다고 그러니까 안심을 해요.
그렇다면 우리 족보가 얼마나 더럽습니까? 아담 하와로부터 인류의 죄가 내 죄가 되어야 정결 받는 답니다. 전 인류의 죄, 미국 죄 소련 죄 우리 국가 죄 우리 족보의 죄가 다 내 죄라고 책임을 질 때 죄가 있는 것이지, 내 핏속에는 전 인류의 피가 와있지 않습니까? 그런 뜻으로 회개가 이루어지는 것이지 내 개인이 무슨 죄가 있다하면 없다하면 고만이지요.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비인격 인류가 형제간인데 형제를 못 사랑한 게 죄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죄를 참말로 알았다면 얼마나 부끄럽습니까? 이토록 돼지 같이 사는 나를 성인으로 봐주다니 예수님의 자녀로 봐주다니 하나님의 딸이 무슨 말이냐? 성녀란 뜻인데 ‘하나님의 아들 성도들이여, 거룩한 예수 제자들이여’ 그 말씀 아니요? 성도들이 이렇게, 이렇게 하십시오. 거룩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렇게 하십시오. 다 그 말씀인데 우리들 하나님의 아들 딸 성도라는 것은 성인대접입니다.
부끄럽지 않아요? 할 말이 없어요. 그렇다면 죄를 아는 사람이 용서를 받을 때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럼 위같이 죄가 많은 사람을 향해서 나의 사랑은 예뻐서 아무 흠이 없구나. 이렇게 말씀하신 정을 생각할 때 참 감사해요. 너무나 할 말이 없어요. 요한복음 17장 21절로 23절을 보겠습니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너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안에 계시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되게 하려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예수님과 우리가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 이니이다. 디모데후서 1장 2절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는 자에게 생명을 주시기로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선포하는 사명을 나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리스도와 일체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는 자에게 생명을 주시기로 약속했다. 그러니까 신랑 신부를 비교하지 않았어요. 예수님이 우리 영혼을 신부로 보시고 이렇게 사랑하세요. 한 몸이야. 예수와 우리 영혼은 한 몸이야.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뻐서 아무 흠이 없구나.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사도들은 우리들을 예수 앞으로 인도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5장 2절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제물로 희생물이 되셨습니다. 신랑이 신부를 사랑했어요. 자기 몸을 향기로운 제물로 희생하여 주셨다는 이 말씀이 교리인데 이것을 정으로 받아들일 때 얼마나 감사해요? 신랑이 죽어가지고 신부를 사랑해. 목숨을 바쳐가지고 아니 목숨을 주시는 분이 감정으로 어여쁘게 안보시겠습니까? 죄를 보겠습니까? 우리가 죄가 있다고 대신 죽어주신 분이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뻐서 아무 흠이 없구나. 이렇게 우리를 안 봐주시겠어요? 그러니까 흠이 없어서 없는 것이 아니라 흠이 안 보이는 것은 사랑이에요. 왜? 용서하니까 용서하는 데는 아무 흠이 없어요. 그러면 사랑을 해본 사람은 알겁니다. 사랑을 해본 사람은 그걸 알아요. 아까 엄마가 30살 먹은 전신불수 딸을 안고 ‘아가, 하나님이 너를 사랑해서 그랬단다.’ 그건 입에 붙은 말이 아니에요. 사랑하는 엄마 가슴에는 그 애기가 흠이 없어요. 자기가 하나님 대리로 한 소리에요. 30이 되도록 애기가 똥을 못 가려도 흠이 없어 밉지가 않아. 그게 사랑이지요.
예수님의 사랑이지요. 베드로전서 4장 8절 말씀. 모든 일에 앞서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 죄가 하나가 아닙니다. 낳아서 죽도록 죄를 용서해주세요. 에베소 4장 32절. 여러분은 서로 너그럽게 따뜻하게 대해주며 여러분은 서로 너그럽게 따뜻하게 자기가 병들어 누워있는데 영접해 주는 그런 사랑을 받았다면 얼마나 고맙습니까? 참 따뜻하게 해줬어. 여러분은 서로 너그럽게 따뜻하게 대해주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하십시오. 이 시간에 제가 주로 보고 싶은 말씀은 골로새3장 12절로 17절 말씀입니다. 제가 공동번역문을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뽑아주신 사람들이고 하나님의 성도들이며 그냥 아무리 죄가 많은 사람이라도 죄가 많이 있다합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면 하나님께서 뽑아서 사랑하시고 보면 성도가 되어요. 거룩한 제자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뽑아주신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성도들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백성들입니다. 그러니 따뜻한 동정심과 그 30이 되도록 똥오줌을 못 가려도요. 엄마는 그 딸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어요. 예수 잘 믿는 엄마 말이지요. 따뜻한 동정심과 친절한 마음과 겸손과 온유와 말씀이 중복되어요. 따뜻한 동정심이나 겸손이나 온유나 다 뜻은 같은데 자꾸 중복하는 뜻이 무엇일까 싶어요. 예수님의 사랑을 말로는 할 수가 없어요. 뭐라고 말해야 표현이 안 되어요. 그러니까 똑같은 말이에요. 따뜻한 동정심과 친절한 마음과 겸손과 온유와 겸손은 아무리 사랑해줬어도 한 번도 사랑을 못 해본 게 부끄러운 거예요. 참 겸손한 마음이에요.
30이 되도록 어린 딸을 낳아서 똥오줌을 가리는 엄마의 마음은 그거 딸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뿐이에요. 내가 너를 낳은 것은 내가 참 잘못했다. 나를 내가 너를 잉태한 것은 내가 참 잘못했다. 용서해다오. 단지 네 영혼을 하나님이 사랑해서 애기가 된 것 아니냐? 참 겸손한 사랑은요. 몸을 주어도 부끄러워요. 자랑이 없어요. 일평생 똥오줌을 가려줘도 거기는 부끄러움뿐이야. 미안함뿐이고 겸손은 육지와 같다지 않습니까? 육지는 비가와도 바닷물이 흐르고 출렁거리고 나무가 커도 태연하고 말이 없어요. 겸손은 육지 같은 마음이랍니다. 겸손과 여기는 따사로운 부드러움이 있잖아요? 따습고 부드럽고 예수님이 그런 분이시지요. 내 마음은 겸손하고 온유하니 내 마음을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영혼이 쉼을 얻으리라. 그 말씀 내 마음은 겸손하고 온유하다 성령이 겸손하고 온유하시지요? 겸손과 온유와 인내로 마음을 새롭게 하여 그 말씀이 또 나와요. 서로 도와주라고 똑 같은 말씀인데 아무리 말을 다시해도 시원치 않아. 서로 도와주고 피차에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그럼 결국은 용서를 하기 위해서 까지 뒷받침이 따뜻한 동정심 친절한 마음 겸손 온유 인내 마음을 새롭게 서로 도와주고 피차에 불평할일이 있더라도 용서하기 까지는 피가 나요. 피가 말라요. 생명을 바치게 됩니다. 흰머리가 나요. 용서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내가 희생이 되어야 저쪽이 따숩지요. 내가 나무가 되어 타야 방이 따습지요. 그러니까 내 피가 달아 진 것만큼 저 사람마음에 따뜻한 사랑이 가지요.
저는 그 사랑을 잊지 못합니다. 이 본원 살림이 우리 식구가 병원에 간호원 견습을 가기까지는 무등산 나무를 등걸이를 해야 때지 않습니까? 동광원 근본 면목은 무등산 나무를 걸어가서 손으로 해가지고 이고 와서 땐 살림이 동광원 살림입니다. 근본 살림은요. 그런데 그런 때는 치마가 발등을 덮었어요. 우리 자매님들 옷이 말씀입니다. 그럴 때 병원에 간호 보조견습 하시게 되니까 눈물을 머금고 치마를 자르지 않았습니까?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히면서 그리고 나무를 하다가 간호원 견습을 하니 그 어여쁜 간호원들 밑에 심부름을 하니 얼마나 천대를 받습니까? 멸시를 당하고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그리고 점심도 굶고 부끄러운 이야기가 아니에요. 그것은 성스러운 이야기입니다. 생활이 가난하니까 쌀이 없지요. 점심을 보리밥을 싸가지고 가니까 먹을 데가 있어야지요. 대학졸업생들 간호대학 졸업할 대학생들 전부 앞에 가서 부끄러우니까 먹을 데가 없으니까 싸가지고 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 부끄러워서 어따 싸놓고 먹을 데가 있어야지, 모두 흉볼 텐데, 빼빼 말라가지고 첫 월급이라고 점심때라고 하나님 앞에 돈 모아서 줬더니 십 년 만에 삼십 년 만에 돈을 손으로 달아봤을 텐데 그 돈을 내가 쓰고 싶지 않겠어요? 내가 그런데 깨끗이 일전도 손안대고 갖다가 원장님 드리지 않았어요? 그럴 수가 있을까? 이 세상에서, 천국이 아닌데, 그러니까 집에는 나무를 안했으니 집이 차지요. 그러니까 처음으로 돈으로 연탄을 사온거지요. 돈을 주고 처음으로 연탄을 사다놓고 보니 그게 연탄이 아니에요. 눈물이지, 피지, 그래 그 연탄을 누구에게 더 때주겠어요? 그것이 연탄이 아니에요.
교회 방에 하나 연탄을 걸었습니다. 저도 교회 방 지금 저 교육관 그 조그만 방 쓰는데 겨울에 감기가 들어서 열이 한 사십도 까지 올라오는데 연탄이 꺼져요. 연탄이 저온연탄이니까 분명히 연탄 꺼진 줄 알고 잠이 들었으니까 아주 방이 따스면 좋지만 추우니까 있는 대로 인내해야지요. 그런데 잠이 들었어요. 등허리 땀이 어떻게 나는지 등허리가 뜨겁고 잠결에 열이 많으니까 이렇게 땀이 나는가 보다하고 의심스러워 손을 넣어봤어요. 그랬더니 연탄을 밤중에 누가 넣어놨던가 방이 뜨거워져서 그래요. 그때 사람이 감정이 있으니까 눈물이 나요. 고마워서, 자기가 죽게 되어 가는데 방은 춥고 더 떨고 있는데 그냥 열로 방이 따슨 줄 알았더니 누가 아무도 몰래 연탄을 가져다 넣어놨거든요. 그래 연탄의 힘으로 방이 따습게 된 거에요. 그때는 눈에 보여요. 병원에서 그 천대받고 멸시당하고 구박을 당하면서 돈 몇 푼 벌어가지고 하나도 안 쓰고 연탄을 사온게 눈에 보여요. 그런데 그 연탄이 아니에요. 사랑이라는 그 느낌, 사랑이 변해서 연탄이 되어가지고 까매져 가지고 연탄이 불이 된 거예요.
큰 불이 되어요. 그 사랑의 힘은 신비해 물질을 초월해요. 사랑이 연탄이 되어가지고 연탄이 불이되어가지고 연탄이 돌을 뚫고 들어 옵디다요. 방장을 뚫고 들어와요. 사랑이 얼마나 신비한지, 내 등허리를 뚫고 들어가 그 심장으로 들어가요. 심장으로 들어가 그 사랑이 핏줄로 빙빙 돌아가요. 그래 땀이 주루룩 나요. 그러니 감기가 나아버리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사랑을 역시 사랑은 신비한 것이고 사랑을 역시 말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은 다른 사람은 돈이면 연탄인지 몰라도 그 무렵의 연탄 한 장은 이 동광원 사랑의 결정이라고 그래요. 총 식구의 결정이야. 눈물과 설움과 그 사랑의 결정. 그 기억이 동광원으로 저는 느낌이와요. 아 동광원이 이런 것이다.
동광원이 무엇이냐? 돈 벌어가지고 개인이 안 쓰고 연탄 사다가 방에 때주니까 방이 따습고 등이 따습고 감기가 나가고 느낌은 그것이지, 말로 할 수 없어요. 느낌은 사랑인데 사랑을 설명 할 수가 없어요. 사랑은 물질을 초월해. 영혼을 감화시켜 영혼을 뜨겁게 해요. 그러니까 그 사랑이 뜨거운 것이지요. 그 사랑이 따순 것이고 그런데 그 사랑이 용서에요. 그렇게 설명해 본다면 용서란 것은 그런 뜻이 아닌가? 그런데 동광원에 그런 것이 있다면 아무도 몰래 누군가가 희생이 됩니다. 몸들이 병들이 많지요? 먹는 것이 작지요? 또 희생이 많지요? 그러니까 젊은 나이에 전부 병이 있어요. 희생이 되어버려. 어찌 서로 도와주는데 불평이 없겠습니까? 사람인지라 서로 주다보면 불평도 생겨요. 그러나 서로 용서하라. 서로 용서 육신을 가졌기 때문에 불평할 일도 생겨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으니까 용서 하신 거예요.
나의 사람들은 순전히 어여뻐서 흠이 없구나. 사랑하다 보면 흠이 없어요.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들의 마음을 다스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안전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기 말을 낱말로 보면 사랑입니다. 사랑, 용서, 그리고 평화 사랑하다보면 용서가 되고 용서하다보면 마음이 평안해. 세상에 어디가면 편안한 곳이 있겠어요? 용서할 때 형제간도 가정도 다 평화가 있지, 사업체도 단체 생활도 용서하는데 평화가 있어요. 인제 15절에 그렇게 말씀했는데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들의 마음을 다스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에 뭐라고 말씀했는가 하니 그러려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아 한 몸이 된 것입니다.
그러려고 어떻게 사랑용서 평화를 얻으라고 사랑하고 사랑하다보면 용서가 되고 용서하다보면 평화가 오더라고 그러려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아 한 몸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구령 목적은 평안입니다. 평안 평화가 있을지어다. 내니 두려워마라. 평화가 있을지어다.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오신 것은 평화를 주러 찾아오신 것입니다. 평화를 얻은 다음에 나온 것은 무엇이겠어요?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사십시오. 감사뿐이에요.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한 생명력으로 여러분 안에 살아있기를 빕니다. 여러분은 모든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침을 중보 하십시오. 그리고 성시와 찬송가와 영가를 부르며 여기 백 장로님이 교회 출신 아니십니까? 여기 오셔서 찬송가도 좋지만 성시 영가를 들을 때 아주 감명이 깊다고 말씀하십디다. 마음에 평화가 있다고요. 그러니 성시도 부르고 찬송가도 부르고 영가도 부르라고 그랬습니다. 오늘 실상 그런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성시도 부르시고 찬송가도 부르시고 영가도 부르고 감사에 넘치는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찬양도 하고 여러분 무슨 말이나 이점입니다. 무슨 일이나 모두 주 예수 이름으로 하고 요새 선생님 그리 안 해요? 모든 사람이 자기이름으로 하기가 병난 세상이라고 모두 자기 이름으로 하는 것은 우리는 삼가자 그런 말씀 하셨어요. 여러분은 무슨 말이나 무슨 일이나 주 예수 이름으로 하고 그분을 통해서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이 말씀 서로 안 잊어버리면 쓰겠다는 그런 뜻으로 봅니다. 히브리서 10장 10절 말씀입니다.
공동번역으로 히브리서 10장 10절 말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단 한번 몸을 바치셨고 그 때문에 우리는 거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은총으로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킴으로 비교적 깨끗해 질수도 있지요. 그러나 영혼이 그리로 인도 되는 것은 사랑으로 그리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은총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리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읽으십시다. ‘예수 그리스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단 한번 몸을 바치셨고 그 때문에 우리는 거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0절 말씀.’ 그러니까 믿음으로 거룩해 집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혹시 사람의 일이라 알겠어요? 미끄러져서 넘어져도 안심하게요. 예수님 말씀은 안심하라 하십니다. 대신 자기가 죽어주심으로 우리를 무조건 거룩하게 하신 것입니다. 은총으로 거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말씀이 믿어질 때 아주 해방이에요. 해방, 마음에 평화가 옵니다. 공포와 불안이 없어집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자기 몸을 바치셨고 그 때문에 우리는 거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물론 정절을 지켰기 때문에 거룩한 사람이 된 사람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사람의 말이에요. 아무리 정절을 지킨 사람도 영혼은 추하거든요 영혼은 더럽지 않아요? 영적 거룩함입니다. (끊김)
성령이 된다는 소망이 있고 희망이 있습니다. 믿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이 선생님 말씀을 하던 끝이니까요. 이 말씀이 생각이 나서 드리고요. 오늘은 눈이 안 왔지만 예년 같으면 오늘쯤 눈이 많이 왔어요. 삼바실에서 여기 무등산 삼바실에서 이 선생님께서요, 병원에 계시다 퇴원을 했는데 몸이 아주 폐가 많이 나빠지셨나보지요. 그런데 각혈을 하시게 되었어요. 눈 속에 파묻혀 계실 때에 각혈을 하면 누워있어야 각혈을 하고 안정을 할 텐데 이제 생명이 곧 임박해서 임종이 될 성싶으시니까 불끈 일어나서 일어나셔서 무릎을 꿇으시더라 그래요. 그러니까 상식적으로 안 되지요. 안정을 해야 될 텐데, 이왕 임종을 할 바에는 드러누워서 할 수 없다 그런 마음이겠지요? 이제는 임종 준비를 하시지요. ‘오, 주님 어서 오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죄인 사랑하셔서 감사합니다.’ 꿀꺽 꿀꺽 자꾸 피가 넘어오는데 여기 오신 자매님들도 그때 깡통 들고 계신 분 몇 분계시지요? 옆에서 멎게 하시는 분은 숨이 같이 넘어가지 않겠어요?
사랑하는 선생님이 그 피가 목에 넘어오는데 눈은 하늘로 치켜들고 자꾸 ‘예수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제 영혼을 불쌍히 봐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시다가 꿀컥 넘어오고 그러니까 동정스러우시니까 ‘누우세요. 안정하세요.’ 그래도 아무 그런 말 귀에 안 들리지요. 무슨 귀에 들어오겠어요? 이미 임종을 하고 있는 시간인데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데려가시지 않았지요. 생명이 다 하나님께 있지 않습니까? 생사를 초월해서 안 죽고 또 몇 년 더 사셨지요? 그 무렵이니까요. 그런데 지금 이야기는 그런 때가 있었고 늘 올라가서 몇 번 있었으니까요. 그런 이야기 하나 들었고요. 각혈 하실 때 어떻게 얼굴이 평안하시고 태평하신지 꼭 천사와 같으시더라 그랬어요. 그 깡통을 들고 옆에서 보니까요. 그런 이야기 하나 들었고요.
또 하나 이 말도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때는 가을입니다. 그때도 병원에 계시다가 퇴원하셨는데 임종이 가까웠지요. 그때도요. 항상 위기를 갖고 계셨어요. 밤새도록 각혈 하셨던지 간호하는 사람이 서이고 둘이고 있으니까 이렇게 교대했지요. 초저녁 밤중 새벽 사람이 있는 대로 피곤해 떨어졌지요. 한 일주일 각혈계속 하니까요. 그래 수종하는 사람들이 모두 몸치레하고 잠도 모자라서 석양이니까 밤이 되기 전에 석양이니까 마음을 놓고 다른 방에서 잠이 들어버렸어요. 마침 그 시간에 옆에 간호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때 함평 계시던 셋째 형님이 농사 마치시고 마침 찾아왔는데 아이고 어서 오시라고 어서 오세요. 들어앉자 아무도 안 오니까 간호하는 사람이 아무도 안 오니까 나 좀 업고 나 지리산으로 갈수 있는 버스가 어디가 있겠냐고 포천으로 포천까지 업어다 줄 수 있냐고 하니까 그분은 아주 순진한 분 아닙니까? 네, 업어다 드리지요. 업으라고 속히 업으라고 곧 간호하는 사람이 쫒아오면 안되니까 빨리 업으라고 해서 업고 삼바실 윗집에서 아랫집이 한 오백메타나 떨어졌어요. 아랫집까지 업고 내려왔는데 마침 가을 소나기가 쏟아졌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포천까지 가서 행방불명이 되시려고 그랬지요. 그래 갈 마음은 간절한데 그 청년이 숨을 다잡으면서 비를 맞고 자기를 업고 가시는 것을 동정했어요. 아, 이 사람이 무슨 죄가 있는가? 나는 죄가 많아서 그러지만 이 천진난만한 이 청년을 내가 고생시키는 건 본이 아니다. 그래서 의사를 물어봤어요. 셋째형제 비가 많이 오니까 가시기 싫으면 안가도 좋소. 그러니까 오죽 좋겠어요? 선생님이 위해서 자기가 가기 싫다고 보태면 선생님을 모시고 가는 것은 이건 비상한 탈출입니다. 식구 몰래 혼자 가서 임종 할라고 나가는 것인데 선생님이 마음을 읽어주니까 감사해서 업어다가 윗집에 다시 데려줬다고 그런데 그 후에는 두고두고 후회하는 소리는 제가 들었어요. 기회는 그때인데 그때다. 나와 예수님과 단둘이 살다가 하늘나라 갈 기회가 그때가 빠져나갈 기회가 그때뿐이었는데 그다음부터는 옆에 사람이 탈출할 기회를 안 줬어요. 다 죽어가는 몸에 누가 혼자는 못가는 몸인데 업고 다니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그랬다가 그 기회 놓치시고 또 총회라고 도암에서 한번 모였지요. 초기에 그 무렵에 쇠진해하지고 그때는 눈이 많이 왔어요. 그리고 일주일동안 기도회를 생명을 바쳐서 인도하셨지요. 피를 토하면서 10미터 아니 5미터 되는 막에서 말씀하실 장소까지 올 기력이 없었어요. 걸어올 기력이 없었기 때문에 자매들이 업어 다 드렸거든요. 업고가시면 무릎을 꿇을 기력이 없거든요. 옆에 사람이 무릎을 들어서 꿇어드렸어요. 앉으시면 말을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해서 말씀을 하시고 그때 저는 말씀 들었어요. 그때 저는 감기로 참석 못했는데 들었어요. 이 말씀하시더라고 묵시록 2장에서 하신 말씀인데 예수님의 비밀은 정절이다. 사탄의 비밀은 음란이다. 그렇게 해설하시고 정절 지킨 사람들은 사탄의 비밀을 알기를 원치 말아라. 그리고 청년들이 정절을 지킬 때에는 남녀 간에 충돌을 피하라. 그런 말씀을 들었노라고 돌아가신 동주자매 한나 어머니의 며느리가 말씀을 들었어요. 다른 분들도 이야기 하시지요. 전전귀로 들었지만 옆에서 들은 것보다 더 확실하게 아, 그 말씀 하셨구나. 기억하고 있지 않아요? 그 무렵인데 그때 또 그러셨답니다.
곡성 김 장로님이 늦게 당도했는데 들어오니까 김 공, 나 좀 업고 지리산으로 갈 수 있는 버스길로 나 좀 인도해주세요. 아니 기차 타라고 저를 기차역까지만 업어다 주세요. 그럼 언제 갈까요? 오늘밤에 간호하는 사람 없을 때 아무도 없을 때 오늘밤에 가자고 그래 김 장로님이 벌써 나이가 15년 전 이야기니까 업고 갈성 부르더랍니다. 그래서 기차역까지 제가 업고 가지요. 약속했는데 그때 김 준 씨 일행이 삼온회 회원들이 들이 닥치더라 그래요. 오늘밤에 내뺄 텐데 해가진 다음에 그분들이 와서는 삼일을 우리를 위해 다시 말씀해 주세요. 그러니까 밤중에 김 공을 다시 불러서 하나님의 뜻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저분들이 3일 말씀해주라 하니 오늘밤에 가자는 약속은 우리 그만 둡시다. 그러시더라 그래요. 그 이야기도 그래요. 또 그다음에 김 공, 그때 기회는 좋았는데 이렇게 되었습니다. 아 그때 제가 탈출을 해서 혼자 나도 예수님의 사랑의 길을 갔더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이렇게 형제자매의 사랑을 받고 가니 내가 무슨 면목이 있겠소? 나도 우리 예수님을 섬길 기회를 못 가졌다고 아쉬워하며 후회하셨다는 것을 또 들었어요. 전전 기별이지요.
그러면 죽어가는 사람이 혈혈단신 예수님만 사랑하고픈 순정 그 순정. 그 간절한 예수사랑 아니겠어요? 자기가 죽음을 앞에 두고 어떻게 했으면 예수님을 더 사랑해 드릴까 하는 그 열정 그것은 아까 신부와 신랑이 하는 이야기와 똑같아요. 예수님과 이 두 분 사이는 피도 험도 없어 과거도 없고 죄도 없고 사랑에 취해있어요. 남녀 사랑 이상입니다. 그렇게 사랑하시는 분의 사랑을 옆에서 본 분들이 여기 보모들이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학문이 있습니까? 사회 경험이 있습니까? 단지 이 선생님의 그 믿음 그리스도를 사랑하시는 모습에서 어느 정도 아, 예수 믿으려면 이렇게 믿는가 보다. 자기부인 자기포기 자아부정 또 형제를 위해서 희생 봉사 사랑 그런 것을 옆에서 어느 정도 취득한 것은 사실입니다. 여기 이 선생님 본문. 자기가 친히 써놓고 세상 떠났다는 게 하나있어요. ‘주님의 은총 안에서 얻어진 참 사랑에는 눈물이 있습니다. 피와 땀이 있습니다.’ 이 말을 학자가 썼다면 아무 힘이 없어요.
그분이 눈물을 흘리시고 피를 흘리시고 땀을 흘렸기 때문에 이 말이 우리 가슴에 닿습니다. 가슴이 울려요. 살아계신 것 같아요. 주님의 은총 안에서 얻어진 참 사랑에는 눈물이 있습니다. 피와 땀이 있습니다. 희생이 함께 깃들어 있습니다. 눈물이 없는 사랑, 피와 땀이 없는 사랑, 희생이 없는 사랑은 정말 사랑일수 없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읽듯이 한말 아니겠지요? 말씀 못하실 때 누가 옆에 와 우니까 사랑에 감격해서 고마워서 붓을 들어서 연필로 종이에다 쓰신 글이지요. 주님의 은총 안에서 얻어진 참 사랑에는 눈물이 있습니다. 피와 땀이 있습니다. 희생이 함께 깃들어 있습니다. 눈물이 없는 사랑 피와 땀이 없는 사랑 희생이 없는 사랑은 정말 사랑일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자꾸 임종이 가까 오고 말도 못하시고 옆에 와있는 수종을 드는 분들은 울어쌓고 또 밤잠을 못자고 밥을 못 먹고 얼굴이 쑥 들어가고 참 희생들 해주니까 옆에 사람들이 건강도 좋지만 건강했으면 뭐 사랑해줄 것도 없고 사랑해 줄 사람도 없지요.
아파계시니까 사랑하는 형제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바치고 자기 몸에서 피와 살이 보타지도록 희생을 하는 것입니다. 말과 사시는 모습이 같기 때문에 그 말이 가슴에 울리지요. 옆에 사람 가슴에요. 사랑하는 형제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바치고 자기 몸에서 피와 살이 보타지도록 희생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셔서 선하게 사는 사람에게는 선하게 갚아주시고 악하게 사는 사람에게는 악으로 갚아주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편하게 산만큼 다른 형제가 희생을 당하고 내가 희생을 당한만큼 형제가 편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형제들의 희생을 사랑의 정신으로서 받아들일 줄도 알고 또한 사랑의 마음으로 희생을 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피를 남에게 줄줄도 알아야하고 남의 희생의 가치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사귐이요. 발전인 것입니다. 아멘. 그 말씀으로 끝났어요. 여러분이 이제 골라서 무슨 성시든지 영가를 불러주십시오. 마는 제가 하나 예수님 은총으로 하나 불러주십시다. ‘오 예수님 은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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