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광원 한영효 장로님이 향년 91세로 6월 8일 영면 하셔서 10일 장례를 동광원 수도회원과 친지들이 남원 대산에서 장례를 치렀습니다.흐린 날이라 덥지도 춥지도 않고 밤꽃 향기속에 무사히 보내드렸습니다.
파 계
1981.08.16. 김준호 선생
그 곳에서 소년들은 불평 없습니다. 찬송 부르고 예배보고 있었습니다.
그런 분이었고 한참 한 달 살았는지 두 달 살았는지 저도 나이가 그때 이십 여세 되었으니까 잠이 많아서 아침 5시 종을 치면 억지로 일어났기 때문에 한 달 동안 몰랐습니다.
하루아침에 발견했어요. 전기가 써졌고 큰 강당 귀퉁이에 있어요. 가만히 보니까 선생님이 엎디어서 무얼 하고 계셔요. 가만히 눈여겨보니까 이를 잡고 계세요. 그대 그 말이 왜 이를 죽이지 않으십니까?
세시부터 와서 잡으시는데 성냥갑에다 이를 모아요. 제가 인제 옆에 가니까 탁 꺼버려요.
조용한데 그날 제가 안자고 보면서 저를 들으라고 그 말씀 하세요. 성냥갑에다 이를 잡아넣어서 그래서 그랬을까? 성냥갑만한 수레 수레를 말에다 채워주면 잘 끌고 가겠습니까? 저 들으라고 그러시는 거지요? 혼자하시는 말씀이 아니고 저 들으라고 하세요? 성냥갑만한 수레를 만들어서 말에게 채워주면 잘 끌고 가겠습니까? 쪼끔 있다가 그렇지 않다면 쥐에게 말 수레를 채워주면 잘 끌고 가겠습니까? 꼭 두 마디에요. 얼마나 어리숙하고 깜깜한 밤중입니까? 그런데 앉아 계셔서 그 말씀이 가슴에 뭔 뜻인지 몰라도 꽉 배겨요. 제가 진학 하려고 꿈이 많았지요. 학교를 다녀볼까 그런 꿈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지 그 말씀이 공부를 하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은 할 수 있지만 네 형편에는 공부 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 억지소리다. 그 말씀으로 제가 받아들였어요. 제 형편에 공부를 더 하려고 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다.
쥐가 말 수레를 끄는 것 같이 억지 짓을 하는 거다. 저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이다. 공부를 포기하라고 하시는 말씀이다. 그렇게 알아들었어요.
근데 선생님이 엄하시고 너무 무섭게 봐왔기 때문에 사석에서 십년이 되도록 옆에 접근을 못했어요. 고작해야 그런 말씀이지요. 제 삼자에게 하신 말씀인지 제게 하신 말씀인지 몰라도 단 둘이 있을 때는 뭔 말씀을 저렇게 하시는가? 그러나 자기로서는 숙제가 해결되었어요. 자기 나름대로 문제가 있는데 아 그 말씀이 이 뜻인가 보다. 자기가 스스로 해석하고는 아 공부를 포기하라는 말씀이다. 그렇게 알아들어요. 또 어느 때에는 뵌 것도 아니요. 우연히 마주친 것이지요. 또 들으라고 하신건지 혼자 하신 말씀인지 문둥이에게 명주 바지저고리를 해주고 비단 요를 깔아주고 종일 놀라고 하면 좋겠습니까? 건강한 사람에게 낫을 주면서 뙤약볕에 가서 일을 하라는 게 좋겠습니까? 뭐라고 말씀 드려야 하는지 대답을 해야 할지 안해야 할지 아주 당황하지요. 제 심중에는 제가 답을 한다면 이렇게 해야 되겠다. 건강한 사람이 되어가지고 뙤약볕에 가서 일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대답해야겠다. 그러나 대답도 못하고 그러니까 편히 살라고 하지 말고 자기 처신에 맞도록 일할 각오를 하라. 그런 말씀이신가 보다. 오전에는 공부하고 오후에는 작업시간이 있었어요. 그래서 아주 일을 많이 했어요.
일을 하라 하지마라 하지 않고 요렇게 말했기 때문에 자기 안에서 일을 해야 쓰겠다. 일하는 것이 내게 행복하다고 그렇게 마음이 결정이 되고 일을 할 때 그렇게 부끄럽지 않아요. 또 제가 꿈이 많지 않습니까? 젊은이는 다 꿈이 많지요. 그런 때는 그렇게 시험이 있는걸 아시고 들어보라고 말씀하시는 거지요. 그런 생각을 제가 어저께 산에 있으면서 생각이 났습니다. 이 시간에도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는 말씀은 이 말씀은 제가 못 알아듣지마는 이 선생님이 그렇게 사시면서 아이들 데리고 그렇게 말씀하시던 그때, 그때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한 체험일 거예요. 말은 할 수 없지만 아무 체험이 없어요. 여기서 자꾸 말이 띄어갑니다마는 이 선생님이 임종에 다했을 때까지는 어느 정도 한쪽을 붙잡았던 것도 사실이에요. 우리 식구들만 잘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식구들만 구원 받았으면 좋겠다. 그랬는지도 알 수 없어요. 그러나 임종에 다가서서 불안과 공포와 아주 이것은 마음이 아니라 공포를 느끼면서 살았단 말입니다.
내가 오늘 이 시간 임종하면 뭐를 할까? 아주 꾸중 하신다는걸 깨달았어요. 너 일 잘못하고 왔다. 왜 전 인류에 대한 사랑을 보지 못하고 한 일 거기에 집착을 하다가 왔냐? 그래서 너는 내 나라를 두 쪽 만든 놈이다. 너는 나가거라. 쫒아내신 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는 아주 내가 이대로 죽어서는 안 되겠다고 아주 공포에 떨었단 말입니다. 임종다가서서 너는 일평생 무엇을 만들다 왔지? 나 예수를 두 쪽 내놓고 왔지 않느냐? 라고 너는 나가거라. 추방을 당한다고 생각했을 때는 주님 그러면 제가 시정하겠습니다. 몸이 건강해서 관리하는 것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가사 어떤 수도회에서는 고기를 안 먹는다든지 그런 주장이 있을 때 수도하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런데 이건 수도운동이 아닌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원만한 신앙을 가리킨다고 했는데 그럼 전 인류가운데 고기를 먹고 약을 먹고 산 식구가 전부인데 그럼 그쪽에 서면 소홀히 한 건가? 약 안 먹고 고기 안 먹는 사람에 대해서는 지도자가 되었지마는 그럼 먹는 사람에 대해서는 영적인 생활이 모두의 파당이 되었단 것입니다. 그럼 그러므로 이렇게 생각하셨답니다.
이것이 내 개인 감정이고 마귀의 속삭임 이라면 나 혼자 저주받고 싶다. 죽기 위해서 내가 죽기 전에 고기를 입에 대도 약을 입에 대도 죽는다. 그러면 하나님이 나에게 벌을 내리실텐데 ‘네가 진리를 무너트린 역적이다’라고 나는 혼자 추방되어서 그렇게 자기가 생각을 하시고 ‘만일 이것이 내 개인 시험이라면 내가 벼락을 맞고 죽을 것이다. 그렇게 각오를 하시고 고기를 입에 대었노라’그러셨다. 그런데 지금 내가 주장하고 내가 바로 가르치고 바로 구원을 주장하고 바로 가르쳤는데 내가 범법한 이 마당에 이것이 마귀한테 나온 것을 내가 순종한다면 나는 입에서 고기가 넘어가기 전에 내가 즉사 한다고 자기는 믿었답니다. 이렇게 해석합니다. 내가 고기국물이 목에 넘어가기 전에 내가 즉사하고 저주받아 죽으면 내 후배들은 완전히 이것이 진리니까 이렇게 해서 구원받을 것이다. 그렇게 집념을 각오를 하시고 그렇게 하셨어요.
그러면 고기를 안 먹던 미덕을 가졌고 있던 자들은 좋지 않습니까? 그러나 먹지 않는 사람들한테는 영광이고 왕이지요. 소중하고 영광이고 자랑거리였지만 먹는 사람들한테는 저주고 정죄고 비방이고 그랬지요. 또 먹는 사람에 대해서는 자 먹는 사람들 가슴에도 예수님의 피와 사랑과 눈물을 전하고 먹는 사람도 평화를 주기 위해서 모두에게 평화를 줄 수 있는 지도자가 되어야 되겠다. 그런 거지요. 그러면 제가 죽기 전에 이걸 헌(허물다)다는 것은 범법인데 큰 과오를 범했는데 우리식구 몇 사람을 슬프게 하더라도 전 인류의 가슴에 고통을 주지 않는다. 전 인류에게 화합을 하자. 먹는 사람도 주님을 위해서 먹는 것이고 고기를 안 먹는 사람도 주님을 위해서 안 먹는 것이지, 먹는 사람이 예수를 잘 믿는 것이다. 그렇게 가르쳤습니까? 안 먹는 사람만 예수를 잘 믿는다.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에 먹는 사람도 주님을 위해서 라는 뜻이다. 시인하고 화목하고 다 품으로 안아주고 예수님께로 인도했을 영혼이 아니겠느냐? 그런 생각이겠지요.
그러면 이번에 내가 시험이라면 내가 저주를 받고 이건 즉사를 하고 죽어버리면 우리식구들은 진리니까 그대로 잘 나갈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는 거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기는 고기를 삼켰는데 즉사를 하지 않고 생명이 연속되고 병이 나았지 않습니까? 오히려, 그러면 고기를 먹었으니까 광주로 가자. 그러면 원장님도 나를 쫒아내야 이치가 맞다 는 거예요. 또 그래야하고 책벌을 하실 것이고 원장님은 덕이 높으시니까 가만히 쫒아내지마는 젊은 청년들은 몽둥이를 갖고는 때려죽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단 말입니다. 그래서 아 내가 광주에 가면 몽둥이에 맞아 죽는다. 그래서라도 예수님이 원하시면 제가 순종하고 죽는 것으로 맞아죽는다. 그래 실상 맞아죽는 각오를 하고 광주로 들어갔다고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근데 모두 관대해서 쫒아내지도 않고 몽둥이로 때리지도 않고 받아준 것은 믿음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식구들한테 믿음이 있었다. 신앙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고 나 빼놓고 모든 식구들이 모두 믿음이 좋다. 어떻게 나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느냐? 과연 복 받을 분들이라고 그렇게 말씀하셨다지요.
그러면 일전에 장로님한테 물어봤어요.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선생님이 세우신 것을 허물어버리고 가신 마당에 우리 후배가 어떻게 될지 모르고 누가 알까 무섭고 부끄러우니까 그런데 그 남 보기에 듣기 좋게 하신 것은 조기 한 마리 삶아 달라고 해서 물만 한 모금 마셨는데 그것은 소위 말하면 하나님의 뜻에 자기가 순명한다는 것으로 자기주장을 헐어버리지 않았겠어요? 그건 그대로 좋은데 장로님하고 저하고 어떤 청년 하고 셋이 천막으로 모두 들어섰지요. 천막 안에서 ‘소간을 좀 사 오십시오.’소간은 별나고 무섭지 않습니까? 피가 떨어지고 벌벌 떨고 옆에 서있는 사람에게 잘잘하게 자르라고 콩만큼 몇 개 잘랐어요. 하나를 딱 들어서 ‘오 집사님 잡수실 랍니까?’손바닥에 탁 놓으니까 빨간 것이 탁 떨어져요. 참 그건 살이지요. 예수의 살이 아닌가요? 엄숙해, 너무나 엄숙해. 나도 하나 한 점 놓고 다른 사람도 놓고 선생님도 하나 잡수시는데 입에가 피가 얼마나 보기 싫습니까? 흉하고 벌벌 떨립니다. 선생님이 잡수시니 장로님이 삼켜먹었어요. 나도 삼켰어요.
당최 기분이 나쁘고 이럴 수가 있을까? 이건 절대 비밀이요. 오늘 공개합니다. 그전에 공개하면 우리 선생님 큰일 날까봐 말 못했는데 어쩌면 그렇게 철저한 것을 헐었냐? 무엇이 목적이어서 그랬을까? 무엇을? 그 예수님을 편안히 해드리려고 모든 사람의 가슴에 평안을 주기 위해서 나만 옳다. 네가 옳다. 주장을 하지 않기 위해서 예수님의 피만 사랑만 예수님의 구원만 나타나시라고 자기가 세웠던 것을 완전히 헐었단 말입니다. 아니 자기가 세웠겠습니까? 그것이 우상이 되었던 건 사실이에요. 우리가 잘 믿는다. 교회의 목사님 집회에 갔어요. 어떻게 목사들이 얕보이는지 저래가지고 목사일까? 도저히 마음에서 얕보이고 그 말씀이 귀에 안 들어와요. 실제 그런 병적 요소가 저에게 있었습니다만 선생님의 그렇게 헐어버린 마당에 얼마나 난처했다고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고 오늘날 이 말씀을 왜 하냐? 밝히 모든 사람의 것이 되라고 그 여러 사람들 앞에서 성만찬 내 살을 먹어라. 내 피를 마셔라. 예수님이 그렇게 하시잖아요? 그런 광경과 똑같은 시간이었어요.
그런데 그 기념하고 모든 사람에게 알리라고 그렇게 하셨는데 그것이 오히려 선생님을 헐고 선생님의 명예를 손상하게 될까봐 꽉 숨겨가지고 다녔어요. 그래도 우리가 잘 믿는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이 험해지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 안에서요. 예수님의 피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의 그 구원 예수님의 은총이 희미해져 버려요. 그걸 옛날 것을 자랑하느라고 그리해 온 것인데 그럼 베드로 심정을 보면 베드로 사도의 역사를 보면 꼭 그런 심정을 가졌어요. 말로는 사도바울과 둘이 우리는 이렇게, 이렇게 이방 사람도 구원을 받고 이방 사람도 구원 얻으니 믿읍시다. 그렇게 했지마는 옛날 관습 따라서 유대 사람이 오면 쩔쩔매고 유대사람에게 비난을 받을까봐 불안해 하셨던 장면이 나오지 않나요? 그러니까 선생님께서 그냥 속이 없이 시험이 들어서 꼭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숨겨드려야겠다. 그런 걸 은밀하게 진행해 오던 그 생활이 어디까지나 우리가 잘못했다. 우리가 잘 믿는다는 아만 교만의 일종 아니겠어요? 그런 것에 병들게 하는 요소가 되지 않았던가? 그렇게 반성해 보았어요.
화목케 하신 이는 그것을 위해서 철두철미하게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시고 자기가 영광 받을 만한 것은 다 취소해 버렸는데 원래 선생님을 봐준다고 선생님의 낯을 생각해 드린다고 옛날 자꾸 두둔하다 보면 역시 선생님께서 염려하시던 당이 생기는 게 아닌가? 당을 무너뜨리고 가신 선생님의 제자들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예수님만 빛내야 되지 않겠어요?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의 은총 예수님의 피만 앞으로 두드러져야지, 우리가 더 잘 믿는다. 그 한때는 그랬지마는 이제는 겸손해야 될 때다. 이제는 모든 사람을 섬기고 존경하고 사랑하고 그럴 때가 돌아왔다. 그런 점을 말씀드려왔지만 다시 한 번 증거 했습니다. 그럼 사도바울도 여기 고기문제로 이야기 하는 것 아닙니까? 14절 ‘그럼 고기를 먹는 사람도 주님을 위해서 먹을 것이고 안 먹는 사람도 주님을 위해서 안 먹을 것’인데 서로 내가 잘 한다, 잘한다 하는 것을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뭐가 오른 것인가는 따로 있는 것이고 평화와 사랑인데 사랑과 평화를 도모해야지 자기들의 선행을 주장함으로 파당 이 생겨야 되겠느냐? 그러므로 모든 것을 초월하라. 그런 부탁 아니겠어요?
그런 거기서 나온 말씀인데 이건 큰 뜻으로 받아들였어요. 몸이 건강하든지 안하든지 다 주님의 것이고 다시 말하면 병이 있든지 없든지 주님의 것인데 건강한 사람만 자랑할 것이 아니고 병도 주님의 것이면 자랑이 될 수 있다. 또 학문 학교 다닌 사람 못 다닌 사람 그전에는 학교 안 다닌 사람이 어떻게 했어요? 더 잘 믿고 더 거룩하고 더 깨끗하고 그랬는데 공부 한사람들도 주님을 위해 사는 것이다. 이게 받아 들여 졌어요. 그러니까 모든 것이 원만한 신앙을 갖게 된 것이 감사합니다. 우리 자신들이 아무것도 남들보다 잘 믿는다고 하는 우월감을 갖지 못하게 가르친 선생님이라 그런데 선생님 본뜻은 아직도 오해를 하고 끝끝내 우리 선생님만 옳다 이렇게 되면 모든 사람을 잃는다 말입니다. 파당이 되어가지고 그러므로 우리가 손해 본 것은 모든 사람을 얻기 위해 손해 본 것 아닌가?
모든 인류와 모든 형제를 얻기 위해서 손해 보신 선생님의 뜻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겠다. 이제는 확실히 공부 한 사람도 거룩하고 공부 안한 사람도 거룩하다. 그런 우리 신앙관을 가진 것도 사실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그래도 공부 안하고 있는 것이 더 우월하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공부 한 것도 주님을 위해서 한 것이니까 거룩하다. 그렇게 마음이 여겨진다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양편 아까 제가 생각을 그래서 인용 했어요. 나는 모두 골라 나는 다 골라 그랬다는 거 또 한 스무 살 넘어서 저는 모두 선택 하옵니다. 제 의지를 받아주십시오. 그렇게 예수님 앞에 구했다는 겁니다. 모두 고르겠다. 모두 선택하겠다. 그런 거지요. 설명을 제가 더 할 필요 없겠어요. 우리는 살아도 주님의 것이고 죽어도 주님의 것입니다. 그런 점.
그때 저는 말씀 들었어요. 그때 저는 감기로 못 왔는데 이 말씀하시더라고 묵시록 2장에서 하신 말씀인데 그 예수님의 비밀은 정절이다. 사탄의 비밀은 음란이다. 그렇게 해석하시고 정절 지킨 사람들은 사탄의 비밀을 알기를 원치 말아라. 그리고 청년들이 정절을 지킬 때에는 남녀 간에 충동을 피하라. 그런 말씀을 들었노라고 돌아가신 봉주자매, 한나 어머니의 며느리가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다른 분들도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리고 전해 들어서 알았지만 옆에서 들었을 때 아 그 말씀하셨구나. 기억하고 있잖아요?
그 무렵인데 그때 그러셨답니다. 곡성 김 장로님이 늦게 당도했는데 오니까 김 공 나 좀 업고 기차역까지 업어다 주세요. 그럼 언제 갈까요? 오늘밤에 간호하는 사람 없을 때 오늘 밤에 가자고 그리고 김 장로님은 나이가 벌써 15년 전 일이네요. 업고 갈 성 싶더래요. 그래서 기차역까지 제가 업고 가지요. 그랬는데 그때 김 준씨 일행이 삼온회 회원들이 왔어요. 오늘밤에 내뺄 텐데 오늘 해가 진담에 그분들이 와서는 3일만 우리들을 위해서 다시 말씀해 주세요.
그러니까 밤중에 김 공을 불러가지고 하나님의 뜻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저분들이 3일만 말씀해 주라고 했으니 오늘 밤에 가자는 약속을 그만 둡시다. 또 그 이야기도 그래요. 그 다음에 김 공, 그때 기회는 좋았는데 이렇게 됐습니다. 아 그때 제가 탈출을 해서 혼자 나도 예수님의 사랑의 길을 갔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이렇게 형제자매의 사랑을 받고 가니 내가 무슨 면목 있겠소? 나도 우리 예수님을 섬길 기회를 못 가졌다고 아쉬워하시며 후회하셨다는 말씀을 또 들었어요. 점점 깊어지지요.
그럼 죽어가는 사람이 혈혈단신 예수님만 사랑하고픈 그 순정 그 순정 그 간절한 예수사랑 아니겠어요? 자기가 죽음을 앞에 두고 어떻게 했으면 예수님을 더 사랑해 드릴까하는 그 열정 그것은 아까 신부와 신랑이 하는 이야기와 똑같아요. 예수님과 이 두 분 사이에는 피도 흠도 없어. 과거도 없고 죄도 없고 사랑에 취해 있어요. 남녀 사랑 이상입니다. 그렇게 사랑하신 분의 사랑을 옆에서 보신 분들이 여기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무슨 학문이 있습니까? 사회 경험이 있습니까?
단지 이 선생님의 그 믿음 그리스도를 사랑하시는 모습에서 어느 정도 예수 믿으려면 이렇게 믿는가 보다. 자기 부인 자기포기 자아부정 또 형제를 위해서 희생 봉사 사랑 그런 것을 옆에서 어느 정도 체득한 것은 사실입니다. 여기 이 선생님이 본문 자기가 친히 써놓고 돌아가셨던 이야기 하나가 더 있어요. ‘주님의 은총아래서 얻어진 참 사랑에는 눈물이 있습니다. 피와 땀이 있습니다.’이 말을 학자가 썼다면 아무 의미 없어요. 그분이 눈물을 흘리시고 피를 흘리시고 땀을 흘리셨기 때문에 이 말이 가슴에 닿습니다. 가슴에 울려요. 살아계신 것 같아요. 주님의 은총 아래서 얻어진 참 사랑에는 눈물이 있습니다. 피와 땀이 있습니다. 희생이 함께 깃들어 있습니다. 눈물이 없는 사랑 피와 땀이 없는 사랑 희생이 없는 사랑은 정말 사랑일수 없습니다.
이렇게 사람 읽듯이 한 말 아니지요. 말씀 못하실 때 누가 옆에 오니까 사랑에 감명해서 고마워서 붓을 들어서 연필로 종이에다 쓰신 글이지요. 주님의 은총 아래서 얻어진 참 사랑에는 눈물.(끊어짐)
또 예수께서 큰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은 틀림없는 일이고 누구나 받아들일 만한 사실입니다. 난 그 죄인들 중에서 제일 큰 죄인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런 말씀을 읽어볼 때에 옛날에는 남 보러 들으라고 읽었어요. 그런데 요새는 요, 제 영혼이 그 말을 읽을 때 위로가 되어요. 왜? 동질성 안에서 동질적인 애정을 느낀다고 나도 죄인이었구나 하는 것을 이해가 되기 때문에 이제 부끄러워지지가 않아요. 잘하고 싶어요. 아 나도 죄인인데 몰랐다니 그러나 목사님 말씀 장로님 말씀 들을 때 죄인이면 쫒아낼 것 같아서 얼마나 죄를 감추고 벌벌 떨고 살았던가?
그런데 해방감이 있어요. 가서 목사님이나 장로님들이 쫒아 내더라도 우리 예수님만 나를 사랑하신다. 그런 확신이 있었어요. 목사님같이 살기가 좋지요. 장로님 말씀같이 살기가 쓰겠어요. 그러나 인생이 살다보면 하나님께만 범죄 한 죄가 어떻게 많은지 사람에게는 아무 죄가 없지만 하나님께만 범죄가 어떻게 많은지 성령을 모독한 죄는 죄 사함을 용서가 안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얼마나 예수님을 푸대접하며 거역했는지 항상 부끄럽고 떨었습니다.
그런 뜻으로 참 예수님이 자기를 직접 죽인 죄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하신다는 성 베드로의 증언은 자기 본인이 그런 인간이었으니까 자기가 예수님께 용서를 받고 감명하고 믿었을 때 얼마나 영혼이 평안했을까? 그 기쁨 베드로 자신의 기쁨 그 기쁨을 전해줄라고 선교했건만 그 말을 또 오해한 사람들이 베드로를 미워하지 않습니까? 그건 할 수없는 일이라 그 말씀이라 그거에요. 그 말씀을 보고 그렇게 말씀을 보기 시작하니까요. 성경이 66권이 전부 자기의 말씀뿐 이에요. 어디를 보던지 용서한다는 말 뿐이기 때문에 성경을 찾다보면 한도 끝도 없어요.
그래서 또 한 시간 있으면 성경에는 이렇게 용서하시는 말이 이렇게 많던가? 그 말씀을 다음 시간에 다시 한 번 찾아볼 수가 있었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제 뒤로 말씀을 끝내는 마당에 제가 대개 여기 찾아오신 분들은 얼굴을 직접 뵙던지 이 현필 선생의 전기를 보셨던지 또 이 현필 선생의 교훈을 직접 받으셨든지 존경하신 분들이시기 때문에 뜬금없이 요새 그런 회상을 했습니다. 옛 생각입니다. 저는 이 동광원을 알기 쉽게 말씀드립니다. 우리 이 현필 선생님이 여기 사실 때 이 밤나무골에 사실 때에는 현재 있는 기와집이 한 채도 없었다는 것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이 선생님이 주무시고 기거하시던 집은 오 장로님이 지으셨는데요.
여기 닭이 울어싸는 동산이 저기 있었어요. 남의 땅에 주인이 허락해서 막을 치는데 감나무는 손대지 말고 거년에 난 것이지요. 2년생, 2년생 아카시아는 베어서 써도 좋습니다. 그런 허락을 받으셨어요. 2년생 3년생 아카시아를 쪄가지고 집을 지어드렸어요. 그러니까 그 집을 많이 못 얹어도 자빠지기 때문에 짚으로 이어드렸지요. 그 이 선생님 숙소신데.
그리고 그 막도 있기 전에는 화학산 전기에 나오지요? 문바위 또 소재 그런 마을에서 부자 집 어른들한테 불쌍히 보고 밥을 달라고 안하시니까 너무나 불쌍하다 싶어서 이 밥 먹고 가라고 그러면 그 밥을 거기서 먹기가 너무 황송하니까 저에게 싸주시면 가져가 먹겠습니다. 해서 산속에 들어가 잡수시고 그렇게 사실 때지요. 그런데 그렇게 신령하게 사신다는 전전 기별 들으시고 지금 우리 오 장로님께서 이 선생님을 찾아 오셨지요. 도암면으로, 찾아온 친구에게 화학산 큰골이라는 거기에 빈집이 하나 있기에 거기에 어린 자녀들과 처자를 거느리시고 자립하라고 남의 땅이지만 고구마 심어먹고 사시라고 그 집 한 칸을 얻어주셨단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무렵에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김 금남양이 출가를 했기 때문에 사무엘 어머니 계신 문바위에 막을 쳐 주셨다는 거예요. 첨 뵈었을 때, 그런 무렵에 오 장로님은 식구가 있기 때문에 수입이 필요해요. 처자를 위해서는 소재에서 부자 집에서 장롱을 짜달라고 그러신 것 같아요. 장롱 짜 주면 현금이 아니고 보리쌀 한말이나 쌀 한말이나 주시지 않겠어요? 장롱을 짜고 계실 때 저희가 거기 처음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근데 이 선생님을 뵈었더니 저를 어디가 재울 데가 있겠습니까? 그 큰골에는 가족이 계시고 또 문바우 골에는 금남 자매가 계시고, 찾아온 손님을 재울 데가 없으니까 오 장로님께 보냈어요. 오 장로님께 가서 거기서 자고 남의 집이지만 거기서 심부름 해보라고, 거기서 오 장로님 뵙고 거기서 심부름 목수 간에 심부름하게 됐어요. 이 선생님은 거처가 없으시니까 어디서 주무시는지 몰라도 오후 되면 찾아오시거든요. 목수 간 나무 장롱을 짤 동안 한 달이나 반 달 거기 그 방에서 자고 장롱을 짜라는 빈 집을 주셨어요. 이 선생님이 찾아 오셨어요.
지나가는 길이시니까. 그 재를 넘으면 장흥 땅이에요. 장흥에 친한 목사님이 계신데 그 목사님에게 심방 가시는 길인 줄 압니다. 거길 가신다고 넘어가시더니 해가 질 무렵에 다시 돌아오셨어요. 물론 맨 발이지요. 옷은 맨발 벗고 떨어진 적삼바지 그것뿐이고요. 또 머리를 감지 않았기 때문에 추리한 그런 사람이지요. 그냥 넘어갈 수 없지요. 돌아온 소감을 말하는데 제가 가다가 그냥 돌아왔습니다. 가다가 보니까 뱀이 말라져서 구더기가 득실득실하고 죽어서 다 뜯어먹고 구더기가 뜯어먹고 뼈만 남아있더라. 거기 앉아서 물끄러미 보고 앉았다가 너는 그렇게 무엇을 먹으려고 여기저기 얻어먹으려고 배를 채우려고 기어 다니다가 네가 그렇게 사람한테 잡혔든지 네가 죽었구나. 너는 꼭 나와 같다. 그렇게 말했다고 자기가 목사님 찾아가려는 것도 밥 얻어먹으러 가지 않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말하자면 그런 심정은 모르겠어요. 뱀을 보고 느낌이 있어서 돌아왔다고 그래요. 너는 꼭 나와 같다. 그 배땡이를 채울라고 안 갈데, 갈데 다니다가 죽었구나. 너는 나와 같다 그래서 종일 앉아서 뱀을 보다가 그냥 돌아왔습니다.
손님이 오시면 식사를 해드려야 하는데 자셔야 드리지요. 그 손님이 오시면 식사는 안하시고 목수일 하시니까 오죽이나 밥을 많이 드십니까? 아주 눌러가지고 주발이니까 저하고 장로님하고 두 그릇 채워서 겸상 하고나면 옆에서 보고 앉아계시거든 그러니 같이 잡수십시다. 황송해서 말도 못해요. 장로님은 너무 점잖으시니까 감히 선생님보고 같이 진지 잡수십시다. 그런 말 못해요. 그러니까 종일 굶고 앉아계시고 또 뱀이 뭐 주워 먹으러 돌아다니다가 죽은걸 보고 그런 소감을 느끼시고 계시다가 돌아오신 분이 옆에 계신데 되게 일했지만 어떻게 밥을 먹겠습니까? 황송하고 부끄러워서 그래 장로님은 배고프시니까 몇 술 뜨시고는 자연히 수저가 내려와 버려요. 더는 안 잡수세요. 쪼끔만 잡수시고 그냥 가만있단 말입니다. 저는 나이가 젊은 시절이고 그러니까 저도 부끄러워서 안 먹고 싶지만 언제 다 먹었는가 없어요. 어째 부끄럽고 죽겠어요. 아이구, 장로님 밥만 남거든요. 그럼 이 선생님이 싸두세요. 아침 싸두세요. 점심 싸두세요. 저는 다 먹어버려서 장로님 꺼만 모아두세요.
그러시면 본인은 굶었지만 가지고 가시는 거예요. 갖다 줄라고 식구들 드리러가거든요. 누구를 갖다 주는지 모르지요. 거기 수레기 어머니 계시기 때문에 수레기 어머니 갖다 드리겠지요. 잡수시라고 그러니 신선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어요. 우리 보는 데서는 진지 안 잡수시니까, 그런데 딱 여름이고 그러니까 마늘이 벌써 다 컸습니다. 마늘이 약이 올라와 뽑으면 먹을 만큼 캘 때가 되었으니까 주인이 오시니까 ‘주인양반 나 마늘 한 송이 주십시오.’청했어요. 아 그러시라고 마늘 잎사귀가 퍼런 다 이룬 것입니다 품이 든 것이에요. 하나 뽑았어요. 밥상에 얹어서 여름이니까 고추장 있거든요. 오 장로님 보고 ‘장로님 나 이 마늘 먹어도 좋아요?’물어보시니까 말씀 못하고 묵묵부답이에요. 가만히 있어요. ‘먹으라. 시는 줄 알고 제가 먹겠습니다.’그 마늘통을 마늘 잎사귀를 고추장을 찍어서 드세요. 사람이 육신이 있는데 매웁지 않겠어요? 매우니까 후후 후 아이고 매워 후후후 이러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빈속에 다 잡수셔요. 그걸 자실 때 물론 물은 자시겠지요. 한데 그러나 매웁단 말씀입니다.
그렇게 계시기 때문에 너무 오묘 하셨어요. 차라리 무서워져요. 그러니까 장로님하고 저는 부엌에서 일하니까 대패질하고 방에서 내다보고 앉아 계시더라구요. 일하는 걸 그럼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내다보고 앉아계시는데 굶고 옆에서 일하는 것도 미안하고 황송하지요. 해가 질만할 때 배가 고프니까 허리가 꼬부라지지 않습니까? ‘의인이 지구 한 귀퉁이에 앉았으면 지구가 끼우뚱 하겠습니다.’이선생님이 그러셔요. 제가 듣기에는 이 선생님이 앉아계신데 곧 지구가 찌우뚱 하게 될 거 같아요. 무거워서 그렇게 무겁게 보이셔 사람이 의인이 앉았으면 지구가 찌우뚱 하겠습니다. 종일 아무 말도 안했는데 꼭 그 말씀 한 자리 하시거든. 그러니 그 뜻은 몰라도 지구가 찌우뚱 한것 같애요. 느낌이 그 말씀 자체가 말씀입니다. 많은 사설이 없고 설명도 없어요.
예배보자는 말도 없고 기도하자는 말씀도 없고 그러니까 오시면 앉아있다 가시는데 그러니까 밥을 갖고 가시면 수레기 어머님 댁에 가셔서 밥을 안 잡수시고 그 농 물 콩 팥 그런 거주시면 잡수시고 오시는 느낌은 있어요. 보지 않았지만 무엇이든 자셨겠지요. 저는 나이가 젊은 시절이니까 잠이 많지 안 습니까? 항상 자버렸지만 그날 새벽에는 눈을 잠이 깼는데 캄캄한 밤이고 잠이 깨었는데 무슨 소리가 들리고 두 분이 말씀해요. 장로님은 절대 벙어리인줄 알았어요. 장로님이 말하시는 걸 못 들었거든요. 이 선생님 앞에서 사람이 딱 바보가 되어가지고 네 말도 않고 갑세 말도 않고 정히 말 안 하시니까요. 뭐 저런 분이 있으신가 그랬어요. 이 선생님 압도적인 인격에 꽉 눌려있으니까 전혀 말이 없습니다. 무언이지요. 말씀한다면 인생 말씀이지요. 제 짐작은 새벽 한시나 된 것 같아요. 캄캄하니까 보지 않았어도 육감으로 느껴진 것이 오 장로님은 꿇고 앉아계시고 두 분이 꿇고 앉아 계신 거 같아요. 이 선생님이 말씀하시니까 장로님이 무릎팍 꿇었겠지요. 느낌이 보진 않았어요. 느낌이 그래요.
잠자는 저 들으라고 하신 건 아니겠지요? 오 장로님이 듣고 계시니까 두 분 하신 말씀인데 이 골짜기 저 골짜기 한 골짜기는 여자들이 살고 한 골짜기는 남자들이 살고 그 말이 계속된 건 아닙니다. 꼭 암호 같은 소리 이 골짜기는 여자들이 살고 저 골채기는 남자들이 살고 얼만큼 소리 띄었다가 또 한사람은 꼴을 베어오면 한사람은 양을 지키면 좋겠습니다. 젊은 나이에 들었으니까 기억이 있지요. 오 장로님은 물어보지 않았어요. 그 말 기억하고 계신가? 나는 잠자느라고 몰래 들었지만 무릎팍 꿇고 들은 장로님은 기억하고 계신가 모르겠어요. 그 소리를 물어봐야지요. 이따가 이골채긴 여자들이 살고 저골채기는 남자들이 살고 또 쪼금 있다가 한사람은 풀을 베어오고 한사람은 양을 지키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이 단체 발전을 그 테두리 안에서 발전하고 있어요. 그분이 기도하시고 하나님께 소원하셨지요. 하나님과 그 신실한 종이 약속하셨으니까 네 기도를 들어 주마. 성경말씀에 있거든. 깨끗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다 이루어진다.
우리는 그 후손인데 우리 선과 약속하신 그 약속을 하나님이 져 버리지 아니하시고 이 당대에 와서 2세지 당대에 와서 오 장로님이 이루어지지 않아요? 이 단체는 어디가 살던지 한골채기는 여자가 살고 한골채기는 남자가 살고 여기도 그러지 않나요?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자연히 그렇게 살지 않습니까? 이 생각을 제가 어디서 했는고 하니 요새 제가 남원 가서 원장님이 산을 사 놓았다고 해서 가보니까 이골채기 저골채기 사놓았어요. 돈도 없으니 하나만 사시지 괜히 두 군데 사 고생하신다. 문득 생각이 났어요. 이골채기는 남자들이 살고 저 골채기는 여자들이 산다. 어떻게 두골채기가 그렇게 맞아 들어가는지 약속이나 하듯이 한사람은 꼴 비어오고 오 장로님이 수입가에요. 그때 장롱을 짜면 돈을 벌어오거든요. 오 장로님은 쪼끔 활동하셔서 양식을 가져오면 자기는 목자가 되어서 성경말씀을 가르치겠다는 자기 소원이겠지요. 그대로 되지 않습니까? 어느 종교 사업이나 전도 사업이라는 것이 반듯이 재산을 맡은 분이 나와요. 재산을 보태줘야 말씀을 전하지 않습니까?
그전에 곡성 김 집사님이 있어요. 아들을 꾸중하다가도 제가 가면 공자님도 제자 자로로 여행하시고 전도했네. 말만으로는 안 됩니다. 참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십디다. 재산을 뒷받침하는 사람이 또 한 사람이 말씀을 전하지 않느냐? 그런 말씀 이지요. 모든 종교가 양면 재정이 서야 말씀이 서지 아무리 말씀이 좋아도 뒷받침이 없으면 어떻게 말씀이 전해집니까? 옛날에도 예수님시대에도 많은 과부 재산들이 예수님한테 쏠려가지 않았어요. 많은 과부들이 자기 재산을 가지고 예수님이 전도여행비를 대었거든요. 그래 예수님이 말씀 전했지요. 그러니까 이제 와서는 누가 꼴을 베야 합니까? 원장님 선생님이 꼴을 베오지 않습니까? 양식을 마련해주고 주선해주고 차비를 내주고 집을 지어주고 오 장로님은 이제 말씀을 전하지 않습니까? 양을 지켜야지요. 그 줄거리는 어떤 종교에도 두 줄거리가 있어요.
꼴을 베어오는 사람과 양을 지키는 사람이 있어서 모든 종교운동이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남원에 가서요. 그래서 성경말씀을 보면 마리아 성모마리아께서 기도하실 때 우리 조상 아브라함 우리 성부하고 약속 하신 것 그것을 이 비천한 계집종에 이 배에 오셔서 하나님이 자기를 쓰신다고 했어요. 혼자가 아닙니다. 이미 옛날의 하나님 성인 성녀와 약속하신 그 말씀을 실천하시기 위해서 나 같은 비천한 계집종을 택하시고 나를 예수 엄마가 되게 하셨다고 감사했거든요. 그러니까 여기 있는 사람들이 의인이거나 어떠한 정의가 있다거나 선의가 있다거나 그것이 아니에요.
고대 하나님의 성인 성녀와 하나님의 약속이 있으니까 이 땅위에서 버림당한 비천한 사람들을 불러서 하나님의 사랑을 주시려 하는 것 자기 약속을 이행하는 그런 역사의 한 대목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 그렇게 믿어집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고마우신 목사님이 와서 우릴 격려하신 것도 어떠한 뜻은 선대와 약속하신 축복을 위해서 성령이 보내주시는 것이니까 가서 좀 가르쳐 주어라. 지금 우리를 보고 찾아오신 것 아니거든요. 이 세종선생님이라든지 이 현필 선생님의 그 사랑에 하나님과 관계에 대한 하나님의 그 계획이 있어요. 계획이 있고 그러기 때문에 성도가 하나님과의 서원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들에게는 참 좋은 은혜의 때를 맞이한 사람들이 여기에 모였다고 생각합니다.
너희 성녀께서 일평생 좌우명으로 자기 가슴으로 울리고 표어가 되었던 말씀은 십자가에 성녀와 잠언을 읽을 때 꼭 한자를 기억하고 계셨어요. 순애 순수한 사랑이지요. 순애의 일순간은 그 사람의 일평생 선한 자선사업을 한 것보다 더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성인성녀가 기뻐하시고 또 인류에게 유익하고 성교회에 유익하다. 십자가의성녀가 그런 잠언을 말씀해 주셨어요.
순애의 일순간 순수한 사랑을 일순간 잠깐이지요. 5분이라도 순수한 사랑을 일순간만 예수님에게 해 드릴 수 있다면 그 사람이 일평생 선한 사업을 한 것보다도 하나님께나 인류에게나 교회에 유익하다. 그 말씀이 이 소녀의 가슴을 예수님께로 향하게 했다는 자기가 자서전에 썼지요. 자기는 십자가의 예언의 잠언을 자기 토시 속에 자기 가슴에 품고 항상 읽었다고 그런 말씀이 있어요.
그런데 그분이 이사야 53장 3절에 사람들이 참혹해서 눈뜨고 못 볼만한 처참한 예수의 죽음 그 예언서지만 그 죽음은 내 탓이다. 그 사랑을 느꼈을 때에 그 일생이 변화를 받았노라고 그 사연은 자기 친언니 포리나 언니가 수도원 원장이 되신 다음에 살짝 작은 방으로 불러서 일러주신 말이라고, 내 동생 테레사 이제 수녀가 되었으니까 제일로 명심할 것은 거룩하신 예수님의 얼굴에 감취인 그 피의 비밀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러니 겸손히 기다려야 한다.
예수님의 얼굴의 거룩한 피 자국에서 자기 일평생을 숨어살아야 하겠다는 비밀을 깨닫게 되었노라.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또는 여기 저 성화를 생각할 때 저 성화에 대해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여기 오신 어른들을 위해서요. 우리가 존경하는 또 항상 참 사랑하던 이 현필 선생께서 결핵병이 들렸어요. 또 병이 너무 깊으셔서 이 자가 치료가 안 되어서 생명이 위독해서 집에서는 치료가 안 되고 병원에 입원했었습니다. 물론 각혈도 하시고 숨이 가쁘시니까 본인 요양생활도 참 힘이 들지만 장전도사님께 부탁해서 예수님 말씀을 간증하고 싶다고 그리고
|
'그때 그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파와 보리수 철 : 막달라마리아 (0) | 2019.06.15 |
---|---|
애월에서 모슬포까지 : 인류의 죄가 내죄 (0) | 2019.06.13 |
대부도 가원 방문 : 제 성소는 사랑입니다 (0) | 2019.06.07 |
애월 해변 길 : 이현필 스승의 발자취 (0) | 2019.06.05 |
망종 4일 전 : 이현필 스승을 기리며 (0) | 2019.06.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