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기독교 동광원수도회 서울지역 유적지 탐방2 : 신촌과 아현동

mamuli0 2022. 12. 6. 16:16

이현필 선생이 광주 제매교회 전도사직을 사임하고 서울에 올라와 1929년 서울 YMCA에서 영어와 성경을 공부하면서 원경선 선생을 만나고 주일이면 아현교회 (김현봉 목사)에 2년간 다녔으며 그후 1948년 동광원 서울 진출 그리고 1954년 8월 고아원 해산후 한영우 집사가 고아소년반을 이끌고 능곡에 왔다가 고아들이 나가버리자 신촌역 근처 쌍굴다리에서 살고 있다가 부산으로 내려가려고 인사차 능곡에 갔다가 이현필 선생을 만나 능곡역에서 신촌역 까지 와서 업고 굴에 가서 파계의식한 행한 곳을 보려고 했으나 많은 변화가 있어서 보지 못하고 구역사가 관광안내소로 쓰여지고 있어 안내원의 친절한 안내를 받아 신촌역 구내와 주변을 보고 나와 아마 쌍굴다리가 있을곳으로 추정되는 아현동을 찾아가서 보고 능곡 오원으로 갔다.

신촌은 서울시장을 지내고 3선 국회의원을 지내신 김상돈 장로님 새가정교회가 산 위에 있었으며 한때 정인세 원장님이 시무하셨고 강남순 갈보리 어머니 오북환 장로님 김준호 선생도 들린곳이며 한집사님이 그곳에서도 사신곳이다.

 

한영우 장로님

 

 아래 이야기는 한영우 장로님 증언입니다.

 

그래서 거기다가 막을 치고 그렇게 살고 있는데 함평에 있다가 거기에 왔어요. 다 떼어내 버리고 말하는 거예요. 지금 너무나 시간이 없어요. 왔더니 이 선생님께서 다 떨어진 누더기를 입으시고 계시면서 저한테 평화시대가 오면 갚을 예산하고 지금은 얻어먹고 저기를 하라고 당신의 윗도리를 벗어서 던져줘요. 이놈 입고 가라고도 안 해요. 탁 벗어 주시면서 이놈 입고 가서 밥 얻어오라는 거지요. 그러니 이놈의 것 몸둥어리는 성성해가지고 밥 한 끼 얻어 본 역사가 없어요. 내가 그러니 이놈의 것 어떻게 입고 밥을 얻으러 가냐 이것이야. 내가 밥 달라는 말 입에서 나올 것 같지도 않아, 그래서 입고 밥을 얻으러 갑니다. 앞도 못 봐요. 양쪽도 못 봅니다. 사람들이 싹 다 나만 보는 것 같아, 그러니까 앞만 보고 갑니다. 옆에 누가 볼 수도 없을 정도로 그런 정도로 앞만 보고 갑니다. 그래가지고 어떻게 밥을 얻어가지고 와서 먹고 한번 두 번 연습을 해보니까요. 상당히 연습이 되었어요. 그렇게 되니까 강변에 나가서 살게 되었어요. 움막 쳐놓고 살게 되니까 막을 쳐놓고 고슬빈 씨라고 계신데 거기 옆에다가 막을 치고 사는데 그렇게 사니까 원장님이 신입반이라고 해가지고 얻어먹는 소년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을 나한테 붙여줘 가지고 그 사람들을 데리고 밥을 얻어먹고 살아요. 그때 당시는 가난하니까 어디를 가야 밥을 많이 주냐? 깡통을 가지고 가면 여관집에 가면요. 식은 밥 남은 것 하나줘요. 여러 집에 안가고 밥을 얻어오니까 애기들이 나보다 잘 얻어오는 애기들이 있어요. 나보다 선수야. 따라 오라고 나를 데리고 그런 데로 가는 거야. 그때는 다리 밑에 천사라고 우리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많았어요. 일본에 갔다가 한국에 나와 가지고 어쩔 수가 없으니까 다리 밑에 와가지고 거지 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 그런 판국에 우리들도 끼었어. 그렇게 살지요. 상당히 살면서 되어가지고 김 선생님 계시지만 거기서 살면서 어더더 할아버지 앉아서 얻어 잡수시는 그런 양반 한분을 모셨어요. 그래가지고 모시는데 때에 따라서는 노인네가 인제 참 청결하기는 한데 담배를 피워요. 담배도 때로는 사다 드리는데 요것만 피우고 그만 피우시라도 그러면 어더더더더 그러세요. 고맙다고 사다주면 그런 식으로 하는데 때로는 이 양반이 참 정신은 맑은데 어쩌다가 실수를 해가지고 빨리 잘되지 않아가지고 똥을 싸버려요. 그러면 그놈 씻으려면 지금 같으면 아닌데 그때는 얼마나 냄새가 나는지요? 어른 똥이라, 그런 것을 하기도 하고 그렇게 좀 살다가 얼마동안 사는데 그렇게 살면서도 항상 마음이 안 놓이는 거예요. 항상 부끄러워요. 건강한 사람이 밥을 얻어먹어야, 그런 마음이 있고 편하지 않고 그런데 고슬빈 씨라고 팔이 소아마비로 한 팔이 말라서 우리들은 생전 보여주지도 않아요. 옷 속에 넣고 사시는 분이라 그런 분이 있어서 제가 한번 그런 일이 있었어요. 내가 건강한 사람이 얻어먹고 사니까 이거 보통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얼마나 용기 있는 말인지 몰라. 당신네들은 건강하니까 오늘이라도 이것 벗으면 건강한 사람으로 나타나지만 우리는 생각해 보라고? 그 말에 아무 말도 못 했어요. 내 마음은 딱 땅에다가 묻어버렸지. 그 말이 사실이지요? 내 생각만하고 그런 말을 해버린 거예요. 그렇게 한참 사니까 마음이 보따리가 커져가지고 여기서 이렇게 사는 것 보다 서울로 가봐야 되겠다. 마음이 상당히 그렇게 단련이 되어버렸지요. 무엇까지 배웠냐하면 그 양반한테 무엇을 주워다 먹고 밥을 얻어먹지 않고 사는 기술을 그 양반한테 배웠어요. 그래서 나도 서울 가서 얻어먹다가 그렇게 사니까 그렇게도 살겠어요. 그렇게, 그렇게 서울 가서 한참 사는 거예요. 한참 사는데 어디 여기서 애기들하고 같이 능곡에 가는 애기들이 있어서 같이 한꺼번에 몰려갔는데 나하고 같이 사는 얻어먹는 손님들 싹 데리고 갔어요. 이 사람들 다른 사람들은 농사지을 목적으로 갔는데 이 사람들은 농사지을 목적도 아니야. 나한테 가만히 빠져 나갈라는데 이 사람들이 기미를 알아가지고 어디 담요를 가지고와서 담요를 덮고 앉아서 밤을 새우는 거예요. 그러다가 내가 혼자 도망을 했던가? 도로 능곡을 데리고 들어갔어요. 들어가서 떼어놓고 밤에 도망을 갔어요. 그래가지고 서울 가서 혼자서 있는데 그 사람들은 하나씩 둘씩 광주로 갈 사람은 가고 인제 붙을 사람은 붙고 그렇게 되어가지고 있는데 그렇게 살다가 저는 서울 굴에 인제 어디 살 데가 없으니까 굴 전향을 하는데 어디가냐하면 지금 서울 신촌으로 가는 그 굴이 하나는 육이오 때 폭격을 해가지고 무너져 버렸어요. 그래서 그것이 한쪽은 못 다니니까 그냥 차가 안다니고 한쪽만 다니데요. 그런데 굴지키는 양반이 있어요. 그런데 그 양반한테 애기들이 초등학교 다녔든가 안 다녔든가 그런 딸들이 둘이 있는데 그 양반이 마음이 좋아요. 딸만 있어서 그런지 딸을 낳은 아버지들이 마음이 좋은가? 어떤가? 그 양반이 마음이 좋아가지고 모르지 자리를 잡았는지 안 추워? 그러면서 인사를 와요. 아침이면 그러면서 우리 친구가 있는데 잘 있으라고 그래서 한참 거기서 살았어요. 구정이 돌아왔는데 그 집 딸들이 옷을 곱게 입고 한복을 입고 나한테 거기 굴 있는 데로 와요. 무엇 하러 오냐? 그러니까 세배하러 와요. 에끼, 거지한테 세배 하냐? 그러니까 거지한테도 세배하지요, 하고 땅에다 대고 절하는 것 있지요? 애기들이 그만큼 순진하구나. 그렇게 생각해 봤어요. 그렇게 무엇을 하고 한참 살다가 거기서 거기도 많이 떼어 내버리고 한 거예요. 시간이 없으니까 그렇게 살다가 거기서 깡패들을 만나버렸어요. 거기서 희옥 씨 어머니도 만나고 최씨 어머니도 나 있는데 와서 만나버리고 갈보리 어머니도 이런 것 싹 떼어버리고 다하려면 이거 두 시간을 해도 못 다해요. 그래서 이 깡패 이 사람들이 학생 깡패들이 싹 차려입고 와서 돈 내놓으라는 거야. 말하자면 네가 왕초 아니냐? 거지들 데리고 있으니까 안한다고 그랬더니 그래도 말 안 듣고는 막 때리면서 그때 승명 씨 동생 그 사람하고 맞았어요. 그 사람은 가버리고 나는 이사를 해야겠냐? 어쩌겠냐? 했더니 그때 희옥 씨 어머니하고 최 씨 어머니가 듣고는 동대문 어디를 가보라고 그래서 거기를 가보니까 못쓰겠어. 누가 살고 있고 그래서 다시 그쪽으로 왔어요. 오니까 그 양반이 하는 이야기가 여기서 살지 어째 어디로 가냐고 거기서 한참 맞고 어쩌고 하니까 살 마음이 안 생겨, 또 성경책도 빼앗겨 버렸어요. 그래서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이사를 가려고 생각을 하는데 그 양반이 하는 말이 그러면 내가 알려줄게 신촌 저기가면 기차 대가리를 숨겨 놓으려고 왜정 때 파놓은 굴이 있으니까 그곳으로 가라. 그 양반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갔어요. 그곳에 가서 한참 사는 거야. 거기에 가서 재미 붙여가지고 얻어먹지도 않고 그렇게 주어다가 채소하고 이렇게 먹고 사는데 살다가 그때도 광주서 서울 올라갈 때처럼 그런 마음이 상당히 커졌어요. 커지니까 내가 부산이고 어디고 돌아다녀봐야겠다. 자신이 생긴 거야. 그래가지고 능곡으로 어디로 간다고 인사하러 딱 가니까 아이고 이 선생님이 와계시네요. 후두결핵으로 말씀을 못하시는데 나를 얼마나 기다린 것처럼 말씀은 못해도 그래가지고 은현 씨 원장님이 필기를 하고 따라다녔어요. 필기를 하시면서 빨리 나있는데 가자는 것이야. 빨리 나있는데 그러니까 가야지. 한쪽에서 들것을 만드는데 그냥 제가 업고가 버렸어요. 업고 가버리는데 가다가 쉬었든가 안 쉬었든가 역전까지 업고가, 가지고는 거기서 그곳으로 모셨어요. 제가 있던 곳에다 저는 보따리 싸가지고 어디로 이사 가려고 그랬는데 다른 생각해요? 새 살림 이에요. 그러니까 한나 씨 어머니도 오시고 희옥 씨 어머니도 오시고 식구들이 다 오 장로님 김 선생님 막 싹 다 식구가 우리 굴에 식구가 겁나게 많아져 버렸어. 그래가지고 거기에 와서 그때 사시면서 하도 열이 나고 후두결핵으로 말씀을 못하시고 그러니까 얼음을 사다가 항상 입에다 머금게 해드리고 그런 무엇을 하고 있는데 우리 동광원 약하고 고기하고 금하던 것을 깬 장본인이야. 심부름한 장본인 이 선생님 내가 없었으면 안 잡수셨을 런지 모르는데 그때 제가 심부름한 장본인이야. 제가 그 무엇을 사서 물을 해서 드리니까 기도를 하셨다고 그래 그때 하나님의 뜻이면 넘어가게 해주시고 뜻이 아니면 이 물이 넘어가지 못하게 하고 나를 데려가 주시라고 그런 기도를 했는데 넘어갔다 그래요. 그래서 거기에서 모든 사람들이 같이 저기도 드리시고 그때 사실은 개방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제가 그때 그런 사람의 하나이고 제가 지금은 직설적으로 고기를 먹지말자. 그렇게 해봅니다.

 

 

 

 아래글은 김준호 선생 증언입니다.

한집사님이 기차 똥구녁 일제시대에 폭탄 안맞을라고 굴에 계실 때 거기 가셨는데 거기서 수종했지요. 선생님이 임종이 가까우니까 수종을 하는데 제가 오른손이 결핵이 많이나가지고 고름이 뚝뚝 떨어져요. 빨개가지고 그 손으로 선생님 수종을 해야 하니까 그걸 보셨어요. 자기도 죽어가고 있고 그때 하나님의 지시를 받은것이지요. 그 때에서야, 내 목전에 나타난 준호손을 보니 저렇게 썩어내려 가는데 내가 약 안먹는것이 행복하다 했으니까 순종한 결과 저렇게 되었구나. 그걸 아신거에요.
 그러면 내가 안본 사람들이 수백명인데 이렇게 희생된 사람들이 수십명이고 수백명이야. 이거 예수님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걸 파악하신 것 같아요.예수님이 십자가 지고 하늘나라 가는데 구원받는데 이렇게 약한몸으로 상처가 터지고 고름으로 죽어가고 자기들은 그 말씀에 순종하니까 좋아. 그러나 하느님 복음에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렇게 성찰하신것 같아요. 그래서 세상떠나시기 전에 이것을 내가 시정해야 쓰겠다. 그러신 거에요. 그러고 약먹지 말자. 고기먹지 말자는 계명을 수도계명입니다. 잘 믿자는 몇몇사람이 한것이 있어요. 이거 성경에는 그런말이 없지요. 그럼 복음과는 관계없다. 그걸 아셨어요. 그래서 우리는 몰랐지요. 뜻도 모르는데 오늘 집사님이 말씀하셨지요. 갑자기 조기 한 마리 사오라는 바람에 제가 알기로는 가 안한거로 사와야 하는데 집사님이 처음이라 소금이 절여진 한 마리를 사왔습디다. 깡통이 솥이 없잖아요? 거지깡통 거기다가 물을 한바가지 부었던가 그 짜디짠 한 마리를 넣고 끓였으니까 소금물이지요. 혼인식 할때 절하듯이 예절이지요. 예절 잡수실라는 것이 아니에요. 그걸 깨뜨린 거에요. 만 인간들이 소문듣고 알기를 고기 안먹고 약안먹고 천국간다. 이건 천국길이 아니다. 예수님의 교훈이 아니다. 복음도 아니다. 이건 수도하는 사람들이 필요한 계율이야. 이걸 내가 전부 깨버리고 하늘나라 가야지. 자기는 죽을날이 가까우니까 결심을 하신것이 사실이에요. 내가 이대로 죽어버리면 김준호 하나만 이렇게 썩어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나 그때 유화래 여사가 약먹여 살릴려고 얼마나 내게 사람을 보냇다고요. 병원에 입원시키라고 제가 안해버리면 선생님이 고맙게 생각했어요. 그렇게해서 소위말하면 그걸 깨시지요. 뜻밖에 원장님 오시더니 그러시더라구요. 말을 못하시니까 원장님 저는 고기를 밤에 먹었어요. 저를 동광원에서 책벌해 주십시오. 저는 동광원 법으로하면 득죄를 했습니다. 저를 쫒아내 주십시오. 그렇게 하셨어요. 그리고 해명을 하세요. 뭐라고 해명하시는가 하니 제가 건강할때는 밥이 귀한줄 알고 생명수 물은 없어도 되는줄 알았습니다. ‘물을 한달이고 두달이고 못삼키고 보니’ 참 원장님 만나는 그날 아침이지요. ‘지금 내 목구녁에 아직도 밥이 안넘어가도 삽니다. 그러나 이 냉수가 이 생명수가 안넘어가면 저는 죽게생겼습니다.’ 물이 이제는 없다구요. 그러면 제게 있어서는 밥이 귀한것이 아니라 제게 있어서는 물이 귀합니다. 이렇게 해설 하셨어요. 이 이치에 의해서 내가 평소에 평소에는 선이 귀한줄 알았지 예수의 보혈이 귀한줄 몰랐습니다. 예수의 보혈은 생명수입니다. 제게있어서는 오늘의 찬물이 생명수입니다. 나는 밥은 안먹어도 살지만 냉수를 안먹으면 죽습니다. 오늘 죽어가는 이마당에 나는 선행을 포기할의삽니다. 고기 먹어버리고 약 먹어도 하늘나라 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를 안마시면 나는 죽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보혈을 마시고 나는 천국에 가고 싶습니다. 내 선행을 포기해버리고 나는 예수님의 복음을 의지하고 나는 천국에 가고자 합니다. 해명을 하셨어요. 해설하셨습니다.
그렇게 원장님은 그걸 다 읽어보시고 고개를 끄덕이고 책벌하지 않으셨어요. 책벌을 못하셨지요. 광주를 왜 광주를 가자했는지 몰라요. 죽으러 거기 가셨는데 밤사이 광주로 가신다는 거에요. 말로서 못하니까 글로써서 ‘광주로 가자’그렇게 해서 광주로 왔지요. 고기는 먹었지만 약은 안먹었쟈나요? 천하만상에 먹었다는 것을 계시할라는 거지요. 그래 제중원으로 입원이 되지요. 천하많은 사람이 아 이선생님은 타락해서 고기먹고 이제 병원에 입원했다. 아 그럼 배신자이고 진리를 망친자이고 몹쓸놈이다. 자기가 매장을 당할라고 하신거지요. 그렇게 하고 복음을 의지하고 하늘나라 가도록 모든 제자들이 모든 따라오던 사람들을 내가 잘못 지도했으니까 나 이현필이 가르쳐준 것은 다 포기해버리고 복음에 의해서 예수님의 보혈에 의지해서 구원받도록 하고 하늘나라로 가야겠다. 결정적인 결심을 하시고 두가지 행사를 하신것입니다. 병원에서는 참말로 입원한줄 알고 약을 줄라고 했어요. 그런데 퇴원해 버렸지요.
지금도 목포에 가보시면 알겠지만 여의사는 지금도 그래요. 왜 그때 급성 후두결핵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처방한대로 약만 자셨으면 6개월안에 나아서 건강한대로 지낼수 있었던거에요. 저도  6개월 약먹고 나서버렸지요. 저를 그때 병원에 데리고 가서 그러면 의학적으로 그분이 절대 죽을사람이 아니라는 거에요. 지금봐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거에요. 왜 약을 안먹고 죽어버리는지 그렇게 하면 그분은 의사니까 그런 깊은것을 그분은 몰라서 그래요. 자기가 약먹고 나을라는 것은 천에 만에 하나 없었습니다. 약을 안먹기 때문에 손이 썩어내려 앉고 모든 젊은 애기들이 죽었지요. 병원에 안갔기 때문에 이렇게 무고히 생명이 죽은것은 내가 큰 득죄를 하였다. 예수님 자비와 어긋났다. 자기의 죄의 회복 회개하는 행사였지요. 자기 과오를 다시말하면 통보하고 회개한거지요. 자기가 그렇게 되면 동광원 사람들이 몽둥이 들고가서 때려 죽일줄 알았다요. 왜 스승이 자기가 가르친것을 마치고 많이 희생되었는데 이제 왜 변질하냐? 변질한 놈이라고 모든사람한테 버림당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고 그랬어요. 그러면 자기가 그렇게 범법을 하고 법을 깨뜨렸는데 동광원 사람들이 스승이라 하는것은 자기가 스승이 아니라는 겁니다. 동광원 사람들이 얼마나 어질며 관대하시며 덕이 높기에 자기를 용납한것이야 참 믿음들이 좋다고 동광원 어른들이 얼마나 믿음이 좋은분 들인가 참 고맙고 감사했지요? 그점이지요.
그러면 그런점으로봐서 이 선생님은 예수님의 참 사랑하는 아들이었다. 예수님의 제자였따고 하는것이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었지요. 선생님이 그걸 못하고 가셨으면 동광원이 천명 만명 오만명 교주가 되시고 성공했겠지요? 그래 선생님은 그 말씀 했지요. 원장님 한테 제가 만일 이걸 주장하고 죽어버리면 내가 당파를 만들어 가지고 기독교파가 하나 더생길텐데 파벌이 제가 하늘나라 갔을때에 예수님이 아 수고했다. 그렇게 말씀 못하시고 이 역적놈아, 예수교가 분열된것도 서러운데 너까지 분열시켜놓고 왔으니 네가 천년 만년 이 책임을 어떻게 질라느냐? 일년이 아니여 천년만년 백년이 가도 천년이가도 만년이가도 예수님앞에 나는 분열 종교를 분열시킨 득죄자로서 영원히 사랑받지 못할 저주받을 인간이란 것을 깨달았어요. 그점입니다. 그분이 깨달은 것은, 그리안해도 파벌이 많은데 파벌 하나를 더 만든다는 것은 이것은 큰 기독교의 슬픔이다. 자기가 오히려 자기 영웅적인 고기안먹고 약 안먹고 영웅이되는것을 포기해 버리고 예수님의 제자로서 회개하고 구원받는 사람들을 각오하시고 그것을 예절로 실천하신 것입니다. 그점이 없다면 이선생님이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엇지요.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한영우 장로님의 증언입니다.

 

한) 예, 그것도 그랬지만. 나는 그때 가서 육이오 후에는 어떻게 되었냐하면 인제 광주에서 걸인 애기들을 좀 데리고 있었어요. 신입반이라고 원장님이 이름을 지어줘 가지고 그 사람들을 데리고 여기를 오는데 따라왔습디다. 시내로 나가서 극장 앞에서 어디 담요를 뒤집어쓰고 밤을 모르고 그렇게 살았는데

사) 왜 밤을 지냈어요?

한) 집이 없으니까. 그놈들이 나가자고 하는 거예요. 얻어먹던 습관이 되어서 농촌에서 일 안하려고 나가자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나갔어요. 같이, 그래가지고 다 어디로 흩어져버렸어. 도로 광주로 내려가 버렸어. 광주가 좋으니까 그래서 나 혼자 굴에서 살았지요.

사) 어디 굴이요?

한) 신촌 굴. 신촌에 쌍 굴이 있었는데 그때는 육이오 때 폭격을 해버려 가지고 그 가운데가 무너져버렸어. 하나밖에 사용을 못해. 제가 그 굴을 찾아가가지고 거기서 저기를 했는데 거기서 인제 뭐이냐 하면 얻어다 먹는 것이 아니고 광주에서 고 슬빈 씨라고 그분이 채소를 주워다 먹어요. 그리고 치즈라고 깡통에 담아서 내놨는데 그것을 먹다가 그것이 곰팡이가 나면 탁 엎어버려요. 그러면 노란 게 나와요. 그놈 가지고 채소 주어다가 고놈 넣고 끓여버리면 아주 고급 뭐가 되어버려요. 그런 것도 주워다 먹고 그때는 밥덩이를 내다 버렸어. 흰 밥 덩어리를, 그러니까 땡땡 얼어가지고 서울은 그러니까 그런 거를 주어다가 넣고 콩나물 꼭지 주어다 넣고 그런 거 끓여먹고 서울 신촌 굴에 사는데 그때 겨울이야. 추울 때 얼마나 춥던지 잠이 안와요. 그럼 가마니 떼기 하나 주어다가 뺑 돌려 쳐놓고 숯덩이 하나 주어다가 깡통에다 불 피워놓고 가만히 있어. 발 시려 우니까 헝겊 데기 주어다 동여매, 무릎도 동이고 그때는 통행금지가 있으니까 네 시만 되면 막 돌아다녀요. 그런 식으로 그때 지내다가 나중에 움막을 가마 데기로 주어다가 쳤어요. 움막을,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어떤 나환자들이 들어와 가지고 찾아왔어요. 그때는 나환자를 수용할 때야. 그런데 무엇이냐? 그 사람들을 거기다 재웠어요. 재우면서 예배를 보고 그랬어요. 그 사람들 어디 수용소에서 왔답디다.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이 피가 같으면 자기들하고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나는 그런 사람들하고 같이 살라는 목적이 아니고 예수님이 나환자를 낫게 해 준 데를 읽어주면서 그랬지. 그런데 인제 나보고 아침마다 춥지 않느냐고 문안을 와요. 그러면 애기들 딸 둘이 졸졸 따라다니고 그래요. 그러고 거기서 한참 살았는데 애기들이 구정이 돌아왔는데 둘이 옷을 좋게 입고는 세배를 한다고 왔어요. 이놈들 거지한테 세배하는 법이 어디가 있냐고 하니까 거지라도 세배하니까 괜찮아요. 내가 전부 구정이 돌아오니까 그러고 나와 있어. 그런데 아주 좋아가지고 가마떼기만 주어다 쳐놓으니까 좀 낫데요. 그래서 그 다음에는 뭔 사람들이냐고 이만저만 해서 있다고 보내라고 하데요. 굴지키는 사람이 나는 괜찮지만 그 사람들이 있으면 자기가 걸린다고 그래서 가라고 그러고 한참 사는데 희옥 씨 어머니가 최 씨 어머니가 능곡을 찾아왔다가 내가 거기 산다하니까 거기로 찾아왔어. 두 분이 그때 처음으로 봤었지.

 

 아래 이야기는 2001년 1월5일 한영우 장로님과 박공순 원장님 증언입니다.

 

부산을 갈라고 머리를 이만큼 길러가지고 갈라고 생각을 하고 능곡에 가서 말해버리고 부산으로 간다고 말하러 가니까 이 선생님이 와계세요. 후두 결핵 걸려가지고 말도 못하고 거기 계신데 필담으로 인제 은현 씨라고 총무님이 있었어요. 그 양반이 필담으로 말을 잘 받아써요. 속필이라. 그 양반한테 써 가지고 가자는 거예요. 이 선생님 오신 거 생각도 못하고 말하러 왔다가 엉뚱한 다른 일이 생겨버렸지요. 한마디로 말하면 거기서 역전이 상당히 멀어요. 능곡에서 어떻게 해서 당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어쩌고 그런 걸 떨쳐버리고 내가 업고 갔어요. 업고 능곡역에 가서 거기서 신촌 역에 와가지고 신촌역에서 굴이 상당히 멀어요. 거기까지 업어다가 모셨지요.

사) 그게 몇 년도였지요?

한) 그걸 내가 모른다니까 그것을.

사) 돌아가시기 훨씬 전에?

한) 예, 훨씬 전이지요. 그걸 잘 몰라요. 그때 당시 굴에 오셔가지고,

박) 55년이나 되겠소. 내가 56년도에 올라왔는데 신촌 계실 때가 55년 54년 그 근방이야.

한) 거기 오셔가지고 무엇이 문제가 되었냐하면 아주 열이 불덩이같이 올라버렸어요. 얼음을 넣으면 녹아 버리고 녹아버리고 그랬어요. 그런 적이었는데 무엇을 알아냈냐하면 파계를 했지. 고기 같은 거 안 먹고 약도 안 먹고.

사) 그게 그때에요?

한) 예, 그게 그때에요. 내가 인제 심부름 했어요. 맨 처음에 예, 거기 오셔가지고 나를 희옥 씨 어머니가 돈을 댔어요. 그때 여기 계시다가 오셔가지고 무엇이냐 하면 꽁다리를 사가지고 온 거야. 조기 말라버린 거, 그것을 사다가 깡통에다 솥단지도 아무것도 없으니까 깡통 시꺼먼 깡통에다 끓여가지고 그놈을 놓고 기도를 하셨다는 것이야. 하나님의 뜻이면 넘어가게 해주시고 뜻이 아니면 머금고 나를 데려가 버리시오. 기도를 하고 먹었는데 넘어가버렸어. 그러니까 또 살았어. 지금 같으면 그 양반이 다 못 먹게 한다고 하는데 그걸 갔다가 의심하나도 없어요. 어딘지 모르게, 그래가지고 사람은 살고 나중에 몇 번 사오고 소 등심을 사오라고 하시더만 등심을 사가지고 조금 끓여서 마시고, 마시고 조금 수월해지는 것이 생겼어. 그래가지고 나는 원장님이 오시니까 동광원에서 나를 쫒아 내라고, 그러기 전에 거기 있는 사람한테 다 말을 다져봤어요. 인제 지금까지 고기 못 먹고 약도 못쓰게 했는데 그런 일을 해버렸으니까 필담으로 다 받아봐 그래서 다른 사람은 어떻게 말했는지 몰라. 나는 사람보지 않겠습니다. 그랬어. 성경 볼 줄 알고 믿은 줄 알았으니까 어디가도 하나님 계신 거 알았으니까 그 믿고 살겠습니다. 그런 뜻으로 했어. 다른 사람은 어떻게 말했는지 몰라요. 그런 저기를 했는데 원장님이 오시니까 나를 동광원에서 쫒아내라고 하십디다. 정 인세 원장님이 오시니까 이 선생님이 나를 동광원에서 쫒아내라고 그런 이야기를 하시면서 뭔 말씀 하시는가 하면 나를 김 상돈 장로님이라고 그전에 마포구 국회의원이었거든요. 그 교회를 보시게 되었어요. 원장님이 김 상돈 장로님 교회도 맡아서 보시게 되니까.

박) 새 가정교회.

한) 새 가정교회, 그 교회를 맡아서 보셨어요. 그러니까 말을 해가지고 땅을 빈터 하나 사가지고 나를 그곳으로 옮겨주라고. 그래서 거기 천막치고 옮겼어요. 오 장로님도,

박) 산 7번지.

사) 여기 어디에요?

박,한) 서울 아현동, 다 없어져 버렸지요. 지금은, 그때는 올라 다니지도, 신촌역에서 가면 이렇게 깔막으로 올라가요. 산꼭대기. 그런 저기로 거기다 옮겨가지고 거기다 천막을 치고 방을 드리고 거기서 한바탕 살았어요. 갈보리 어머니 금남 어머니 하고 한바탕 살았어요. 원장님이 그때 거기 교회 볼 때, 거기서 밥도 해드리고

사) 한 1년이요?

한) 교회는 몇 년 보셨을 거예요. 내가 살기로는,

사) 이 선생님 사신 게?

한) 이 선생님은 안사시고 그렇게 내가 살았다니까요. 내가 갈보리 어머니하고 나하고 살다가 갈보리 어머니 가시고 나 혼자 거기서 살다가 나중에 누가 살았냐하면 교회 집사님이 있었어. 이 집사님 이라고 그 분이 그 집에 살았어. 내가 한참 살고, 그런 저기를 하면서 문제를 제기하시고, 그때당시에 김 준호 선생이 같이 있었어요. 그때 굴에 그런 환경 목격 다 하고, 오 장로님도 오셔서 계시고 한나 씨 어머니도 와서 조금 계시고 왔다 갔다 했어.

사) 신촌 굴에요?

한) 예, 거기 말했던

사) 서울어머니도 같이?

한) 예, 모두 와서 왔다 갔다 하시면서 했지. 그리고 거기서 저리 옮겨 가가지고 거기서 김 준호 선생을 서울 어디에다가 입원을 시키려고 안식교 인천에 무슨 병원이 있던지 결핵 환자 수용 안 받아 준다고 또 입원실도 없다고 광주로 빨리 연락을 해서 제중병원에 되어가지고 그때 내려가서 같이 입원 하셨지. 지금까지 인제 그 고기는 그렇게 해주면서 우리의 공로로 구원받는 거 아니고 예수의 피로 이렇게 구원받는다고 그런 하시면서 지금까지 내가 잘못했다는 식으로 그 아픈 사람들은 고기도 먹고 약도 써야 하는데 그 춥고 보대끼고 하는데 그 잘못했다는 식으로 하시면서 내려가셔 가지고 파계를 하셨지요. 그런 저기를 뭘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사) 아현동 사시다가 동광원으로 다시 들어가셨어요?

한) 나요? 그렇다고 봐야지요. 능곡에 가서 한 1년 살다가 또 내려갔다가 여기 온 거는 군대 갔다가 한참 뒤에 라니까요. 군대 가기 전에 그렇게 왔다 갔다 한 거예요. 기피자 시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