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 한식 다음날 치자밭에 울금을 심었다. 봄 가뭄이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도 여전하고 개학도 연기되고 온라인 수업을 한단다. 총선으로 시끄럽고 세상은 요란하다. 몸 놀림이 여의치 않다. 빨래와 정원 일을 했다. 금년 벚꽃이 오래가고 있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진달래 해설)
1998.01.04. 김준호 선생
16절 말씀을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시자 마리아는 예수께 돌아서서 히브리말로 랍오니 하고 불렀다. 이 말은 선생님이여 라는 뜻이다. 17절. 예수께서는 마리아에게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붙잡지 말고 어서 네 형제들을 찾아가거라. 그리고 나는 내 아버지이며 너의 아버지 곧 내 하나님이며 너희의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고 전하여라. 라고 일러주셨다. 18절.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자기가 주님을 만나 뵌 일과 주님께서 자기에게 일러주신 말을 전하였다. 이 말씀이 가슴에 들어 온지도 오래됐습니다. 늘 증언했습니다. 가장 깨끗하시고 거룩하신 신분, 가장 더럽혀지고 죄로 물든 여인, 이 두 분은 사랑했을 때는 두 사람이 한 몸이 된 거란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부부지간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원 뜻은 부부 안에서 나타나는데 내 것이 네 것이다. 부부지간에서는, 나는 내 아버지이며 너의 아버지 곧 내 하나님이며 너의 하나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예수 전 재산은 마리아의 소유가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내가 너를 용서했다. 라는 실증이다. 무슨 말이 뭔 소용이 있어요? 용서했다는 결과는 내 아버지가 네 아버지다. 내 하나님이 네 하나님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이것을 천하에 전하라.
그래 어제 사 이 병찬 목사님도 처음으로 여기와 계셨어요. 로마를 중심으로 동쪽 서쪽으로 나눠질 때 동방교회라는 데는 교리를 정할 때 막달라 마리아가 교주가 되어요. 종교 창시를 할 때 이 분이 법왕이 되는 것이고 서로 맞지요. 그쪽으로 교리를 정한 사람은 베드로가 교황이 되었다. 이것이 해석차이니까 그럼 분명히 성경 상으로는 예수님의 즉 복음은 마리아에게 주지 않아요? 절대 용서 절대 사랑 절대 하늘나라 네 것이다. 그 천국은 마리아에게 준 것이 확실해요. 아, 그러니까 동방교회에서는 이 교리를 만들었겠구나. 그렇지요. 서방교회 에서는 베드로를 중심으로 세우니까 칼날 같지요. 법을 세워가지고 천하를 정죄하고 그러지 않습니까? 아, 그래서 차이가 있는가 보다. 어제 가르쳐 주셨어요. 역시 목사님 옆에 있어야겠어요. 그래야 뭘 얻어먹지요. 다음에 가르쳐 주세요. 다음에 시정해 주세요. 어찌되었든지 가사 역시 성경을 보다보면 그런 것도 있겠다. 어찌되었든지 우리가 알기에는 절대 성인이 절대 죄인을 용서할 때는 한 몸이 된단 말이에요. 절대 내가 없어요. 그것이 용서지. 그럼 히야찐따와 아까 추장, 그걸 실천한 분들이란 말이에요. 그럼 천주교가 좋아요. 그걸 인정해줘. 공교회에서 교회적으로 그건 확실하다. 두 분은 천국 갔다. 그게 복음 아니야요? 하나는 의를 지켰고, 하나는 죄를 지었고 용서 받았어. 용서를 받았다는 것은 똑같이 거룩하다는 겁니다. 우리들이 요절로 늘 보는 말씀은 히브리서 2장 11절입니다.
이 말씀 가사 요한복음 2장 19절 말씀이나 히브리서 2장 11절 말씀은 기둥, 신앙의 기둥이 되면 좋을까 싶었어요.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번역문은 공동번역 이니까요. 사람을 거룩하게 해 주시는 분과 거룩하게 된 사람들은 모두 같은 근원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거리낌 없이 그들을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면 말뿐이냐? 말뿐인데 막달라 마리아에게 천국을 줘요? 아버지를 줘버려요? 그건 말이 아니다. 말씀은 바로 실체 실지지요. 실지가 있어야지, 말만 하면 뭐하냐 이거에요. 그럼 사람을 거룩하게 해 주시는 분은 성 삼위시겠지요? 하나님 예수님 성령이 하시는데 예수님이시고 또 거룩하게 된 사람들은 인류를 대표한 막달라 마리아야. 내가 막달라 마리아지요. 누구 한분이 그런 거 아니고 아담의 자손은 다 막달라 마리아야. 그러면 그 사람들은 거룩하게 돼요. 예수님이 용서를 해주면 거룩하게 되는 거예요. 거룩하게 된 사람들 모두 뿌리는 같단 말이야. 영혼은 같아요. 영혼의 뿌리는 하나님이야. 그러니까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너는 내 동생이다. 내 형제다. 마리아가 동생이지요. 너는 내 동생이다. 그리고 천국과 아버지를 준 것이다.
아 이 말씀은 얼마나 큰 재산인가? 그렇게 이해하시면서 저도 너무 지루한 시간이기 때문에 말씀을 마치면서 꼭 아쉬운 말씀이 하나 더 드리고 싶은 것은 제가 22세 때 이 선생님을 뵈었을 때 오 장로님이 계신 화학산을 저를 데리고 가셨어요. 믿음은, 그때는 오집사지요. ‘믿음은 오 집사가 예수를 믿소. 나, 현필은 말 뿐이오. 그러니까 나를 본받지 말고 오 집사를 본받으시오.’ 그때 저를 인계한 거예요. 이 선생님이 오 장로님께 저를 몸을 인계했습니다. 그 큰골에서, 그러고는 목수하시니까 그 목수 밑에서 목수 일을 배웠지요. 그 손이 이렇게 적으니까 도저히 대패가 감당을 못해요. 그러니까 쭉 그으면 대패가 이빨이 빠져요. 못을 때려가지고, 그러면 그 대 목수가 평생 아끼던 대패 이빨이 빠져버렸는데 눈에서도 태연해요. 전혀 섭섭한 생각 안 해요. 그리고 한 달 두 달 있어도 왜 그렇게 했느냐? 절대 그걸 탓하지 않으세요. 그러면 저는 대패를 갈지 모르니까 목수가 갈지요. 제 소원은 언제나 저 대패 이빨이 갈릴까 희망을 걸지요. 그거에요. 언제 저걸 갈려가지고 빠진 이빨이 없어지냐 그거에요. 대패를 쭉 그으면 쪽 길이 나갑니다. 이빨이 빠진 데가 흠이 생겨요. 아이고, 내 죄, 내 죄 대패질 할 때 보면 꼭 준호 죄가 드러나요. 쭉 그으면 오 장로님은 아주 용서하시고 또 죄가 드러나고 얼마 지나고 몇 달 되니까 대패가 다, 닳아지고 없어지데요. 그때 해방 받았어요.
오늘도 처음으로 고백해요. 오 장로님한테 절대 그 이야기 안 해요. 내가 처해왔거든요. 속에만 사랑이 있지, 발표 안 해요. 그걸 전혀 몰랐어요. 그랬는데 오늘 아침 말씀 들을 때 아, 이 선생님 말씀은 참말이다. 그게 믿어집디다. 이 선생님은 말뿐이었고 괜히 이렇게 약 안 먹고 고기 안 먹고 엉뚱한 존경받고 하늘나라 가셨지요? 오 장로님은 아침 말씀 들어보니까 아 내가 오 장로님을 믿어야겠다. 오 장로님이 보신 성령을 내가 믿어야겠다. 이 선생님은 바로 앞을 내다 보셨구나. 오 장로가 예수를 믿소. 오 장로를 되어보십시오. 그랬거든요. 나는 예수 안 믿소. 말 뿐이오. 그러니까 말만 하신 분, 또 그렇게 사신 분, 그동안 제가 오해 했어요. 아무리 오 장로님 옆에 있어도 말을 안 하거든. 소와 같이, 저런 바보를 왜 내가 본받을까? 항상 그래요. 아 저렇게 좀 어째, 이 선생님은 그렇게 엉뚱한 생각을 했을까? 항상 안 믿어져요. 이 선생님 말이 저렇게 세상에 저럴 수가 있을까? 뭔 말을 해야 할 텐데 아파도 아프다 말 안하고 억울해도 억울하다 안하고, 저런 바보가 있을까? 뭐 저분이 예수를 믿어? 바보인가보다. 항상 그래왔어요. 아침에 말씀 들어보니까 아, 이 선생님이 바로 봤구나. 오 장로가 깨달은 것을 본받으시오. 그 말씀이 맞다 는 것을 인정을 했어요. 아침에 처음으로, 그것도 고백이고요.
또 이 선생님이 쉽게 이야기 하지만 자기 가슴에서 나온 말씀 한자리 했어요. 해방 전이겠지요? 신사참배를 예수 잘 믿어볼라고 화학산 아니면 지리산 속에서 철야를 한건 사실이에요. 아침에 어느 때 보면 눈이, 눈 속에서 기도했기 때문에 머리에 눈이 안 녹은걸 본 사람이 많이 있어요. 새벽에 내려올 때 보면, 그러면 발은 다 얼어버리고 문둥이 발 같았다. 그래요. 그때 본 사람들이 자기 조카가 증거 했습니다. 그 조카가 죽었습니다. 우리 삼촌이 자기 엄마가 누님이니까 ‘누님’하고 들어와서 ‘아이고 동생, 밥 아침밥 다 지었는데 먹고 가.’ ‘그럴 까요?’ 하고 들어오시는데 그럼 자기 아버지가 매형 아니겠어요? 아버지와 삼촌이 겸상을 딱 해드렸어요. 식사 시간에 고양이가 상 밑으로 들어가서 발가락을 꽉 물었다는 겁니다. 발을 쑥 빼는데 고양이가 꽉 물었다는 것 아닙니까? 안 놓아줘요. 그때 조카가 보니까 꺼머니 얼음이 들어가지고 썩어. 발가락이 썩어 냄새가 썩은 내가 나니까 고기로 알고, 이 선생이 그러더라는 거예요. ‘얘야, 그거 고기 아니다. 놔라, 놔라.’ 떼어내더라고, 그러니까 피가 쭉 쏟아지고 그럼 그것이 그분 결혼 후에 한 2년 후의 일이거든요. 그분의 생활 양상이거든요.
밤에는 산에 가서 거기가 꾿꼴이라는 골짜기인데, 거기 가서 철야하시고 또 화학산 아니면 저쪽 서리내, 지리산에서 사신 분인데, 그러면 그 시절 이야기에요. 인적 없이 산으로 돌아다니다가 배는 고프고 길은 없고 눈이 많이 와 버렸어요. 갑자기 지리산이 대개 그렇지요. 지리산 함부로 봤다가 눈 와버리면 죽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니까 아 나는 죽었다. 싶은데 먼데서 불빛이 보이더랍니다. ‘주님 저를 살려주십시오.’ 기도하면서 그 눈 속을 뚫고 들어가서 보니 막 이에요. 가사 조그마한 막인데 불빛이 있기 때문에 하루 밤 쉬어갑시다. 어서 들어오세요. 문도 아니겠지요? 이렇게 문을 들고 들어가 보니까 다 죽어가는 나환자에요. 아차, 괜히 왔다 싶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안 들어 갈수도 없고 들어갔는데 어떻게 나환자가 반가운지 사람을 몇 년 만에 봤는지, 너무 감사해서 ‘아이고 손님, 방이 춥습니다. 냄비 방입니다.’ ‘아 이불속으로 발을 쑥 넣으세요. 넣으세요.’ ‘아 날이 밝아지면 곧 나갑니다.’ ‘곧 나갑니다.’ 그분이 젊어서 전염병 이니까 경계를 하고 윗목에 앉아있는데 ‘아 손님, 그러지 마세요.’ ‘괜찮아요.’ ‘이불속으로 발을 넣으세요. 넣으세요.’ 아니나 다를까 열두시가 넘으니까 웃풍이 세어가지고 못 견디겠어. 발을 조금 넣었어요. ‘아 손님, 그러지 마시고 쑥 넣으세요.’ 쑥 넣으니까 문둥이 다리가 찔끔하니 진물이 묻지 않아요?
아 이거 큰일 났다. 그러더라도 ‘얼른 날이 새면 가야지요.’ ‘그러지 말고 아래 목으로 더 들어오세요.’ ‘아 여기 좋습니다.’ 새벽이 되니까 완전히 식어버려요. 방이 냄비 방이어서, ‘아 뭘 그러세요? 쑥 아랫목으로 내려오세요.’ 에라 모르겠다. 쑥 들어가 누워버렸어요. 나환자하고, 그러더라도 해 뜨면 갈 량으로 누웠는데 너무 돌아다녀가지고 노독이 와가지고 독감이 겹쳤던지 40도 이상 열이 올라와요. 해는 떴는데 몸이 꿈쩍 안 해요. 말 안 들어요. 목이 타. 아이고, 저 환자가 물 떠다 주면 병 오를 텐데, 나가서 먹을 량으로 몸이 말 안 들어요. 그래 정오가 되고 목이타고 불이 나니까 회개 했어요. 내가 살라면 저분한테 사정해야겠다. ‘형제 나 물 좀 떠다 주시오.’ ‘아 그러시지요.’ 기어나가서 바가지에다 그릇이 없는지 떠다줘요. 어떻게 속이 타던지 그걸 마실 때 몸도 좋아지지만 영혼이 기뻐요. 내가 얼마나 위선자며 얼마나 나쁜 놈인가? 내가 은인을 몰라보다니, 거기서 일주일 동안 누워서 간호를 받았다고 그러니까 이건 상식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환자를 도와주고 건강한 사람이 환자를 도와주는 건데, 이건 실지로 죽어가는 환자가 자기를 살렸거든.
아 이것이 예수다. 이분이 예수다. 내가 이분 아니었으면 얼어 죽지 않았나? 생명의 은인이다. 이 환자가 생명의 은인이다. 그럼 그 자세로 일생을 사신 거예요. 내가 누구를 도와준다. 내가 누구를 가르친다. 그것이 아니에요. 저분이 내 은인이다. 저분이 예수다. 나 때문에 저분이 고생 하신다. 아 저분이 예수다. 그 관이오. 그 인생관을 정하신 겁니다. 그렇게 정하시고 사셨지. 내가 전도한다. 내가 저 사람을 도와준다. 그 생각은 미처 생각할 수가 없었어요. 그분 생각으로는, 그렇게 생각을 하신 것이 사실인데 어제 밤에 이 목사님 말씀 들을 때 그 예수님의 혼인 잔치의 기적은 예수만의 기적은 아니다. 어머니의 협력이다. 또 그 일꾼들의 협력이다. 그래 협력에서 기적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말씀하실 때 아, 그럼 이 선생님이 깨달은 믿음이 같구나. 그 일치를 생각하게 될 때 감사합디다요. 이 동광원은 동광원 사람만으로는 안 된다. 반드시 세상 죽을 때 쩜매(묶어) 놓은 겁니다. 자기를 지키되 나보다 땅에서 버림받은 사람을 섬겨라. 왜? 그 사람이 예수다. 섬길 사람이 없으면 너는 고아다. 그럼 하늘나라 못가. 유언이여. 반드시 자기가 스스로 선다면 섬기라. 사람을 섬기라.
그래 자선사업이 너무 커져버렸지요. 오히려 그 사업이 커져버린 것이 사실이지만 선생님 생각으로는 예수님 말씀 그대로 땅에서 가장 버림받은 사람을 예수처럼 섬길 때 구원이 있고 하늘나라 가는 것이지, 자기완성만으로는 안 된다. 그 요절을 준 것이 동광원 요절입니다. 야고보서 1장 끝 절이지요. 이 말씀을 이 선생님이 받아가지고 정 원장님한테 준 것입니다. 이 성경 구절을, 그것이 동광원입니다. 야고보서 1장 끝 절이지요.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떳떳하고 순수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어려운 일을 당하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주며 자기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럼 유교 정의는 한말로 수기치인(修己治人), 자기를 지키고 사람을 가르치는 거지요. 먼저 자기를 지키고 수기치인(修己治人), 인류를 통치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인데 예수교도 똑 같지요. 먼저 자기가 서고 남을 세우는 것 아니겠어요? 그것이 구원 아니겠습니까? 그럼 차선을 바꾸었지요? 먼저 자기를 지키고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할 것이고 그 다음은 어려운 사람을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를 돌아보라. 치세하라. 세상을 다스려라. 세상을 돌봐라. 인류를 섬겨라. 그 말씀 아니겠어요? 야고보서 1장 27절이 이 선생님이 산속에서 이 말씀을 받아가지고 내려 오셔서 지리산에서 받아가지고 내려오셔서 광주에 오셔서 정 인세 선생님한테 이 성경 구절을 적어주셨어요. 이대로 한번 해 주십시오. 그게 동광원이 형성 된 거예요.
요 말씀을 지키다 보니까 동광원이 되었어요. 그래 동광원은 고아원이 아닙니다. 양로원도 되고 고아원도 되고 요양소도 되고 또 걸인 환자 수용소도 되고 저는 인제 고아원이 확대되었을 때 전부 쏟아져 나와 거리로 나가지 않아요? 시내로 다리 밑으로 저를 파송시켰습니다. 그게 걸인 수용소입니다. 도청이 인정해 줬습니다. 고아원 말고 걸인수용소 몫을 꼭 배급 줬습니다. 정원이 50명인데 50명을 광주 충장로라 하면 중앙 아닙니까? 충장로에서 아침마다 걸인들이 체조를 합니다. ‘하나 둘’ 깡통을 들고 ‘하나 둘’ ‘뒤로 돌아’ 그러고 양림동다리 대교다리 밑에 칠판을 걸어놓고, 기억 니은 가르칩니다. 굿 보는 사람이 인산인해에요. 길가에 최 홍종 그분이 그 때 목사님인데 그분이 저하고 맞장구를 쳐가지고 웃고, 치렁치렁한 옷을 입고 광주를 전부 자기무대에요. 자기무대, 매일같이, 그래 광주시에서 보다 못해서 해남군 일본 사람이 간척지 막아놨지요. 송지면 수백 만 평이에요. 그걸 줄 테니 가라고 쫒아 버렸어요. 제가 거기까지 따라갔어요. 걸인 수용소가 바닷가 해남에 가서 그렇게 부유했었지요. 소위 말하는 사업은 아니었고 이 선생님 생각으로는 섬겨야 한다. 혼자 지키고 살 사람을 섬겨야 한다. 인류를 섬겨야 한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가르쳤지요. 친히 가르쳤고, 제가 알기로는 선교를 길게 안 해요. 말 들을 시간이 없어요. 심부름해야 하니까, 밤낮으로 심부름 해야지요. 먹을 것 날라야하고 환자들 돌봐야하고 왔다갔다하고 한번은 목포 갱생원 있었습니다. 일본시대 고아원 하나 있었어요. 일본 여자와 사신 분 윤치호입니까? 윤치호, 그분이 원장이 행방불명되었습니다. 육이오 후에 그래 고아원이 가난해서 애기들이 얻어먹는단 말씀을 듣고 저를 파송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누굽니까? 여기 한 집사님 알아. 저하고 둘이 시작해가지고 서로 헌금을 대거든, 질세라 헌금을 대니까 얼마나 헌금이 많이 나왔든지, 실러쿵 실러쿵 미친놈도 아니여. 깡통을 들고 파송을 갑니다. 동광원 대표로, 그리고 시찰을 했어요. 보고했어요. 거기까지 갈라면 심문을 당해야 해요. 그때는 좌우익이 있어가지고 한 발자국을 갈수가 없어요.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증명은 확실하거든요. 대한민국 그러니까 또 보내고 또 보내고 가서보니 배고프니까 걸어 다닐 수 있는 애기는 다 시내 나가고 없어요.
인제 앉아있는 애기들 한 30명이 추우니까 미군 담요를 덮었던지 떨어져버리니까 솜만 남았어요. 어떻게 불쌍하던지. 그것을 이고 30명이 이고 앉았어요. 뭐라고, 뭐라고 이야기하고, 17살 먹은 처녀가 아주 천사에요. 이 애기들이 불쌍해서 자기가 밥을 해주고 있다고 그래요. 자원병이야. 자원해서 그런 거예요. 아주 고마운 천사에요. 나까지 갈수가 없어서 이 애기들 밥해주고 있다고. 원장님이 행방불명이 되고 사모님은 구걸 갔다고 목포 시내로, 그걸 보고 보고해드렸어요. 그 다음에 양식하고 옷 30명분하고 만들어 보냈지요. 이 선생님이, 그렇게 살았던 것뿐이고요. 어찌되었든지 그렇게 매일 같이 이렇게 심부름을 보내고 그래서 실상은 한가하게 앉아서 예배한번 못 봤거든요. 그렇게 살아오던 끝이지요. 이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서 황송합니다. 성가 하나 부르시고 시간 마치겠습니다. (끊김)
항상 하신 말씀은 우리가 알기 쉽게 말하면 예수님의 사랑이었지만 그래도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으로서의 예수님 사랑을 나타내는 상징이지요. 상징이 십자가도 좋지만 진달래가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신 뜻이 항상 그분 말씀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분은 꽃의 진달래라기보다는 진달래의 상징은 봄철에 그렇게도 아름답게 피지만 아낌없이 팍 낙화가 되는 거지요. 뚝 떨어지는 땅으로, 그 기상이 꼭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그 젊은 청춘에 피를 흘리면서 툭 아낌없이 하나님께 바쳐드리는 사랑을 잘 나타내는 것으로만 마음속으로 흠모했습니다. 물론 4.19때도 청년들이 많이 죽었지요. 거기도 젊은 청년들을 진달래로 어느 시인이 썼지요. 어찌되었든, 예수님의 피 빨갛지 않아요? 진달래도 빨갛거든요. 남달리 봄에 일찍 피었다가 툭 떨어지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상징적으로 한국에서 젊은 사람들한테 진달래를 상징적으로 가르쳐줘야겠다. 그런 생각을 두텁게 하신 것도 사실이고요. 그러면 그 낱말을 풀어서 하실 때 ‘진다’ 그 말은 내가 남의 짐을 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내가 남의 종이 되었을 때에 짐을 지는 것이지요. 내가 윗사람일 때는 짐을 지지 않거든요. 또 둘이 이렇게 경쟁하면 내가 져줘야 저 사람이 좋아하지요. 희생이 되는 것이고 또 섬긴다는 뜻이니까 ‘섬긴다, 진다,’ 그러면 이 전쟁에 이겼다는 것은 ‘탄다.’ 탈 승(乘)자 남을 ‘탄 다’ 이 말이야. ‘깔고 올라선다.’
그것은 세상이고 예수님이 원하는 것은 내가 섬긴다. 져준다. 내가 오히려 아침에 목사님 말씀했어요. 아버지를 기쁘게 해서 아들이 자원해서 자기 몸을 바치는 것 아닙니까? 그런 뜻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진’ 이라는 말 하나를 그렇게 깊이 생각해 보신거지요. ‘진다’ 다 에 물론 이유를 하겠지만 그것을 아버지보고 지라는 것이 아니라 아들인 내가 지겠습니다. 내가 죽겠습니다. 그런 말 어원이 있었다고, 제가 죽겠습니다. 제가 이 몸을 희생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너 물론 나자에다가 외를 하지요. 그럼 진달래 글을 하나 남겨 놓으신 게 있어요. 전주에 가보면 진달네 집인데 그건 자기가 교육자니까 스승으로서 젊은 제자들한테 네가 남더러 지라하지 말고 너희 자신이 져라. 너희 자신이 희생하라. 너 자에다가 세우셨어요. 그 축복을 하신 간판을 쓰실 때 스승 내가 지는 것도 좋지만 너희들이 세상을 섬길 사람들이니까 너희들이 희생하라. 그래 우리가 그랬어요. 쓰실 때 ‘선생님 틀렸습니다.’ 나자에다 세우십니다. 아니 너희들이야, 너희들 몫인데 왜 내가 죽어? 너희들보고 희생하고 살라고 하는 것인데 그러니까 그 상징적으로 예수님이 진달래라고 보신 겁니다. 그러니까 십자가, 십자가 좋지만 한국의 표현한 우리로서는 십자가 보다는 ‘진달내’가 좋겠다. 그래 시지요. 시는 전부 상징이 아닙니까?
그러니 제일로 기뻐하신 것은 우리말을 찾아야겠다. 중국이 한국을 지배한지가 백년, 수백 년이 되니까 한문을 배워야 양반이고 우리말을 쓰면 쌍놈이고 그러니까 국문은 언문 아닙니까? 국문은 배격 하지 않았어요? 우리말을 쓰는 것은 수치스러웠어요. 옛날에 그러면 성경을 번역할 때 그 우리말이 있었으면 사랑이라는 말을 빼야 합니다. 불교는 일찍 번역했기 때문에 사랑을 죄로 풀었습니다. 불경을 번역할 때 사랑이라는 말을 불교에서는 죄로 풀어요. 사적 사랑이라는 것은 남을 지배하고 피를 흘리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불경보다 더 일찍 풀었다면 쓸 말이 많았는데 다 빼앗겨 버렸다. 다른 번역가들한테, 한국 성경을 풀 때 난처했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때 우리말이 있었다면 우리 언니 예수님을 언니라고 풀어야 했다는 거예요. 왜 어질다는 말은 최고 존경사이에요. 어질 인(仁)자에요. 한문자로 어질 인자, 옛날에 어진 사람은 어질 인자를 써요. 아 그분은 어진분이다. 우리말을 쓰면 부끄러우니까 안 써요. 외국말 이지요. 지금 미국말 쓰면 부러워하듯이 그래 한문으로 아 저 인자(仁者) 오신다. 어진사람 온다. 그렇게 수백 년 써버려서 그럼 예수님은 동양적으로 말하면 사랑이라 보면 인자를 쓰면 (끊김)
말 하신거지요. 그런데 들을 때마다 귀에 거슬리지 않아요? 처음 듣는 거니까 억지소리 하시는 것 같고, 자꾸 들으니까 이제 알 것 같아요. 아 저 말씀 억지소리 아니다. 아 저런 좋은 말을 잊어버리면 안 되겠다. 그러면 듣고 말아버리면 안되니까 욕심이 생겼어요. 지금 금년 겨울에 오셔서 하신 말씀을 그냥 하신 주제를 가사로 만들어서 노래를 부르면 안 잊어버리겠다. 기념으로, 그러면 여기 한 4절 나오는데 막 기뻐서 춤을 추시면서 주장하신 제목 이 거든요. 그 겨울에 오셔서 그 과제를 갖고 막 설명하시고 참 그야말로 예수 믿는 것 같이 풀었어요. 학자같이 안 풀고 알기 쉽게, 많은 예화를 말씀하시면서 그러니까 인제 이렇게 모임이 끝났어요. 그래 선생님은 서울 가시고 쭉 소감을 다 물어봤거든요. 거의 여기 4절이지요. 그 말씀에 감화 받았다고, 그 말씀 받았다 하신 구절이 이런 것이 가사를 누가 지은 것이 아니에요. 감화 받았단 말 적으니까 이게 된 거예요. 그런 정도로 종합해 보니까, 그래서 여기 주제는 언니라는 그 처음배운 우리말을 너무나 감격했어요. 그래 사석에서 선생님 예수님더러 언니라 하면 너무 황송하지 않아요? 뭔 황송해? 예수님이 좋아하시지. 얼마나 예수님이 좋아하시겠냐고 자기더러 언니라 하면 정 미안하면 님을 하나 더 붙이자. 언님. 정 정 너희들 마음에 섭섭하면 님을 붙이면 되지 않느냐?
언님, 그러나 우리는 언니라고 하는 게 좋지 않겠냐? 그렇게 이제 말씀하시고 그러면 한문 글자로 어질 인자 인자라고 하거든요. 그럼 한문 글자를 우리말로 풀면 언니에요. 언니 우리말로 풀면 언 이야. 그럼 니는 그 말을 도와주는 조사거든요. 니는 조사에요. 그러니까 한국 글자로 어질 인(仁)자를 풀면 언니가 되는 거예요. 언니가 한문으로 번역하면 인자에요. 그러면 우리 예수님을 언니다. 얼마나 정답고 친하고 한집에 같이 사는 것 같고 그렇게 언니라는 말을 배웠고요. 설명을 깊이 할 수는 없고 진달래가 나오는 것을 대강 이야기 했지요. 그럼 역시 십자가의 상징을 진달래라고 하셨기 때문에 인제 역시 예수님을 본 받아야한다는 말, 엮어 간다는 것이지요. 그럼 후렴에서 정확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어요. 그럼 예수님이 죽어갈 때 사랑으로 희생당하시는데 말이 있겠냐는 거예요. 자기는 인류를 사랑해서 자기 몸을 바치는 마당에 우리가 생각하듯이 그렇게 자기는 무슨 불행 했겠느냐? 자기 몸을 바칠 때 ‘말이 죽어가는 어린양을 본받아’ 그 말씀을 설명하셨는데 멀리 생각할 것 없다 해방 후에 우리나라에 그런 사건이 있었답니다. 일본 사람들이 지금은 북쪽 아닙니까? 함경도인지 어디인지 몰라도 그 털 깎는 양을 많이 길렀대요. 일본 사람들이 해방되어서 갈 때 분양을 받은 것입니다. 어느 농업학교인지 고등학교에서 그래 공것이니까 분양을 받아가지고 학생들이 있으니까 시켰어요. 마당에 운동장에다가 그런데 방학이 되니까 다 학생들이 없고 결국은 다 뛰어나가요. 울타리를 그래 마을 사람들이 소동이 났지요. 전부 농작물 뜯어먹고, 그러면 그, 그러니까 학교 당국에서 키우면 좋지만 감당하기 어려우니까 도살하자. 그렇게 결의를 하고 백정을 불러왔다. 다시 말하면 돈을 벌려고 왔어요. 그 양을 놓고 칼을 가지고와서 처음에 한 마리를 죽였어요. 칼을 갈아가지고 목을 팍 찌르는데 올라타고 꼭 돼지같이 잡으면 소리를 지를 줄 알았는데 눈을 찔 끈 감고 아무소리 안하고 죽더랍니다.
그러니 공포를 느끼지요. 백정이 지금 그때 백정이지. 지금은 백정이라 하면 안 되지요. 한 세 마리 네 마리 잡더니 그냥 불안해 지니 공포심이 일어나 가지고 이놈의 짐승이 울고 저항을 해야 내가 널 죽이지. 이놈이 이렇게 눈을 감고 이렇게 서럽게 죽으니 내가 죽겠다. 내가 칼을 콱 내 이놈의 내 신세야. 나는 무슨 놈의 팔자가 이렇게 험하냐? 나는 차라리 굶어죽지 못 죽이겠다. 하고 칼을 던져버리더랍니다. 마당에다가, 그래 절망을 하고 가버렸어요. 이게 저항을 해야 투쟁을 하는데 무저항이요, 저항하지 않고 죽어주는데 참 내가 양심이 있다는 거예요? 내가 백정이지만 양심이 있어. 나는 너를 못 죽이겠다. 공포심이 일어난다는 거예요. 친히 보셨는지 들었는지 그냥 열을 내서 설명하세요. 그 광경을, 그러면 우리는 양을 안 잡아서 모르지만 예수님은 그걸 보지 않았냐? 그거에요. 예수님 나라는 양을 잡아먹고 사는 나라기 때문에, 예수님은 내가 어린 양이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다. 그렇게 세례자 요한이 번역을 했지요. 그랬듯이 그의 사랑의 상징도 되고 사랑의 모습인데 양이 죽어가는 모습이 꼭 예수님의 사랑을 이렇게 드러내는 한 드라마지요. 그런 일 했기 때문에 말이 없이 죽는 어린 양을 본받아 군중이 그 말을 붙잡았어요. 아 예수 사랑은 말이 없다. 일체 말이 없어. 예수님은 예수신데 어린 양 같고 말이 없이 죽은 어린양을 본받아 저는 지금 집니다. 어니 짐을 집니다. 그러니까 아 예수님만 죽을 것이 아니다. 나도 지렵니다. 저도 우리 부모를 위해서는 내 동생을 위해서는 가사 내 스승을 위해서는 저도 예수님처럼 죽으렵니다. 그렇게 서원하는 거지요.
저는 지금 집니다. 진다는 것은 남의 짐을 져주는 것이고 내가 희생이 되는 것이고 내가 섬긴다. 그 것이지요. 그럼 이것은 예수님의 짐이야. 언니 짐이야. 예수님의 어진 마음으로 소리 없이 사랑하고 죽었던 그 짐을 저도 지겠습니다. 그러니 우리 동광원 같이 층층이 어린 동생 이니까 아주 실감 있다고 우에 언니는 흰머리가 나 있잖아요? 그 사람은 쉬어야 돼. 밑에 있는 동생은 대신 져야지요. 섬기는 환자는 수 백 명인데 누가 다 똥오줌을 가리겠어요? 그러니까 나이 어린 동생들은 언니 짐을 제가 지겠습니다. 계승 하겠습니다. 그런 뜻도 있어요. 그러니까 양과 같이 지면서 지금 어느 운동장에 죽어가던 양과 같이 그 설명했으니까 눈으로 본 듯이 말씀했기 때문에 양과 같이 자기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말을 안 해. 왜 나를 죽이오? 반항하지 않아요. 눈을 찔끔 감고 죽어줘. 그러니까 양과 같이 지면서 져주면서 참말하게 하소서. 참말하게 하소서. 아주 강조하셨어요. 시간을 많이 써가지고 참말은 말이 없다. 결론은, 참 사랑은 말이 없어. 할 말이 없어. 참 사랑은 말이 없다. 그 하나님의 말씀이 참 사랑이다. 하나님은 영원히 말이 없어. 하나님이 말해 버리면 좋을 사람도 있지만 많이 해를 받아요. ‘네 이놈, 그러면 어떻게 하겠어요?’ 하나님이 누구를 칭찬해 봐도 칭찬 못 받는 사람은 실망하겠지요? 하나님은 영원히 말씀 안하시기를 잘했다고 했어요. 아 하나님 잘 하셨어요. 하마터면 못 참고 말했으면 어쩔 번했겠소? 인류 반쪽을 잃어버릴 텐데 너 잘했다. 이러면 좋아하겠죠? 그러면 못한 사람이 많지 않아요? 그래 아버지는 말을 못해. 사랑하기 때문에, 참 사랑은 말이 없다. 참 말은 말이 없다. 양이 죽을 때 소리 안 질렀다. 그거지요. 참 사랑을 소리를 지르지 않아, 양이 죽을 때 말이 없다. 그겁니다. 참 말은 말이 없다. 그렇게 상징을 이렇게 양이 죽은 것과 예수의 죽은 것과 십자가의 죽음과 진달래가 툭 떨어질 때 말이 없지요. 소리 없이 상징이고, 그렇게 풀이하셨지요. 그래 후렴이 되었지요. 이제 그 분위기가 현 동완 선생이나 유 영모 선생님이나 찾아오신 분은 어떤 자기들이 평생 순결하게 살고 싶어서 자기대로 못산 사람들이에요. 그래 한이 된 사람들입니다. 현 동완 선생은 80노모를 모시는데 어머니만 아니면 꼭 결혼하기 싫더랍니다. 80노인이 밥 해주는데 엄동설한에 너무 황송해요. 그래서 30까지는 어머니도 미안하지만 예수님도 미안하니까 ‘예수님, 30안에 나 좀 죽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이 30에 공생에 나갔으니까 저는 30까지는 예수님을 본받더라도 30이 넘으면 어떻게 예수님만 기쁘게 해 드리겠소. 어머님이 늙어 가시는데 30이 넘으면 어머니를 위해서 결혼하렵니다. 그랬다는 거예요. 30안에 죽기를 고대했는데 30이 넘어버렸어. 그래 결혼하게 된 거예요. 울었어요. 그 기쁜 일인데도 이상하게 울었어요. 자기 소원은 수도원에 가고 싶었어요. 자기 평생에 세계를 다섯 번 돌아왔는데 수도원만 찾아보고 왔답니다. 옛날 수도원부터, 성지 순례만, 그게 한이 되어서 부인하고 약속 했어요. 나와 결혼하려면 첫째 집이 없다. 예수님 같이 그것만은 내가 지켜야겠다. 내 평생은 집을 갖지 않을 테니 나에게 시집 올 거냐? 그래 약속 했어요. 평생 집 없어도 좋소. 그래 죽을 때까지 집이 없었어요. 고아원 뒷방에서 돌아가셨지요. 그래 부인도 기쁘게 생각했어요.
그렇게 하신 분이어서, 한국 외국만 수도원이 있는 줄 알았더니 한국도 이 세종 선생이 있었다. 혼자 살았다. 결혼 한 다음에도 혼자 살았다. 또 그때는 동광원이 아니에요. 동광원이 없을 때입니다. 또 그 제자가 있다. 이 선생도 이렇게, 이렇게 산다. 그 소문을 정 원장한테 들었어요. 그 쫒아 내려온 것입니다. 유 영모 선생이 단짝이에요. 둘도 없는 친구지요. 우리 가봅시다. 한국도 무엇이 있답디다. 외국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동광원을 찾아가셨어요. 두 분이, 그때 이 선생님을 인도했지요. 그게 사연인데, 두 분이 찾아온 것은 아 우리 한국에도 싹이 있다 이거에요. 예수님 같이 살아보고 싶은 이 싹이 텄다. 그걸 보여주기 위해서 응원하러 내려온 겁니다. 년 년이 고조 고조해준 거예요. 칭찬해주고 싹이 무너지지 않도록, 응원하러 내려오신 거예요. 오면 막 이렇게 불을 일으키지요. 예수 닮아 살아라. 땅위에서 그건 어려운 것이다. 예수님이 성공하고 부처님이 성공했는데 그런 어른들이 성공한 것을 너희들이 어떻게 감당하느냐 말이에요. 그 무거운 짐을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갈 것이냐? 그래 응원하러 오시는 거예요. 자꾸 격려하러 오셨어요. 전부 격려의 노래거든요. 순결을 고조하는 노래, 순결하게 살 수 있도록, 그러니까 악수 말라고 그랬어요. 왜 악수 하냐고? 여기 균이 많고 더러운데 이게 서양 문명이다. 우리는 반가운 사람이 있으면 합장 하라는 거예요. 불교 것이 아니다. 우리 것인데, 아 반가우면 이렇게 하고 묵념해야지. 왜 턱 잡는 거냐는 거예요. 더럽다. 손이, 다 특히 남자가 잡으면 남자가 잡으면 무너지지 않느냐? 마음이, 사람은 동물인데, 아주 그걸 고조 하세요. 다른 사람 손잡지 말라고, 그러니까 꽃도 달아보지 말라는 거예요. 아이 곱다. 그걸 달아보면 균이 오른다는 거지요. 그 꽃은 사람이야, 애기들도 달아보지 말라는 거예요. 애기들도 엄숙하게 하나님이 보시는 것 같이 엄숙하게 돌봐야지, 자꾸 달아보고 애기 때부터 달아본 다는 거예요. 그걸 쭉 고조하다 보니까 이것이 시가 된 거예요. 그래 상징적으로 시를 읊으세요. 동양 시를 읊으시고 그러니까 동양 시는 우리가 모르지만 뜻은 우리가 여기도 그렇지만 호수에 여기 연꽃 피었네. 소리 없이 고요히 소복하니 피었네. 깨끗한 꽃인데 깨끗한 여인상 이지요. 깨끗한 남자상이고 그러니까, 손을 대지 말고 멀리 보게 멀리 인사하는 거예요. 가까이 하지 말고 손을 대지 말고서 멀리 보게 하소서.
그 푸른 물결은 투정이야. 나를 쳐 죽이고 십자가를 지려면 육을 정복해야 하니까, 고기가 물살을 차고 올라가듯이 자꾸 자기를 24시간 싸워 이기라는 거예요. 또 지면 실패 했으면 걱정하지 말고 또 올라가라. 고기같이 그건 극기를 고조하는 것이고, 4절은 좁은 길인데 다시 말하면 오늘도 글을 선생님 글이라고 읽으셨는데, 이건 바보가 되는 것이지요.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한 가지를 말씀 전하겠습니다. 아주 쉽게 인천에서 초등학교 운동회를 하는데 자기 엄마가 모두 밥을 싸가지고 오지요. 1학년 2학년 3학년, 그럼 동창회 어머님들 릴레이가 있지요. 애기들 같이 어머니들은 릴레이를 하는데 이마에다 계란을 이고 달려 계란을 이고 달리라니까 어머니들이 계란이 땅에 떨어져 버리잖아요? 손으로 잡고 가서 일등하면 상을 줘요. 그런데 한 엄마는 너무 순진해. 너무나 참해 가지고 계란을 이고 손을 안대. 손을 안대고 달렸는데 운동회가 끝나버렸어. 그럼 이건 일등인데, 가짜 일등이 상을 타고 가버렸다 이거에요. 그 이야기 하세요. 예수 잘 믿어봐. 누가 인정 안 해 준다는 거예요. 아주 바보, 바보, 참말로 예수 일등으로 믿어보라 이거에요. 아무도 인정 안 해준다. 그거에요. 그 이 목사님 처음에 한 마리 양 찾았다고, 가짜 예수를 믿어야 환영받지, 가짜 사랑을 해야 정혼 하는 거지. 진짜 사랑 해봐라. 아이고, 저 못 난놈. 그러니까 실상은 땅에서는 역시 예수님 모양으로 짓밟히는 거다. 참 사랑을 하다보면 희생이 되는 것이다. 각오하라 그 말이야. 그러니까 물론 예수님도 가만히 올라가시지요. 방대하게 다닌 것 아니에요. 숨어 다녔지, 하천풍언씨는 예수 삼년사개 월 연구해 보니까 거의 산이나 바닷가에 숨어계셨지, 나타난 시간은 일 년 반도 못 된다는 거예요. 삼년 일했다는 말은 산속에 숨어계셨고 바닷가에 숨어 계셨고, 지혜 있게 나타났어도 미워한 거예요. 진짜 사랑을 하니까 가짜 사랑하면 괜찮았지, 그러니까 참 말씀을 하기 때문에 감당을 못해요. 세상이, 그래서 가만히 가라. 언님, 예수님, 언님 따라 가만히 따라가게 합 소서. 참 예수님을 기쁘게 해드리려면 희생이 되니까 자기가 져버리니까 섬겨야 하기 때문에 항상 남의 종이어요. 항상 남의 종이야. 누가 알아주는 사람이 아니야. 그러니까 언님 따라 가만히, 고조했기 때문에 이 말씀 남아있다는 말씀을 하고, 아까 진달래 이야기는 뭐 뜻은 다 그래요. 그럼 거기서 지금 해방되기 전에 이 노래를 작사 했다고 하는데 이것도 몇 년 만에 나온 거예요. 단번에 지은 것이 아닙니다. 일본 사람이 한국을 점령하고 쭉 36년 동안 보면서 이 노래가 나온 거예요. 그러니까 진달래는 한국 그때 약소민족이지요. 한국 사람인 거예요. 짓밟힌 거예요. 세력 강한 일본한테, 그런데 실상은 예수님도 약자니까 짓밟히고 죽어갑니다. 그래 예수님과 한국 민족과 진다는 뜻으로 진달래란 말이야. 그러면 예수님도 사랑 때문에 그렇게 희생당하고 먼저 가셨는데 예수의 제자인 나는 어쩔 것이냐? 나는 예수의 짐을 지겠다. 자기는 그렇게 생각한 거예요. 진달네야, 진달네 어느 꽃이 진달네냐? 뿌리는 아버지의 사랑에서 아들을 오늘 바친다고 목사님께서 그랬지요. 아버지를 살려주기 위해서 아들이 대신 죽었다. 그러면, 나도 아버지를 사랑해. 아버지만 나를 사랑하십니까? 나도 아버지를 사랑해서 지겠습니다. 십자가를 지겠다는 말이에요. 진달네는, 그러니까 꽃을 보면서 이것은 꽃은 상징인데 아 진달래 너도 죽으려고 피었구나. 떨어지려고 피었구나. 아, 너도 부럽다. 너만 홀로 진달네냐? 이 꽃 너만 혼자 질라고 피었다고 자랑을 말라. 네 이름이 진달네니까 너도 질라고 핀 꽃이라면 나도 지기 위해서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 이 말이에요. 나도 사랑 때문에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진달네가 되었다. 진달네 나는 진달네. 임의 짐은 내가 질래. 내가 형제를 위해서 희생을 한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예수라고 예수님이 지던 짐을 나도 지겠다 그 말씀을 엮어가는 것이고요. 그 뜻이 나오는데 그러면 3절에 피 울 때 안 이울리라 웃음 한갓 진달래라 그럼 단어 하나하나 꼭 한글 자 같아요. 그 분의 철학이 있어요. 어찌 보면 꽃 이름이지만 글자 하나하나를 전부 뜻을 모아놓은 것입니다. 풀음은 한 사상이에요. 그러니까 몇 년을 풀었어도 다 못 푸셨어요. 올 때마다 진달래를 해석하는데 아무도 못 알아들어요. 광대하니까, 뭐 책도 수십 권이 되는데 진달래만 풀어도 알기 쉽게 말하면 예수님이야. 예수님인데, 피 울 때 안이 울랴 그러니까 꽃이 필 때 진다는 거예요. 탁 피면서 탁 떨어져요. 백 년 만에 핀 꽃은 밤 12시가 되면 탁 피데요. 세 시간 있다가 툭 떨어지거든. 그거 원불교가서 그 꽃 이름이 무엇입디다. 월 향이 달밤에 잠깐 피었다 떨어지는 꽃이 있어요? 그러니까 월 향이는 그런 성인이겠지요. 인류 위해서 탁 떨어지는 거예요. 그런 꽃이 있습디다. 그러니까 피울 때 탁 피었는데 안 이울랴 시들어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또 시들면 지지요? 무슨 말인지 웃고, 하하하 아 내가 열여섯 살 먹은 처녀를 봤더니 웃을 때 눈이 딱 이울더라는 거예요. 벌써 시들어서 할머니 같더라는 거예요. 나이는 열여섯인데 웃으니까 주름이 생기더라고 벌써 늙어. 열여섯인데 벌써 늙더라. 하하하, 열여섯이니까 네가 젊냐? 이거에요. 벌써 늙어. 꽃이 피었다 벌써 떨어질 준비한다고, 탁 피어서 서러운 거예요. 떨어질 준비를 벌써 했어. 낙화지, 피자 너는 죽는 구나. 그게 예수를 말한 거예요. 꽃을 말하면서 예수를 말한 거예요. 아 예수 멋져. 탁, 30이 되자 죽어. 얼마나 멋진가? 사랑의 완성. 그러니까 피울 때 안 이울랴 이것은 십자가 내가졌어. 식모가 되었어. 환자를 섬기는 보모가 되었어. 아무리 선한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장정이 없다고 불평이 생겨요. 눈물도 나요. 억지로도 되어요. 기쁜 마음으로만 안 되어요. 서러워 하기도해. 그러니까 운단 말이에요. 아니 울랴? 꽃은 피면 곧 늙지만 또 선한 일을 하다보면 눈물이 나와. 그러니까 사람은 불완전이지요. 아무리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희생한다 하지만 눈물이 난다. 이 말이에요. 아 내 신세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기쁘기만 하냐? 답답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피울 때 안 이울랴? 이건 두 번 말이지요. 이운다는 것은 꽃이 진다는 말이고 운다는 말이야. 또 다른 뜻이 많이 있어요. 그러니까 웃음 한갓 진달네야. 아 나는 예수 제자야. 아 나는 예수 사랑해. 나는 희생해 한다지만 어찌 웃기만 하겠냐? 어찌 행복하기만 하겠냐? 이거에요. 다 고민도 오고 답답하기도 하고 그냥 죽고 싶기도 하고 그 고통이 따른다. 그 말이지요. 그러니까 아무리 예수 잘 믿는다. 하더라도 고민도 있다. 항상 기쁘냐? 번민도 있다. 웃음 한갓 진달네야. 기쁘게만 어떻게 희생이 되느냐는 거예요. 억지로도 하지. 그러니까 예수님 때문에 임 때문에 한갓 진달래 나보고 진달래 꽃 같이 탁 그냥 죽기는 죽고 싶어. 그러나 너 꽃만 너만 지고 말 것이냐? 나보다 먼저 죽을 수 있냔 말이에요. 나도 너 꽃한테 지지 않겠다. 그런 그 선생님의 기도라고 그렇게 들었습니다. 너무 시간 많이 말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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