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도 지났고 중복 하루전이다. 웃자란 들깨 모종을 꽃밭에 풀을 베주고 삼일에 걸쳐 오전에 심었다.
동광원 수도회 고 김준호선생 음성파일을 문서파일로 만들때 <유화래 선교사>파일을 받았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6.25때 하나님의 섭리 상,하권> 합본임을 알게 되어 길지만 한꺼번에 올렸습니다. 관심 있는분들 보시기 바랍니다.
유 화레 선교사
김준호 선생
★1989년04월22일자로 6.25피난때의 섭리a와b를 유화래 선교사로 재편집★
1989.04.22. 김준호 선생
요한1서 1장 1절부터 보겠습니다.
우리는 생명의 말씀에 관해서 말 하려고합니다. 그 말씀은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계셨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듣고 눈으로 보고 실제로 목격하고 손으로 만져보았습니다. 그 생명이 나타났을 때에 우리는 그 생명을 보았기 때문에 그것을 증언합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선포하는 이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있다가 우리에게 분명히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그것을 여러분에게 선포하는 목적은 우리가 아버지와 그리고 그 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사귀는 친교를 여러분도 함께 나눌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충만한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 이 글을 써 보냅니다. 1절로 4절 말씀까지 봤습니다.
제가 이 선생님께 관한 것도 눈으로 본 것이고 귀로 들은 것을 증거 하려는 것입니다. 사도요한께서 예수님께 대해서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인제 육이오 동란을 중심으로 전후 사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증언하겠습니다. 육이오가 일어났기 때문에 이제 서울 대전 차츰차츰 전선이 가까워진다는 말을 듣고 광주도 곧 시간문제예요. 광주에 계신 믿는 어른들이 평소에 이 현필 선생을 존경하던 분들이 다시 말하면 공포심에서 찾아온 것이지요. 어떻게 했으면 할까하고 앞길이 캄캄했지요. 보따리를 싸가지고 피난오시기를 이 선생님께 와서 귀화한 것입니다. 거기가 일명 밤나무골 이라고 그래요. 방림동 광주시 방림동 밤나무골인데 거기가 인구가 드문 곳인데 대개 교회의 경건한 대개 부인들이지요. 또 남자 어른들 몇 분계시고 근 150명 생사를 같이하기 위해서 모였어요. 죽기를 같이 하기위해서 모여 버렸어요. 갈 곳이 없습니다. 소식을 들어보니까 처녀로 한국에 나와 가지고 참 환갑이 넘도록 가깝도록 여자 선교사로서 전도하시다가 수피아중고등학교를 창설하신 그 교장님이 나는 한국 사람이오. 나는 미국으로 안갑니다. 미국 정부 명령을 거절하고 인제 순교하기 위해서 자기 사택에 홀로 남아 계신다는 말을 듣고 이미 그때는 종교지도자들은 다 부산으로 다 망명하고 없지요. 광주시내에는 신도들과 무명한 농부 가사 평민들만 남아있었지요. 일반 국민들만 그러니까 그 선교사님을 누구 한사람 모시고 그 어디 가서 피난할 사람이 없지요. 혼자 죽음을 앞두고 카텐을 내려놓고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인민군에게 체포당하면 순교당할 작정이에요. 내가 생명을 바쳐 선교하던 한국인데 내가 어떻게 한국을 버리고 미국으로 돌아 가냐? 그런 참사랑을 지니신 분이지요. 그 소식을 접하시고 이 선생님이 부랴부랴 그 밑에서 일보시던 전도사와 운전수를 인제 보내서 안 됩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것인데 어떻게 그렇게 앉아서 죽을 수 있습니까? 최선을 다해봅시다. 그러니까 피난을 가십시다. 권면을 해서 갑시다. 하니까 그럼 나를 누가 데리고 가느냐? 아 이 현필 선생이 그렇게 소원 합니다. 그렇다면 내 몸 맡기겠다. 허락하셨어요. 이 현필 선생은 교직자가 아닙니다. 신앙으로 보면 평 교인입니다. 무명한 농부입니다. 그래서 낮에 나타나면 안 되지요. 아무도 몰래 비밀리, 비밀리 어두움을 타서 그 밤나무골로 오셨다 그래요. 저는 그때 화학산 기슭에서 고아 한 7-8명 데리고 있었기 때문에 못 봤습니다. 이 지혜 있는 이 선생님 이지요. 절대 이렇게 냉정하신 거지요. 그렇게 귀하고 하나님의 딸이 왔지만 방으로 모시지 않아요. 왜 방에 그득그득해 피난민이 그러니까 숲속에 가시밭에 아무도 몰래 숨겨놓으신 거예요. 은거하시도록 그 얼마나 명철하시며 조용하시고 그렇게 차분하십니까요. 그 해가 진 다음에 한복 옷을 입으라 하시고 무명 베, 가사 수건을 쓰라 하시고 얼굴을 보이지 않게 해서 한국 사람이 지금 바지게 올라가도록 앉아 계시도록 하고는 그때 젊은 청년 7-8명이 바지게지고 이렇게 들 넘고 산 넘고 해서 장장 광주에서 그 도암면 중촌 마을이 칠 십리라 해요. 그러나 돌아갔으면 팔십 리이겠지요? 그렇게 밤으로, 밤으로 낮에는 숨어계시다가 밤으로 바지게로 지고 가셨다고 그래요. 그런데 벌써 앞뒤에 따라오는 고아들이 그때 벌써 고아원 출발한지 1년이 되었으니까 고아들이 약 백 명 또 따라오는 그 신자들이 한 4-5십 명 그래 백여 명이지요. 이 선생님 고향에 함께 피난 와 있거든요. 사람들이 그득해요. 그럼 비밀리 가신 곳이기 때문에 바지게에 지고 온 선교사님을 어디로 들어가시라 할 곳이 없어요. 방방이 그득하니까 그래서 숲속에 숨어계시라 하시고 또 밤이 되면 화학산으로 지고 또 올라갔다고 그래요. 그럼 전후좌우에 호위하시는 분이 현재 정 원장님 정 인세 원장님 호위하시고 청년들은 업고 가시고 지고가시지요. 그렇게 해서 그 중촌마을에서 소반마을에 거기는 화학산 중봉이지요. 약 한 1km 되지요. 아 1km 아니야. 한 4km 되지요. 3-4km 거기만큼 지고 올라갔을 때는 사람이 없지 않아요? 깊은 산속이니까 거기부터 바지게 내려가지고 걸어가셨어요. 그런데 인민군이 아닙니다. 유격대, 여순 반란 때 와서 은거하고 있던 지방 유격대지요. 지방 반란군 지방 공산주의 청년들인데 그때 소식을 듣고 육이오동란 소식을 그때야 들었어요. 듣고 7-8명이 총 들고 내려오다가 탁 봤어요. 당신 누구냐고 검열하는데 나는 정 인세올시다. 아이고, 정 총무 고맙소. 그 고아들 할머니들이 전부 일 년 먹기 위해서 김칫독을 담아두고 다 피신해 버렸거든요. 아 당신이 총무님이오? 당신들이 잡수려고 그 무김치 배추김치 담아놓은 것을 우리들이 먹었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이렇게 보더니 이 여자 외국사람 아니요? 예, 선교사인데 처녀 때 우리나라 오셔가지고 이렇게 교육에 힘쓰시다가 본국에 못가시고 우리하고 같이 피신합니다. 그런데 정 총무님 보세요. 당신은 우리가 아니까 지금 이대로 가시라 하지만 우리가 지금 내무서에 가서 경찰서에 가서 물어보고 체포하러 올 테니까 모시고 계시오. 그리고 내려갔어요. 그 청년들이 그러니 발견되어 버렸어요. 벌써 저쪽 손에 그 명단이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를 모시고 소반바위라는데 가서 숨어 계신데 밤낮으로 체포하러 옵니다. 선교사를 암굴에 숨어 계세요. 암굴에 분명히 계신 줄 알고 찾아와도 발견 못하지요. 그러면 고아들이 한 백 명 가까운데 또 일반 신자들은 선교사가 거기 숨은 줄 알고 자기들한테 화가 올 줄 알고 다 도피해 버렸어 동광원 소년 소녀들만 같이 운명을 같이 하니까 숨어있는데 총칼을 대요. 애기들한테 삼십 명 이십 명 방방이 있으면 너 여기 머리 노란 여자 올라갔지 말해라. 너 거짓말하면 죽인다. 총 쏜다. 몰라요. 몰라요. 백 명이 한사람 같이 시키지도 않았답니다. 어른들이 몰라요. 몰라요. 하고 절대 이렇게 침묵을 지켜요. 애기들이 봤다는 말 하는 사람 없어요. 누구들 대던지 총칼을 대고 너 여기 미국여자 가는 거 봤지? 몰라요. 다 알아요. 애기들은 알고도 모른다고 그렇게 성령의 어떤 그 현존이라고 할까? 하나님이 직접 입을 봉한 것이지요. 그래서 밥은 어떻게 하느냐? 그렇게 지혜가 참 안전하시거든요. 배고프니까 깊은 산중이니까 아무렇게나 해먹자.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돌아가신 화순씨 어머니라고 그 분도 원 몸이 부잣집 부인이 출가했거든요. 그래 이제 유복하신 어머니로서 산에 와 계시기 때문에 믿음직한 그 화순씨 어머니에게 밥을 부탁해요. 그럼 해가 진 다음에 밥을 해서 밥을 막 해가지고 담아가지고 딱 담아가지고 이 방 구들 깊은 속에 밀어 넣어. 밥을 막 해놓을 때 저 사람들이 눈치를 밥 했을 때 잡으려고 밥 먹을 만 할 때 탁 달라 들어 밥을 딱 해서 밀어 넣어 놨는데 와서 보면 이렇게 솥을 떠들어보면 아무것도 없거든 의심이 풀리지 않아요. 여기 선교사 와있지요. 우리 알고 왔습니다. 나 몰라요. 다 그 사람 알고 왔어요. 정보 듣고, 이 현필씨 정 인세씨 선교사 하고 세 명이 여기 숨어있지요? 여기서 밥 해주지요? 나 몰라요. 지금 밥 해놨거든. 나 몰라요. 그럼 가버려요. 그럼 그 사람들이 알고 또 와요. 새벽에, 새벽에 잡으려고 그럼 이쪽에서는 밤중에 열두시나 새로 한시에 꼭 밥 한 끼 잡수셔요. 밤중에 굴속에 같다줘요. 같다 드려요. 그때 정 인세 선생님 그때 나이가 젊어요. 그러니까 와서 가지고 가서 먹어요. 선교사를 어떻게 여자인데 어떻게 혼자 계시라고 합니까? 그래서 금남자매라고 있어요. 젊은 자매님이 항상 몸 옆에 따라다니지요. 거룩하신 처녀인데 그래 두 분이 식구는 네 명이지요? 네 사람 밥을 그렇게 갖다 먹는데 밤에는 오면 흔적이 없으니까 새벽 세 시경에나 들어 닥쳤다고 유격대들이지요. 분 주소 직원들이야. 7-8명이 총 갖고 그런데 새로 한시경이나 선교사님하고 금남 자매는 밥을 내다주고 무거우니까 정 선생님과 이 선생님 두 분은 와서 잡수시거든. 어머니 방에 와서 그러면 밥을 위 아랫방이니까 윗방에 식사를 막 했어요. 식사를 막 끝냈는데 들이닥쳐 유격대가 여기 정인세, 이선생 여기 있지요? 밥 차려드렸거든. 밥 차려 잡수시고 어찌되었든지 흔적이 없이 했지요. 벌써, 그럼 윗방에 계신 줄 알거든요. 나 문 열어 봅니다. 당신 거짓말 하면 죽소. 난 몰라요. 문을 팍 열어버리니까 아무도 없어요. 분명히 거기 두 분 계셨는데 어디 갔어? 그런데 두 분이 잠깐 사이에 영감을 얻어가지고 앞에 원두막에 와 계셔. 3미터 앞에 원두막 있어.
그런데 이 선생님은 밑에가 앉았고 정 선생님은 위에가 앉았다고 2층이니까 그러니까 저기서 오는 거를 보고는 이 선생님은 기어서 선교사가 위태로우니까 선교사한테로 쫒아 가버렸어. 선교사 보호 하려고 그러니까 기어갈 때 안 봤지. 정 선생님은 원두막 위에 있으니까 내려 올수가 없어. 서로 건너다보이니까 에라 죽으면 죽었다하고 드러누워 버렸어. 그런데 인제 창으로 땅속을 막 파. 숨은 줄 알고, 이 런 쇠 덩어리로 분명히 여기서 밥 먹었을 텐데 어디 갔냐 말이야. 원두막에 와서 원두막 밑을 파요. 원두막 위에는 안 봐. 뒤에 드러누웠는데 아이 없다고 허탕 쳤다고 내일 오자고 가버렸다는 거예요. 그래 날마다 숨박곡질이야. 하나님하고 세상하고 그렇게 되던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지요. 어찌 되었든지 그런 사건이 아슬아슬 또 이쪽에서는 아무리 가도 못 찾으니까 다른 군으로 옮겼다고, 장흥군 쪽으로, 화순군 쪽에서는 못 찾으니까 장흥군 쪽에서 찾아봐라. 장흥군 쪽에서 수색대가 7-8명이 또 올라와. 낮에, 그런데 조용하게 며칠은 조용하니까 안심하고 선교사가 나와서 큰 방에 방으로 나와 있다가 어째 또 영감이 들어가지고 성경을 가지고 나 기도하렵니다. 하고 집 밖으로 내려갔거든. 저 밑으로, 그러니 선교사가 이 성경을 딱 보고 있는데 대창 든 청년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7-8명 올라가요. 옆으로 있으니까 옆으로 보면 보여. 쭉 올라가. 와 저 사람들 나 잡으러 간다고 알아버릴 거 아니에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와서 여기 선교사가 있는 줄 알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니까 가버렸거든. 그러니까 약속한 것 같이 그 시간에 안 잡혀요. 그래 서로 잡히려다 안 잡히고 잡히려다 안 잡히고 그렇게 된 때에 저는 또 어린 고아들이 그건 동광원 고아가 아닙니다. 동광원 고아보다 더 일 년 전에 데리고 산 고아원이 따로 있어요. 제가 이 선생님의 형님의 주막집이에요. 형님 술 그만 못 팔게 하고 그 집에다 제가 선생이거든요. 그리고 그 어머니가 귀주 어머니지요 보모가, 그랬는데 저는 저대로 제 몫의 고아들하고 귀주 어머니하고 도와서 지금 피신하고 광주서 한 백여 명 고아들하고 합류를 안 시켜요. 어떻게 이 선생님이 명철한지요. 합류시키면 이 모든 비밀이 섞어져 가지고 그것이 탄로되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있던 고아원에 선교사가 지내는 거예요. 저를 한 보름 전에 와있으라 했어. 이 도구박골에 그 집 다 비어놓고 올라와 버렸거든. 앞을 내다본 분 아니야. 그 집에 선교사 일행이 들어와 두 팀이 되어버렸어. 이렇게 그래 저는 저대로 고아들하고 도구박골 이니까 절대 인제 오도 가도 못하지. 거기도 광주 쪽에서 피난민 7-8명 와버렸다고, 손님들이 그때 그 유명하신 서울 어머니가 거기에서 우리를 도와주고 계셨어요. 그 서울어머니가 계시던 막이에요. 도구박골이 그런데 보십시오. 어느 날은 한 달이나 두 달하니까 너무 서로 소식이 없고 저도 마음이 그렇게 마음이 그렇게 듭디다요. 소반바위 가야지. 그건 생명을 내놓고 가야지요. 그 판에 무사하게 생각이 안 되어요. 그러면 이렇게 편안하게 있어야 되나 싶어서 그 오 장로님이 옛날 출가해 가지고 은둔해 있던 막이 있어요. 그 도구박골 에서 산길 넘어가면 큰골인데 큰골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봤어요. 정정당당하게 마을길 다닐 수 없는 때에요. 서로 의심하고 체포하고 그럴 때니까 그 주민들은 죄가 없지요. 그러나 공산주의 계열에서 믿는 자를 스파이로 봐버렸거든. 미군 앞잡이로 봤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에게 대해서 여간 의아심이 있고 고발해 버린다고, 그래 마을 함부로 못 다녀요. 그래 사람 없는 깊은 산속에 들어가 봤어요. 벌써 늦가을인데 하늘을 쳐다보니 머루가 캄캄해 하늘이 안보여요. 열려가지고 그건 참말로 정글 같은 곳이야. 하늘이 캄캄한 곳이야. 물이 흐르고 거기를 거쳐 가지고 이 선생님 못가니까 해가 진 다음에 거기 감나무쟁이 거기가 사람이 세 채가 있어요. 소반바우라는 마을이, 아니 소재지요. 소재마을이 한 삼십 가구 사십 가구 거기를 거쳐서 이제 감나무쟁이가 거기 집이 세 채있는데 거기 가다가 서로 발견되면 안 되거든. 거기 사람 모르게 통과할 때는 비지땀이 흐르지요. 사람이 나와 버리면 안 되거든요. 밤중에 가지만 참말로 숨을 조이고 기어서 가거든요. 아무도 안 봤거든요. 그래 소반바위에 가서 보니 화순씨 어머니 혼자 계세요. 집 지키고 밥 해주는 분이시지요. 그 자리는 옛날 고아들이 7-8명 살던 거기도 고아들 저택인데 깊은 산속입니다. 그런데 아 어머니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아무 말 말라고, 누가 또 오지 않아요? 곧 누가 늘 습격해 오니까 말 말고 그래, 선생님 어디계시냐고 이렇게 비밀로 암시를 해줘요. 그럼 찾아갈 수 없지 않습니까? 어떻게 연결이 되어가지고 정 인세 선생님이 나오셨어요. 밤중에 밥 가지러 나왔겠지요? 밥 가지러 나왔기 때문에 따라 들어갔어요. 그날 밤 따라 비가와 버립니다. 저하고 이 선생님하고 정 선생님하고 셋이 굴이 하나기 때문에 거기서도 남녀 분별이야. 생명이 다 죽어가도 이 선생님과 정 선생님과 저 하고는 비를 맞고 절벽 바위 끝에 서있어요. 그런데 그 안에 굴속에는 선교사와 금남자매 하고 두 분이 거기 계신 거예요. 거기는 비가 안 오지요. 아, 비가 오니까 굴로 들어오라고 선교사가 자꾸 들어오라 하지 않아요? 미안하니까, 여기 좋습니다. 비가 직접 안 떨어지지요. 비가 들이치지. 그 바위 낭떠러지에 서이서 이렇게 등을 대고 앉아있어요. 그때 이 선생님이 밤중에 이야기 하세요. 준호 여기 여기서는 더 인제 못 있겠다. 꼭 오늘밤에 어디로 옮겨야 하는데 어디로 갈 곳이 있느냐? 그런 뜻으로 물어보세요. 나는 겁 없이 예, 큰골 장로님 집 있던 곳, 그 골채기 좋은데 있어요. 갑시다. 그랬거든. 그 말을 콱 믿어버린 거예요. 저쪽에서 이 지혜 없는 사람의 말을 거기를 가자면 이건 몇 번 죽을 함정이 있다고, 마을들이 있기 때문에 갈수가 없지 않아요?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지금 여기서 의심을 받고 쫒기는 사람을 거기 가다가 사람이 봐버리면 안 되는 것인데 거기 한 4키로 더되거든 거리가 그리고 골짜기를 들어가서 마을을 지나고 인가를 지나서 거기를 가야하는데 어떻게 가냐 하냐고, 그러나 거기를 가는 길이 있습디다. 하는 말을 믿고 인제 비가 오는데 나선 거예요. 선교사님을 손목을 잡았는데 비가 오는데 한치 앞에 안 보이지요? 깊은 산속에 숲속에서 손목을 잡고 그때도 바지게를 지고 그때도 소식을 듣고 왔겠지요. 또 지고 또 지고 또 지고 그렇게 해서 마을을 지나갈 때 그때야말로 죽냐사냐 문제가 있습니다. 마을은 조금 피해가지만 감나무 쟁이라고 거기는 집이 세 채인데 그거는 마을이 길 밑에가 한 채 길 위에가 두 채 그건 집 세 채를 지나가야 하거든. 개가 나와서 짖어버리면 안되거든. 누가 사람이 안보고 가야지. 그 길을, 그런데 거기를 제일 앞에 선교사 짐 지고 건너가고 뒤에 정 원장님 지키고 따라가고 이 선생님 앞서가고 저도 앞서가고 자꾸 앞서고 뒤서고 가는 거예요. 그때 정 원장님 말을 들어보면 그러데요. 정 원장님 제일 뒤에 섰는데 개가 따라오면서 자꾸 입에다 냄새를 맡고 안 울더라는 거예요. 어떻게 감사해서 안 짖어서 자꾸 냄새만 맡으며 따라오는데 안 짖더라는 거예요. 어떻게 입을 막아주신 하나님이 얼마나 감사 한가? 그래 거기를 생명을 걸고 거기를 건넜다. 그래, 큰골 당도했는데 밤새도록 그렇게 허덕거리고 와가지고는 어떻게 됐냐하면 그 산 입구에서 논밭이 있는데 떨어져버려. 아주 몸들이 곤하고 새벽 다섯 시나 되었어요. 그때 9월 달이니까 9월, 10월로 들어가는 때니까 그랬지요. 9월에 해방이되지요. 10월 달이 들어가는 때야. 이 선생님이 그래 인가가 멀어졌으니까 안쓰러워서 그랬던지 잠깐 쉬어가자고 그러시더만. 인제 다 쉬지. 남자 5-6명 그 자매하고 잠깐 쉬자고 하니까 무정한 잠들, 딱 누워서 잠들었다. 그러니까 한 30분이나 누워있다가 일어나야 할 텐데 전부가 잠이 들어서 해가 떠 버렸네. 해를 뜨고 이 선생님이 아이고 해 떴다고 일어나라고 이미 늦어버렸어. 누가 보면 큰일이지요. 길에서 개울로 들어서서 오르자고 했어요. 그게 지혜에요. 풀을 밞고 가면 누가 의심을 하지 않아요? 풀이 안자빠지게 물로 들어섰거든. 그러니까 개천이 있어. 큰 개천은 아니야. 시내물인데 물로 들어서서 올라가는 거예요. 착착 풀을 비끼면서 약 한 천 미터 올라가 1키로 그러니 7-8명이 들어가 버렸으니 누가 흔적이 없지요. 찾아올 사람이 없다고 거기는 하늘이 안 보이는 밀림인데 논에 온 사람이 있더라도 발자국이 있어야 누가 의심을 하지. 발자국이 없으니까 딱 숨어버렸으니까 인제는 참 거기 쉬지요. 거기서 한 보름 있었을 거예요. 그 청년들이 인제 광주를 갔다 와 그 전도사님 연락하기 위해서 이미 인민군은 38선을 넘어가기로 했지만 여기 지방이 해방이 안 되지 않아요? 광주까지는 해방이 되었어도 이 군 여기는 해방이 안 됐거든. 저 사람들이 지배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선교사가 광주에 수복했다. 국군이 수복했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바빠졌어요. 나가려고 그래. 이 선생님이 제지를 했어요. 안 된다고 더 기다리십시오. 그러니까 이제 큰골에서 너무 선교사가 조급하니까 나가 봅시다. 해가지고 어디로 온가 하니 도구박골이 한 일키로 반, 천오백 미터나 된 곳인데 넘어와서 거기는 집이 두 채나 있으니까 한 채로 선교사가 들어갔어. 그러니 비누 써본지가 한 석 달이상이 됐으니까 안심하시고 비누질을 손에다 해요. 아직도 빠르다고 이 선생님은 아직도 빠르다는 거예요. 그만 하시라고 들어가시라고 그래서 낮에 그날 석 달 반엔가 사 개월 만에 처음으로 밥 해 잡술 거예요. 그리고 그 날 밤에 정 원장님이 선교사를 모시고 문공님이 그 날 밤에 길을 인도 한 거예요. 문공님이 장로님이 계시던 집에 와서 대를 이어 사셨거든. 출가 은둔하신 분인데 밤중에 문공님이 앞서시고 선교사님과 정 원장님이 호위하시고 인제 광주를 걸어 나가는 거예요. 광주를 걸어오실 때 이양역으로 하산해서 역에서 한천이라는 잘 믿는 신자들이 계신 곳이야. 거기 가서 숨어 계세요. 얼마나 지혜가 치밀하신지 아무렇지 않은 곳 까지 와버려서도 선교사님과 금남 언니는 다락 2층 다락에 숨어 계세요. 또 원장님은 다른 집에 숨어 계시고 그리고 광주를 가자니 거기는 수복지구가 아니야. 밤이면 인민군이 이를테면 정치하던 곳이거든요. 화순군 소재지까지, 군청 소재지까지, 그러니까 고개만 넘으면 광주시내지만 거기를 어떻게 나가냐는 거예요. 그건 미군 CIC 미군 선발대가 광주 도청에 와가지고 선교사가 살아있다는 말 듣고 광주로 모시고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인제 국군이 선교사를 모시러 한천까지 오시는 거예요. 국군 장병이 다시 말하면 경찰관들이 그럼 인제 큰 트럭 두 대가 군인들이 무장하고 오는데 오다가 그 사람들이 죽거든. 인민군 들이 숨어 있다가 쏴버리거든. 그러니까 어떻게 하느냐? 인민군 복장을 하고 오는 거예요. 국군 복을 벗어버리고 인민군한테 의혹을 주지 않기 위해서 인민군 복장을 하고 들이닥쳤어. 그래가지고 인민군이 되어가지고 선교사 잡으러 왔다고 잡아가버려. 그래 이 사람들은 선교사가 숨어있는데 정 선생하고 금남언니하고 선교사를 인민군이 잡아가버렸다. 그 실상 인민군이 아니라고, 경찰 아니면 지금 국군이라는 거예요. 그래 그 사람은 소위 말하면 미국 호위 하에 들어간 거예요. 선교사는 그렇게 해서 광주 가서 피신이 끝나버리지. 그리고 인제 수복이 되어버리니까 그 후에 선교사 노릇 하셨지요. 쭉, 인제 80이 되도록 하셨어요. 광주서, 그렇게 되고 그 다음에 이제 정 선생도 같이 따라 나갔는데 그 일부터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야겠어요. 선교사를 모시고 정 원장은 광주로 나가버리신 다음이 일이 더 커요. 뒤 수습을 이 선생님 해야 하니까 그러면 같이 왜 안 나가야 거기에도 남아있는 신자가 수십 명이 있거든. 산골짜기 골짜기마다 그러니 선교사 모시고 가버릴 수 없는 몸이기 때문에 뒤에 쳐져계셨던 거예요. 그래 늘 낮에는 사람이 못 다니니까 밤에 전도할만한 할아버지나, 젊은 사람은 못 다니니까 친아버지가 70이 넘으셨어. 이 선생님 친 아버지. 친아버지가 갔었지요. 자기 아버지를 전달 이렇게 해 주시도록 어디 가서 이렇게, 이렇게 말씀 해주시오. 그러니까 어디어디 계신 분을 광주로 나가라 해주시오. 자꾸 권면해 내보내는 거예요. 광주로 나가라고 한 30명 있다가 20명 10명 5명 이렇게 좁아 들어가요. 그 사이가 벌써 10월이 가버리고 12월이 되버린 거예요. 전부 뒤에 계신 분들, 광주로 소개시키고 또 이 현필 선생의 부인이 그때 여 순경이었어. 여 순경도 거기 피난해 있으니까 자기 친구 여순경 세 사람이 이번에 갔던 곳 뿔바우 뒤에 숨어계셨거든. 굴에, 거기 밥해주던 어머니가 차남씨 어머니라는 분이야. 거기도 어느 교장이 와계시고 피난 온 청년 신자가 근 20명 있었어요. 그 차남씨 어머니는 그 손님을 다 치송하시고 이제는 다 떠났어요. 그런데 귀일원 현재 2대 원장이 그때 이 현필 선생님의 사모님의 친구 여 순경이었던 분이 지금 2대 원장이야. 그때 예수 안 믿던 사람이 이 선생님한테 감화 받아갖고 예수 믿고 이 선생님 귀화했지. 김 은현 씨라고 그 분이 이제는 원장이 되어 계십니다만 그렇게 해서 이제는 뿔바위의 살림은 차남씨 어머니가 마지막 지키고 계시고 그럼 도구박골이라는 곳하고 거기도 4키로 더 되어요. 그 사이에 소재마을이 있고 그런데 그 이 도구박 골에는 서울 어머님이 총 어머니가 되어갖고 뒤에서 싸주고 계시거든요. 이 선생님하고 저하고 거기에 있었어요. 그러니까 밥을 해주고 계셨지요. 그런데 그 선교사님의 밥을 직접 했던 화순씨 어머님이 그 차남씨 어머니하고 형제간이야. 자매지간이야, 동생이 아직 안 오니까 이 선생님 계신 골짜기 도구박골에서 아직 계세요. 안가시고 할머니시기 때문에 그때 같이 남아 계시던 분이 이를테면 일번 어머니가 누구시오? 옛날 공부할 때 미숙어머니가 쳐져있어요. 그러니까 미숙 어머니하고 화순씨 어머니하고 두 분을 권면해. 나가시라고, 인제 어머니들 하실 일은 끝났소. 생명을 바쳐 그렇게 참 간호하고 후보하고 밥해주시던 일 끝났으니까 광주로 들어가시오. 눈물을 머금고 안 가시려고, 죽어도 같이 죽겠다. 그래도 가야해. 그래 두 분이 이양역으로 밤중에 하산해서 걸어서, 걸어서 광주로 떠났어요. 그러니까 식구가 총 그런데 아까 말씀하던 문공님은 이양역까지 선교사를 밤길을 인도해 주시고 다시 와서 부인하고 아들 둘하고 딸하고 식구가 지금 다섯이지요. 다섯 식구가 옛날 큰골에 남아계세요. 그래 이 분도 이제는 거기가 계셔가지고는 생명이 위태로우니까 떠나야해요. 그래서 소재마을로 소개를 나가시게 되요. 그분 떠나시고 그래 그 산골짜기에 남은 사람은 이 현필 선생님 저 서울 어머니 셋이지요. 그런데 문공님이 떠나기 전 마을로 소개하기 전에 할 일이 있소. 그래요. 저기 지금 4키로 밖에 뿔바위 굴에 숨어계시는 차남씨 어머니를 우리하고 합류시켜 주시오. 모셔다 주시오. 모셔오라고 합해야겠다. 혼자 계시니까, 그런데 그 차남씨 어머니를 모시러 갈 때 저를 쩜매요. 그래 문공님하고 저하고 둘이 소재마을을 거쳐서 차남씨 어머니 계신데를 가서 선생님이 오시라 합니다. 그때 제가 본대로 이야기 하겠어요. 그 사람 집이 있어요. 거기도 한 삼십명이 피난했던 곳이라 30명이 겨울 준비하기 위해서 무 배추를 다 심어놨어요. 30명이 겨울 먹을 만큼 무 배추가 다 커서 시골이니까요. 가을이니까 무가 이래요. 무가 막 배추가 그리고 메밀을 두말을 갈아가지고 전부 수확해놓고 묶어놓고 30명 20명 10명 5명 다떠나버리고 혼자 계신다고. 그런데 뭘 잡수셨어요? 물어보니까 아 나는 먹는것은 싫고 배고프면 어떻게 지내냐? 거기 소금이 있고 들깨 한주먹이 있고 보리쌀 한주먹이 있어요. 배고프면 보리쌀 한주먹 삶아먹고 소금좀 찍어먹고 또 거기 들깨도 삶아먹고 그런다고 밥 해먹은지 오래됬다고 그래요. 그렇게 사셔 혼자 손님이 왔으니까 기름이 한방을 있어. 기름 한방울을 문 공님이 불때라 하고 한 30명이 밥해먹던 큰 솥이니까 툭툭 튀지요. 거기다 무를 한 세 개 뽑아다가 네쪽 내니까 비비하고 익더만. 딱 익혀서 줘요. 먹으라고 어떻게 타고 그렇게 그건 먹다가 누가 죽어도 모르는 거예요. 그렇게 좋은지. 고스름하고 배추고 한통을 딱 짜개갖고는 이렇게 설익혀 갖고 먹으라고 셋이서 먹었어요. 그래 거기서 만찬을 다 끝내고 그걸 다 포기하는 거예요. 무 살림해서 뒀던 메밀 다 포기하고 솥하고 이불하고 짊어지고 문 공님이 차남씨를 앞세우고 떠나는 거예요. 마지막 그런데 이 지혜있는걸 보십시오. 노인의 지혜는 그래서 노인의 지혜에요. 같이 가면 안된다는 거예요. 올때는 일찍 해뜨기전에 왔지만 낮에가면 그 마을에는 지금 그 사상이 저쪽에 있는 모든 마을인데 사람이 사는 곳인데 거기를 지금 인민군 아니면 유격대가 숨어있지 않느냐? 청년이라 거기가면 잡힌다. 안 놓아준다 그거에요. 아무리 어려워도 능선으로 능선으로 길 없는 곳으로 찾아오라. 그거에요. 화학산을 일주한 거예요. 화학산 끝에서 화학산 끝까지 가야하거든요. 쭉뻗은 한일자인데 그래 두 분은 마을을 지나서 가고 노인이니까 저는 젊어서 그때가 스물여섯인가 그렇게되요. 인제 걸어서 걸어서 능선으로 가는데 늦 가을도 아닌것 같습니다. 바람이 불어가지고 상소리가 빠졌는데 너무 아까워요. 땅에 쏟아졌는데 가다가 아까워서 나 빤스 입었거든. 바지를 벗어가지고 바지를 쩜매서 바지를 하나를 채웠으니 한말 더된다고, 얼마나 무거워요? 그 놈을 끙끙지고 하산했어. 소위말하는 도구박골로, 그때 화순씨 어머니가 아직 안가고 계실때에요. 화순씨 어머니가 솜씨가 좋으셔. 그냥 막 찧어가지고 그냥 물부어서 어떻게어떻게 해가지고 밤새도록 불때더니 그 이틑날 낮에 묵을 해줘요. 그렇게 빨리 할수 있는가 몰라. 그렇게 비법이 있데요. 그렇게 해서 나눠먹고 떠나셨어요. 그런 사건이 있어요. 그러니까 화순씨 어머니는 언니고 차남씨 어머니가 오셨다. 그러니까 두 자매가 만났지. 그러니 이 선생님을 사랑하기를 서로 양보를 안해요. 죽어도 같이 죽을테니 너 나가라. 언니 나가시지요. 둘이 가사 인제 서울 어머니하고 어머니는 이미 거기 있떤 분이시고 그러니까 갑자기 동생이 왔으니까 차남씨 어머니하고 자기 언니 화순씨어머니하고 숨어서 나는 뒤에 숨어있지. 낮에는 방에 있을수 없어요. 누가 와서 봐버리면 안되니까 종일 둘이 양보를 안해. 언니가 광주로 나가시지요. 동생이 나가소. 조금있다가 언니가 나가시오. 내가 선생님 밥해드릴라요. 내가 해드릴라네 언니가 나가시오. 언니가 양보해요. 결국 언니가 양보하고 그날 밤에 나간거예요. 그럼 내가 나갈테니 동생 잘 (끊김)
우연은 아닌 것 같아요. 그동안 어떻게 양식이 어떻게 마련 되서 밥을 했으며 어떻게 양식이 얼마 남았다. 그 사연인데, 그럼 인제 그 깊은 산속에 양식이 있을리가 없어요. 그때 되면 백여 명이 삼십 명이 다 먹고 떠나버렸고 아무것도 없거든. 양식은 깊은 산속에 없고, 먹을 건 도토리 인데 도토리 줍기도 어려울 때인데 어느 날 서울 어머니 말이 그래요. 어느 날 연임 씨라는 분이 소재 마을에 구장 부인 인민치하에서 구장은 할 수 없어요. 하기 싫어도 거기에 공무원이 되어버렸어요. 자기 남편이 구장인데 인민치하에 구장부인이니까 권리가 있지 않아요? 그 인민군이 자기 마을에 있을 때 지방 유격대지요. 구장 할 때지요. 있을 때 쌀 닷 되를 나물바구니 속에 숨겨가지고 나물 캐러 온 것같이 하고는 가지고 왔더라고 그 도구박 골에 가지고와서 아이고 이것을 이 현필 선생님이 숨어 있다고 생각이 드는데 짐작이 들어서 해드리라고 갖고 왔습니다. 내가 이걸 갖고 온줄 알면 나는 죽소. 얼른 두고 가더랍니다. 가버렸다는 거예요. 그럼 그 분은 누구냐? 오 장로님 장롱 만들 때 구장의 작은집이 부자에요. 한 일 년 전인가 이년 전인가 장롱을 짜드렸어. 그래 큰집은 장롱 안 짰지만 작은집이 짜니까 그러니까 구장 집을 지으면서 누가 그 빈민 살다나간 빈집이 하나 있어요. 마을 속이니까 그 빈집에서 장롱을 짜고 있었어요. 제가 인제 제자로 들어가지요. 이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거기 딱 부쳐 주십디다. 거기 같이 살라고 있는데 저는 목수 밑에 심부름도 못하지요. 그냥 와서 밥 얻어먹고 앉았지 그럼 장롱 짜주는데 밥을 주는데 심부름꾼이니까 밥을 같이 주지 않아요? 목수 심부름꾼 밥이 꼭 두상 나오거든. 한상에 겸상해서 그러면 얼마나 맛있겠어요? 그래 밥을 먹고 있었는데 이 선생님이 오셨다고 어느 날 점심때 밥상이 들어왔어. 비가 오는 날인데, 낮이고 밤이고 어찌되었든지 하루 밤 잤든가 그래, 오셔서 하루 밤 자셨는데 새벽에 그러십디다. 그때 새로 한 세시나 두시나 되었는데 저는 그때 청년이라 너무나 잠이 많습니다. 잠결에 깨보니까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도 두 분이 앉아계신 것 같아. 느낌이 (끊김)
한분은 꼴을 뜯으면 쓰겠어요. 한사람은 양을 지키고 한사람은 꼴을 뜯어오면 쓰겠어요. 한 골짜기는 여자들, 한 골짜기는 남자들, 그리고 한 사람은 양을 지키고, 한사람은 꼴을 뜯어오면 쓰겠어요. 그게 인제 도구박골하고 큰골을 말하는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지금 도구박골을 금남언니가 와있거든 처녀가 제가 따라 붙었으니 남자 아니야 그래 요. 장로님 계시는 큰골은 남자를 두고 싶다. 양을 지키는 사람은 이 선생님이야. 집에서 말씀을 먹이고 꼴을 뜯어오는 사람은 지금 목수 질 하는 장로님이야. 돈 벌어오라는 거야. 먹을 양식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한 사람은 경제를 담당하고 한 사람은 정신을 맡아가지고 남자 공동체 여자 공동체를 그때 벌써 마음속에 염을 하고 있는 순간이에요. 마음에 발심이 되어 발심이 되었어요. 그 소리를 제가 기억하고 있어요. 그런데 인제 해가 떴으니까 일을 시작하셨어요. 그럼 일 시작하시고 아침밥이 나왔거든 두 상이, 아 저는 선생님 안 계실 때 밥 잘 먹었지요. 얼마나 밥이 맛있다고 수저를 딱 들었어. 장로님도 들고 뒤에 앉아계셔. 이 선생님 본래 밥을 안 잡수시거든 밥 잡수시는 때를 못 봐요. 일 년 열두 달 언제 비밀리 뭐 잡수시는지 몰라요. 밥 먹은걸 우리는 못 봤거든. 그래 앉아계셔. 굶고 앉아계신데 조그만 방에 뒤에 앉아계셔 밥을 이렇게 먹으려고 뜨는데 준호 요 앞집에 가서 밥 얻어오세요. 그러신다고요. 와 부끄럽기도 하고 비는 오고 밥을 먹고 싶은데 세 가지 만점이 있다고 가기 싫고 비오고 부끄럽고 어쩔 거야? 명령이신데 수저를 놔두고 이것이 평안하면 신을 신고가야 하는데 가기 싫은걸 갈라니까 맨발로 가버렸어요. 맨발로 갔어. 그러니까 거기가 구장 집 이었던가 봐요. 지금은 구장집이 아니야. 그때는 앞집이 그 집인지 모르지요. 척 들어섰는데 이거 어떻게 해야 쓰겠냐고 비는 오는데 여덟시나 되었는가? 아홉시나 되었는가? 모르겠어요. 어찌되었든 아침 식사 그 무렵이지요. 큰소리로 그랬던지 밥 얻으러 왔습니다. 빈손으로 갔거든. 딱해 이걸 주면 어디다 갖고 가나? 딱해. 아주 밥을 달라고는 해놓고 받을 데가 없지 않아요? 걱정 하는데 누런 그릇에다가요. 밥은 안보여. 껍질 뚜껑을 딱 덮은 유기그릇이야. 아주 빨간 치마입고 노랑 저고리 입은 갓 시집온 색시야. 아주 어여쁜 그 다시 말하면 며느리지요. 젊은 규수가 밥을 갖고 나오는데 줘요. 그래 그릇도 없으니 어쩔 거야? 그냥 그릇 채 받아버렸지. 요령도 없어. 그냥 딱 받았어. 너무 감사해서 고개를 팍 숙였어. 감사합니다. 그리고 허리를 굽혔다고, 정색으로 말해요. 왜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사람더러 감사하시오? 아주 꿰뚫은 철통으로 말해요. 보통 말이 아니야. 깜짝 놀랬지요. 부끄러워서 얼른 와버렸어요. 그래 인제 비를 맞고 오니까 초조하고 못 얻어오면 어쩌나 했던지 얻어오니까 좋아서 벌떡 일어나 가지고 처음으로 얻어온 밥은 내가 먹을 거라고 확 뺏어가 버려요. 앉아 밥 먹으라고 딱 제 껴 보니까 흰죽이라. 흰죽 규모 있는 집은 그런가 보데요. 부자 집은 흰죽을 쒀먹는가 낮에 아마 시아버지 드리려고 뒀던가 봐요. 다 먹고 자기가 아버지 몫을 주신 것 같아. 그렇게 해서 밥을 먹은 일 있고 한 일 년 후에 동란이 일어났거든. 그런 일 있고 한 이 년 후에 일어났는지 몰라. 그런데 그 부인이 구장부인이 되어갖고 쌀을 갖다놓고 갔다는 거예요. 그럼 그 부인은 왜 이 선생님을 알아 봤냐? 결혼 전에 예배당에 다니던 처녀라고 그래요. 그래 이 선생님 서로 안 만나고 말은 못해도 이 선생님이 예수 믿는 지도자고 그때 오 장로님이 제자인줄 서로 알지요. 그걸 듣고 알았을 뿐이지. 서로 교제는 없었다고 그런데 선교사 모시고와서 이 선생님이 다 나가고 혼자 있다는 것을 구장이고 구장 부인이니까 들음, 들음 짐작으로 알고 있어. 그러니까 자기가 그 생명을 무릅쓰고 양식 닷 되를 갖다 놓고 갔다는 거예요. 추리로 보탠 말이고 짐작으로 보탠 말이지만 사실이 그겁니다. 그러니까 한 서 되까지는 밥을 해주셨어. 두되 쌀이 남았기 때문에 이제는 그 양식을 문공님 하고 두 분이 갖고 오셨어요. 캄캄한 밤중에 두 분이 산속으로 오셨어요. 막까지 오셔서 문공님이 이렇게 부탁을 했어요. 제가 마을로 소개를 들어갑니다만 아무래도 우리 식구를 의심하기 때문에 우리 식구가 생명이 위태롭소. 나는 나이가 많아 죽어도 좋지만 철없는 어린것들이 제일로 마음이 안 되겠소. 그러나 내일이면 마을로 들어갑니다. 도저히 산에 못 있게 합니다. 그때는 이미 인제 전부 군청까지 국군이 들어와 버리고 수복이 되어가지고 전라남도 군수 옛날 소위 말하면 공산 하에 있던 서장이 그 소재마을에 와버렸어요. 도지사 군수 서장이 다 집결 되어 거기가 본부가 되어버렸어요. 소재가, 그래가지고 유격대 소위 말하면 공산주의 청년들이 삼 겹 사 겹 오 겹으로 지키는데 문바우 까지 경계지역이에요. 조석으로 경계하지요. 왔다 갔다 해. 서로 청년들이 총을 들고 경계지기 그런데 그러니까 그 아래 있는 사람을 산에 못살게 하니까 소개를 시켜 다 자기 마을로 다 데려가요. 그 새중간에 구장 부인이 다녀갔고 그렇게 사연이 되지요. 그러면 이제는 양식 두되가 있고 사람은 넷이 산속에 있거든. 그런데 서울 어머니라는 분은 따로 이야기 했지요. 이렇게 독립운동 하시던 어머니로서 서울로 해서 인제 옛 인연을 다 끊고 출가해서 도구박골에서 정착 하신지가 벌써 이 년차 되지 않겠어요? 아 해방되고 일 년인가요? 아 왔다갔다 년 수를 모르겠네. 어찌되었든지 해방이 되어가지고 육이오를 만났으니까 벌써 한 오년차지, 도구박골에 오신지가 한 삼사년 될 거란 말이야. 그 분이 주인이거든. 그런데 그 분은 잡수신 거도 없어요. 벌써 몸은 있으나 꼭 신 비슷한 분이야. 원체 일본시대 감옥에 가서 매를 많이 맞고 죽다 살아나가지고 음식을 입으로 모른다고요. 맛도 모르고, 무슨 음식이든지 한 끼 먹으면 한 삼일을 못 먹어요. 받지를 않아요. 위가 너무 고문을 많이 당하고 매를 빠삭빠삭 매를 많이 맞았기 때문에 그래서 쌀밥을 한 끼 먹으면 한 삼일을 못 먹어요. 쌀을 못 먹어요. 냄새가 나서, 그래 보리밥을 하루 먹고 굶고 쌀을 한 끼 먹으면 굶고 또 콩 먹으면 며칠 굶고 그렇게 하지. 바꿔서 밀 먹으면 또 굶고 풀이라도 도토리 아니면 늘 못 먹거든. 그러니 그 분 양식은 늘 도토리 아니면 호박이야. 호박 심어놓고 호박 한 끼 끓여먹으면 한 삼일 굶어요. 또 쑥국 끓여 먹으면 한 삼일 굶고 그런 분이야. 그러니까 얼굴이 누우래. 핏기가 없는 분이야.
그러니 양식은 자기 입에 안 댔다고, 이 선생님 쌀을 한 홉도 자기 입에 안 댔어요. 자기는 도토리만 잡수신다고 그러시데요. 도토리하고 호박만 잡수신다고. 그래 밥 해주기 위해서 거기 계신데 그 동안에 이 선생님이 열 번 스무 번 광주로 나가라고 말씀드렸다고 광주로 가시라고 말 할 때마다 빙긋이 웃어요. 아이고, 이 선생님은 나를 모르신다고 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고 나도 여자라고 나도 이 선생님 밥 좀 해드리면 나빠요? 나도 좀 선생님 밥 좀 해 주면 좋겠소. 나도 좀 소원 좀 이루게 해 주시라고, 내가 생명이나 살라면 여기 왔겠냐는 거예요. 서울서 취직해가지고 잘 살지. 나는 이미 세상에서 다 살았고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고 나도 하나님 일 하다가 죽을 거라고 절대 안 나가는 분이야. 죽음을 앞에 놓고 알고도 그런 분이기 때문에 찾아 계셨고 잠깐 차남씨 어머니가 오던 전날 밤 이야기 좀 해드릴게요. 저번에 한번 해서 들어서 아시는 분 들어서 다시 알 필요가 있어요. 왜 내가 광주 가서 살라면 광주가고 이 선생님 대개 앞을 내다보거든. 여기 있으면 죽습니다. 그러니 가라. 여기 있지 마라. 왜 못 나가냐? 그 이유야. 여기 있으면 죽는데 왜 여기 있어야 하느냐? 나는 왜 안 나가냐? 왜 내가 고집부리냐? 불순종이냐? 나는 그것이 아니다. 나는 나대로 사명이 있다. 내 생명에 대한 충성이다. 내가 세 살 네 살 철을 알았을 때는 벌써 부모를 눈으로 본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네 살 다섯 살 때는 부자 집에 가서 애기를 봐주고 밥을 얻어먹었고 아홉 살 때에는 그 집 물레 잣는 품을 앗아 줬다고 일찍 그렇게 조숙해 가지고 능히 할머니하고 하루 품을 앗는다는 거예요. 몫으로 아홉 살 먹어서 남의 집 물레 품을 앗아 주셨고 또 한 열 살 될 무렵에는 겉보리 방아품 이라고, 여덟시에 시작하면 새벽 세시까지 겉보리 디딜방아를 찌어야 하거든요. 겉보리 방아품 을 자기가 자샀다(맡다)는 거예요. 부잣집 몫을 자기가 가서 해주면 마을 사람들이 자기를 마다하지 않아요? 일을 잘해가지고 그러니까 열네 살 먹어서는 베를 짰어요. 무명베 삼베 모시베 그래서 부잣집에서 너무 일을 잘해주기 때문에 다른 부자 집에서 서로 뺏어갈라고 그랬어. 자기 몸을 서로 오라고 하고 그렇게 살던 때에 일본에 유학 갔던 대학생들이 농촌 계몽운동 와가지고 그 마을에 와서 기억 니은 국문을 가르쳐 줬는데 부잣집 아들딸도 학교는 안다녀요. 자기 집 부자 집 아들딸들이 야외에 가서 배워 와요. 기억 니은 가갸 거겨 밤마다 배운 것을 아침에 밥할 때 부엌에 앉아서 배웠다는 거예요. 뒤 답으로 부엌 마당에 쓰면서 기억 니은 가갸 거겨 그래 국문을 해득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부자 집 딸이 어제 밤에 우리는 선생님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하고 이야기를 해 줬습니다. 아버지를 찾자. 그렇게 말씀하십디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냥 자기 평생에 그 소원인 아버지. 아이고 나도 우리 아버지 찾아야 쓰겠다. 그냥 희망을 갖게 되어서 나도 그 선생님 만나게 해 달라. 그래서 그때만 해도 아무리 여종이라도 남자를 혼자 못 만나니까 남녀 유별해서 그 마을에 점잖은 할머니를 모시고 셋이 만났어요. 만나서 나도 우리 아버지 찾아주시오. 나는 애기 때 아버지를 잃었소. 그러니까 그 대학생이 웃으면서 아니 그 아버지 말고 우리 국가 독립운동 하자는 말이었소. 그러더라고 그 말 듣고는 그러면 나도 한국 사람인데 나는 독립 운동 못합니까? 우리 아버지 못 찾을 바에야 나라 아버지 찾을 수 없어요? 그랬더니 아니 당신도 우리나라 사람인데 왜 못 찾아요? 찾을 수 있소. 그래서 어떻게 그 젊은 나이에 그 희망 아 나도 우리 아버지 찾아야겠다. 그렇게 희망을 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가지고 아버지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지요? 간간이 서로 문의했겠지요? 여러 날 걸려서 길은 한가지이지요. 나도 이렇게 주목을 받아가지고 자꾸 일본 형사가 내 뒤를 재니까 학교도 못 다닐 성 싶으니까 만주로 망명합니다. 같이 갑시다. 아 그럼 나도 따라갑니다. 그렇게 해서 이제 만주로 망명하게 되었답니다. 그 이야기에요. 지금 이야기가 그래서 만주로 망명해서 가서 보니 대학생들이 망명해서 모인 식구가 대학생이 한 4-5명, 여자가 두 명 그렇게 해서 노숙을 하지요. 빈들에서 그런데 날이 추워 날이 추우니까 여자 대학생들은 시험이 들어서 가버리더라 그래요. 다 한국으로 다시 가버리고 대학생들도 다 가버리고 최후에 자기를 인도했던 청년만 남았어요. 그 새중간에도 할 말이 있어요. 밥을 하다가 늘 태우는데 여자대학생들이 나는 기억 니은도 모르지만 나를 시키면 잘할 텐데 그것도 안 시키더라 그래요. 그래 그러시데요. 나 그거 흉을 한번 내볼까 아갸갸 대학 간판 아깝다. 그 간판 나주지. 나주면 멋지게 한번 하겠는데 빨래 할 때도 퉁퉁 두들 겨 때려가지고는 전부 와이샤츠가 터져버리더라는 거예요. 아갸갸 대학 간판 아깝다. 나주지. 나주면 잘 할 텐데 그랬다는 거예요. 그러고 다 가버렸다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구술하니 밤새도록 하세요. 형제를 따라서 만주로 가서 둘이 남아서 만주서 살수 없고 장개석 총통 밑에 계신 김구 주석을 찾아 갔어. 김 구주석이 임시정부 소위 말하면 총 책임자 시니까 거기서 일을 보게 되요. 일을 보고 거기서 세월이 얼마나 흘러갔던지 거기서 소위 말하면 해방이 된 겁니다. 거기서 해방을 맞아요. 해방이 되어가지고 그 참 환희의 그것이 뭐여?
금의환향 한다고, 나라가 독립되고 아버지를 찾아갖고 노래를 부르고 북을 치면서 인제 배를 타고 인제 인천에 상륙했든가 상륙했어요. 부산에 상륙했든가 그래가지고 그 인산인해 대 환영을 받고 서울로 입성을 했거든요. 그 기쁘고, 기쁘고 그 황홀한 춤을 추면서 기쁘게 왔어요. 그러니까 서울에 들어와서 김 구 주석도 자리를 잡고 이 청년들도 다 자리를 잡았지요. 그리고 소위 말하면 임시정부가 와서 김 구 주석 이 승만 대통령이 초기 독립 소위 말하면 국회 무슨 이제 국가 소위 말하면 초기 운동을 그때 모두 할 때 아닌가요? 그런데 그 기쁨도 어디가고 자기를 지도하던 청년이 국가와 결혼하고 일생을 혼자살줄 알았더니 아 청년이 잡혀갈 때마다 이 서울어머니가 대신 잡혀간 거예요. 감춰주고 그 청년을 땅에다 비밀로 감춰놓고 대신 잡혀가면 대신 두들겨 맞고 그랬어요. 그 생명을 대신 죽어가면서 살려줬거든. 그 청년을, 그런데 하루는 이제 정부를 조직할 때 많은 정치 자금이 왔다갔다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하루는 큰 신문덩어리를 하나 가져다주더라는 거예요. 이렇게 찢어보니까 그 속에 황금 돈이 그득히 있더라는 거예요. 아 이 사람은 한국이 아버지고 독립이 생명이고 독립이 다되고 이제 뭔 돈이 필요 한가? 이상하다. 그런 생각을 한번 했다고 그래요. 또 얼마나 시간이 지나니까 자기 여자 친구가 와서 이 바보야 결혼 하려면 너하고 그 사람하고 해라. 어째 그 사람은 딴 여자하고 결혼 할라고 한다니 아니 그 사람은 결혼 할 사람이 아니야. 괜히 의심마라. 이 바보야. 내가 다 안다. 아 그 사람 결혼 안 한다. 세월이 흘러가다 보니까 참말로 결혼 할라는걸 알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픽 웃고는 그러면 내가 옆에 없어도 괜찮은 모양이니까 우리 이제 서로 갈립시다. 그런데 여자가 입던 옷은 남자가 못 입으니까 내가 따로 쌀 겁니다. 그러고 딱 같이 담아 놨던 거 같은 그릇에다가 딱 자기 옷을 이렇게 따로 싸고 또 둘이 같이 보던 그동안 공부를 많이 했어요. 많은 책이 있어요. 책만은 둘이 나눕시다. 예, 그럽시다. 그러더라. 그래요. 다시 말하면 옷 한보따리 책 한보따리 두 보따리를 가지고 나와 버렸어요. 잘 있으라고 나는 내 갈 곳으로 갑니다. 하고 그래 두 보따리를 가지고 갈 곳이 없어서 깊은 산속 절을 찾아갔어요. 거기는 70을 처녀로 늙으신 암자에 계신 주지스님이야. 그래서 나를 딸로 받아주시오. 평생 같이 모시고 살겠습니다. 그리고 양녀가 되어가지고 살았다는 거예요. 한 몇 달 그런데 곧 문제가 일어난 것은 남자는 마음이 하나 아니고 둘이더라. 그거에요. 왜 독립이 전부인줄 알았는데 독립이 되니까 다른 생각을 하냐 돈을 좋아하고 여자를 좋아하고 변질해 버려. 남자가 변질했기 때문에 떠났거든 그럼 우리 여자는 철썩 같이 천사같이 깨끗하다. 그거에요. 이렇게 70평생 수도하시고 나는 50이 넘도록 이렇게 조국에 몸을 바쳤고 우리 둘이 산다고 그랬는데 할머니 하는걸 보니까 부자가 불공을 부탁할 때 많은 돈을 주면 참 정성을 다해 밤잠을 안자고 기도하시고 가난한 사람이 쌀 한 되나 갖고 와서 불공을 부탁하면 그냥 한 15분이나 불공을 드리고 주무시고 그러니까 이래가지고 되겠는가? 진리를 찾아간 사람으로서 안 되겠다. 남자만 그런 줄 알았더니 여자도 매 일반 이구나. 그렇다고 내가 어떻게 할머니 믿고 살겠나 싶어서 이 인연 속히 끝내야 되겠다 싶어서 보따리 싸가지고 나왔어요. 나와 가지고 갈 곳이 있어야지. 어려서 듣던 말이에요. 아 히말라야에 성인이 있다는 격으로 아 남산에는 산속에 토끼가 산다더라. 아이고, 토끼 찾아 같이 살자. 그거에요. 남자도 믿을 수 없고 여자도 믿을 수 없고 내 사람 찾아 갈수 없고 이제는 토끼 찾아가자. 토끼 토끼야, 변심 할리 있겠느냐? 말이야. 고라니하고 토끼가 사는 곳 또 멧돼지가 사는 남산의 산속에 들어가서 일생을 지내야겠다. 희망을 품고 기차를 탔어요. 기차를 타고, 타고 가면 여수 아니면 목포에요. 종점이, 그러니까 종점에서 종점을 또 가든가 송정리역에서 갈아타면 여수가 종점이에요. 송정리역까지 와서 여수 종점까지 가던 길에 가다가 건너다보면 화학산이 보여요. 거기가 이양역이에요. 이양역에서 탁 내려버렸어.
무작정 산을 쳐다보고 아 저산에 들어가면 토끼가 살겠지. 그리고 내렸어요. 내려가지고 여관에 들어갔거든. 여관에서 얼굴이 퉁퉁 부어가지고 환자니까 돌팔이 의사가 달려붙었어. 내가 약을 가르쳐 드릴 테니 당신 병 낫소. 그러면 돈이 얼마 필요해요? 돈을 다 줘버렸어. 이 순진한 분이 병 나아준다니까 병을 나서 주지 않고 돈만 갖고 내빼버렸어. 아 돈도 없어지고 책도 보고 그거 뭐요? 책이요. 아 책까지 주시면 내가 약 더 좋은 것 드리겠소. 책도 가지고 내빼버렸어. 빈 털털이야. 그런데 추운 겨울에 입던 내복은 자기가 입고 있었어요. 내복 그 시베리아에서 입던 그것은 양털로 짠 계 옷이거든. 몸에 입은 건 지니고 있어. 그리고 쌀 한말인가 팔만 한 돈이 있어 쌀 한말 팔아가지고 산속으로, 산속으로 찾아온 곳이 도구박 골이야 이양역에서 한 거기도 4키로는 될 거에요. 차로 오면 와서 보니 수레기 어머니라는 분이 막치고 살고 있거든. 위에 골짜기에다 막을 쳤어요. 거기는 부르면 들릴만한 곳이지요. 막 들어오니까 수레기 어머니가 먹을 것을 가르쳐 주신다고 여름인데 뚝가리라는 풀을 먹으면 괜찮다고 그러더라는 거예요. 쑥은 너무 독해서 못 먹고 뚝가리 라는 풀은 지금 먹을 수 있소. 뚝가리를 가르쳐줘서 뚝가리를 캐먹고 살았다는 거예요. 벌써 그때부터 쌀 한 말 먹고 두되 남더라. 그럽디다. 일 년 내 먹었어도 곡식이 잘 안 들어가요. 소화가 안 되어요. 쑥도 좀 뜯어먹고 뚝가리 뜯어먹고 그러니 도토리가 나오더라는 거예요. 토끼한테는 미안하지만 우리 나눠먹자. 그러고 도토리 주워 다가 도토리 해 잡수시고 그럭저럭 한 것이 일 년에 쌀이 한말이 한 몇 되 남더라고 하시데요. 그래 인제 봄 되니까 호박도 심고 개간을 하고 싶어서 했는데 백 평을 할 작정으로 나무를 잘랐는데 이 세종 선생님 말을 들으니까 부인이 고추를 심기 위해서 풀을 뽑아 놓으면 그 너무 측은해서 다른 땅에다 묻어 주고 물을 줬다는 말을 듣고 너무 부끄러워서 50평만 개간하고 50평은 포기 했다는 거예요. 개간을 그 50평을 개간해 가지고 거기다가 호박심고 먹는 건 그것뿐이에요. 무 좀 심고 그것이면 일 년 먹어진다는 거예요. 왜 도토리 줍고 쑥 뜯고 뚝가리 뜯어먹고 풀잎 뜯어먹고 그거에요. 생채 식 생활이에요. 그렇게 일 년 이년 그렇게 넘어왔다. 그렇게 말하시고, 또 나무는 산 나무는 베지 않아요. 이 세종 선생님은 산 나무는 베지 않았다는 말을 들으시고 죽은 나무만 주워 다 때시고 또 겨울에 쌔가 겨울에는 죽습니다. 겨울에 일 년 땔 나무를 다해놔요. 총 일 년 땔나무가 우리가 이렇게 딱 묶으면 열 다발 못 되요. 나무를 그렇게 많이 안 때. 왜 몸에가 열이 있어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체온이 있어가지고 따뜻한 방에도 못자고 찬방을 좋아하시고 베개를 벨 때도 천으로 못 베요. 이 돌을 베야 해요. 돌을 베야 주무시고 요를 깔거나 이불을 덮지 못해요. 몸이 그래야 평안하셔. 바로 눕자니 하나님이 부끄러우니까 모로 개같이 누워계시고 그게 제일 행복하다는 말이야. 그런데 예수님을 알기 전에 이 공님을 알기 전에 거기 와서 살 때 막을 치고 살 때 막을 터를 닦으려고 할 때 청년 두 분이 그리 지나가다가 하루 터를 닦아준 사람들이 있다는 거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 이 현필 선생하고 오 장로님이드라 그래요. 그런 인연이 있다고 말하십디다요. 그리고 인제 그 아래 사시는 수레기 어머니가 하루는 책 한권을 갖고 와서 심심한데 이 책을 보시지요. 그래서 그게 신약 성경이에요. 주셔서 하도 책을 많이 보고 머리가 아픈 사람이라 그냥 사양하느라고 아이고 어머니 나 책 많이 봤어요. 가지고 가세요. 가지고 가세요. 그러니까 아이 두고 봐. 아이고, 가지고 가세요. 아 두고 봐. 아이고, 내가 뭔 책을 또 봐. 놔두고는 안 봐버렸어요. 몇 달이고 쭉 안 봐버렸어.
그래 어느 날 비가 왔던지 눈이 왔던지 몰라요. 딱 제켜봤다는 거예요. 그게 예수님의 복음이거든. 가난한자 복 있다. 우는 자 복 있다. 배고픈 자 복 있다. 핍박을 받는 자 복 있다. 그 말은 서울 어머니가 들어야 가슴이 울리는 말이야. 일반 사람이 들으면 그거 뭐 별 뜻이 없지요? 이 여자가 얼마나 배고팠으며 얼마나 진리를 사모해서 울었으며 얼마나 평화를 사모 했던가? 이 말은 진실로 폐부를 찌른 거예요. 그 어머니가 한번 읽었어도 확 성령이 통해버려. 성모님이 은총을 가득 입은 이여, 기뻐하라. 하듯이 한 번 보니 축복을 받아버렸어요.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를 위해서 기도하라. 원수에게 밥을 줘라. 이 서울어머니가 아니고는 그 말이 해당이 안 된다고 평생에 생명과 몸을 바쳤건만 이 여자를 다 배신했거든. 정치한다는 사람들 영웅주의자들 애국주의자들 다 배신했어. 배신당한 모든 원수를 다 사랑해. 다 축복하고 다 복을 빌고 그래 이렇게 평화를 얻었기 때문에 자 이 선생님이 나더러 생명이 위태로우니 광주로 가라. 나를 너무 모르시지 않냐 그거에요. 내가 생명이 아깝고 목숨이 아깝고 몸이 아깝고 그랬으면 내가 이 산에 왜 와있냐는 거예요. 이미 나는 죽은 몸 나는 예수를 만났어요. 죽으면 예수한테 가는 거고 살면 좀 봉사하고 같이 고생하고 뭣이 나쁘냐? 그러니 나를 이 선생님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이 선생님 말씀이 고맙고 감사하지만 생명을 살라고 광주 가라는 말씀은 너무 섭섭한 말이 아니오. 같이 죽자 그래야지 같이 십자가 지고 같이 하늘나라 가자. 그래야지 아니 여보 생명이 위태하니 광주 가시오. 그러는 건 조금 너무 감당하기 어렵다. 그래 내가 이 선생님 말씀에 불순종이 순종이요. 그거에요. 내가 광주 안 나가는 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그 사연을 쭉 이야기해요. 마지막 밥 싸놓고 밥이 다 식어버렸지, 그걸 갖고 올라갔지요. 산으로 올라갔어요. 그랬기 때문에 그 이튼 날 며칠 후에 차남씨 어머니 오시지요. 오시는데 오셔가지고 와서 보니 선생님 저 산속에 계신다고 그러니까 끌고 오셨거든. 산속으로 오셔가지고는 차남씨 어머니 조그만 막이 차렸어요. 옛날에 거기 계시고 우리는 저 위에 소리 지르면 들릴만한 상당히 위에 막이 있거든. 밥을 해 놓으면 제가 가지러 내려가요. 깊은 밤중에 총 재산은 쌀 두되거든 밥을 해주러 왔다 와서 보니 쌀이 없거든. 한 이틀 해주고 미안하거든 셋이 먹으면 빨리 양식이 줄어들지 않아요? 하루 한 끼라도, 둘이 잡수시면 하루 더 살라고 양보 할라는 마음에 눈물을 머금고 내려가는 거예요. 내가 있으면 내가 굶을 수 없고 내가 먹으면 선생님 한 끼 먹을 양식이 빨리 떨어지지 않냐? 그래 나는 내려간다. 그래 내려가신 거예요. 밥을 해놓고 인제 갖고 올라오실지 또 제가 밥을 갖고 올라갈지 이 선생님이 미안하지 않아요? 위에서 그러니까 이 선생님이 그 때도 그 환난 때 혼자 계셔도 밤중이나 새벽에 찬물로 목욕하신 분이야. 틈만 있으면, 밤중 한 열두시나 되었는데 제가 없는 틈을 타서 찬물로 목욕을 하셨는가 봐요. 물가에 막이 있으니까 고라니가 튀었다. 그걸 모르고 이 선생님은 내가 온 줄 알고 미안해서 밥상을 받으려고 뛰어 나왔다. 팬츠만 입고 그때가 10월이 넘고 11월 달인데 눈이 온 뒤지요. 첫눈이 왔어요. 물을 묻혀 가지고 뛰어 내려오다 보니까 고라니가 뛰어 내려가 버리고, 나는 안 올라오니까 제가 밥을 갖고 올라오면 올 시간이거든. 올 사람이 안온지가 벌써 한 30분 40분이 되었단 말이야. 벌벌 떨고 섰단 말이야. 막은 저 위에 있고 저는 아래 있고 꾀 벋고 내려오겠어요? 아래 막에 못 내려오시지요. 중간에 서서, 나는 또 그날 밤에 마지막 엄마가 하소연이라 양식 갖고 올라갈 테니 둘을 갖고 올라가자니 나도 폐병 환자야. 밥을 들고 가면 숨이 가쁠 테니 네 것을 먹고 가라. 그거에요. 선생님 밥은 갖고 올라가고 양식하고. 밥 한 그릇하고 갖고 올라가라. 그거에요. 나는 밥 먹고 가느라고 한 40분 동안 아래 막에 있었다.
선생님은 고라니 발자국 소리 듣고 밥상 받으러 나와 가지고 한 30분 서계셨어. 그래 몸이 얼어버렸다고. 굶고, 굶고 얼마나 추웠을까 벌벌 떨고 그래 제가 밥상을 갖고 가 선생님 막 속에 계신 줄 알고 가다가 중도에 벌 벌 떨고 벌거벗고 계시니 얼마나 정죄를 받아. 정죄 아이고 내가 이 밥이 원수다. 어째 내가 밥을 먹고 있었던가? 그거에요. 그때 그냥 갖고 왔더라면 선생님 고생 안 했을 텐데 아이고 내가 밥을 먹다가 선생님 이렇게 떨었구나 싶으니까 원망스럽고 선생님이 미워요. 왜 그랬을까? 그 말이야. 막에 계셨으면 고생 안 했을 텐데 무엇 때문에 마중 나와 가지고 고생하셨는가 싶으니까 죽겠어요. 선생님이 미웠다가 내 목구멍이 원망스럽다가, 그냥 어째 어머니가 하필 오늘밤에 밥을 먹으라고 했을까? 어머니가 원망스럽다가 아주 짜증이 나요. 그래 밥을 갖다 드렸어요. 그분이야. 이 선생님이야 말을 안 하지. 벌 벌벌 떨고 그래 인제 소위 말하면 인제 차남씨 어머니하고 마지막 이별이지요. 내려갔어요. 내려 간 다음에는 한 달 시월 말이면 십이월 한 십일까지 한 달 동안 종무소식이야. 서로 소식이 없되 우리는 믿기를 이렇게 믿어요. 둘이 내려가서 잘 계신가보다 그랬지 내려가셨으니까 다시 올수 없는 길이고 와봐야 양식도 없으니까 다시 오지 않을 것이고 그리고 제가 한 달 만에 이렇게 숲 속에 아래를 내려다 봤어요. 그래 서울 어머니 집에서 이렇게 연기가 나요. 아 두 분이 내려 가셨나보다. 텅텅 비었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밤중에 아무것도 없어요. 내려갔는데 방에 이렇게 보니까 아무도 없어요. 살림도 없어요. 아 두 분이 마을로 소개했는가 보다 그랬어요. 그래서 보니까 이런 오가리 굴러다녀요. 손을 넣어보니까 속에가 된장이 조금 남아있어. 아 얼마나 소금을 못 먹어서 아주 소원이니까, 된장 단지를 들고 올라갔다고 산으로 선생님이 해가 지면 서로 모이는 법인데 해가지자마자 와가지고 왔다가니까 근 삼사키로 되는데 한 2키로 더 되요. 상당히 밤중이 되었던가 봐요. 이 잡혀 죽은 줄 알고 선생님이 이제 아주 초조하게 앉아계시다가 오가리를 들고 들어가니까 어디 갔다 오냐고 아 서울 어머니 집에 다녀왔어요. 그거 뭐냐고 된장들은 오가리라고 괘씸한 놈이라고 내가 준호가 사람인줄 알았더니 오늘 보니까 사람 아니야. 짐승이야. 짐승, 그 오가리 단지를 속히 못 갖다 주고 올까? 그러신다고. 예, 하고 다시 나가서 아이고 죽자 사자 하고 다 소개를 하고 가서보니 삼엄하거든. 큰 사정이 문제 있구나. 하고 왔기 때문에 아이고 오늘밤에 내려가면 잡혀죽겠구나 싶어요. 그러나 잡혀죽을 성 싶어도 명령이 떨어졌으니 괘씸한 놈이라고 해놨으니 억지로 순종해야 쓰겠다고 오가리를 들고 내려가다가 꾀를 냈어. 속에 든 된장이 한 숫가락 있는데 내가 선생님을 사랑해서 된장단지를 갖고 왔지 내가 미워서 가지고 왔나? 내가 그래도 된장을 훌 터놓고 가져가야 쓰겠다고 딱 칙잎사귀에 싸놓고 가져갔다고 소금도 한주먹 싸놓고 그리고 내려갔으니까 된장 단지를 들고 그 막 속에 들어갈 때 몸에서 비지땀이 흘러요. 공포심이 나가지고 꼭 주은 데 가서 가만히 놔두고 곧 콱 몸을 잡을 것 같아요. 불안해서 이렇게 뒤돌아봐도 안 쫒아 오데요. 오다가 배가 원수라고 다 얼음이 들었어. 서울 어머니가 심어놓고 아직 뽑아가지 못한 무가 몇 개 발에 밟혀요. 얼음이 얼어서 꽝꽝하데요. 그거 몇 개 뽑았어. 얼음을 또 갖고 올라갔어요. 올라가서 선생님한테 가서 부끄러우니까 아무것도 못하고 잦지. 그럼 이제 산속에 남아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벌써 쌀이 한 되나 남아있을 거예요. 호박 하나, 아 그 이튼 날 문공님 집까지 가봤어요. 문공님 집에 가보니까 소개를 하고 안계시고 호박이 한 개 있습디다요. 윗방에가, 그리고 부엌에 통보리가 이렇게 쏟아져 가지고 한 홉이나 있고 호박하고 통보리하고 갖고 올라왔거든. 그런 게 있어요. 총 재산이 호박 한 덩이 통보리 한 홉 또 된장 한 수저 소금 한 저분 그리고 쌀은 떨어졌어. 인제 어머니들 가신다음에 제가 어떻게 살림했냐 하면 처음에는 둘이 한 홉씩, 밤중에 한 홉씩 해서 먹었어요. 쌀이 줄어들어서 한 홉 해가지고 둘이 나눠먹었어. 며칠 사이에는 또 한 홉으로 둘이 나눠먹어도 선생님은 끄떡 안 해요. 광주 간다는 말 안하니까 어떻게 해? 한도 끝도 없이 세월이 가니까 그래가지고 안 되겠다 싶어서 반 홉 가지고 둘이 하루를 살아요. 또 쌀이 차근차근 보름달이 작아져 가지고 그믐달이 되어버렸지. 쌀이 동이나 버렸다고 그러니까 인제 보리 좀 한 홉 있나? 이것을 반 홉 가지고 둘이 밤중이면 따뜻한 물 끓이면서 두면 푹 터지거든. 보리가 툭 터지면 수저로 건져가지고 선생님 한 수저, 저 한 수저 먹는 거예요. 선생님이 그 보리 두 수저나 될 거에요. 삼키면 아깝지 않아요? 한 알씩 먹어. 한 알씩 톡톡 깨물어. 물에서 했기 때문에 아주 싱겁지만 그 달고 고소하고, 그 맛은 이 선생님이 그러시더만, ‘보리 맛이 이렇게 좋은가? 이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보리 맛,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내신 보리 맛이다. 아 이 보리 맛이 이렇게도 깊고 이렇게 생명력이 있는가?’ 보리도 떨어지지요. 보리를 먹고 감자도 조금 있었던 거 같아요. 감자도 한두 개 나눠먹고 그날은 무릎이 힘이 있어요. 그 다음에 그거 떨어지고 보리 떨어지고 인제 호박을 나눠 먹어요. 호박도 먹어버리면 그냥 먹어지니까 호박을 쪼개가지고 조그마하게 두 쪽을 해가지고 한 덩이 먹고 한 덩이 두고 호박도 작아지지요. 다 쪼개 먹었지요. 호박 먹을 때 한 조각만 먹어도요. 걸어가 보면 무릎에 힘이 좀 있습디다. 그런데 호박 보다는 그 원 힘이 그렇게 나중에 제일로 힘이 없는 것은 얼어버린 무 얼어버린 무는 쓰 더만, 얼어버린 무는 아무리 한 두 끼 먹어봐도 아무런 힘이 안나요. 그렇게 이제 마지막 무가 떨어지고 동이나 버렸지요. 완전히 양식이 동이나 버렸다고요. 그래 인제 이 선생님보고 제가 그래요. 저는 죽기 싫지 않습니까? 죽기 싫어서 죽기 싫도록 냄새가 나데요. 죽음 이라는 냄새가 코에서 어떻게 나는 고 하니 쓰디쓰데요. 아 써요. 그냥 죽기 싫어서 그러면 죽기 싫으니 밤중에 낮에는 숲속에 숨어야 해요. 아무리 눈이 왔어도 이 막은 드러났으니까 보면 쫒아오거든. 그러니 숲속에 숨어있는 데 밤에 딱 와서 둘이 숨어가지고 이불속에 들어가서 그 땅위에 이불 한 채가 있어요. 이불속에 들어가서 이렇게 전부 둘이 들어가 버리지요. 이렇게 어머니 뱃속같이 이불속에 들어누워서 죽기 싫으니까 선생님 광주 갑시다. 나는 부끄러워서 못가겠소. 상당히 전혀 죽었다는 구체적인 말을 안 들었어요. 그러나 영으로 아는가 봐요. 내 생명을 살려주려고 모두 죽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까 세분이 죽었어요. 그러니까 인제 차남씨 어머니가 내려갔지 않아요? 서울 어머니가 혼자 살 때는 저 사람들이 매일 그 앞으로 지나다닌다고. 그 군인들 소위 말하면 저기 도지사 저기 군수 저기 서장을 호위하는 군인들입니다. 인민군이 아니에요. 지방 유격대들이지요. 그런데 아침에 보니까 여자가 혼자 사는 막에 오후에 보니까 그 이튼 날 보니까 둘이 있으니까 의심을 했다고 이건 광주서 온 첩보다 이거에요. 우리 이 비밀을 캐러온 스파이가 들어왔다. 이건 이 사람들의 계열은 선교사다. 미군이 이 사람을 보냈구나. 이렇게 추정한 것 같아요. 이래가지고 두 사람을 체포해 간 거예요. 그래가지고 전부 살림을 압수해 간 거예요. 그래 인제 두 분이 형을 받게 되어 재판을 받고 사형언도를 받고 인제 날짜가 정해져가지고 화지기를 씌워갖고 마을 앞에 주리를 틀어놨다가 죽으러 가게 되요. 두 사람을 포승을 엮어가지고 산으로 끌고 가는데 그 소문이 마을에 싹 퍼지지 않아요? 마을에 그 문공이 부인하고 한 가족이 있는데 그 정보가 들어오거든. 두 여자가 지금 사형장으로 끌려간다. 분명히 서울 어머니하고 차남씨 어머니거든. 자기가 알기에 자기 부인이 자기 남편도 잡혀갈까봐 이불로 감춰나 버려요. 이불을 탁 벗겨버리고는 아니 두 분이 잡혀간다는 말이 참말이냐고 그러더라고 나 좀 나가 보련다고 혼자 어디 있겠냐고 두 사람이 잡혀가는데 혼자 있겠냐는 거예요. 나가 보니까 잡혀가니까 따라가요. 쫒아가. 왜 그 사람들 끌고 가요? 이 사람들 스파이라고, 죄인이라고. 나도 같이 예수 믿소. 나도 끌고 가시오. 아 너도 같은 패냐? 이리와, 그래 세 사람을 끌고 가요. 두 여자는 다른 군인들이 두 사람을 끌고 올라가고 큰골로 갔대요. 큰골, 남자는 다른 사람이니까 다른 군인이 문공을 끌고 다른 골짜기로 끌고 가요. 그러면 그 차남씨 어머니하고 소위 말하면 서울 어머니는 걸어가다가 둘이 이야기해요. 우리들 신이 아직은 더 신겠는데 이거 벗어놓고 갑시다. 마을 사람들이 주워 다 신도록 그럽시다. 그래서 길을 가다가 넓적한 돌 위에다 나란히 흰 고무신을 벗어놨어요. 그걸 나물 캐러 갔다가 주워 다가 신었다는 소리가 있어요. 그 마을에서 내가 들었거든요. 주워 다 누가 신었다 그래요. 그리고 맨발로 끌려가는 거예요. 그 큰골 같은데 말 들어보면 장로님 살던 골짜기에요. 얼마큼 들어갔는지 본 일은 없어요. 총을 놓으면 국군이 쫒아 오니까 이 경찰이 쫒아오니까 총을 못 놓고 대창으로 살해했다고 그래요. 두 여자를, 그래가지고 문공님도 대창으로 이렇게 해서 다른 골짜기에서 살해했다. 그렇게 지금 들려오지요. 소리가 마을 사람들 통해서 전전기별로 그것은 이 선생님이 광주 오셔서 후에 들은 거구요. 아 어디서 들었는가 하니 등광리에 와서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실상은 듣지 않았을 때 그랬어요. 나는 부끄러워서 못 간다고 내가 무슨 면목으로 광주를 가냐? 나도 죽어야할 죄인이다. 죽어야할 죄인인데 잡혀 죽기는 싫다. 그거에요. 왜 나만 죽자. 나 죽인 사람은 어떻게 하냐? 이거에요. 무책임하게 나 죽인 사람은 불쌍하지 아니하냐? 잡혀 죽는 것은 안 되겠고 굶어죽어야 하겠다. 그거에요. 사람이 태어나서 제일 행복한 죽음이 굶어죽는 거다. 제일 행복 된 죽음은 굶어 죽는 건데 나더러 가라는 거지요. 광주로, 죽기 싫으니까 준호 나가시지요. 준호 광주 가시오. 나는 죽어야 할 죄인이고 잡혀 죽기는 싫고 굶어죽어야 하니까 나 두라. 그냥 나는 여기 있고, 그리고 혼자 가라. 날마다 시험이에요. 준호 광주 가시오. 광주 가라고 나가라고 그러니 인제 광주 같이 갑시다. 라고 못하지 않아요?
그러다가 또 한 이틀이나 사흘 있다가 선생님 광주 갑시다. 나는 부끄러워서 못가겠소. 새가 울거든. 밤중이라, 선생님 새소리 들리시지요? 들리오. 선생님 새 소리는 안 부끄럽소? 내가 그랬어요. 그러니까 글쎄, 준호 말 들으니 새 소리도 부끄럽소. 그렇게 말씀하시데요. 또 자꾸 그러지, 자꾸 갑시다. 나는 못가겠소. 가고 싶으면 혼자 가시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는 거예요. 눈이 많이 와버렸지요. 며칠 인제 다 먹고 그러고 며칠 피가 떨어지니까 정말 앞이 캄캄하데요. 그럼 이제 죽기 싫으니까 코에서 쓴 내가 나고 선생님은 굶어 죽는다고 안 나가시고 어떻게 유혹이, 꾀를 갖고 있지. 아이고, 밥 먹고 싶어. 그랬어. 역심으로 그랬어. 선생님이 제자가 밥 먹고 싶다고 하는데 속이 얼마나 아프겠어요? 그래서 준호 지금 무엇이 먹고 싶소? 하루 밤에는 물어봐요. 그래서 얼른 생각해 보니까 엉겁 김에 누가 콩 볶아주면 먹고 싶소. 그랬어요. 그때는 그렇게 생각이 나데요. 콩 볶아주면 먹고 싶다. 나는 누가 찹쌀밥 한 그릇 주면 먹고 싶소. 그래 선생님이 그러세요. 그러고 또 며칠 지내는데 내가 유혹을 늘 했거든. 밥 먹고 싶다고 하고 마음이 약해지셨어. 그때는 확실히 약해 지셨어. 그러면 초저녁 인제 10시나 돼서 만났으니까 오늘밤에 갑시다. 그러데요. 그러자 마지막 아껴놨던 호박 한쪽 있어. 그 마지막 성찬이야. 호박을 삶아가지고 둘이 쪼그마하지요. 마지막 나눠먹고 선생님께서 신을 신자니 신이 있어야지. 거기 선생님 신은 짚신인데 짚신을 달밤에 새로 세시나 돼서 여기 거적이 출입문 있는데 거적 뒤에 거적을 뚫고 누가 들어와요. 달밤에 거적을 뚫고 머리가 쑥 들어와 달밤이라 비쳐. 이 사람도 인민군한테 사형 선고를 받고 사형장에 끌려가다가 옷 다 벗기고 벌거벗고 인제 변소에 간다고 거짓말 해가지고 탈출한 거예요. 숨을 데가 없으니까 깊은 산속에는 이 선생이 숨어있다는 말 알고 있어. 마을 청년이라. 인민군에 종사했는데 변절했다고 죽여 버리려고 하는 사람인데 돌아섰다고 국군으로 그러니까 인제 이 선생님 막을 찾을 수가 없지. 열두시가 넘어서 제가 삭다리(죽은 가지)를 땄거든. 삭다리 꺾은 소리가 한 일키로는 더 갈 거예요. 똑, 똑 소리가 났던가 봐요. 그 소리를 염을 두고 찾아왔던가 봐요. 선생님이 있다고 가정하고는 무조건 뚫고 들어온 거예요. 빈 막인지 모르지만 뚫고 들어와서 이렇게 보니까 사람이 둘이 있지 않아요? 누구냐고? 나 아무개요. 들어오라고 만났거든. 뭐를 먹었으며 굶었다하고 옷을 어쨌으며 빼앗겼다하고 그러면 셋이다 굶게 생겼지 않아요? 그러면 구장이 이 선생님을 지지하는 참 의인이야. 청소 청소구장을 찾아가서 내가 말하더라고 양식을 주라고 하면 주실 것이오. 벌거벗은 몸이니까 옷도 좀 얻어 입고 그 마을 청년이니까 내 이 현필 이라고 내가 심부름 하더라고 하면 주실 것이오. 그러니 이 신을 신고가소. 하고 줘버린 거예요. 그러면 그 짚신을 신고 그 청년이 내려가서 올 줄 알았는데 안 와버려. 한 일주일이가도 다시오면 잡혀 죽을 텐데. 올 거요? 내빼버렸지. 그러니까 나중에 말 들으니까 구장한테 쌀 얻어가지고 다른 데로 가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그 사람도 안 와버렸기 때문에 선생님은 신이 없다고요. 저는 신이 있어요. 여자 고무신 한 짝 남자 고무신 한 짝 그런데 바로 신으면 커서 거꾸로 신었어. 그러니까 흰 고무신 한 짝 검정 고무신 한 짝. 그런데 선생님이 오늘 갑시다. 그래요. 그래 호박 한쪽을 먹고 내일 새벽에 갑시다. 그리고 인제 총 재산이 냄비 하나하고 이불 하나하고 성경 한권이거든. 그러니까 냄비하고 성경을 싸놓고 이불 묶어놓고 인제 풀어갖고 자지요. 새벽에 떠나려고 자는데 일어나시지요. 일어났어. 새로 한시나 두시 되었어요. 바라고 바라던 환고향, 이제 뛰 떠난다. 하고 선생님이 짚신 아예 없으니까 헝겊 헝겊으로 떨어진 헝겊이 있던지 발을 감아요. 모두 헝겊이 쭉쭉 무너져. 썩은 헝겊이지만 짚신을 감아 떨어진 짚신이 있던가, 짚신을 신으셨는지 모르겠네요. 이렇게, 이렇게 감았는데 떨어진 짚신이 있었는지 그건 확실히 생각이 안 납니다. 선생님 모자가 있어요. 모자를 딱 쓰고 저는 무거운 성경하고 이불을 지고 선생님은 가벼운 냄비를 딱 짊어지고 이불을 자던 놈을 딱 개서 졌지. 아 냄비 속에다 성경을 넣어서 선생님이 짊어지고 이불이 무거웠던 거 같아. 이불을 내가 짊어지고 이불이 큰 이불이야. 고아들이 10명 20명 한꺼번에 덮던 이불인데 이불도 솜이불이 아니야. 모두 헝겊 떼기 이불이니까 무겁지 않아요? 딱 짊어지고 막 문을 착 열었다. 눈이 확 쏟아지는데 선생님 나가서 한발자국 딱 떼더니 아이고 앞이 캄캄해서 한 치가 앞이 안보여. 아 굶어 버리니 앞이 보이겠어요? 못가겠소. 하고 막으로 다시 들어가 버리니 아이고 섭섭한 거, 아이고 울고 싶고 그냥 못가겠다고 방으로 쑥 들어갔으니 어쩔까? 추우니까 이제 다시 요를 펴고 들어누웠다고 조금 누웠다가 눈이 보이면 떠납시다. 이불 딱 펴고 잠자다 보니까 벌써 새벽 네 시 반이나 되어버렸던 거 같아요. 다섯 시나 되었던가봐. 얼른 이불 개가지고 짊어지고 보인다고 나서 선생님이 앞서서 인제 도구박 골을 지나서 그 밑에 마을 문바위지요. 거기도 빈집이 한 세 채 있어요. 문바위를 지나서 성생님이 앞서서 가요. 열두 모퉁이를 지나서 등광리라는 그 마을을 가려면 약 2키로 더되지요. 그런데 열두 모퉁이라는 데가 한1키로나 되는데 여간 멀리 돌아가는 길이야. 앞서 가세요. 한 다섯 시 쫌 못되었을 거예요. 새벽 4시 40분이나 되었을 거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혈기가 많지 않아요? 젊어서, 선생님 이리로 가면 가까워요. 그랬어. 질러보면 거기가 등광리 같아요. 거기가 그 서당골 이라고 골짜기 같아. 산 넘어가면 그럼 앞서시오. 준호가 앞서라고 뒤로 딱 가셔버려요. 총 총총 길이 있기에 올라가다보니 거기가 밭길이든가 가다보니 밭이 끝나버리고 가시밭이야. 첩첩산중이라고 그런데 벌써 다섯 시가 되었든가 저쪽에서 막 전령이 내려와 총 총이 서있거든. 이렇게, 이렇게 소리 지르면 자꾸 그 전달하는 말이 쭉 한 10리 밖에 가거든 역전까지 십리 이십 리 전달 전령이 서있어요. 벌써, 그 옆으로 우리가 왔기 때문에 다시 선생님이 가던 길로 가자하면 큰일 나지 않겠어요? 제가 앞으로 모시고 가야겠는데 뒤 돌아 보니까 훤해 진다고 되돌릴 수 없는데 길이 없으니 어떻게 하겠어요? 내가 그때 참 후회 했어요. 이럴 때는 무조건 예, 하고 따라가야지 선생님 이리 갑시다. 의견을 내는 게 아닌데 내가 이렇게 말해가지고 청년의 혈기로 선생님의 의사를 무시한 것이 큰 화를 받게 되었다고 죽으면 나 때문에 선생님이 잡혀 죽지 않아요? 어떻게 정죄의식이 되는지 죽겠습디다요. 아까 왜 내가 선생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고 따라가지 못하고 아무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 캄캄한 밤중에 이리 갑시다. 참 그야말로 맹목적인 생각이에요. 이왕 왔으니 어째요? 그러니까 내가 불안한 걸 눈치 채고는 이러시데요. 이렇게 일이 되면 길이 막히면 평지로 내려가면 안 됩니다. 무작정 높은 산으로 올라가야 되어요. 그러세요. 그렇게 힌트를 주시기 때문에 무작정 산으로 올라가 버렸어요. 그러니 상당히 올라가니 야산이니까 산 절정에 산봉우리가 나와 버리데요. 그러니 무작정 올라왔으니까 무작정 내려가 버리지요. 내려가니까 벌써 훤해져 버려요. 본인이 거기가 집이 한 채있어요. 거기서 아버지 어머니 아들 전 가족이 살해당한 거기도 구도자의 가정이에요. 예수만 믿기 위해서 출가하던 가정인데 그 사람도 거기서 예수 믿는다고 체포 되서 다 살해당했어요. 살해당한 집인데 그 집에 들어갔어요. 속도모르고 국군이 그때는 국군이 적어도 이 대한민국 정치가 등광리 마을 한 5백 미터 밑에 마을이 있거든. 거기까지 이를테면 일반 대한민국 군인이 와있는 줄 알고 간 거예요. 지금 지혜를 못 떠난 것뿐이고 빈집에 들어가 있어요. 고양이가 배가 고프니까 울어쌓데요. 상당히 큰살림인데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것도 없고 참 거기는 쌀 한 톨이 없데요. 싹 가져가 버리고 있는 것은 숯이 조금 있습디다요. 마당에 숯을 먹었어요. 그런데 두 사람이 다 눈 속에서 산속을 헤매기 때문에 녹으니까 물이 줄줄 흘러요. 선생님이나 저나 온몸이 저고리까지 그러니 날이 춥지 않아요? 그런데 쑥을 말려놓은 것이 조금 있어요. 그분 재산 그 집에서 남겨놓은 재산은 숯하고 쑥이 조금 있어요. 그걸 모아가지고 갖고 들어갔어요. 그리고 파란 파가 몇 뿌리 남았데요. 그걸 뽑고 우선 배가 고프니까 그런데 성냥이 없다고요. 성냥이 있으면 불을 켜고 몸을 좀 말려야겠는데 그래서 숯을 놓고 쑥을 놓고 둘이 벌벌 떨고 거기 소위 말하면 헛청에 들어앉아있지요. 그래 인제 방에 자리가 있기에 자리 밑을 보니까 성냥 꼬투리 하나 있어요. 껍질을 찾았어요. 그래가지고 착 나무 모아놓고는 이제 불이 일어나려 나 탁치니까 확 꺼져버리는 거예요. 얼마나 허무한가? 그래 성냥 하나가 이렇게 귀한가? 그때 알았어요. 보리쌀이 이렇게 맛있는지 그것도 알았지만 성냥 숨겨 놓은 거, 된장 소금 나눠먹을 때 얼마나 행복했다고, 소금 맛이 이렇게 좋은가? 된장 맛이 이렇게 좋은가? 그것도 참 다 깨달았지요. 깨달았고, 아 이 성냥 꼬투리 하나가 이렇게 귀한 것인가? 탁 꺼져버렸으니 어떻게 해서 그래서 인제 몸을 수색해 봐요. 요행으로 기도도 해보고 아이고 세상에 어디가 성냥이 있을까? 여기 딱 잡혀요. 이건 뭣이냐? 수레기 어머니 남편, 수레기 어머니 남편이 사무엘씨 아버지거든. 그분도 그때 나이가 늙어요. 이 선생님 아버지도 늙고 수레기 어머니 남편 그 분도 늙기 때문에 두 분은 무상출입이야. 다시 말하면 인민군들한테 왔다갔다했어요. 늙은이니까 그런데 재위에 가시다가 의심을 받고 이 선생님을 마지막 기별이 왔어요. 다 광주로 나가고 인제는 마을에는 한 사람도 없이 다 갔으니 이 선생은 안심하시오. 그 말하러 오셨어요. 깊은 산속에 막으로 할아버지니까 그런데 그때 그러시더만 이제는 다시 못 오겠소. 어떻게 경계가 심하고 거리거리에 수색을 당하니까 다시는 못 올 테니 다시는 기별할 사람이 없소. 최후의 말 하러 오셨어요. 오셔가지고 오셨으니까 인제 불을 켤 것 아니요? 막에 산속에 그 할아버지 오셨을 때 할아버지가 성냥을 탁 켜 시더만. 그런데 할아버지가 손이 떨리니까 탁 떨어져버려. 다 불속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할아버지가 켜다가 쏟아져 버렸어. 마지막 그것이 문바위 속에서 마지막 불 켜는 장면인데 그때 성냥 하나가 눈에 보여서 세 개인가 얼른 주어가지고 넣었던가 봐요. 옷이 떨어져서 찡겨가 있었나봐. 여기 만져보니까 있어요. 성냥 세알이 그래갖고는 또 실수할까봐 탁 켰더니 확 일어나 불이 와 딱 하나님을 만난 것같이 얼마나 감사한지. 확 타가지고는 쑥에 붙어 확 일어나니까 후끈하데요. 이 선생님 잠들었다가 아이쿠 뜨겁다고 깨갖고는 둘이 옷을 말린다. 말리느라고 해가지지 해가졌어. 어찌되었든지 그 파뿌리 조금 뽑아가지고 솥에 익혀가지고 둘이 조금 나눠먹고 속이 아프니까 못 먹겠데요. 쪼금 몇 뿌리 나눠먹고 그리고 밤중에 등광리 들어간 거예요. 등광리 들어가면 호강하고 발 뻗고 자고 찰떡도 얻어먹고 쑥떡도 얻어먹고 콩도 얻어먹고 그럴 줄 알았지. 거기는 인제 예수 믿는 사람 마을이니까 이 선생님 그렇게 지혜가 있어요. 저는 급하니까 밥 얻어먹어야 하니까 쑥 가는데 안 된다고. 길로 쑥 그때는 제가 양보했어요. 어제 큰일 날 뻔 했지요? 선생님 이리 갈라하니까 선생님 돌아갈라는데 질러간다고 이리로 갑시다. 해서 혼났으니까 오늘은 쑥 마을로 들어갈라니까 준호 안 된다고 돌아가자고 길이 없는 물 따라서 삥 도니까 한 30미터면 집이 보이는데 100미터는 돌아가시거든. 집이 보이는데 빙 돌아서 소위 말하면 그 엄마 복희씨 어머니가 식구가 십여 명 살고 있던 공동체가 있었다고. 산 밑에, 그 마을을 피해서, 피해서 밭으로, 밭으로 해서 그 집을 쑥 들어갔어요. 그날 밤 눈이 오기 시작해. 발자국이 쭉쭉 보이잖아요? 그때가 밤중 열시나 열한시나 되었을 거예요. 눈이 와버리니까 인적이 없고 조용하니 마을 변방이니까 참 아무도 모르지요. 그런데 선생님은 문 밖에 서고 저 혼자 아 들어가면 떡도 해주고 쌀밥도 해 주겠다 싶어서 쓱 들어갔어. 누구 계세요? 아무소리가 없어. 집이 두 채인데 아래채로 가서 여기 누구 계세요. 아무소리가 없어요. 여기 복희씨 어머니 안계세요? 문을 탁 열어요. 들어오라는 말도 안했는데 쑥 들어갔지요. 그러니까 인제 그랬던가 봐요. 옷을 말리다 누렀거든. 이 옷을 축축한 거 말릴 때 누러가지고 여기서 담배냄새가 났든가, 그런데 소리는 준호 소리인데 냄새는 담배냄새니까 준호 소리를 가장한 스파이겠구나. 생각하고는 함구하고 말을 안 해준다고 계시오? 음 음 음 복희씨 어머니 계시오? 음 음. 이러신다고 당신이 준호요? 그래 안 해도 내가 당신을 잡아가지고 지금 갖다 줄라고 한다고 잘 왔소. 아니 여태까지 당신 잡아서 바치려고 잘 왔소. 그래서 내가 그랬어. 아니 서울 어머니하고 차남씨 어머니 소식 아시오? 문 공 소식? 누가 듣기에 그 분들이 사형 당했다고 들려요. 그거 처음 들었다고 확실히 모르겠다고 그래 내가 우는 소리를 했어. 그 말하니까 준호 냄새 보니까 담배 냄새나니까 아닌데 문 공 서울 어머니 차남씨 어머니 물어보니까 확실히 준호는 준호인가 보다 그랬던가 봐요. 그저 지금 어디가 살지요. 옛날에 경찰관이 인국 씨, 인국 씨가 저 뒷방에서 듣고는 쫒아왔어. 그런데 그러시더만 어머니가 어린 애기들 고아들이 한 7-8명 있는데 여기 계셔도 좋지만 이거 탄로되면 이 선생하고 숨어있는 거 다 아는데 인민군 패가 다 아는데 이 나는 죽어도 괜찮소. 복희씨 어머니 말이 어린것들이 죽는 것이 뜻이 아닌 것 같다고 그러니까 눈이 오고 있으니 그냥 나가시는 것이 쓰겠다. 그래요. 그렇게 합시다. 그랬어요. 그냥 나갈 테니 잘들 계시라고 인국 씨가 어머니 감자 있지 않소? 겁 김에 감자를 집어갖고 줘요. 캄캄한 밤중에 감자가 세 개에요. 다섯 개인가? 세 개인가 한주먹 줘요. 큰놈 작은놈 얼른 받아가지고 나왔지. 이 선생님 기다리고 계셔. 그러니까 소식이 궁금하지 않아요? 가십시다. 모시고 나왔어요. 내가 그랬어. 이불 짐이 무거우니까 갖고 가면 힘들다고 여기 두고 갈란다고 그러니까 아이고 가지고 가시라고 여기 놔두면 흔적이 있지 않냐? 그래 이불 짐이 짐 덩어리야. 마지막 죽느냐 사냐 하는데 이놈을 짊어지고 죽을 필요는 없고 그래 인제 거기를 아끼기 위해서 짐을 짊어지고 나온 거예요. 실상 거기 흔적 없애기 위해서 그 무거운 짐 덩어리를 이불 짐을 지고 다시 천태산을 오르기 시작해. 이 선생님이 그러데요. 일이 이렇게 되면 다시 문바위로 들어갑시다. 산을 올라가야 살지, 내려가면 죽는다는 거예요. 첩첩이 지키고 갈 곳이 없어. 여기가 대한민국이 아니야. 지금 적국인데 우리가 살라면 올라가자. 도구박골로 가면 굶어 죽을 걸 생각하면 아이고 코에서는 쓴 내가 나고 못가겠어요. 그래서 막 내빼버렸어. 선생님이 가자고 하는데 안 따라 갈라고 막 앞으로 가버려, 버렸어. 따라오셔, 자꾸 따라오셔. 그리고 천태산을 기어오르는 거예요. 광주 쪽으로 길이 없는 데로 넘어가는데 그래도 나뭇길이야 울라가는데 능성이 옵디다요. 못 가게 하려고 늘 내려가 버리지. 능선을 넘어서 그런데 거기가 집이 한 세 가구 있어요. 큰집이 거기가 어딘지 몰라. 그래서 한번 같이 데리고 갈라고, 먼데서 개가 사람 소리를 들었던지 쾅쾅 짖어요. 그래서 유격대들이 전기 불을 확 비춰. 거기도 지키고 있어. 산 넘어 깜짝 놀래가지고 막 올라오지 겁을 집어먹고 이 선생님은 지쳐가지고 따라 오다 따라오다 저 능선위에 앉아계셔. 어째 거봐 그 뜻이야. 어째 속으로는 아 선생님 말씀에 항복했다 했지요. 인제 죽더라도 선생님이 산에 올라가자하면 따라간다. 그거에요. 그럼 어째 내려갈까 올라갈까 그 말이에요. 올라가자. 올라갑시다. 기운도 없고 이제는 얼어 죽으러 올라간다는 생각을 하니까 가기도 싫고 이렇게 올라가는데 저는 청년이니까 올라가지 않아요? 왜 고무신이 있으니까 선생님은 이것이 걸레로 발을 쌓기 때문에 척척하지 않아요. 얼어. 벌써 얼었던가 봐요. 다리가 뻣뻣해져. 다리가 오그려 붙어 버린다고 한 발자국도 더는 못 떼겠다고 그래요. 천태산 아니고 옆에 산 높지요. 그거 뭔 산이에요? 써레봉인데 반쯤 올라오고 넘어가야 돼. 왜 요 짝에는 첩첩이 모두 지키고 있어요. 청년들이 그 사람들 그쪽 청년들이 요새 말하면 무엇이라 할까? 징용 잡힌 청년들이요. 그런데 밝으면 보여. 건너다보이는 그 아랫마을 더는 못가겠소. 그래서 할 수 없어요. 그래 거 북쪽단지 아니에요? 큰 바위 밑에 모시고가서 이불을 펴고 둘이 비켜섰어. 그러니 방이 되어버리지. 물이 질질 흘러버리데요. 물이 녹아 가지고 그런데 인제 감자 선생님 감자 갖고 왔어요. 하나 드리니까 잡수시더만 나 하나 먹고 두 번째는 쪼그마해. 큰놈은 둘이 먹었으니까 개수만 다섯 개지. 한주먹 잡혔으니 얼마나 되겠어요? 잔잔해요. 다섯 개라 한 개가 남았어. 한 개가 남았다고 하니까 ‘그거 나줘.’ 그래요. 쪼그매 요만해요. 선생님이 잡수시니까 섭섭했는가? 그건 지금 모르겠네요. 그래 양보했어요. 그때 그러고 인제 이불을 딱 싸고 축축하니까 끕 끕 하고 척척하고 근지럽고 그러지 않아요? 뜨뜻한 게 잠깐자고 가야지. 인제 발이 풀어지면 다시 올라가고 능선을 넘어야 하거든. 요쪽 마을이 가까우니까 그런데 잠을 깨갖고 이불을 쳐들어보니까 해가 한 열시나 되어버렸네. 중천이 되어버렸어. 저 밑에 눈이 왔기 때문에 꺼먼 점이 보여. 그 지키는 청년들이야. 징병들 소위 말하면 소재 마을에 들어와 있는 군수 도지사 그 팀을 지키고 있는 유격대들 경비병들이라고요. 그러니 거 총 놓으면 맞는 거리라고 그러니 둘이 해가 떠서 올라오니 이불을 포기해 버렸지요? 이불을 거기다 내버리고 그래도 아까운 것은 성경 아니야? 성경을 이제 소위 말하면 냄비 속에 넣어놨으니까 냄비를 짊어지고 갑니다. 선생님 기운이 없으니까 건들 한발, 한발 이렇게 저렇게 인제 눈이 많이 왔어요. 무릎까지 왔거든. 능선을 넘기까지 열두시 거의 가까워요. 능선을 넘어가니까 그 쪽에 양지쪽이에요. 동쪽 해가 비쳐가지고 동쪽이니까 싹 녹았데요. 써래봉 상봉인데 거기서 물이 축축하니까 옷을 벗어서 말렸어요. 전부 둘이 말렸어요. 그러니까 오후 한 다섯 시나 되데요. 선생님이 거기서 또 문바위 가자 할까봐 또 막 내빼. 옷을 몰래 입고는 문바위 갑시다. 그것이 주장이거든. 문바위 가면 굶어 죽을 테라. 가기 싫으니까 광주 가고 싶은 마음은 밥은 먹어야 살거든. 그러니까 핑 내려와 버려 물어보지 않고 그러니까 줄줄 따라 내려오셔. 거기서 해가 딱 져버리데 어두워도 막 내려와. 한 4키로 내려와야 마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 자꾸자꾸 따라 오시지요. 이렇게 조금 기다려 선생님 올만하면 또 내빼버리지요. 산으로 가자 할까봐 안 갈라고 인제 마을이 먼데서 꼭대기서 보니까 거기 한 마을이 있는 거 발견했어요. 거기 한 산중 마을이 있는 것 같아요. 거기 와서 선생님 여기 서 계시오. 밥 좀 얻어오렵니다. 배가 고프니까 그래 인제 캄캄한 밤이니까요. 첫 집에 가서 밥을 달라고 이렇게 들어갈라니 유격대 알아. 군복을 알아. 그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그 청년들 이름은 없어. 그 사람들이 응원하는 지방 의용군들이야. 그 밤이면 지키는 수색 병 들이라고. 그 두 사람이 구두 신었으니까 아 오늘 밤에는 뭔 일인가 모르겠어. 하고 죽 가요. 밥 얻으러 막 가다가 그 사람들이 앞에 가니까 얼른 숨었지. 안보여. 캄캄한 밤이라 그래도 배가 고프니까 가서, 집에 들어가서 밥을 주시오. 그랬거든. 문을 팍 열어서 밥을 주시오. 그랬더니 그런 사람이 하도 많은가 봐요. 그 마을이라서 그러니까 방이 흙뿐이데요. 애기가 둘이 꾀 벗고 앉았어. 과부인 모양이야. 우리들도 굶었소. 그래요. 그때 환난 때니까 그래 참말로 문을 탁 닫고 나왔어. 이리 못가 군인들이 마을로 들어가니까 밥을 얻을 수가 없지 않아요? 허탕치고 나와, 나오는데 마을마다 동구 밖 정자나무 있지 않아요? 정자나무에 콩동이 한 열개 있어. 선생님은 멀리 계신데 애기 때 콩, 남의 것 탁 이렇게 본능이 있지 않아요? 무의식에 콩을 탁 뺏어 갖고 선생님한테 갔어. 그래 둘이가 선생님이 그거 뭐요? 콩 한주먹 빼왔어요. 그럼 쉬어가자고 앉았어. 어디 콩 먹고 싶었으면 여기서 먹고 가자고 앉으라고 눈 속에 둘이 앉았어. 둘이 기도하시지요. 그래 내가 기도를 했어. ‘하나님 아버지 콩 한주먹을 도적질 해왔습니다. 이것을 먹게 허락해 주십시오. 아멘.’ 그러고는 인제 한주먹 까서 입에 넣었어. 겁기에 먹으려니까 겁이 나는가 못 먹겠대요. 생으로 먹기는 먹었는데 껍질은 삼키고 선생님은 안보여요. 캄캄한 밤중이라 무서우니까 까먹고 앉아있을 수가 없지 않아요? 들고 또 내빼지요. 까먹다가 이따 까먹지 하고 이렇게 하고는 선생님한테 요령을 배우기는 배워야겠는데 선생님 말 듣고 산으로 가버렸으면 이런 꼴 안 당하는데 이놈의 배때기가 원수여. 밥 얻어먹으려고 여기까지 내려와 가지고 이제 선생님도 죽고 나까지 죽게 생겼거든. 아주 내려와 버렸으니 그 어떻게 하겠어요? 그러니까 인제 선생님은 이왕에 내려와 버렸으니 어떻게 하겠어요? 지혜를 얻으셔 가지고 그분도 영감이 있는 분이야. 이렇게 쭉 산을 내려오는데 이보시오. 아무리 선생님이 생각해 봐도 안 되겠던가 봐요. 길로 가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래 저를 유도해서 길이 없는 데로 데리고 가려고 쭉 내려오다가 선생님이 따라오라는 식으로 물가로 핑 여기도 그렇지만 도로가 올라오면 물이 있지 않아요? 그러니까 도로 밑에는 밭이 있고 논이 있고 이렇게 상당히 도로하고 떨어지거든. 선생님은 푹 물로 내려가 버리고 그냥 물가에로 길이 없어. 물로, 물로 가면 고생이 많지 않아요? 빨리 가서 밥 얻어먹어야 할 텐데. 그냥 도로로 쭉 와버렸습니다. 선생님을 안 따라가고 혼자 그게 젊은 혈기라고. 선생님은 물로 푹 내려가 버리고 나는 도로로 내려와 버렸는데 보시오. 열다섯 번을 덜 왔는데 거리가 이만해. 이 사람 입에서 담배를 쑥 빼니까 불이 보여. 거리에 지키던 소위 말하면 요새 말하면 예비군 그 사람들 그런 지방민을 이렇게 세운 거예요. 그때 공산당들이 전부 패해가지고 자기들 수 없지 않아요? 마을의 주민을 응용 징용 해가지고 그때 세운 거예요. 또 분주서 책임자로 와있고 한분씩 그러니까 서너 명이 지키고 있어. 길을 가다가 사람이 보이기에 거 누구요? 그런다고, 선생님이 저리 가버렸으니 아 따라갔으면 아무렇지 않은데 물가세로 아이고 선생님 말씀 또 어기고 양심이 확 아프게 하지만 잡혔다 싶으니까 겁 김에 나다. 그랬어요. 누구요? 나다. 누구요? 안심하라. 그리고 앞으로 지나갔어. 앞으로, 안심하라. 그 장교행세를 했어요. 그래 잡지를 않아. 누구요? 안심하라. 응, 그리고 갔어. 열 발 또 와요. 거기는 아주 다시 말하면 그날 밤에 이양역을 습격해서 철도를 뜯어 버리고 집결해서 수백 명이 그 쪽의 청년들이 또 정면에 탁 부닥치데요. 딱 부닥쳤는데 물이고 절벽이야. 얼른 숨었어. 그러니 모르고 가버리데요. 더 가면 또 올라와. 와, 인제 죽었데요. 물로는 못가 벌써 물이 끝나버리고 절벽이야. 절벽인데 선생님한테 배웠지요. 지혜가 있지 않아? 아, 이럴 때는 산으로 올라가라더라. 산으로 올라가자니 산이 절벽이라. 그 가는데 툭 도로가로 둥글러 버린다고 와 또 와요. 사람이, 또 사람이, 얼른 피하고 막 절벽을 올라가 기어 올라가가지고는 능선을 올라가 가지고 여기 인제 오르지 않고 툭 떨어졌다는 말이지. 거기 툭 떨어져서 절벽 못 오르고 있다가 둘이 또 오니까 무서워서 숨었다가 물로도 못가고 절벽으로도 길이 없으니까 앞으로 전진 했지. 더 그러니 이제는 정식으로 한 가운데 딱 만나 버렸다. 저기서 오는 사람하고 꺼먼 유격대가 와요. 축축, 축 축축, 나는 내빼버릴 데도 없고 딱 만나버렸어. 나는 내가 먼저 선수를 썼어요. 유격대인줄 알고 어디 유격대냐? 탁 앉아 버려요. 어디다 그럴 줄 알았더니 탁 앉아 버려. 누구요? 그랬더니 저예요. 이 선생님 이라고. 그러니 잡혀 죽은 줄 알고 같이 죽으려고 올라오셨다. 그래요. 같이 잡혀 죽으려고 둘이 만나 가지고 안 된단 그거야. 앞으로 가도 안 되고 뒤로 가도 안 되고 인제는 물이 거기는 절벽이라. 물로도 안 되고 절벽을 올라가 둘이 절벽을 타고 올라가 둘이 자 절벽을 올라가서 보니까 콩깍지가 아직 있어. 와 먹고 싶은 욕망이 그렇게 무서운지 몰라. 그 새중간에 콩깍지가 안 없어지고 여기 있다. 그러니 참 안쓰럽던지 그 콩이나 먹고 거기 앉아서 콩 한주먹씩 까먹었다고. 둘이 그러고 마지막 어찌하겠냐? 이불도 없고 그러다가 성경하고 냄비도 갖고 갈수 없어요. 그래서 큰 바위 밑에 비 안 오는데 남겨놨어요. 도로 횡단해야 산이 끝나버리니까 산을 하산해 내려와 가지고 둘이 이렇게 도로를 건너가야 하는데 도로를 탁 내려가니까 둘이 또 올라와요. 철커덕 철커덕 그때 둘이다 홑이불 쓰고 다니거든. 회색 검정 나는 떨어진 담요인가 되고 선생님은 회색 이불보고 탁 치켜 쓰고 도로 개천에 딱 엎드렸지요. 곧 여기를 잡을 것 같아 뚝 건너 가버려. 또 저기 올라와 그 틈을 달이 있거든. 달이 나오면 우리가 보여. 달이 구름 속에 숨었어. 그래 딱 지나간 거예요. 그래 올라와요. 축 축축 그 날 밤에 저기서 철도를 뜯고 올라왔다. 그래요. 자꾸 구둣발이 올라와요. 수십 명이 올라가는데 그 새중간에 딱 우리가 둘이 건넜다고요. 이제 건너가지고 우리가 물가세로 왔지. 그때 사 젊은 혈기가 반성도 해보고 역시 선생님은 지혜가 옳다. 그거에요. 선생님 하자는 대로 했으면 이 난리는 안 겪지요. 사람이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기지 않고 평탄하게 가버렸지요. 쭉 물로, 물로 그래 물 따라 가면 인제 이양역 역전 옆으로 해서 한천이 나오고 한천 나온 다음에 능주가 나오고 남평이 나오고 강이거든. 그래 물 따라 물 따라 내려가다 보니까 선생님 발은 이미 얼어버렸다고 인제 걸레가 바닥이 나버렸다. 걸레가 다 썩어 떨어져버리고 이제 흰 살이 나왔다고, 흰 살이 나오니까 발이 얼어가지고 못 걸어 쫓아 와도 내뺄 수 없어. 인제 건덕, 건덕 가는 거야. 인제 한걸음(끊김)
공동체인데 거기로 들어섰어요. 들어섰는데 지혜 있는 분이 기체 씨인가요? 셋째가, 국채 씨, 국채 씨가 제일로 사랑이 많대요. 그렇게 저번에 인민군 같이 복장하고 선교사를 잡아간 다음에 그 집안이 놀랬거든. 두 번째 손님이 왔기 때문에 그때도 인민군이 거기를 주장하고 있어요. 거기 그 집, 집안 그때까지 복구 안 된 곳이야. 그러니까 이 두 사람을 숨겨줘야 하지 않아요? 그 분도 지혜가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를 큰집이나 작은집으로 숨겨두지 않고 셋째분이 자기 집으로 자원해서 우리를 데려간 거예요. 자기 집에다 숨겨 놨어요. 그러니까 이 선생이 그 말이에요. 인제 아 막가서 발이 얼어가지고 그 집에서 콩을 닷 되인가 열 되인가 내어가지고 콩에다 발을 싸주데요. 콩을 녹이기 위해서 얼음을 빼기 위해서 아 지혜 있는 집이에요. 밥을 안 해줘요. 시래기 국을 끓여가지고 밥이 하나나 보이도록 채소 채소만 하루 이틀 주데요. 어떻게 지혜가 있는가? 몰라. 그렇게 굶다가 쌀밥 먹어 버리면 큰 병난다고 하데요. 그러니까 인제 밥 티 하나나 보이도록 시래기죽을 늘 쒀주시다가 하루는 주인을 불러가지고 이 선생님이 그러데요. 준호가 콩이 먹고 싶단 대요. 아 그러냐고 아, 생콩을 한말이나 풀어가지고 발을 싸놨으니 한 되나 볶아줘요. 먹으라고, 소원 없이 먹으라고 아이고 이 젊은 사람이 속도 없이 콩을 먹고 싶다고 했다가 콩을 주시기에 먹었다. 한주먹, 한주먹도 먹기 전에 속이 취해가지고 못 먹겠대요. 나 그때 반성 했어. 아이고, 짜잘한 놈 그때 왜 쌀밥을 원치 않고 콩을 원했냐? 이놈아, 어째 이렇게 아니 콩을 빈속에다 콩을 먹으니 들어갈 것이야? 콩을 먹으니까 속이 아파서 못 먹겠어요. 그래 먹고 싶던 콩이, 이것은 원하는 것도 잘 못 구했다. 그때서 반성 했어요. 뭘 먹어야 쓸지도 모르고 원했으니 말이야. 참 굶는 사람이 무슨 콩을 원했어요? 그래 나중에 인제 찰밥도 해주고 그러시데요. 먹어보니까 좋아요. 아 이 선생님이 구했던 건 참 양식이다. 그거에요. 제가 구했던 건 거짓 양식이고 거기 드러나데요. 참말로 먹고 싶은 양식과 들뜬 마음으로 원했던 것과 드러나데요. 기분으로 원한 것과 진실로 원한 것과 다르데요. 아 그래서 선생님이 쌀밥을 원했구나. 그래서 깨달았어요. 거기서 한 일주일간인가 우리가 숨어있었어요. 자꾸 앞뒤 형편을 봐가지고 그래 능주로 나왔지요. 능주에, 아버지가 살아계셨어요. 어머니가, 그 집이야. 예수같이 우리를 대접한 집이지요. 장로님이라 가정을 갖고 있었어. 자기 딸이 하나 수녀가 되었고 동광원에 수녀로 한분 와계시고요. 금이야 옥이야 우리를 대접하지 않아요? 어떻게 그렇게, 그렇게 보호해 주십디다. 거기까지 선교회서 차를 보냈습디다. 특별히 자가용을 그래서 자가용을 타고 그때까지 선생님이 입은 옷은요. 누덕지요. 열 번 백번 기워 입은 옷이고 저도 기워 입은 옷이고 한 석 달, 넉 달 머리를 둘이 안 깎았으니까. 이렇게 여자같이 둘이다. 선생님 수염은 많이 길어가지고 그래 타고 갔는데 누가 그러시더만 충고해요. 선생님 그 옷 벗으시오. 수염도 깎으세요. 뭐 흉하게, 그래서 들어갔더니 벌써 동광원이 복구해 가지고 한 두 달 되었으니까 한 석 달 되었으니까 한 백 명 이백 명 수가 많데요. 벌써 본원은 지산동으로 들어갔어요. 정부 도청에서 쓰던 정신병원이거든. 정신병원을 전부 동광원을 줬어요. 인제 피난하고 갔을 때 2층도 있고 옛날에 다 병원이니까 전체를 쓰고 있습디다요. 선생님 옷 벗고 삭발 하시고 인제 조석 예배 인도하시고 저는 그 길로 다리 밑으로 들어가지요. 다리 밑으로, 그 옷 벗지 않고, 그렇게 해서 한 10년 동안, 선생님하고 저는 다리 밑에 있고 선생님은 지도하시고 밤이면 저한테 와요. 같이 자고 낮이면 가셔서 강의하시고 그래서 요새도 이야기 하지만 선생님은 부잣집에 가서 큰 좋은 집에 가서 계시지 않아요? 몸은 마음은 저한테 있다고. 다리 밑에, 그러면 지금 같으면 그러지 않아요. 여기는 얻어먹고 굶다 먹다가 그러고 있는 살림이고 옷도 없고 이불도 없고 냄비도 없고 지금 같으면 왜 그랬을까 모르겠어요. 냄비도 갖다 줘라. 이불도 갖다 줘라. 요도 갖다 줘라. 양식도 갖다 줘라. 그럴 법 한데 일체 그러지 않으셨어요. 내버려 둬버려. 새 같이 생명이 죽자 사자 살아남은 제자지만 내버려 둬요. 나 그것이 참 사랑인줄 압니다. 그것이 참 지도야.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리 이해가 안 되어. 아 인정이 동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 말이에요. 그래도 내버려 둬요. 그것이 참 인격적인 지도지요. 이 선생님은 그랬어요. 내 것을 같다가 저 사람이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 아니야. 내가 스스로 그 사람같이 되는 거예요. 내가 내려가서 그 사람같이 되어버리지. 저 사람을 도와줌으로 나와 같이 끌어 올리지 않아요. 자기가 스스로 내려가 버리지. 그렇게 지도하셨고. 그것이 좋은 줄 알아요. 그러나 방편상 이 사람을 지도하려니까 이발하고 옷 입고 거기 가서 설교하시고 강론하시고 이렇게 지도하셨지요. 어찌되었든지 그 그런 사연 저런 사연이 지금 이 이야기는 왜 이렇게 하고 싶었냐하면 요가를 한다. 선생님 밑에다가 사랑의 화신이라고 써놨어요. 사랑의 화신, 그걸 보니까 이 선생님이 이해가 되요. 아 이 선생님은 사랑의 화신이었구나. 요가를 한다. 선생님이 사랑의 화신이라면 이 선생님도 제가 보기에는 사랑의 화신이었던 걸 내가 몰라봤다. 그걸 힌트를 얻었어요. 책 보다가 아까 참에 그래서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선생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이야기 했다 싶어서 이야기 했거든요. 자세히 다 했는가 모르겠지만 그런데 그 참 이 선생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만 그때 그 화학산에 최후에 남은 때까지 자꾸 양보한 거예요. 진작 광주에 올 기회가 있었어요. 선교사를 책임 맡은 분이거든요. 그때 그래 선교사를 위해서라면 자기가 나와 버려야해. 모시고, 그런데 거기가 위태로운 거예요. 뒷수습이 그래서 위태로운 데를 자기가 택하시고 안전한 지대로 원장님께 그 책임을 맡겨가지고 나가시라고 원장님이 안전지대로 가기 위해서 선교사님을 맡겨버렸어. 원장님은 안전지대로 나가버리고 그 위험한 지대를 선생님이 뒤에서 수습하느라고 석 달이 걸렸거든요. 그 죽음을 내놓고 거기서 뒷수습을 하신 거예요. 그게 보면 자꾸 죽을 고비가 있다고요. 그런데 살아난 것은 기적이고 은총이지요. 하나님의 보호고 하나님의 현존이고. 하나님이 붙들어주고 살아왔지 제가 저 봐요. 제가 하자는 대로 자꾸 죽을 고비로 끌고 가지 않아요? 자꾸 죽을고비로 끌려오셔도 하나님은 보호해 주셨다고. 선생님이 하자는 대로 내가 따라다녔으면 이렇게, 이렇게 위태한 고비는 안생기지요. 산속에 가서 굶어 죽으셔. 그러면 굶고 있으면 누군가가 데리러 오겠지요. 복구 되어가지고 몇 달 있으면 광주로 데리고 오겠지요. 그 동안 못 참고 내가 모시고 나왔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일어났거든. 막 몇 번 죽다가 살아나셔요. 그렇게 된 거지요. 그러니까 그 분 소원은 절대 안 나오는 거예요. 가만히 기도하고 산속에 있는 거지요. 그 굶어 죽으면 최상의 행복이고 살아남으면 하나님의 뜻이다. 그 결심을 제가 흔들어 버렸지요. 그걸 양보 하신 거예요. 왜? 그게 사랑이에요. 자기희생이 그렇게 그릇된 주장을 하는 사람에게 양보하고 같이 죽으러 내려온 거예요. 죽음을 양보하고 따라온 거예요. 갈 때마다 나는 죽을 고비로 빠져나가면 뒤로 따라 오시면서 같이 죽으려고 나서 그럼 아까처럼 둘이 만나 누구요? 어디 유격대요? 그러니까 나다. 준호요. 자꾸 소리 질러 싸코 아, 아까 그 이야기 뺏어. 담배를 훅 부치니까 입이 보이게. 누구요? 안심하라. 이 선생님이 따라 오는 줄 알고 물로 내려서 버린 줄 모르고 전진하라. 전진, 이 선생 이름을 못 부르니까 빨리 전진해요. 그랬어. 그런데 그때 물로 내려서 버렸거든. 그러고 한 10분 5분 자꾸 소리 질러 싸니까 잡힌 줄 알았어. 인제 아이고 같이 잡혀야지. 하고 물에서 푹 올라와버렸다는 거예요. 푹 올라와서 잡히려고 앉았어. 딱 이러고 같이 잡히려고 같은 동행이니까 그 사람 만나게 해 달라. 그 말하려고 올라오셨다는 거예요. 딱 잡혔어. 어느 유격대요? 잡히다 보니까 준호거든. 극적으로 하나님이 만나게 해 줬지, 본인은 죽으려고 잡히러 왔거든. 같이 죽으려고 잡히러 온 거에요. 그거에요. 그런데 이제 유격대가 아니고 같은 동지니까 다시 산으로 올라와갖고 이렇게 빠져 나온 거뿐이지 실상 죽어버린 거예요. 그때 그리고 그 이야기 한번 하세요. 어째 선생님 그러고 올라왔냐고 아 준호 잡혀 죽어 가는데 내가 어떻게 해? 같이 잡히려고 올라갔지. 그러세요. 그 순간은 서로 나는 살라고 안 굶으려고 내빼버린 시험 든 제자고, 선생님은 자꾸 같이 죽으려고 따라온 거예요. 자꾸 죽으려고 오늘에야 그 생각이 들어요. 교우 같으면 믿어주니까 아 이 선생을 존경하니까 이 이야기가 나오지. 이 선생을 멸시하면 말을 못한다고 부끄러워서 그래서 이렇게 믿어 준 이한테는 말도 고백이 나오는가 봐요. 이렇게 다 생각을 못 했는가 몰라도 이렇게 자꾸 말 다시 하지 않아요. 잊어버려서 어찌되었든지 아 요가난다 라는 선생님이 사랑의 화신이라면 이 현필 선생님도 사랑의 화신이었구나. 그게 오늘 납득이 되더라. 납득이 되어요, 과연 그 분이 사랑의 화신이었다. 그렇지 않고야 그럴 수 있냐? 또 진리의 사도 제자가 다리 밑에서 얻어먹고 이불도 없이 요도 없이 맨땅에 누웠어요. 내버려둬요. 그 진리의 스승이에요. 진리를 따라가는 제자한테는 전혀 두둔을 두지 않아. 고행을 한다든지 십자가를 진다든지 죽음을 바라보고 갈 때 예수사랑 이상 옆에 방해를 주지 않아요. 따뜻한 이불을 덮어주지도 않고 밥을 갖다 주지도 않고 그냥 내버려 둬버려. 전진하게 인정사정이 없어요. 저는 약점이 그거에요. 같이 가던 형제자매가요. 고생할 성 싶으면 그만 가라고. 아이고, 그만 거기 있어. 오라고 편한 데로 오라고 그래버리거든. 나 그런 일이 하나 있어요. 한 자매가 결핵이 나았어. 폐 하나를 떼어냈거든. 수술 후에 영양 부족이야. 우리살림은 보리밥에 소금인데 어느 신부님이 식모가 없어. 거기 식모로 가면 그 신부님은 고기 국에 쌀밥 잡수시거든. 그래서 그 자매더러 신부님 식모로 가시라고 그래서 파송을 해줬어요. 그래 한 반년 일 년 가는데 거기 신부님 밑에 있기 싫고 다시 돌아오고 싶다고 기별이 왔어요. 나는 이해가 안 됐어요. 집에 오면 김치에 보리밥, 영양부족이고 집에 오면 고생스러운데 거기 있으면 쌀밥에 고기 국 있을 텐데 거기 있으면 신부님 모시고 계시면 좋을 텐데 왜 오려고 하는가? 허락을 안했어. 거기 더 있으라고. 전전 기별이 와요. 나는 슬프다고 나는 쌀밥에 고기 국 보다는 사랑하는 사람들하고 같이 김치에 보리밥 먹고 있고 싶다고. 그런데 선생님이 내 속을 몰라준다고 슬퍼하더라는 소식이 와요. 깜짝 놀랬어요. 참 사랑은 쌀밥에 고기 국이 아니라 김치에 보리밥 먹고 굶어 죽어도, 마음으로 사랑하는 곳이 행복한가 보다. 그렇다면 오라고 하라고 그래 돌아왔거든요. 지금도 그 시험이 들어요. 고생하면 도와주고 싶어 아이고 너무 고생하면 안 될 텐데 편히 좀 살아야 될 텐데. 그러지 내버려 둘 수 없어요. 마음이 약해가지고 그런데 이 선생님은 아주 진리의 사도라고 그 자체가 옳다면 굶어 죽어도 내버려 두는 거야. 절대 응원 않아 원조를 안 해줘. 그건 진리면 이거든. 그건 사랑의 면은 아니야. 공의의 면이고 진리의 면이야. 그래 이 선생님은 진리의 사도요. 또 사랑의 사도구나 그런 생각이 듭디다요. 그래 이 선생을 믿어주니까 저도 신의가 가요. 아 그랬구나. 이해가되어요. 그럼 오해가 풀리면서 그 점은 그래서 그랬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 말씀이에요. 그래서 인제 이 선생님을 나는 제일로 누구한테 자랑 못한 이유가 평생 기적이 없는 분입니다. 이런 일이 있어요. 아 다른 목사 선교사들은 기적이 많아가지고 전도가 잘 된다는데 우리 선생님은 기적이 없단 말이야. 고행 고생뿐이고 이 아까 말한 화학산에서 숨어계실 때 마을 어른이 이 선생님을 존경해요. 그건 미신이지요. 참 존경합니다. 그래서 선교사가 숨어계실 때 양식이 떨어졌어요. 믿지 않는 분입니다. 자기가 밥 해가지고 네 분 굴에 있으니까 밤마다 갖다 줘요. 우리식구도 밥을 갖다 주다 들키면 죽는 판에 당신은 예수도 안 믿는데 그만 가지고 오라고 그렇게 거절하면 나도 하나님의 자식이오. 예수 믿는 사람만 하나님의 자식이오. 나도 이 선생님을 존경해요. 나도 그 분을 밥해주다 같이 죽으면 얼마나 행복해요. 그러고 밥 해주던 분이 종식 씨야. 그런데 그분이 예수 안 믿었어요. 아 이 선생님이 믿은 하나님이 왜 나는 사랑 못하겠냐고 나 그분을 밥해주다 들키면 나도 같이 죽어도 좋다고. 그러니까 예수 안 믿는 사람도 그렇게 이 선생님을 존경했거든요. 이 종식씨 친척이 계셔 아저씨가 그분이 아들이 아팠다고 애기가 그래. 이 선생님이 기도해 주면 나을 것으로 믿어버려. 그래 종식씨를 통해서 기별이 와 우리 아저씨 아들이 아픈데 선생님께서 기도해 주시라고 부탁이 왔습니다. 해주시오. 아주 선생님이 슬퍼하신다고 나는 절대 그런 사람 아니라고 나를 잘 못 봤다고 기도를 안 해줬어요. 기도 안 했어요. 그렇게 냉정하셔 그런 면을 보면 아주 인정도 없고 사랑도 없는 것 같지 않아요. 자기를 미신한다는데 과도하게 믿어버리면 거절해 버려요. 그러고 같이 살던 사랑하는 여자 제자들이 아프지 않아요? 선생님 아파요. 어디가 아프냐고? 어디가 아프다고 그러면 이렇게 기도하세요.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 나 좀 더 아프게 해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러라고 어디 따라서 해봐. 예수님, 예수님 더 아프게 해 주십시오. 더 아프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빕니다. 아멘. 그럼 더 아플 것 아니에요? 그럼 나아버려. 그러니까 더 아프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줬지 병 나으라고 기도하라고 안하셨다고요. 이 선생님이 그런 분이시거든. 그런 분이시라 나는 예수 말은 해도 이 선생 말은 한 번도 안 해요. 누가 오해할까봐 이 선생님 그런 분인데 누가 그걸 인정해 주냐는 거예요. 사랑도 없는 거 같은 분을 평소에 그런 분이시고 또 아까 말하는 일상생활이 전혀 껍질로 봐서는 아무 예수 믿는 냄새가 없어요. 이 선생님 평소에 차 탈 때보면 그런 때는 버스 없어요. 육이오 후에, 그러니까 트럭이 오거든. 지방에 우 하니 올라가지요. 우리 자매들 한 다섯 명 선생님 후에 오지요. 선생님 올라오세요. 손잡고 올라가 손 안 잡았지. 그냥 올라가지 선생님 올라가 앞에 앉았거든. 그럼 마을 사람들이 우 하고 올라와. 그럼 이 선생님 거지같으니까 밀어버려 뒤로 밀려 뒤로 밀려 광주에 와서 보면 제일 뒤에 있어 밀려갖고 제자들은 안타까워 눈물이 나도 냉정한 분이라 말도 못하지. 선생님 뒤로 가도 말도 못하고 쭉 밀려가 섰어요. 아주 우숙하지 거지바보가 되가지고 쭉 밀려나버려. 언제나 차 타려면 밀려나 버려요. 그런 분이시고 또 이렇게 보십시오. 점잖은 바깥손님이 와계신데 우리 선생님은 좋게 보여야 쓸 거 아니야? 떨어진 옷 입어서 부끄럽고 수치스럽지요. 코가 뚝 떨어지면 얼른 손 소매로 아이고 수치스럽게 우리 선생님 좀 봐. 소매로 이렇게 아이고 누가 알까 무섭고 그냥 선생님 왜 저러실까? 그렇게 살았거든요. 그리고 인제 서울 인제 기차여행 하시지 않아요? 광주 서울행 기차를 타시지. 그럼 광주에서는 딱 자리를 잡고 앉아 가시지 않아요? 가시다가 또 빼앗긴다고 저만큼 비켜서가 또 빼앗기고, 기차 문밖으로 나오신다고. 저 김제역쯤 갔던가? 대전역쯤 갔던가? 거기 충청도서 누가 올라오셔 농부가 문에 둘이 만났다. 농부들은 순진하지 않아요? 우리 수인사 합시다. 나는 대전사는 아무개요. 예, 저는 전라도 사는 헌 신짝이 올씨다. 아 성이 헌 씨요? 네, 이름이 신짝? 신짝? 예끼 여보, 나를 골리시오? 그랬다 하시니까 이름이 헌 신짝이고. 그러니까 기차를 타고가도 떨려버리고 문밖에 밀려가신 다구요. 앉아가지 못한다고요. 일생 그렇게 사셨고, 인제 아파계실 때 서울 갈 때는 장로님 무릎에 눕혔지요. 장로님 무릎에 눕고 원장님 다리잡고 그러고 타고 올라가시지 혼자 가시면 그렇게 안 되신다고 임종 하실 때는 그 사랑하는 여자 제자가 그때 백 명이 넘는다고 이십대 어떻게 젊은 처녀들 앞에서 임종을 보일 수 없다. 그래 자기가 혼자 죽고 싶다고 서울로 가실 때 이야기거든. 한분은 무릎에 누이고 한분은 발 잡고 올라가셨어요. 그래서 서울 올라가서 신촌 걸인 굴이라고 옛날 일정시대 기차 그 폭발탄 안 맡기 위해서 뚫어놓은 굴이 있어요. 거기 걸인굴이 있는데 거기 들어가셨다고 거기서 임종을 기다려요. 이렇게 그때도 9월 달이니까 밤은 추워요. 낮은 따스워도 그런데 셋째 형님이 거기서 쓰레기 줍고 넝마주의 하던 제자가 있어요. 그 분 찾아갔는데 그분이 주어놓은 칠성판이 있어. 땅에서 파논 누구 묘에서 이장할 때 파놓은 칠성판이 있어 거기 누워있어요. 그분이 갖고 있는 총 재산이 짚자리 하나 그것도 썩은 짚자리 주워 다가 물에 빨아갖고 말려 놓은 거 그거 깔고 그분이 주워 다 놓은 걸레 담요 쪼가리 그걸 덮고 누웠으면 흡사 사람이 아니지요. 걸레 속에 무엇이 감춰져 있지요. 파리하니 임종을 기다려요. 그때가 후두결핵이야. 병명이, 이 목이 부어가지고 물이 안 넘어 간지가 한 달 더 되어 40이 넘었으니까 몸이 불이 타요. 몸이, 몸이 불이타. 물이 안 넘어가. 그러니까 몸이 불이 타니까 장염의 감염을 없애기 위해서 얼음을 머금고 일주일 더 있어. 얼음이 녹으면 휘 뱉어. 얼음 쪼가리를 입에다 머금고 녹으면 뱉고 그것뿐이야. 넘어가지를 않으셔. 그때 다 비끼고 장로님도 원장님도 다 비껴나고 인제 옛날에 걸인 친구 셋째 형님하고 그분이 나하고 같이 얻어먹던 친구니까 걸인인 저하고 걸인 굴이니까 두 사람만 옆에 있고 다른 사람은 모두 오지 못하게 했어요. 그래 선생님이 임종을 기다리고 있는데 시간이 박두해요. 죽을 시간이 얼굴을 파래지고 손끝도 파래져 들어가요. 밤이 되니까 서늘해지지요. 한 밤중에 우리를 불러요. 가서 뭐 고기 좀 사오라고 그 말은 뭔 말 인고 하니 고기를 안 먹고 약을 안 먹기 위해서 지금 치료를 안 하고 죽어가는 거예요. 그게 옛날 수도 계율이야. 이 공님이 창시했고 이 선생님이 계승해서 그 계율을 지키는 것이 이 종교 단체거든. 비 살생, 비 복약, 그 계율이기 때문에 지키다 보니까 약 안 먹고 인제 고기 안 먹고 그래서 인제 영양 부족이고 병들어 죽어가던 몸인데 고기를 사오라 하니 이건 청천벼락같이 타락이거든. 파계고, 그러니까 저는 우물쭈물하고 있고 셋째형님이 넝마주의 하던 분이라. 순진한 분이야. 애기 같은 분이야. 가서 고기면 다 고기지 뭐 따로 있냐고 간해놓은 조기 한 마리 사왔어. 소금이 많이 뭍은 놈을 그놈을 깡통에다 집어넣고 삶아 고기라고 그러고 떠다드려. 고기 국이라고 짜디짠 소금물 아니야? 내 입에다 떠 넣어라. 그러니까 입에다 떠서 선생님을 죽이는 거야. 선생님을 타락시키고 선생님 지옥가라고 계명을 파계시키는 거예요. 법을 없애버리는 거예요. 손이 벌벌 떨어. 아 꿀떡 넘어가 버렸어. 물이, 그게 기적이라고 물이 안 넘어가던 목이거든. 그러니 소금 고기를 삶는다고 깡통에다 물 붓고 그냥 그렇게 해가지고 물을 떠먹였는데 넘어 갔어. 그래 다시 살아났어. 물이 넘어가버리니까 화색이 돌아오지 않아요? 그 이튼 날 원장님이 다 서울 순회 하시고 광주 가시기전에 심방 오신거야. 굴에 오셨어. 해가 뜰 때인데 새벽에 아침에 말을 못 하시지요. 발음이 안 되어요. 꽉 막혀가지고, 연필 하고 종이하고 갖고 원장님한테 최후의 말 하는 거예요. 제가 옆에서 봤어요. 뭐라고 쓰는가 봤더니 ‘원장님, 나를 책벌해 주십시오. 저는 고기를 먹었습니다. 저를 동광원에서 축출해 주십시오.’ 그거에요. 그렇게 글씨를 쓰시더구만요. 그리고 사연 왜 그러냐? 저는 믿기를 믿어오기를 선행이 귀한 줄 알고 생명을 바쳐왔습니다. 선행 자선사업 선행 그러나 보혈이 귀한 걸 미쳐 몰랐습니다. 예수의 보혈이 그런데 지금 내가 이렇게 죽음에 이르러 생각해 보니 지금 내 증상이 몸 증상이 앞으로 밥은 가사 열흘이고 삼십일이고 앞으로 안 먹어도 삽니다. 그거에요. 그러나 이 육체가 물이 한 방울도 안 넘어가면 나는 죽습니다. 내 신체 형편이 자각증상이 이 신체 요건이, 그러니까 나는 평소에 밥이 귀한 줄 알고 살았지 한 번도 물이 귀한 것을 미리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밥도 물도 다 굶고 깨달아 진 것은 밥이 귀한 것이 아니라 물이 귀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실제, 실제 그래서 그 이치와 같이 보통 건강해서는 예수 믿고 선하고 계율 지키고 고기 안 먹고 약 안 먹고 그렇게 선하게 사는 것이 귀한 줄 알았지, 예수님의 은총이 귀한 걸 몰랐다는 거예요. 예수님의 보혈이 예수님의 자비가 하나님의 성총이 하나님의 전능이 초자연의 사랑이 귀한 걸 제가 몰랐습니다. 그렇게 변증하는 거예요. 변증, 그렇게 하시고 그렇게 글로 쓰십시다. 내가 사설 달아 해설하는 것이고 간단하게 쓰셨어요. 그래서 인제 그러면 그 다음에 한 십 년 후에 이야기 하십디다요. 그때 제 손이 지금도 삐뚤어 졌어요. 여기 고름이 잔뜩 들어갖고 폐가 결핵이니까 여기 결핵균이 붙어가지고 골막염이야. 뼈가 고름이 퉁퉁 부어 갖고 한 2년 되었어요. 약을 안 쓰니까 이 손으로 제가 심부름 한 거 거든. 선생님 대소변 가려드려야지. 가사 대소변도 안 누지만 이 심부름 하는데 고름이 뚝뚝 떨어지는 손으로 자기 심부름 하는걸 목격 하셨대요. 이것이 계율 아니야? 그거에요 율법이지, 사랑 아니다. 그걸 깨달았어요. 내가 고집을 하고 약 안 먹고 내가 약 안 먹고 지금 고기 안 먹고 자기가 죽지 않아요? 지금 임종하지 않아요? 그건 자기는 승리해요. 성인이 되는 거예요. 승리 내가 지옥가고 죄인 되고 내가 죽어야하겠다. 이 사람들 앞길 열어줘야 하겠다. 고아들 과부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이 계율을 지키고 있었거든. 수백 명이 전통이 그러니까 뜻도 없이 자비심도 없이 예수도 안 믿는 사람들이 이 율법을 지키고 있었어요. 그때 그러니까 이 법을 내가 헐어버리고 내가 세상을 떠나야지. 내가 성인 되자고 이 전통을 지키고 죽으면 이것이 파벌이 생긴다. 생명을 바쳐서 세운 교파가 왜 안 되냐? 그거에요. 이거 이 현필 당이 된다. 예수교 안에 분파가 생기고 이 현필 종파가 생겨가지고 교단이 형성된다. 다시 말하면 교파가 새로 생긴다. 그걸 목격했어. 교파가 생긴걸 알기 때문에 자, 나 하나 교주가 되자고 이렇게 엄청난 이 무자비한 전통을 세우면 안 되겠다. 그래 인제 계획적으로 파계하는 거예요. 왜? 저 청년이 이 계율을 지키다가 약 먹으면 나을 손이 고름이 들어가지고 썩어 들어가는데 안 되겠다. 그래가지고 저는 몰랐지요. 뒤에서야 해설하시지. 저를 무작정 병원에 입원시킨 거예요. 가자 죽으러 가는 분이 광주 따라가니까 병원에 입원시켜버려. 저는 입원 안 시켜줘요. 이것은 벌써 폐병이든지가10년이 가까우니까 다시 말하면 해당이 안 되어요. 위독하지가 않아. 이 선생님은 위독해요. 생명이 왔다 갔다 하니까 이 선생님을 입원시키려고 하는 거예요. 병원에서 그래 선교회서는 이 선생님이 공로자니까 특대우지요. 최상 특 다시 말하면 특호, 특별 입원실에 입원을 시켜요. 저는 이제 집에 가라 그래요. 선생님이 입원 안한다고 나가버려. 최 흥종 목사님이라는 분이 소위 말하면 소록도나, 구라원을 세운 창설자 아니요? 자비의 아버지인데 그분이 이 선생님더러 내 아들아 사랑하는 내 아들아 사랑하는 내 아들아 병원에 가자. 병원에 가자. 그래서 그날 병원에 같이 갔고 그 선교사님 밑에 일보던 목사님 이니까 그 목사님이 새에 들어서 변호하는 거예요. 외국 선교사 카링톤 원장님더러 원장님 이 선생님 입원시키려면 이 준호 이 두 사람 입원시켜 줘야지. 이 두 사람은 딱 따라다니니까 떼어놓을 수 없소. 고개를 흔들어요. 아 건강한 사람은 집에 가고 병든 사람 입원하라고. 여 의사가 처녀가 있어. 사정을 이야기해. 막 영어로 아무래도 자기들도 입원실이 없거든. 할 수없이 입원실이 없으니까 할 수 없으니까 특등실에 입원시키자. 그거에요. 그렇게 영어로 합의를 본 거 같아요. 이 선생님 명의로 제가 따라 들어갔어. 특등실에 혼자 입원실에 제가 따라 들어간 거예요. 저를 입원시켜놓고 선생님은 내일 나간다는 거예요. 나는 나간다. 병원에서는 이 선생님을 입원시키려고 병실을 만들어서 입원시켰는데 그 분은 나를 위해서 입원하는 방법으로 따라 들어갔으니까 입원은 제가 되었으니까 자기는 나간다는 거예요. 일주일도 못되어서, 그러니 병원에서는 아주 이건 성화지요. 지금도 여 의사는 후회합니다. 어째 이 선생이 의사 지시를 말 안 들었냐? 그때 우리 하라는 대로 했으면 안 죽는다는 거예요. 급성 후두결핵이니까 약 써버렸으면 나을 수 있었을 텐데, 약 안 먹고 퇴원해 버렸다는 거예요. 세상생각으로는 그래요. 그럼 병을 나으려고 병원에 들어간 게 아니에요. 줄기찬 불복의 계율을 파계하기 위해서 들어간 것뿐이에요. 그분이 고기를 먹기 위해서 먹은 것도 아니에요. 고기를 안 먹어야 천국 간다는 이 비 살생의 계율이 미신이 되어가지고 전혀 자비가 없거든. 사랑이 없거든. 사람이 죽어가도 내버려 두거든. 그것을 깨우치기 위해서 고기를 먹었기 때문에 그 분은 자기의 그 법률 자기의 소위 말하면 법이지요. 자기 계율을 이렇게 사랑으로 융통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 것이지요. 사랑에는 법률을 초월한다는 거지요. 사랑에는 수도법도 초월합니다. 수도법도 사랑의 완성에서 법이 있지. 사랑을 배신하기 위해서 법을 지킬 수는 없지 않아요? 그렇게 이제 비상 자기의 어떠한 의미에서 재창조의 길을 열기 위해서 하시기 때문에 아무 뜻도 없이 맹목적으로 따라다녔다고 병원에 입원한 저도 기어이 그분은 자기주장대로 한 달 있으시다가 퇴원해버리고 치료를 포기해버렸어요. 자기치료를 포기해 버렸어요. 그때 저만 덕분에 6개월 있으니까 났어요. 8년 동안 병들어 약을 안 먹다가 먹으니까 6개월 먹으니까 벌써 다 나아가요. 제가 부끄럽지만 이 치질도 결핵성이어서 고름이 나오고 손도 그랬으니까 퉁퉁 부어가지고 이렇게 곧 손이 떨어지려고 그랬거든요. 여기 그때 여 의사가 기부스해 줬어요. 손도, 그러고 치질도 고름이 잡혔던 게 나았고, 폐는 너무 깊어가지고 한 5-6년 약을 먹었을 거예요. 폐병 약은 한 5-6년 후에도 10년까지도 여기 쫒아 와서도 먹었어요. 그럼 그때 같이 입원하고 병든 사람이 100명에 90명은 다 죽었어요. 그러니까 마이신이 발견하고 몇 해 후이니까 벌써 늦은 사람들이니까 거의 다 죽어버립디다요. 돈 많고 재벌들 다 죽어 버립디다요. 그 저는 왜 이렇게 살았냐? 그건 바로 말하면 특은이고 기적이지요. 제가 그걸 몰라요. 입으로 고백하면서도 느낌이 없어요. 하나님의 덕분인 것을 자기가 모르고 있습디다. 그러니까 자기가 모르는 것은 참 캄캄한 것이지요. 마음이, 그러나 이 사리를 살펴보면 다 죽었는데 살아있는 거예요. 그리고 악조건이고 번번이 환자로서는 거기가 있으면 죽을 듯 살았거든. 다리 밑에 산다든지 그렇게 하루 종일 소위소식 했다 던지 그렇게 아주 그 조건이 나빴는데 살아있냐? 그러니 살아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고 은혜라. 그렇게 고백이 되요. 또 지금 그렇게 느껴지고요. 그런걸 보면 이 선생님이 우리를 지도했던 것은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어요. 누가 들으면 오해 한다고. 뭐 그런 잔인한 선생이 있느냐? 사람이 그렇게 지조가 없이 자기 지키던 율법을 다 파계하고 죄를 짓고 제자들을 곤경에 빠치고 그렇게 교리도 없고 법률도 없고 그렇게 할 수 있느냐? 잘못 들으면 이 선생님이 형편없이 낙제가 되어버린다고요. 실상 이 현필 선생님 전기를 쓸 때는요. 이 선생님이 오해를 받고 불의한 사람이 될까봐 여간 이 선생님을 감춘 거예요. 험을 잘못될라나 감추려고 그랬어. 그런데 말 잘못해 가지고 요 이야기를 해버렸거든. 이 선생님 실수했다고 아이고 요이야기를 했는데 딱 누가 속기를 했다고 목사가 그 담에 걱정 했다고 아이고 내가 이 선생님을 험해버렸으니 이 선생님을 내가 타락했다고 했으니 어찌할까? 걱정이 태산이야. 전기를 본 사람이 지금 보면 거기 때문에 이 선생님이 예수교 신자라는 거예요. 자기 법을 파계하고 자기가 법을 못 지키고 무능해져 버리고 죄인이 되고 그래서 자비를 실천한 것이니까 이 선생님이 진짜 예수의 제자지. 그 사람이 만일 그런 실수가 없이 자기 깨달은 법을 지키고 도통하고 성인이 되고 죽어버렸으면 그 사람은 예수교 제자가 아니란 말입니다. 무슨 교주가 되어버리지. 그 예수교도 아니고 특별히 교주가 되어 버려가지고 종이 다른 새로운 종교운동이 일어났지 예수교는 아니다. 그렇게 보시더라고요. 아 그래서 참말로 바로 말했구나 싶고 그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야 많고 이 선생이 사람이라 실수도 많이 했지 않아요? 다른 이야기는 다 감췄다고 또 이 선생님의 좋은 면만 이야기 했다. 그래서 그랬어요. 이 선생님 전기가 나오려면 다시 나와야 한다. 이 선생님도 온데 간데 실수하고 잘못했고 아 험이 있는데 이 선생의 전기에는 없다. 그거에요. 이 선생이 저렇게 구원받고 잘 믿는 것은 다 단지 예수님의 은혜지 요새 말씀대로 어떻게 전기를 보면 예수 없어도 이 선생님은 90% 의인이다. 그렇게 보여요. 그런데 이 선생님의 잘못까지 폭로해 버리면 아 예수님의 은총이 50%고 이 선생의 공은 25%고 이 세종선생님의 공이 25%다. 그렇게 정평이 나올 거 같아요. 이 선생 전기를 바로 쓸 수 있으면 써 넣으면 그런데 지금 현재는 이 선생님이 의인이라고요. 성인은 아닌 것 같고 아주 곧고 굳세고 깨끗하고 성스럽고 그렇게 그쪽만 우리가 고백을 했지 허술한 곳 누가 들으면 이 선생님을 얕볼만한 글은 전혀 안했다고 또 이 선생님을 존경하는 사람은 전부 침묵을 지켜버렸어. 말 안 해버려. 이 선생님이 해로운줄 알고 인제 이 선생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말했어. 저 같은 사람, 나중에 이 선생님이 귀화한 못 된 사람 천주교 믿는 그런 소위 말하면 김 천자 자매는 제일 막둥이 신자거든. 그러니까 모르니까 덥퍽 덥퍽 이야기 하니까 그래 글이 나온 거예요. 그런 그 외곽사람들이 말한 거만 글로 써졌고 내부 골수 제자들은 말 안 해버렸다고, 이 선생님이 해롭다고 그러니 실상은 원 이 선생님 전기가 나오려면 다시 나올 거예요. 깊은 속의 이야기를 껍질을 그렇게 썼지만 대개 전기를 본 분이 아 이 선생님 알아보겠다. 어느 정도 보인다. 그 분 인격을 내가 알아보겠다. 하신 증거를 내가 교무를 통해서 확실히 들었거든요. 그렇다면 이렇게 쉬쉬하고 부끄러움을 탈것이 아니라 아 잘 믿는 선생님이다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해도 괜찮겠다. 그 확인을 이번에 주신 게 너무 감사해서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할 용기를 얻었다고 아까 이야기 했어요. 찬송 부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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