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기독교동광원수도회 화순지역 탐방 2 : 기독교첫공동체 터, 권동, 장태방죽, 중촌, 소반바위 한새골, 도구박골

mamuli0 2022. 11. 14. 02:22

이공 기도처에서 내려와 수레기 어머니가 사시고 그집 작은방에서 오복희 전도사님이 고아들과 함께 살았고 6.25동란 유하래 선교사(수피아여고 창설자) 피란시 김준호 선생이 드렸다는 집 그 부근에 기독교 첫 공동체 자리에 가보았다. 지금도 남아있는 우물이 있어 찾기 쉬었다.

 

이글은 2001년 1월4일 김준호 선생 증언입니다.

이제 이 공님의 깨달은 제자가 한 분 있는데 수레기 어머니에요. 학문이 없어요. 일 밖에 몰라요. 무식한 여자에요. 그러나 영혼이 열린 사람이지요. 마음이 열린 여자에요. 껍질이 깨진 여자거든요. 몸은 비록 여자이지만 그 마음은 장부여, 가슴이 따뜻하다고요. 그 분이 왜 돌아가셨어요? 장태방죽에 있는 청년이 뭘 먹는가? 뭐 입는가? 걱정이 되셨어요. 그래서 음식이 좀 있으니까 반찬이 조금 생겼기 때문에 그걸 가져다주시러 가는 거예요. 옛날에는 다리가 없고 로디니까 로디를 건너갈 때 폭풍 폭우 큰물이 화학산을 밀어붙이니까 떠내려 가신거지요. 그 분이 물을 건너다 물에 떠내려가 돌아가셨지요. 그런 사랑의 화신, 물 건너 있는 청년들에게 가지고 가시다가 어떤 반찬을 갖고 가시다가 떠내려 가신거지요. 다시 말하면 사랑의 순교 아니에요? 사랑의 순교, 그것은 사랑이라는 말이지요. 형태는 반찬을 갖고 가시다가 물에 떠내려 가셨다. 그것은 순교이지요. 사랑의 순교. 그것이 동광원 이지요. 말하자면, 이 동광원은 사랑이라 하지 않습니까? 동광원 이라는 공동체의 특별한 사명은 사랑이었다. 그 어떻게 사랑 했느냐? 수레기 어머니가 동광원이지요. 말하자면, 이 공님의 제자니까, 그런 사랑하는 형제를 위해서 반찬을 가지고 가시다가 물에 떠내려가서 돌아가셨다. 그게 동광원의 영성이라는 말이지요. 영성, 동광원은 별명이지요. 별명, 그러니까 사랑의 영성, 사랑의 실체, 사랑의 진수, 사랑의 상징, 사랑의 실천, 사랑의 체험, 체험 본인이 그걸 원했다고요. 나는 병들어 죽기 싫어. 나는 사랑하다 죽을 거야. 나는 사랑하다가 걸어가다 죽고 싶다고 평소에 ‘어떻게 평안하게 늙어죽어?’ 어떻게 늙어 죽어? 나는 사랑하다 쓰러지고 싶다. 그렇게 이야기 하셨다. 평소에 소원하신대로 된 것이지요. 사랑을 가슴에 안고 사랑을 가슴에 안고 알을 품으러 가시다가 순교하신 돌아가신 거지요. 그런 뜻으로 보면 영은 껍질이 없다지 않습니까? 영은 자유 함이 있어요. 영은 물질이 아니에요. 영이니까 비어있어요. 그러니까 여기에 계신단 말이에요. 여기가 비어있어. 빈 곳이면 그분은 어디든지 계세요. 이 공님이랄지 수레기 어머니랄지 그게 덕으로 완성한 사람은 사랑 다시 말하면 성직이에요. 그분들의 사명은 사랑입니다. 사랑, 그 동광원의 영성은 사랑이다. 왜 그 분들을 보고 한 소리에요? 현재 사는 사람들이 동광원이 아니에요. 이 공님 수레기 어머님 가사, 한나 어머님 가사, 이 선생님 정 원장님 또 김 은연어머님 그분들의 특성이 사랑이었다. 고향을 초월하고 부모를 초월하고 자녀를 초월하고 고향을 초월해서 사랑의 화신이 된 분들이었다. 예수 사랑 때문에는 고향도 버리고 처자도 버리고 사랑하다 죽은 사랑하다. 죽은 사람들이다. 그런 뜻으로 동광원 이름을 지어준 것이지요. 눈에는 안보이지만 그 사람들은 사랑하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었다. 그런 뜻으로 불러준 호지요. 호, 이름이지요. 이름을 달리 바꾸어 말하면 귀일원이다. 집은 아니라고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라는 겁니다. 영성 그 뜻으로 하면 영성은 귀일정신이다. 우주를, 인류를 하나로 본 사람들이다. 울타리가 없는 사람들이다. 가슴이 넓기가 우주 같은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인 것처럼 영적 사람들이다. 그런 뜻이거든요. 나는 아버지는 영이신고로 하나님은 영이신고로 영적으로 진정으로 예배를 해야 한다. 예배한다는 것은 절 한다는 뜻입니다. 아버지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언니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런 뜻이거든요. 예배한다. 만나본다. 사랑한다. 하나이다. 나는 아버지 안에 아버지는 내 안에 나는 너희 안에 너희는 내 안에 우리는 하나이다. 둘이 아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들이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이 초월하게 해 주십시오. 이 육을 초월하게 해 주십시오. 너나가 없게 해 주십시오. 그 하나가 다시 말하면 우리 깨달으신 우리 어머니 사무엘의 어머니 다시 말하면 그 어머니는 무엇이 철학이냐? 무엇이 그분의 복음이냐? 그분이 무슨 말을 했냐? 그 말이지요. 어떻게 말씀을 표현했냐? 하면 ‘나라는 놈을 죽여라.’ 그게 수레기 어머니 철학이에요. 제가 이야기 하지요. 한나 어머니가 가정살림을 다 마을사람에게 나누어줘 버리고 다 집에 있는 것을 다 없애버리고 소유는 쌀 한말이에요. 쌀 한말이면 일 년 먹을 수 있다고 생각 하셨습니다. 쌀 한말을 머리에 이고 도구박 골로 들어가셨어요. 그때 제가 거기 살았거든요. 그날 그때, 수레기 어머니 부엌 쪽에다 방 한 칸 들였어요. 허락받고, 저도 조금 흙을 이겨 발라 드렸는데 그렇게 기뻐하더라고, 그런데 그 막을 치고 방이 되어가지고 사세요. 그런데 가슴아피가 일어났어요. 한나 어머니가 참 과부로서 자식을 다 키우고 보내버리고 홀 홀 단신 출가해 가지고 이제는 마음을 닦고 있는데 그 옛날 독이 있지요. 몸속에, 옛날 살아가던 흔적도 있고 또 옛날에 가슴 아팠던 흔적도 있지 않아요? 그래 가슴아피가 일어나요. 그러니까 며칠을 끙끙 앓고 누워있는 거예요. 식사를 못하시고, 그러니까 약이 없지요. 그때는 약도 안 먹을 때니까, 사람이 죽어가는 거지요. 죽어가요. 그러니까 수레기 어머니가 문을 탁 열어보고 ‘아이고 걸렸고만, 걸렸어. 고놈만 없으면 살 텐데.’ 그래 수레기 어머니의 철학은 ‘나란 놈이요,’ 나란 놈이 있어서 며느리 섭섭한 마음 아들 섭섭한 마음, 그것 갖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 가슴이 아파. 그걸 초월해야 가슴이 안 아프다는 거지요. ‘나라는 놈이 있고만,’ 왜 아프냐는 거예요. 마음이 평안하면 병이 없을 텐데 마음이 불안하니까 병이 있다는 뜻이거든요 고향 떠나고 살림 다 없애고 자식 다 떠나보내고 몸만 와있지, 마음이 지금 걱정하고 있어요. 자녀들이 다 밖에 있고 아이고, 그놈만 던져버리면 그만 벌떡 일어날 텐데. 그놈 그놈만 쫒아내면 될 텐데. 그래서 저는 어느 정도 알아들었어요. 처음에 출가하시고 비가 많이 오던 날 조금만 말해도 뒷방에서 다 들려요. 앞방에서 어머니들이 이야기 하는 거 다 들려요. 비가 오니까 두 분이 밭에 못나가요. 종일 한나 어머니가 살아온 이야기 하는 거예요. 예배당 이야기, 과거 이야기, 그러니까 손으로 뭔 일 하고 계시지요? 무슨 삼을 삼는지 알 수 없어요. 종일 둘이 방에서 일하고 계시더라고요. 말이 안 끝나. 밤새도록 잠을 안자고 이야기 하세요. 한나 어머니 혼자 이야기 하는 거지요. 다 들어주신 거예요. 밤에도 이야기, 낮에도 이야기, 과부의 설움이지요. 그 청춘과부가 되어갖고 살아온 이야기를 한도 끝도 없이 하는 거예요. 다 들어주세요. 결론은 그거에요. 다 들어주고 ‘아갸갸 아갸갸 나란 놈이 안 죽었구먼, 지가 지숭 보네.’ 결론이 그거에요. 일주일동안 한스러운 이야기 했는데 ‘니가 니숭 봤다.’ 그러고 말아 버려요. 며느리 흉도 아니고 아들 흉도 아니고 남편 흉도 아니고 ‘지가 지숭 보구만. 아이고, 나란 놈이 죽어야 제.’ ‘나란 놈, 나란 놈이 안 죽어서 저렇게 가슴 아파 가슴앓이를 하는 거야.’ 자기 번뇌 자기 욕망 자기 미련 자기 미숙, 익지를 않아 자기가 건지가 있어. 건지 자꾸 뒤를 돌아봐. 그래 가슴이 아프다는 거예요. 그래 밥을 못 먹고 누워 계세요. 그래 뿌리를 빼는 거지요. 뿌리를 빼. 그러니까 무식한 어른들이 철학가들이지요. 철학이에요. 나라는 놈, 예수를 믿으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평화를 얻고 싶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나같이 나를 따라오려거든 나같이 영적 사람이 되려거든 자기를 죽여라. 십자가를 져라. 껍질을 죽여라. 라는 거예요. 껍질을 깨라. 그럼 자유롭게 날아라. 눈을 뜨라. 태양이 보이지 않느냐? 별이 보이지 않느냐? 그거에요. 다시 말하면 해탈하라. 해탈, 껍질을 벗어라. 그러니까 동광원이라는 말은 껍질을 벗은 사람들의 공동체다. 그 뜻이거든요. 깨어난 사람들이다. 눈 뜬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훌훌 나는 사람들이야. 나는 동광원 사람이 아닙니다. 껍질을 뚫고 나간 사람이에요. 

 

그곳을 보고 나와 운주사 입구와 중장터를 지나 호암리 중촌 마을 동광원 수도회 도암 분원에서 가져온 김밥으로 점심을 나누고 각수봉 근처에 있는 소반바위 부근 유화레 선교사가 피란했던 암굴을 보고나서 이세종(이공)이 은거하시다 소천하신 수도처를 보았다. 험한 산길인데 지금은 임도가 있어 차로 가다가  주차하고 걸어 올랐다. 90노인이 두분이 있어 시간이 많이 걸렸다. 옆에 있었던 집과 전답과 우물터는 찾았는데 고아와 피란민 30여명이 살았던 소반바우에는 들리지 못했다. 

 

 

다음은 수레기어머니 김금남 수녀가 남원 갈보리에서 눈길을 걸어와 수도했고 한나어머니등 많은 동광원 수도자들이 거쳐갔던 도구박골을 찾아보았으며 한때 이곳에 수도하신 오세휘 장로님도 탐방에 참여하셔서 그때 이야기도 듣고 그 산등 넘어 사셨던 박작골을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그 아래 큰골은 소반바위에서 비오는날 유화래 선교사와 정인세원장 이현필 선생 일행이 옮겨온 곳이기도 하다.

 

 

  피란시절 미국인 유화래 선교사를 보호했기에 공산 치하에 지도자 수배와 순교자가 3명이나 있었다. 화학산은 화순군 나주군 영암군 장흥군이 둘려싼 큰산이어서 여순사건과 6.25시절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곳이기도 하다. 동광원은 이웃 사랑을 실천했기에 함평과 서울에 진출했던 이들은 오히려 공산 치하에서도 보호와 칭찬을 들었고 화순지역에서도 그랬으며 지방 산중민들에게도 칭송과 사랑을 받았는데 선교사 한분을 보호했기에 수난을 당했다. 그댸 피난민중 여순경 김은연씨는 사랑에 감동하여 동광원에 들어와 인분도 수레로 퍼 날라 감나무 동산에 뿌려주고 하다가 제2대 귀일원 원장 까지 지내셨다.

 

 

 다음은 수레기 어머니 친정집을 보고 나오다 청소골 한국 첫 고아원 자리를 보았는데 이현필 선생이 하셨던 술집을 사서 여순사건때 고아원을 했는데 헌군복을 입고 있던 연유로 총살 당할번 했는데 고아들이 매달려 살려주었다는 김준호 선생의 증언이 있다. 나와서 한천으로 가서 정한채씨 집터를 찾다가 어두워 찾지 못하고 능주 유적지도 보려고 했으나 중단하고 혜어졌다. 지난번에도 곡성군 죽곡면 원달 유적지도 못보았는데 아쉬었다.

 

차에서 내려 걸어서 올라가다

 

다음은 김준호 선생 증언 일부입니다. (1989년 4월22일)

 

 그래 소반바위에 가서 보니 화순씨 어머니 혼자 계세요. 집 지키고 밥 해주는 분이시지요. 그 자리는 옛날 고아들이 7-8명 살던 거기도 고아들 저택인데 깊은 산속입니다. 그런데 아 어머니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아무 말 말라고, 누가 또 오지 않아요? 곧 누가 늘 습격해 오니까 말 말고 그래, 선생님 어디계시냐고 이렇게 비밀로 암시를 해줘요. 그럼 찾아갈 수 없지 않습니까?

 

 

 어떻게 연결이 되어가지고 정 인세 선생님이 나오셨어요. 밤중에 밥 가지러 나왔겠지요? 밥 가지러 나왔기 때문에 따라 들어갔어요. 그날 밤 따라 비가와 버립니다. 저하고 이 선생님하고 정 선생님하고 셋이 굴이 하나기 때문에 거기서도 남녀 분별이야. 생명이 다 죽어가도 이 선생님과 정 선생님과 저 하고는 비를 맞고 절벽 바위 끝에 서있어요.

 

 

그런데 그 안에 굴속에는 선교사와 금남자매 하고 두 분이 거기 계신 거예요. 거기는 비가 안 오지요. 아, 비가 오니까 굴로 들어오라고 선교사가 자꾸 들어오라 하지 않아요? 미안하니까, 여기 좋습니다. 비가 직접 안 떨어지지요. 비가 들이치지. 그 바위 낭떠러지에 서이서 이렇게 등을 대고 앉아있어요.

 

그때 이 선생님이 밤중에 이야기 하세요. 준호 여기 여기서는 더 인제 못 있겠다. 꼭 오늘밤에 어디로 옮겨야 하는데 어디로 갈 곳이 있느냐? 그런 뜻으로 물어보세요. 나는 겁 없이 예, 큰골 장로님 집 있던 곳, 그 골채기 좋은데 있어요. 갑시다. 그랬거든. 그 말을 콱 믿어버린 거예요.

 

여기서 왼쪽 비탈로 내려가다

 

저쪽에서 이 지혜 없는 사람의 말을 거기를 가자면 이건 몇 번 죽을 함정이 있다고, 마을들이 있기 때문에 갈수가 없지 않아요?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지금 여기서 의심을 받고 쫒기는 사람을 거기 가다가 사람이 봐버리면 안 되는 것인데 거기 한 4키로 더되거든 거리가 그리고 골짜기를 들어가서 마을을 지나고 인가를 지나서 거기를 가야하는데 어떻게 가냐 하냐고, 그러나 거기를 가는 길이 있습디다. 하는 말을 믿고 인제 비가 오는데 나선 거예요.

 

 

선교사님을 손목을 잡았는데 비가 오는데 한치 앞에 안 보이지요? 깊은 산속에 숲속에서 손목을 잡고 그때도 바지게를 지고 그때도 소식을 듣고 왔겠지요. 또 지고 또 지고 또 지고 그렇게 해서 마을을 지나갈 때 그때야말로 죽냐사냐 문제가 있습니다. 마을은 조금 피해가지만 감나무 쟁이라고 거기는 집이 세 채인데 그거는 마을이 길 밑에가 한 채 길 위에가 두 채 그건 집 세 채를 지나가야 하거든. 개가 나와서 짖어버리면 안되거든. 누가 사람이 안보고 가야지. 그 길을,

 

 

그런데 거기를 제일 앞에 선교사 짐 지고 건너가고 뒤에 정 원장님 지키고 따라가고 이 선생님 앞서가고 저도 앞서가고 자꾸 앞서고 뒤서고 가는 거예요. 그때 정 원장님 말을 들어보면 그러데요. 정 원장님 제일 뒤에 섰는데 개가 따라오면서 자꾸 입에다 냄새를 맡고 안 울더라는 거예요. 어떻게 감사해서 안 짖어서 자꾸 냄새만 맡으며 따라오는데 안 짖더라는 거예요. 어떻게 입을 막아주신 하나님이 얼마나 감사 한가? 그래 거기를 생명을 걸고 거기를 건넜다. 그래,

 

복집사님이 설명하시다

 

큰골 당도했는데 밤새도록 그렇게 허덕거리고 와가지고는 어떻게 됐냐하면 그 산 입구에서 논밭이 있는데 떨어져버려. 아주 몸들이 곤하고 새벽 다섯 시나 되었어요. 그때 9월 달이니까 9월, 10월로 들어가는 때니까 그랬지요. 9월에 해방이되지요. 10월 달이 들어가는 때야. 이 선생님이 그래  인가가 멀어졌으니까 안쓰러워서 그랬던지 잠깐 쉬어가자고 그러시더만. 인제 다 쉬지. 남자 5-6명 그 자매하고 잠깐 쉬자고 하니까 무정한 잠들, 딱 누워서 잠들었다.

 

 

그러니까 한 30분이나 누워있다가 일어나야 할 텐데 전부가 잠이 들어서 해가 떠 버렸네. 해를 뜨고 이 선생님이 아이고 해 떴다고 일어나라고 이미 늦어버렸어. 누가 보면 큰일이지요. 길에서 개울로 들어서서 오르자고 했어요. 그게 지혜에요. 풀을 밞고 가면 누가 의심을 하지 않아요? 풀이 안자빠지게 물로 들어섰거든. 그러니까 개천이 있어. 큰 개천은 아니야.

 

 

시내물인데 물로 들어서서 올라가는 거예요. 착착 풀을 비끼면서 약 한 천 미터 올라가 1키로 그러니 7-8명이 들어가 버렸으니 누가 흔적이 없지요. 찾아올 사람이 없다고 거기는 하늘이 안 보이는 밀림인데 논에 온 사람이 있더라도 발자국이 있어야 누가 의심을 하지. 발자국이 없으니까 딱 숨어버렸으니까 인제는 참 거기 쉬지요. 거기서 한 보름 있었을 거예요.

 

그 청년들이 인제 광주를 갔다 와 그 전도사님 연락하기 위해서 이미 인민군은 38선을 넘어가기로 했지만 여기 지방이 해방이 안 되지 않아요? 광주까지는 해방이 되었어도 이 군 여기는 해방이 안 됐거든. 저 사람들이 지배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선교사가 광주에 수복했다. 국군이 수복했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바빠졌어요. 나가려고 그래. 이 선생님이 제지를 했어요. 안 된다고 더 기다리십시오.

 

 

그러니까 이제 큰골에서 너무 선교사가 조급하니까 나가 봅시다. 해가지고 어디로 온가 하니 도구박골이 한 일키로 반, 천오백 미터나 된 곳인데 넘어와서 거기는 집이 두 채나 있으니까 한 채로 선교사가 들어갔어. 그러니 비누 써본지가 한 석 달이상이 됐으니까 안심하시고 비누질을 손에다 해요. 아직도 빠르다고 이 선생님은 아직도 빠르다는 거예요. 그만 하시라고 들어가시라고 그래서 낮에 그날 석 달 반엔가 사 개월 만에 처음으로 밥 해 잡술 거예요.

 

 

그리고 그 날 밤에 정 원장님이 선교사를 모시고 문공님이 그 날 밤에 길을 인도 한 거예요. 문공님이 장로님이 계시던 집에 와서 대를 이어 사셨거든. 출가 은둔하신 분인데 밤중에 문공님이 앞서시고 선교사님과 정 원장님이 호위하시고 인제 광주를 걸어 나가는 거예요. 광주를 걸어오실 때 이양역으로 하산해서 역에서 한천이라는 잘 믿는 신자들이 계신 곳이야. 거기 가서 숨어 계세요.

 

 

얼마나 지혜가 치밀하신지 아무렇지 않은 곳 까지 와버려서도 선교사님과 금남 언니는 다락 2층 다락에 숨어 계세요. 또 원장님은 다른 집에 숨어 계시고 그리고 광주를 가자니 거기는 수복지구가 아니야. 밤이면 인민군이 이를테면 정치하던 곳이거든요. 화순군 소재지까지, 군청 소재지까지, 그러니까 고개만 넘으면 광주시내지만 거기를 어떻게 나가냐는 거예요. 그건 미군 CIC 미군 선발대가 광주 도청에 와가지고 선교사가 살아있다는 말 듣고 광주로 모시고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인제 국군이 선교사를 모시러 한천까지 오시는 거예요. 국군 장병이 다시 말하면 경찰관들이 그럼 인제 큰 트럭 두 대가 군인들이 무장하고 오는데 오다가 그 사람들이 죽거든. 인민군 들이 숨어 있다가 쏴버리거든. 그러니까 어떻게 하느냐? 인민군 복장을 하고 오는 거예요. 국군 복을 벗어버리고 인민군한테 의혹을 주지 않기 위해서 인민군 복장을 하고 들이닥쳤어. 그래가지고 인민군이 되어가지고 선교사 잡으러 왔다고 잡아가버려. 그래 이 사람들은 선교사가 숨어있는데 정 선생하고 금남언니하고 선교사를 인민군이 잡아가버렸다. 그 실상 인민군이 아니라고, 경찰 아니면 지금 국군이라는 거예요.

 

 

 

그래 그 사람은 소위 말하면 미국 호위 하에 들어간 거예요. 선교사는 그렇게 해서 광주 가서 피신이 끝나버리지. 그리고 인제 수복이 되어버리니까 그 후에 선교사 노릇 하셨지요. 쭉, 인제 80이 되도록 하셨어요. 광주서, 그렇게 되고 그 다음에 이제 정 선생도 같이 따라 나갔는데 그 일부터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야겠어요.

 

 

선교사를 모시고 정 원장은 광주로 나가버리신 다음이 일이 더 커요. 뒤 수습을 이 선생님 해야 하니까 그러면 같이 왜 안 나가야 거기에도 남아있는 신자가 수십 명이 있거든. 산골짜기 골짜기마다 그러니 선교사 모시고 가버릴 수 없는 몸이기 때문에 뒤에 쳐져계셨던 거예요. 

 

 

화순군 도암면과 나주군 다도면이 인접하여 생확권이 겹쳐있다. 일찍이 이공께서도 도암분이시만 다도면 방산교회와 깊은 관련이 있고 다도면 출신 귀주어머니는 능주교회 집사님이시다. 방산교회와 장태방죽은 동광원 역사와 관련이 깊다. 아래 글은 김준호 선생의1995년 1월3일 증언이다.

그래서 현 선생님이 삼백만원 얻어왔을 때 거기 땅을 구해놨어요. 귀주 어머니 친정에서 기증한 만평을 해가지고 장대방죽 구해놨습니다. 그런데 그리로 송등원 세우려고 열망하셨어요. 그러나 광주에 어른들이 모두 반대 했어요. 그 이상을, 그 뜻을 세워주지 않아요. 제중병원이 뭔데 어떻게 뭐를 놔두고 환자를 치료 하냐? 그것은 안 된다. 그런데 그 어른은 서러워 하셨어요. 제게 대해서 서러워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소극적이냐? 주장을 못하느냐? 그런데 그걸 없애버렸어요. 그 선생님의 뜻을 모른 거예요. 그것이 장대방죽이 거의 만평인데, 그동안에 아무 것도 못했지요. 전신을 찾고자 하자. 그럼 이 선생님은 자기 스승 장대방죽이 이공님이 다니던 전도길이거든요. 거기다가 유적 뭘 생각하셨습니다. 지금 늦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나이가 있는 사람들의 뜻을 전혀 모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나이가 든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 일을 하는 것이 좋겠다. 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지금 거기 땅 주인이 구해놨어요. 근 삼천 평, 그래서. 어느 공동체든지 정신운동이 일어나야 보전이 됩니다. 그리고 꽃동네를 보전하려면 수도원이 있었어요. 지금 이 자매원도 그렇고 여기 귀일원도 그렇고요. 그 사업체가 공동체가 유지되려면 지금 인재양성을 해야 해요. 다시 말하면 선생님 계실 때는 성경학교를 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성경학교 그건 재정이 적어서 못했어요. 수녀원을 시작하던지 성경학교를 시작하던지 거기서 젊은 사람들이 양성되어가지고 이 인재들이 나와 가지고 일을 하게 되어야하지, 현재 나이 많은 사람이 천년만년 어떻게 삽니까? 못살지요? 그러니까 인제 거기 들어가면 정신운동이 되어요. 정신운동, 인재양성 이지요. 찾아온 사람들이 거기서 수양을 해야지요. 조석 기도회 올리고 성경 배우고, 그러면 선생님들이 해 놓으신 재산이 많아요. 이용 할 줄 모를 뿐이란 말이야. 아까 말대로 땅이 있으면 사업체를 늘리기 위해서 이상을 꿈꿀 것이 아니라 이제는 복음화 학교라도, 가사 정신을 기를 수 있는 도장, 젊은 사람들이 찾아오면 거기서 일생을 몸을 바치고 살 수 있는 안정지대, 아, 나는 여기 들어오면 평생이 안심된다. 그런 참 동광원이지요. 빛이 있는 동산이 속히 건설되어야겠다. 선생님이 계실 때는 저쪽에 뜻을 두셨어요. 저쪽 만평을 구하면 저기다 동산을 하려고 그랬어요. 그러면 그때 안 되었어요. 그러니까 자기 고향에다 하시려고 그랬어요. 한번 선생님이 계시를 주셨습니다.

장태방죽 (동광원 개척지)
다도면 방산교회

이 이야기는 김준호 선생(1989년5월12일) 증언입니다. 한나어머니 집에서 3일간 집화 참가후 소감입니다.

 한 3일 동안 이 선생님 가만가만 말씀해요. 모기소리 같이 한데 거기 교장도 오시고 장로도 오시고 모든 양복 입은 사람들이 많이 와 계신데 그래 앉아있는 이야기를 인상 깊게 들었습니다. 공자님이 비루한 다시 말하면 허술한 막 속에 살면서 옷은 거친 옷을 입고, 자리는 거적이에요. 또 밥을 먹을 때는 밥그릇이 없어서 도사리에 밥을 담아먹고 도토리 같은 것 주워 다가 물은 따뜻한 물마시지 않아요. 찬물을 마셔요. 아 인재라 해요. 인재라 해요. 그 선생님이 제자에 대해 그렇게 존경하고 흠모하는 거예요. 아 어질다 내 제자여. 해라 그거지요. 아 어질도다. 해요 어질도다. 해요. 그런 거적에 자고 떨어진 옷을 입고 움막에 살고 표주박물에 도사리 밥을 먹어도 그는 마음이 평안 하도다. 그는 마음이 평안하도다. 그런데 그 낮은 자리를 고치지 않는다. 한번 자기가 저절로 받아들였으면 권고는 보고 가슴에 안고 놓지를 않아. 이것이 행복이다. 그 가난의 경지가 이것이 사람으로 태어나서 가장 행복한 자리이다. 한번 깨달으면 확 가슴에 안고 놓지를 않는다. 그 공자님 자기 제자를 그렇게 평하지요. 그러니 이제 예수님을 설명하시다가 또 세례요한 설명하시고 그는 들에서 주무시고 꿀이 있으면 조금 따먹고 없으면 굶고 찬물 마시고 그 상황을 또 예수님도 밤에는 방이 없으면 산에 주무시고 새소리 들으시고 기도하시고 찬송 부르시고 사람만나면 복음을 전하시고 배경 설명하시고 안자 설명하시고 고증이지요. 동양역사 그래 따복따복 3일 들었어요. 말씀을 듣는 동안에 학교 다니고 싶은 허욕 출세욕 같은 게 전부 이렇게 그냥 뭐랄까 힘을 못 쓰고 죽어지고요. 그 평안하게 사는 천사의 생활이 흠모됩디다요. 아 사람은 태어나는 것은 평화를 얻고 살 일이지 이렇게 고통당하고 살게 무엇인가? 그런 기적이지요? 영적 기적이 일어났는데 하늘땅이 꽉 거꾸로 변해요. 이렇게, 이렇게 모든 것이 정 반대에요. 그래서 막 천지가 춤을 춰. 해도 웃고 별도 웃고 나무도 웃고 바람 소리도 웃음소리야. 천지 만물이 어떻게 행복 평안해. 참 천지가 이렇게도 참 따뜻하고 아름답고 행복할까? 그래 제가 한번 이야기 했어요. 이 깨달음을 어떻게 표현하면 되나? 재림 예수님이 재림 하셨어요. 그러면 지금 50억 이라니까 일렬로 서야 예수님 만나지요. 저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이 다 예수 앞에 서버리고 돈 없고 짜 잔 하고 거지는 밀리고, 밀리고 제일 약한 사람이 제일 끝에 섰어요. 예수를 만나려고, 천국 문이 딱 열리고 예수님이 어서 들어오십시오. 그럼 제일 부자 돈 많은 사람이 먼저 갈라고 일등 들어갈라 하는데 예수님이 이렇게 여러분, 내 호령대로 하세요. 뒤로 돌아. 예수님이 제일 뒤로 가서 제일 거지 나사로가 일등이야. 제일 땅위에서는 버림당한 사람이야. 자 들어갑시다. 그분 손목을 잡고 천국으로 들어가요. 환상이 보여요. 쭉 그렇게 보이기 시작하면서 아 가장 못 입고 못 먹고 가난하고 고생하는 것이 제일 행복하다. 표준이 그렇게 잡힙디다요. 가장 잘 먹고 잘 입고 출세하고 높은 자리가 제일 불행하고 제일 지옥이고 낮아지고, 낮아지고 제일로 이렇게 가난해지고 이렇게 고생하고 사는 것이 인생의 행복이다. 그래, 모든 자기의 욕망이 바꿔 집디다요. 그래 찬송을 부릅시다. 찬송을 부르는데 목구멍이 근지러워서 막 웃음이 나오려고 그래서 입을 꽉 막고 참을 수가 없어요. 예수님의 맛을 본 것이지요. 이 성경의 원 뜻은 무엇인가? 예수님 말씀은 전부 그 뜻 아닙니까? 낮아져라. 낮아져라. 겸손해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내 마음을 배워라. 예수를 따라가려면 마음이 따뜻해야 되지. 나는 온유하다. 따스러운 온(溫)자 부드러운 유(柔)자 내게 와서 따뜻하고 부드러움을 배워라. 나는 내 마음이 온유하다. 내 마음을 배워라. 그러면 네 영혼이 쉼을 얻으리라. 허영이 물러가요. 고통이 물러가요. 정신 번민이 물러가요. 나는 겸손하다. 내 마음은 겸손하다. 내 마음을 배워라. 그리하면 네가 안심을 얻으리라. 그래, 그런 말씀을 이 선생님이 고증할 때 안자를 들어 이야기 하니까 딱 알아듣겠어요. 아 그 뜻이다. 그 청빈낙도라는 말이 그 말이야. 깨끗하게 겸손하게 가난할 수만 있다면 깨끗하고 가난 할 수만 있다면 영혼이 거기 즐거운 보화가 있다. 그게 길이야. 거기에 길이 있어. 그렇게 해서 자각했어요. 깨닫게, 열쇠를 틀어쥐었거든요. 제일로 흠모되는 것이 걸인이야. 얻어먹는 사람이 어떻게 부럽고 행복스럽고 좋아보이던지 그래 인제 같은 식구들이 몇 분계시니까 이야기 합니다만 제가 식구 노릇을 못해본 겁니다. 그때부터 마음이 괴로워요. 그 안에 항상 뒤로 쳐져 가지고 자기 소원대로 되어, 다리 밑으로 내려간 겁니다. 어떻게 평안하고 좋은지 지금 생각하면 기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