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여름 휴가의 추억 : 성탄의 의미

mamuli0 2019. 10. 25. 11:54

지난 여름 휴가를 함께 보내기 위해 벌교 순천 여수 돌산에 다녀왔는데 이제야 사진을 받아 올려 본다.


 


 성탄의 뜻


1979.12.23. 정인세 원장


 예언의 노래를 불렀다. 찬미하라.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을 당신의 백성을 찾아와 해방시키셨으니 우리를 구원하실 능력 있는 구세주를 당신의 종 다윗의 가문에서 일으키셨다. 이것은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예로부터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이니 원수들의 손아귀에서 또 우리들을 미워하는 사람들의 손에서 우리를 빼내시리라 던 언약이요. 우리 조상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며 당신의 거룩한 계약을 지키시리라 던 언약이다. 주님은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다. 우리를 원수들의 손아귀에서 구해내시어 떳떳하게 주님을 섬기며 주님 앞에 한평생을 거룩하고 올바르게 살게 하리라 맹세하셨다. 
 ‘공중에 들리는 소리 양치는 목자들에게’노래 부릅시다. 이것은 이사야 예언서에 있는 말씀대로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의 길을 닦고 그의 길을 고르게 하여라.  모든 골짜기는 메우고 높은 산과 작은 메는 깎아내려 굽은 길이 곧아지며 험한 길이 고르게 되는 날 온 인류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리라. 


 


 어제저녁부터 예수님이 오신 뜻을 생각했습니다. 첫째로 어제저녁에 이야기 한 것은 예수님이 오신 것은 죄악 가운데 갇혀있던 온 인류를 영원히 지옥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던 인류를 죄악의 사슬에서 풀어놓으시고 지옥에서 건져내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그것을 어제 저녁 이야기 했습니다. 오늘 새벽에 이야기 한 것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하나님께는 큰 영광이 되고 땅에 있는 모든 백성에게 특별히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에게 평화가 있게 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그것을 말씀 드렸습니다. 이 시간에는 셋째 번으로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여기 있는 이 말씀대로 모든 골짜기는 메우고 높은 산과 작은 뫼는 깎아내려 굽은 길이 곧아지며 험한 일이 고르게 되는 날 온 인류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리라. 이 말씀을 생각하려고 그럽니다. 이 세상에는 불공평한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가진 사람은 너무 많이 갖고 너무 잘살고 있고 못 가진 사람은 너무 없어서 한 벌 옷도 제대로 못 입고 한 끼니 밥도 제대로 건네지 못하는 사람이 아직도 이 땅에 엄청나게 많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오늘 이 지구덩어리 위에서 이 시간에도 굶어죽고 있습니다. 병든 사람들은 약이라고는 구경도 못하고 길거리에서 그대로 스러져가는 민족이나 그런 비참한 일이 많습니다. 오늘도 전쟁 뒤 끝에 시달리는 캄보디아 지방 같은데 가면 엄청나게 많은 피난민들이 여기서도 쫓겨나고 저기서도 쫓겨나고 그래서 삐삐 마를 대로 마르고 병에 시달리고 그래서 그대로 거리에서 죽고 산골짜기에서 죽고 있는 사람이 수두룩하게 지금도 있습니다. 반면에 큰 호화도시에서는 고래 등 같은 큰 호화주택 속에서 먹을 것을 다 치지 못해서 개에게도 못주고 썩히는 사람들이 있고 뜨뜻한데서 마음 놓고 참 요새 부르는 징글벨을 부르고 그러고 노래들을 부르고 춤을 추고 뒹굴고 술을 먹고 그러는 사람들이 지금 한쪽에는 있습니다. 우리가 눈을 감고 이 지구덩어리를 생각하면 너무나 불공평합니다.


 


 또 제가 오늘 새벽에도 들었는데 아직도 지금 꼭 풀려나야 할 사람이 풀려나오지 못하고 심지어는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혀있는 사람도 상당히 많다고 그래요. 어제 아침에 2천6백 명이 전국에서 풀려나왔다고 그러지만 상당히 지금도 많은 수효가 마땅히 나와야 할 사람들이 못나오고 고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그래서 광주 여전도회에서 떡들을 해가지고 가서 광주 형무소 광주 경찰서에 갇혀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오늘 아침에 떡국을 끓여주기로 했다고 그럽디다. 이렇게 이 세상에 보면 다 나름대로 법에는 이유가 있겠지요. 그러나 어찌되었든지 이 추위가운데 그런 유치장속에나 형무소 속에 아직도 갇혀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죄가 있던지 죄가 잘못 정해졌던지는 별문제로 하고 그 사람들이 그런데 있기를 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겁니다. 우리는 이렇게 두 활개를 피고 두 다리를 뻗대고 땅위를 자유로 걸어 다니지만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고 하지만 여러분들이 갇혀있는 사람들의 그 답답한 심정을 헤아려 본적이 있습니까? 감옥에 가서 그들을 같이 자보고 먹어보고 겪어보지 않고는 그 심정을 이해 못합니다.


 


이 세상에는 그 외에도 불공평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같은 병원에 똑같은 병원에 가도 일등실이 있고 무료 실이 있습니다. 무료 실에도 못 들어가서 쫓겨나가는 환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병이 나서 죽게 되어도 지금은 의료카드 라는 게 있어서 상당히 국가적으로 애들을 쓰고 있지만 아직도, 아직도 병원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아스피린 하나도 사먹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걸 여러분들은 아셔야 합니다. 아파도 어디다가 호소 할 데도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그 반면에 또 병원 같은데 가보면 아주 호화스럽게 대접을 받고 주사 한 대에 몇 십만 원씩 하는 주사를 뭐 아끼지 않고 맞고 치료를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하고 그렇게 들어앉아 있는 사람 병자들도 있습니다. 똑같은 병자, 두 눈가지고 똑같은 코를 가지고 두 귀를 갖은 인간들이 어째서 이렇게 불공평한 취급을 받느냐? 여러분 그런 생각을 해보신일이 있습니까? 그것뿐 아닙니다. 문화적으로나 뭐 정치적으로나 이런 경제적으로나 왜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혜택을 받지 못하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 땅위에 예수님이 오신 것이에요.


 


 저는 그런 부조리를 다 여기서 이야기 하려고 그러는 게 아닙니다. 이 예수님이 이 땅위에 오신 건 그런 땅에 옛날에도 오셨고 오늘도 오시고 계시다는걸 이야기 하려고 그래, 그런데 여러분 이런 생각 해보셨습니까? 예수님이 왜 하필이면 베들레헴 마구간에가 태어나셨을까? 하나님의 아들이 그냥 이 지구덩어리위에 마구간에서 태어났다는 제가 아직 듣지를 못했는데 그래도 거적 데기 위에서 태어났다 던지 최소한도 셋방 구석에서라도 태어나시지 어째 하필이면 짐승이 있고 소똥냄새가나는 마구간에서 태어났을까? 그것도 겨우겨우 얻어서 걸린 자리 아닙니까? 그러면 가난해 해도 그 이상 가난하지 못하는 것이 아마 예수님의 탄생하신 자리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사람들이 ‘억울해, 억울해’하지만 예수님은 벌써 갓난 애기 때 젖꼭지에 물려서부터 공연히 쫒기는 신세가 돼서 애급까지 피난을 가시지 않았습니까? 그래가지고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시는 그 시간까지 어디 예수님이 한번이나 두 다리 뻗고 호강했다는 기록이 있습니까? 어려서 목수의 아들로 자라나면서 그는 아마 적어도 손에 왕마디가 굉장히 굵어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그 가난한 살림을 가난한 또 의롭고 정직한 그 의부 요셉과 함께 꾸려나가느라고 무던히 고생도 했겠지요. 그것보다도 우리가 예수 전을 읽어보거나 예수의 영화를 보면 더러 느끼는데 그가 길거리에 나가면 보이는 것은 밤낮 그 비참한 자기 동족들의 상태였습니다. 왜 하필이면 예수님은 피압박 민족에게서 태어났을까? 그것도 우리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36년 동안 일본사람들의 압정 밑에서 살아왔지만 적어도 로마 사람들의 그 폭정 그 고대의 무지한 폭정 밑에서 살아가던 이스라엘 민족의 생활을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 채찍에 까닭 없이 얻어맞고 길거리에 뒹굴어도 누가 가서 동정도 할 수 없고 만져줄 수도 없는 그런 처지에 놓여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세금을 어떻게 긁어 가는지 가난한 과부가 입고 있는 홑이불까지도 빼앗아가는 그런 학정 밑에서 유대사람들은 살았습니다. 그걸 예수님은 보신 겁니다. 예수님은 길에 가다가 그냥 자기 동족이 그 로마사람들의 채찍에 맞아서 등허리에서 피가 나고 그냥 쓰러져서 울부짖고 땅을 치고 통곡을 하는 것을 젊어서부터 많이 보고 자라신 분이에요. 예수님은 우리가 그런 예수님이 왜 하나님의 아들이 적어도 그런 민족 가운데 그런 계급 가운데 태어나서 어째서 그런 생활을 하셨을까? 그 뿐인가? 강도 틈에 끼여서 아주 저주스럽고 이 세상사람 누구도 겪을 수 없는 그런 고통의 십자가를 하필이면 지셨을까? 그것이 예수님이 이 땅위에 오신 큰 이유가운데 하나에요. 그렇게 하시러 오신 것이 그럼으로써 눌린 자의 사정을 이해하고 가난한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또 그의 주위에 몰려든 가장 비참한 병든 자 굶주린 자 헐벗은 자 그들과 같이 호흡하고 그들과 같이 피부를 맞대고 살면서 그들의 모든 처지를 깊이 이해하시고 싶어서 오신 겁니다. 그래서 그렇게 사신 겁니다. 아마 이 땅위에 자비심이 많다 불쌍한 사람을 구제한다. 뭐 이렇게 간판을 걸어놓고 불행한 사람들을 모아 놨다. 하지만 예수님이 하신 거에 비하면 만분의 일이나 우리가 그런 걸 하고 있는 줄 압니까? 우리 마음이나 우리 생활 자세들이 예수님은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인생의 밑바닥을 사신 것이에요. 가장 낮은 자리 가장 천한자리 가장 비천한자리 가장 눈물과 근심과 억울함과 불공평이 많은 그 자리에 내려오셔서 그 자리를 사신 겁니다. 그러려 오셨다. 그걸 말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땅위에 오신 건 그러기 위해서 오신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마디 하고 지나가야 할 것은 오늘 아마 전 지구덩어리 위에서 전 십억이라는 사람이 성탄 축하예배를 드리고 또 새벽 찬송을 드리고 모두 이런 무엇을 꾸미고 어쩌고저쩌고 모두들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가운데 그 예수님을 헤아려서 이해하고 자기가 한번이라도 그런 경지를 더듬어보지 않고는 예수님을 맞이한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부를 자격이 없어요. 그게 전부 거짓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외식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러면 예수님이 오신 것은 우리가 구체적으로 예수님이 오심으로서 어떤 역사가 일어났나 하는 걸 몇 가지 생각해 보고 싶어요. ‘눌린 자에게 자유를’그런 말을 했는데 우리 주위에서도 그런 예를 많이 들 수 있지만 큼직한 거 한 두어 가지 만 들어봅시다. 미국에 남북 전쟁이라는 게 있었지요. 그리고 흑노 해방운동이라는 게 일어났습니다. 그 거기 불을 지른 거는 흑노 검둥이 해방운동에 불을 지른 책이 하나 있어요. 그게 유명한 ‘엉클 톰스캐빈’이라는 책이지요.

여러분들도 아마 읽어 본이들은 읽어봤을 거예요. 거기 보면 똑같은 사람인데 색깔만 검지 흑인도 똑같은 사람인데 짐승 이하의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냥 쇠사슬로 붙잡아 매서 쟁기질을 시키고 짐도 끌고 꼭 소같이 그렇게 부려먹다가 말 안 들으면 막 채찍으로 휘갈기고 몽둥이로 두들기고 심지어는 죽여도 백주에 대로상에서 누가 간섭도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에게 팔려간 몸이기 때문에 자


 


기소를 이렇게 도끼로 찍어서 죽여도 누가 말할 겁니까? 자기 소 죽이니까, 그와 같이 취급을 받았어요. 흑인들이, 그리고 애기를 품고 있는 어머니는 이 사람에게 팔려가고 애기는 요 사람에게 팔려가고 그러면 서로 부등켜안고 안 떨어지려고 하는 걸 막 몽둥이찜을 해서 애기는 애기대로 갖다 팔아먹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갖다 팔아먹고 인제 흠뻑 부려먹다가 실증이 나면 시장을 열어요. 사람 시장이야. 소시장이 아니야. 사람 시장을 열어놓고 거기다 갖다 하나씩 올려세워요. 그러면 이렇게 막대기로 딱딱 두들기면서 보시오. 이렇게 살이 단단하게 쪘습니다. 이건 아마 일을 잘할 것입니다. 얼마에 사 갈래요? 이렇게 경매에 불렀어. 미국서 그런 것이 엉클톰스캐빈이라는 책에 나와요. 실제로 되어졌던 이야기야,


 


 그러니까 그때에 이건 도저히 안 되겠다. 도저히 이건 사람으로서 못 할일이다. 그래가지고 그 남쪽 지방에서는 그 흑노들을 그대로 흑노 노예제도를 그대로 두자는 걸 주장을 했고 북쪽에서는 그걸 반대를 하고 그래가지고 남북 전쟁이라는 게 일어났어. 그래가지고 유명한 아브라함 링컨이 대통령이 되어가지고 그 전쟁을 해가지고는 흑노해방운동이 일어났지요. 그때 그 자극을 준 것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극을 준 것입니다.  도저히 우리가 하나님을 공경하는 예수님의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이럴 수가 있느냐? 이건 도저히 못하겠다. 그때 그 신앙이 아니었더라면 적어도 흑노 해방운동이라는 건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 뒤로 지구 땅 위에서 많은 그 흑노 압박받는 민족들의 해방 운동이 여기저기서 일어났습니다. 그 외에도 저 아프리카 같은 데는 노예해안이라는 게 지금도 있어요. 지금도 지도를 보면 노예해안이라 그건 뭐냐 하면 흑인들을 무조건 짐승 잡듯이 잡아다가 그 해안에서 배에 태워서 갖다 팔아먹던 곳이에요. 그래서 노예해안이라고 그러는데 그런 짓거리들을 했어. 그걸 가장 열렬하게 가장 모두 피를 흘려가면서 싸워가면서 하는 게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그래가지고 지금은 거의 그런 것이 지구덩어리 위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지요.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이름으로서 얼마나 많이 압박받는 사람들에게 자유가 주어지고 해방이 주어졌는가? 그런 걸 하러오셨다는 거예요. 깊은 골짜기를 메꾸고 또 많은 높은 자를 권세 있는 자리에서 떨어뜨리시고 부자를 빈손으로 돌아가게 하시고 그랬다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그게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에요. 얼마나 많은 부자들이 모든 것을 내버리고 여러분이 잘 아시는 그 프란치스 성인이라든지 사실은 그 알고 보면 후코 성인 같은 분도 무서운 부자였지요. 그래서 뭐 그냥 심지어 이런 책 껍데기 같은 것도 금으로 순금으로 이렇게 이런 데를 쓰지 않는 책은 보지를 않고 그냥 옷도 그냥 아주 불란서에서 최고급 비단만 칭칭 감고 다니던 그런 사람이 그거 죄 버리고 아주 가장 가난한자 맨발로 그냥 마대 같은 걸 뒤집어쓰고 그리고 빈민굴로, 빈민굴로 찾아다니던 그런 처지로 낮아지지 않았어요? 높은 자를 낮추신다고 그리고 그는 비천한 자리에서 예수님을 만난다. 비천한 자리에 가야 예수님을 만난다.


 


그거 하나만 머리에 두고 프란치스와 그의 제자들도 그러지 않았습니까? 네게 있는 걸 다 팔아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나를 따라서 그들 주위에는 아주 돈이 많아서 말하자면 실베스톤 이라든지 레오날드 같은 사람들이 그들을 따를 적에 보면 돈이 얼마나 많았기에 그냥 이런 차대기에다가 항아리에다가 돈을 갖다 넣고는 이제 프란치스를 따라나서기 전에는 그 돈을 막 끼얹어주지 않았어. 그리고 오는 사람에게도 한웅큼 주고 가는 사람에게도 한웅큼 주고 막 금화를 줘버려. 그런 부자들이 전부 그냥 빈손이 되어버려. 빈손이,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그 말씀 한마디 때문에. 네게 있는 걸 다 팔아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나를 따르라. 그 말씀 한마디 그 말씀 한마디가 그냥 그렇게 구데기 날 정도로 있던 그 부를 다 헤쳐 버린 거예요. 옛날이나 오늘이나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소위 수도자 들이라는 건 그저 집 한 조각 있는 거 땅 한 조각 있는 거 옷 한 벌 있는 걸 그저 모두 팔아버리고 가난하게, 가난하게, 가난하게, 가난하게 살려고 들 애를 쓰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가장 가난한 자에게 도리어 혜택이 돌아오고 아까 제가 병자 이야기를 했지만 저는 20여세 때 이 광주에 온 사람이에요. 와서 맨 먼저 부닥친 것이 나 병원입니다. 바로 이 자리입니다. 지금 여수 소록도에 나병원이 크게 생겼지만 그때는 그거 없었어요.


 


 또 순천 애향원도 그때는 없었어요. 여기 가서 문둥병자들이 있었어요. 이 동산에 가서 그런데 그때 그 윌슨 선교사라는 이가 고름이 줄줄 흐르는 문둥병자를 자기 등에 업어다가 그냥 움막에서 자기 이불에서 같이 덮고 자고 얻어다가 밥을 얻어다가 먹이고 그래서 시작된 거예요. 그래서 되던 것이 조금 되어가지고 여기에다 집을 지었지요. 그래가지고 그냥 악취가 나는 사람들을 한번 끌어오니까 여기서도 오고 저기서도 오고 그래서 이제 문둥병자가 그래서 그가 그렇게 참 불쌍한 사람을 사람은 그냥 외면을 하고 다니고 그 근처에 가지도 않으려고 하는데 그걸 업고 다니는걸 보고 내가 몇 번 이야기 한 것 같지만 최 흥종 목사님이 이상하게 생각해서 그때 최 흥종 목사님은 막 술이나 먹고 날마다 싸움이나하고 돌아다니고 그러던 분인데 예수 믿기 전에 당신은 뭐하는 사람이오? 가서 물어봐, 하도 이상하고 감격스러워서 그러니까 그가 아무소리도 하지 않고 꼭 한마디 했다고 그러지 않아요?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나는 예수의 이름으로 이런 거 하오. 그 한마디에 감화를 받고  최 흥종 목사가 회개 했거든요. 그래가지고 목사가 되어가지고 그렇게 유명한 목사가 돼서 시베리아 선교도 가고 그랬던 거야.


 


그 말이 옳아요.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한다. 그 운동이 일어나서 나중에는 여기 가서 이렇게 병원이 됐다가 여기는 안 된다고 그래가지고 여수 애양원으로 갔다가 소록도 나병원으로 갔다가 또 전국 구라협회라는 데가 생겨서 전국적으로 문둥병자는 모조리 하나도 없애버리자. 그래서 지금은요, 지금은 문둥병 무섭지 않아요. 폐병보다 다른 병 보다 제일 무서워하던 게 문둥병이었는데 지금은 문둥병에는 꼭 낫는 약이 생겼기 때문에 자기들이 감추면 몰라도 그 약만 먹으면 문둥병 모두 나아요. 그렇게까지 되지 않았소? 순전히 옛 선교사들이 시작한 거야. 알고 보면, 우리가 선교사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런 끄트머리로 우리가 둘째로 생각되는 게 기독병원입니다. 그전에는 제중원이었지요. 모든 사람을 건져낸다. 그래서 이름이 제중원이었지요. 사실은 그 시대만 하더라도 그냥 무료 환자 그렇게 누구든지 오면 치료해 주는 데는 거기밖에 없었어요. 알고 보면 우리도 그 혜택 많이 받지 않았습니까? 무등원 사람들이나 동광원 사람들도 그 혜택 많이 받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때 그 제중 병원에는 그래도 선교사다운 선교사가 있었지요. 여러분이 잘 아시는 카딩톤씨 같은 이도 참 카딩톤씨는 우리가 생각만 하면 눈물 나는 사람 아닙니까? 자기 자식들은 신발이 다 떨어져서 맨발로 다니다시피 하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그 선교사가 미국 선교사가 그랬다는 걸 여러분들은 다 잊었는지 몰라도 그 집에 가보니까 김치를 먹고 있는데 김장을 해서 김치를 해서 먹고 있는데 어째 하얀 줄거리도 못 얻어먹고 시꺼먼 잎사귀들만 먹고 있더래. 그러고는 아주 어린애들이 과자하나 제대로 못 얻어먹고 사탕하나 못 얻어먹어서 그래 이 선생님이 불쌍하다고 그때 동광원도 가난할 적이에요. 그때는 찰밥을 지어다주지 않았소? 그 애기들 찰밥한번 해다 먹이자고. 그 그때 그 카딩톤 씨는 사실 그 사람도 그랬지요. 자기 자신이 그랬고 새벽이면 벌써 동트기 전에 병원에 그때 원장으로 있을 때지만 병원에 가서 그냥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방마다 가서 기도해주고 돌아다니고 꼭 혼자 진찰 다 하고 돌아다니고 중환자 있으면 뒷바라지하고 그러고 와서야 밥 한 그릇 얻어먹고 같이 가서 예배보고 그랬어. 벌써 그 사람은 이 채플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병원일 한번 다 하고나서 봤어요. 어디가 그런 의사가 이 땅위에 있을 겁니까? 그리고도 틈틈이 거리거리마다 돌아다니면서 그렇게 전도하고 병원에서 자기 집이 오는 길이 얼마 되지도 않지 않습니까? 거기 주택지에서 병원 건너오면 그 동안에 거기 오다가도 그 병원 고개턱에 똥 구루마 아침이면 끌고 가는 사람이 못 끌고 가면 꼭 그 등성이 꼭대기까지 밀어다주고 또 그리고 나서는 꼭 쪽 복음이라도 하나씩 주고 예수 믿으시오. 예수 믿으시오. 그러고 이렇게 촌에도 어디를 다녀도 그냥 다니는 적이 없어요. 제가 한번씩 같이 차를 타고 촌에를 나가는데 전도지를 자기가 한 손에다 쥐


 


고 반을 떼어서 저를 주면서 정 선생님은 이쪽에서 문 열고 이쪽으로 가는 사람에게 주라는 거예요. 가면서 자기는 운전하면서 이쪽으로 가는 사람에게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건지려고 아주 요만한 틈도 내버리지 않더라니까요. 그래서 참 부끄러운 생각이 났어. 나는 내 동족의 영혼을 이렇게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이렇게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그렇게 한 장씩 주고 저 서울 같은데 그 병원 청년하나가 그분 모시고 서울에 갔었어요. 서울을 가는데 적어도 선교사가 서울 가면 그래도 호텔은 못 되어도 여관이라고 깨끗한 여관에 들 줄 알았는데 저 파고다 옆에 제일 하급여관 아주 하급여관으로 데리고 가더래. 그래 미안하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아무소리도 못하고 따라갔다는 거야. 따라갔는데 그저 밥 한 그릇 저녁 한국사람 먹는 그거 참 형편없는 밥이지요. 그거 한 그릇 먹는 둥 마는 둥하고 또 어디를 또 나가버리더래요. 어디로 갔는가? 거의 한 열한시 열두시나 되도록 전도지 뿌리고 들어왔대. 종로바닥에 전도지 뿌리고 그리고 새벽에 벌써 사이렌불고 훤하면 그건 저도 한번 봤으니까 그때는 광주역이겠지요. 어디 차타고 가려고 새벽부터 길거리에 가다가 어려운 병자 있으면 무조건 자동차에다 싣고 와서 병원에 들어가서 뭐 입원수속이니 진찰권이니 그런 거 그이는 몰라요. 아예 몰라. 아마 여기 있는 이들도 조금이라도 그이하고 지내본 이들을 알거에요.


 


 덮어놓고 가서 치료해요. 의사들이 싫다고 뭐 어쩌고 그래도 모른척하고 아마 지금 그이가 그대로 여기 있었다면 모르겠어. 병원이 저렇게 커지지는 않았을는지 몰라도 그냥 빈민굴이 되어버렸을 거야. 기독병원이 빈민굴이 되어버리고 폐병환자 집단 수용소가 되어버렸을는지 몰라. 그렇게 좌우간 그 예수의 이름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고 제자들이 들어간 곳마다 곳곳마다 그런 일이 일어났거든. 우리나라에서도 사방에서 지금 여러분 전주에도 기독병원 있지요? 인천에도 기독병원 있지요? 원주에도 대구에도 꼭 예수의 이름으로 기독병원 그것들이 그래도 가장 봉사들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가 알기로는 인천 기독병원만 하더라도 보통 환자보다 무료 환자가 갑절이 넘는데 병원이 유지할 수가 없대. 무료 환자를 너무 많이 취급을 하니까. 그래도 예수 이름으로 하는 곳이 아직도 어수룩해요. 왜 주님이 그걸 명령하셨으니까 또 주님이 그 불쌍한 사람을 항상 돌보셨기 때문에 그래도 주님의 이름을 붙인 곳에서는 차마 타락한 짓을 못했거든. 그거 하러 오셨다는 거야. 예수님이 사람들의 마음을 높은 마음을 낮게 만들려고 불쌍한 사람을 가난한 사람을 돌보게 만들고 그러려 오신 것이 예수님이 이 땅위에 오신 것입니다.


 


뭐 그 외에 우리가 가령 공부 같은 것도 그렇지요. 한국 처음에 들어와 보니까 가장 비참한 것들이 무지거든. 세계는 벌써 문호개방을 해놓고 글들을 배우고 과학을 연구하고 그러는데  한국 사람은 쇄국정책을 쓰고 대원군 때 가둬놓고 그러지 않았소? 거기는 막 이번에도 여러분 텔레비전에서 보셨지요? 그 맥이라는 데서 선교사 순교하는 거, 그냥 막 죽어가면서 들어와서 병원 시작해놓고 글 가르치고 그러지 않았소? 맨 먼저 한국에서 학교라고 생긴 게 이화학당하고 배제학당이에요. 남자대해서는 배재학당이고 그래서 글 가르쳐서 어찌되었든지 문맹을 퇴치하자. 글은 깨우쳐놓자. 그래서 미신도 쫒아내고 모두 ‘귀신아’하던 풍습을 쫒아내려고 그냥 욕을 먹어가면서 매를 맞아가면서 싸움들 많이 하지 않았소? 예수의 이름으로 그래서 사람들에게서 그 무지 모두 그런 것들을 쫒아내는 운동들을 한 게 선교사들이거든요. 또 우리는 지금 우리 민족들도 제법 나가서 태국 가서도 선교를 하고 아프리카 가서도 선교를 하고 모두 나가서 선교를 하지 않습니까? 그런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려주고 복음을 전하고 그리고 그들을 사람답게 살게 좀 소위 인권회복이지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 그게 지금 여기 있는 그 말씀이에요. 그래서 부자는 재산을 많이 가졌다가 재산을 다 던져버리게 하고 부자를 공수로 돌아가게 하고 또 가난해서 병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뭐로나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 어떤 혜택이라도 가도록해서 그들도 같이 사람다운 대접을 받게 하고 또 심지어 갇힌 자를 이렇게 풀어놓고 이 성탄절이 되면 꼭 이렇게 소위 석방운동이 일어나지요. 아마 이건 세계적으로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 참 갇혔던 사람들이 다시 햇빛을 보는 운동도 일어나고 이렇게 활발하게 구제물자들을 가지고 오늘 새벽에 문득 그렇게 한번 돌아보려고 나갔더니 한분이 자전거에다가 박스에다가 무엇을 싣고 한 자매님하고 두 분이 이렇게 자매님이 아는 척을 하고 인사를 하길 레 가만히 보니까 계명여상에서 전도부인 하던 자매님이에요. 그런데 광주 부인 여선교회 부인 전도 회에서 무얼 좀 했는데 무등 재활원 환자들을 찾아간다고 아 그런데 구두도 어째 아주 뾰족구두는 아니지만 미끄러운 길을 눈이 내리는데 또 한사람은 상당히 무거운 거 같아. 자전거 뒤에다 싣고 아 그런데 차마 요리 가시오. 그럴 수만 있어야지요.


 


그렇게 애들을 쓰고 차가운 새벽에 저는 직접 상관도 없는데 자꾸 사과하면서 어제 밤에 꼭 미리 가져다 드리려고 그랬는데 어제는 광주 형무소 경찰서 거기들 찾아다니고 그러느라고 못 오고 오늘 새벽에 왔다고 그냥 가져오면서도 사과를 하면서 그래서 가다가 가만히 생각을 하니까 아랫집으로 가도 안 되겠고 윗집으로 가야겠고 개들이 사나운 것들이 많아서 이 사람들이 가다가 물릴 것 도 같고 그래 따라갔어요. 겸사겸사 몇 번을 넘어졌는지 몰라. 제가 넘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그 자매가, 그래서 아 무엇 때문에 이럴까? 무엇 때문에 이럴까? 그 생각이 났어.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아파 드러누워 있는 사람들에게 떡이라도 갖다 좀 먹이자. 그래서 그렇게 어제 밤에 못 온 죄로 오늘 새벽에 일찍 갖다가 아침에 해 먹도록 하려고 일찍 가져온 모양이야. 그렇게들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 세상에서는 그래도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얼음장같이 얼어붙어있는데 그래도 거기 한 가닥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 주는 게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랑을 모르고 사랑에 굶주린 자 심지어는 배가고파서 먹을 것이 없는 자에게 먹을 것을 입을 것 없는 자에게 입을 것을 아픈 데를 치료할 수 없는 자에게는 치료할 기회를 눌린 자에게는 자유를 억울한 자에게는 그 원통함을 풀어주시고 갇힌 자를 해방시켜 주시고 압박받는 자를 압박에서 풀어주시고 그 일을 하러 오신 거예요. 땅에,


 


그래서 제가 일일이 그런 예를 다 들 수 없지만 오늘 이 땅위에는 전 세계적으로 강열하게 이런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여자들만 해도 그렇지요. 가령 여성해방 운동이야. 하필 이렇게 기독교에서만 하겠어요? 이화학당 있지요? 지금 이화여자대학교 전신입니다. 그것이 옛날에 정동에 가서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때에 처음에 시작해서 몇이 다닐 때는요, 이렇게 장옷이라는 걸 쓰고 다녔어요. 두루마기같이 생겼는데 머리서부터 뒤집어쓰는 겁니다. 여자들은 꼭 그걸 써야 길에 나왔어요. 특별히 행세하는 집 여자들은, 그런데 그건 어떻게 생겼는가하지 요렇게 와서 여기까지 이렇게 와요. 그리고 요렇게 내놓게 되어있어요. 여자들이 얼굴도 못 내놓고 다녔어요. 그래가지고 이렇게 하는데 아주 참 부잣집 마나님들은 비단으로 만든 걸 그런 걸 뒤집어쓰고 그리고 다녔어요. 학교를요,  그런 사람 끌어내느라고 애들 먹었지요. 어디가 학교 그런데 내보낼 거야? 큰일 난다고 이건 뭐 집안 망한다고 난리를 치는 판인데 벌써 그때만 해도 그러고 다녔거든요. 그 처음 시작할 때 그래도 그 아주 그냥 쇠 담 같은 속에 꽉 갇혀있던 여자들을 끌어낸 게 기독교에요. 암만해도 지금 여성해방운동 여성해방 운동 그러지만 그리고 우리 한국에서도 누구누구 하고 민족 독립운동을 하고 뭐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큰 소리 치는 여자들 다 기독교인 아닙니까? 그만큼 길러놨거든요.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버젓하게 장관에도 한몫 끼었습디다. 그전에도 있었지요. 먼저 번 이 승만 박사 때도 임영신 씨가 장관할 때 그이도 신자 아니요? 지금 문교장관 김 옥길 여사도, 여사도 아니에요. 처녀에요. 김 옥길 양이야. 나이는 예순 살이 넘었지만 그이도 아주 참 신앙도 좋은 이입니다. 독실한 신앙인입니다. 그래도 예수의 이름으로 여자들도 여자들 노릇을 하고 남자들과 겨룰 수 있도록 만든 게 기독교입니다. 그건 아무리 불신자라도 그건 부정할 수 없을 것이에요. 그러니까 그게 풀어놓는 거지요. 그게 해방이거든. 해방 어디가 그렇지 않았더라면 어림이나 있소? 만일 기독교가 아니었더라면 물론 기독교 아니라도 지금쯤은 굉장히 여자들이 뭘 했겠지만 어림도 없어요. 여자들은 남자의 종이고 노예야. 노예였어요. 아무 소리도 못해. 여자가 울면 집이 망한다고 그랬어. 암탉이 울면 집이 망한다고 그러고 아무소리도 못하게 하고 그리고 꼼짝 못하게 해왔어. 지금들은 도리어 남자가 뒤꽁무니를 빼게 생겼고 뭐 남자가 한마디 하면 여자들은 열 마디하고 그런 세상이 되었지만 어림도 없어. 어떻든지 제가 일생동안을 이렇게 살아가면서 보면 참 예수의 이름으로 많은 혜택을 받아왔습니다.


 


또 이런 것이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서 이루어진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시고 또 사실은요. 그 부한 자를 공수로 돌려보내고 가난한자를 그냥 말하자면 궁핍에서 건져내시고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신다는 건 그건 예수님의 교훈의 골자였거든요.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화있을진저 너희에게 가난한자여 복이 있도다. 이게 예수님의 교훈의 골자거든요. 그런 모든 것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 가난한 자에게 축복을 하신거지요. 그 물질에 일생동안 종살이 하니까 거기서 해방시키기 위해서 가난해져라. 그런 거 아닙니까? 아무것도 없는 영혼만이 참 자유를 얻으니까.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서 이 세상에서 주어진 선물 가운데 가장 큰 선물이 무엇입니까? 죄에서 해방을 받아가지고 영적으로 자유를 누립니다. 그거보다 더 큰 선물을 없습니다. 다른 것은 모두 거기서 파생 되어서 나오는 축복입니다.  사람이 가장 큰 고생 모든 여러 가지 불공평이라든지 억울한 거라든지 모든 그런 것이 부조리가 전부 죄에서 나온 거거든. 그러니까 그 죄의 쇠사슬에 칭칭 동여매여 있던 우리 인류의 영혼들은 그 쇠사슬을 끊어버리시는 거 그게 예수님이 와서 하신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들을 그 죄의 쇠사슬에서 풀어놓으시는 일을 하셨는데 어떻게 하셨는가? 그래 여러분이 잘 아시는 그분 자신의 생애거든. 그분 자신이 그렇게 살아, 그래가지고 마지막 까지 하나님은 수천 년 동안 인류를 그 죄의 쇠사슬에서 풀어보려고 애쓰셨습니다.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서 그 사람들을 쇠사슬에서 풀어놔 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랬는데 되지 않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나중에는 예수님이 요새말로하면 돌격대로 오신거지요. 예수님이 돌격대로 오셔서 자기 자신이 그 죄악의 쇠사슬에 가서 꽉꽉 묶인 거와 같이 이번에 재미있는 영화하나 봤어요. 여러분도 보셨어요? 삼손의 영화 삼손을 갔다가 칭칭 동여매놓지 않습디까? 동여매 놓았는데 하나님의 능력을 얻은 사람이라 힘을 한번 탁 쓰니까 그 그냥 큰 밧줄 칡  넝쿨로 일곱 번을 묶었다든가 어쨌던가 하는 게 픽하고 다 끊어져버려. 다 끊어져. 예수님을 마귀들이 그렇게 해놨거든. 예수님을 예수님만은 꽁꽁 묶어서 지옥에다 쳐 넣자 그러고서는 아주 도망가지 못하도록 꼼짝 못하게 십자가에 못을 밖아 죽여 버린 거 아닙니까? 그게 그거거든요. 마귀가 그렇게 해서 예수님도 마지막으로 지옥에다 쳐 넣어 버리자. 그렇게 그런데 어떻게 되었어요? 참 삼손의 몸에서 칡넝쿨이 픽 끊어지듯이 지옥문이 소리도 없이 그냥 흔적도 없이 열려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막 무덤 속에다 집어넣고 큰 돌로 막아놓고 봉인을 꽉 하고 군인들이 몇 명씩이나 지키고 그랬지만 군대도 소용없고 봉인도 소용없고 돌도 소용없고 무덤 속에서 가만히 일어나버리시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은 그렇게, 그렇게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그게 예수님이 이 땅위에 오신 가장 큰 목적이거든요. 그러니까 자기가 죽음으로서 우리 죽음 아래 들어오시고 자기가 무덤을 헤치고 부활하심으로서 우리를 부활시키시고 그거에요. 그게 가장 큰 사업이야. 예수님의 사업 하나님의 사업가운데 가장 큰 그래서 우리에게 해방을 주시고 우리에게 참 해방, 그 뒤로는  진정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사람이라면 우리 안에서 죄가 맥을 쓰지 못해야 합니다. 그냥 다 썩은 삼오라기 썩은 새내 끼 끊어지듯이 죄가 맥을 못 써야 돼. 그게 능력이 든 사람이지요. 그게 성신 받은 사람이고 사실은 그게 참 신기하고 그래서 우리가 죄를 지을 적에는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 그게 옳은 말이야.  옳은 말이야. 그래 우리가 죄 안에 있을 적에는 전부 죄의 종노릇을 해. 그래서 우리를 쇠사슬에서 잡아맨 것같이 얽어매져. 그런데 한번 그리스도의 죽음을 체험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 들어간 사람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내 안에 받아들인 사람은 믿는 사람은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야. 꼭 같이 죽으면 같이 사는 거지. 같이 똑같이 죽어야 똑같이 예수님과 함께 살 수 있는 거야.


 


그럼으로써 그 뒤에는 죄가 그 사람을 범하지 못한다. 그래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다고 사도바울도 베드로사도도 강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삶으로서 다시는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게 그렇게 하려하신 것이다. 그것이 바울사도의 신앙이거든. 그걸 하러 오신거야.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만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을 꼭 체험했다면 그러니까 이 죄와 우리와의 관계라는 건 내가 죽은 것만큼 죄에서도 죽고 내가 죄에서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만큼도 살아있는 것만큼씩 내 안에 죄도 살아있고 그걸 우리가 경험하고 있거든. 내 안에 죄가 아직도 살아있다면 내가 아직 죽을 것이 죽지 않아 그렇구나. 내가 아직도 살아있기 때문에 죄가 내 안에서 작용하고 있구나. 그걸 우리가 스스로 알고 내게서도 보고 남에게서도 보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거기에 대한 예수님이 일을 하러 오신거야. 우리가 성탄을 천 번 맞고 백번 성탄절을 지키고 별짓거리 다해도 그 예수를 죽고 산 예수를 우리 안에 모셔 들이지 못하면 의미가 없지요. 만일 우리 오늘 한국 기독교인이 또 세계 기독교인이 또 우리들이 정말 죽고 산 예수를 우리가 맞아들임으로서 참 성탄절을 맞게 됨으로서 내가 먼저 해방되고 죄에서 해방이 되고 또 두 사람이 해방이 되고 그러면 오늘 이 사회의 모든 부조리는 저절로 없어지는 거야. 억울한 자도 없어지고 가난해서 가난에 우는 사람도 없어지고 부해서 지옥 가는 사람도 없어지고 높은 권세를 남용을 하고 사람을 압박을 하는 사람도 없어져 버리고 압박을 당하고 고민하는 사람도 자연히 없어질 것이고 그렇지 않습니까? 그럼 누구 책임 입니까? 남의 책임 입니까? 대통령의 책임 입니까? 목사의 책임입니까? 저 사람 책임 입니까? 내 안에서 이루어져야 해요. 이런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는 성탄을 맞이해야 하지 않는가? 참 거룩한 탄생 예수님의 탄생이 우리 안에서 성취되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 아쉬움 또 그런 희망이 간절합니다. 찬송 부릅시다. 103장, 하나 부릅시다.


HTML인생과 고통의 비밀



인생과 고통의 비밀! 지은이 : 김준호


인생과 고통의 비밀!


사람의 병은 고독, 가난, 번뇌가 아닌가?


주여, 당신의 얼을 보내심으로 만물이 창조되나이다(성무일도 p699).


주님, 공空이 없으면 색色이 있을 곳이 없고


무無가 없으면 유有가 있을 곳이 없고


사랑이 없으면 인생이 있을 곳이 없고


주님의 은총이 없으면 죄인이 있을 곳이 없나이다.


주님, 왜? 공은 우주를 먹고야 충만해지며,


사람은 사랑을 먹고야 행복해지며,


죄인은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고야 영생하는 것입니까?(요한 6:53-58 참조)


오! 그는


사랑의 길이요


사랑의 진리요


사랑의 생명이었나이다.


그렇다면 그가 곧


주님의 은총이요.


평화요.


자비였나이까?


주님, 그러므로


공과 우주가 본체일이요.


무와 만물이 본체일이요.


사람과 사랑이 본체일이요.


죄인과 주님이 본체일 이었나이까?(히 2:11 참조)


주님, 그런데 어찌하여


건강과 병이, 평화의 고통이, 부와 가난이, 사랑과 고독이, 존재해야 하는 것입니까?


깊도다!


주님의 은총과 자비와 평화의 비밀이여!


이 땅 위에 피눈물 나는 인생의 시련이 없었다면


인생들은 그 어디에서


꽃다우신 주님의 그 사랑!


성스러운 주님의 그 자비!


감미로운 주님의 그 평화!


심오한 주님의 그 은총을 맛볼 수 있었겠나이까?


그는 병이 가져다 준 참의 비밀이었나이다.


그는 고통이 가져다 준 참의 비밀이었나이다.


오!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심오합니다.


누가 그분의 판단을 헤아릴 수 있으며 그분이 하시는 일을 이해할 수 있겠나이까?(로마 11:33)


<저 꽃들이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해 보아라> p177-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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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이 탔던 군선인가"..영산강서 발견된 고려 나주선 공개

이기환 선임기자 입력 2019.10.31. 14:16 수정 2019.10.31. 16:28

2004년 소목장인 윤재술씨가 산책 중 우연히 발견한 고려 초기의 선박인 ‘고려 나주선’. 이를 복원하면 길이 최대 42m에 200t이 넘는 대형선박일 가능성이 높다.|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저거 심상치않은 나무인데….” 2004년 3월31일 전남 나주의 윤재술씨(당시 62세)는 갈수기에 강바닥이 훤히 노출된 영산강변을 산책하다가 이상한 나무를 발견했다. 윤재술씨는 5년 뒤인 2009년 제30회 대한민국 현대미술대전에서 공예부문 대상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장롱·반닫이·문갑 등을 만드는 장인(소목장)이다.

대번에 심상치않은 나무임을 알아차린 윤씨는 이 사실을 나주시문화원에 알렸다. 당시 수중발굴 전문가인 안재철 남도문화재연구원 책임연구원 등의 조사결과 이 나무는 고려 전기의 선박 부재인 ‘배 왼쪽 뒷부분 만곡부(배의 밑바닥판과 외판을 연결해주는 ㄴ자 부재)’ 편과 외판 편으로 확인됐다. 이후 긴급조사 끝에 ‘배 오른쪽 앞부분의 만곡부’ 편과 저판재까지 추가로 찾아냈다.

길이 9m가 넘는 배 밑바닥 판재. 세금으로 받은 곡식을 실어나르는 조운선일 수도, 태조 왕건이 나주 공략에 나설 때 탔던 지휘선일 수도 있다.|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그런데 찾아낸 부재의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배 왼쪽 뒷부분의 만곡부’ 편은 길이가 466㎝, ‘배 오른쪽 앞부분 만곡부’편은 560㎝나 됐다. 추가로 찾아낸 저판재(배 밑바닥 판)의 크기는 920㎝에 이르렀다. 이 배에는 ‘고려 나주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찾아낸 부재 등을 토대로 복원할 경우 ‘고려 나주선’의 원 크기는 길이가 최대 42m에 200t에 달하는 대형선박으로 추정됐다. 이 배는 군산 십이동파선(2003년 발견·11세기 후반~12세기 초반)과 완도선(1984년 발견·12세기초), 목포 달리도선(1995년 발견·14세기)등과 유사한 구조와 형태로 보인다.

몇가지 추정이 가능했다. 먼저 세금으로 받은 곡식을 개경까지 실어나르는 조운선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고려사> ‘식화지·조운조’는 “각 조창(漕倉·세금으로 거둔 현물을 모아둔 창고)에는 6척의 조운선이 있는데 아울러 1척에 1000석의 곡식을 싣는 초마선(哨馬船)을 두었다”고 기록했다. 따라서 200t에 이르는 ‘고려 나주선’은 초마선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세간의 관심은 태조 왕건이 탔던 군선일 가능성에 모였다. <고려사>에 따르면 궁예의 휘하 장수였던 왕건은 903년 수군을 거느리고 후백제 배후인 금성 등 10여 군현을 함락시킨 뒤 금성을 나주로 고쳐 불렀다. 왕건은 인근인 진도까지 차지했고(909년), 나주 재탈환을 위해 공격해온 견훤군을 계속 물리쳤다(914년). 태조 왕건은 후백제 배후인 나주 등 전라도 지역을 차지함으로써 고려 건국의 기틀을 닦았다고 할 수 있다.

길이가 4m66~5m60에 달하는 배의 부재. 확인된 부재의 크기로 추정하면 태조 왕건이 나주지역을 경영할 때 타고 온 군선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고려사>가 기록한 왕건의 군선 규모는 대단했다.

“태조가 군선 100여 척을 더 건조했는데, 그 중 10여 척은 각각 사방이 16보(步)이고, 망루를 세우고 말도 달릴 수 있을 정도로 컸다. 태조는 군사 3000여명을 지휘하여 군량을 싣고 나주로 갔다.”(<고려사> ‘세가·태조’)

16보를 미터로 환산하면 29m 정도이다. 그렇다면 2004년에 발견된 ‘고려 나주선’(추정 길이 최대 42m)은 태조 왕건이 수군을 지휘하면서 탔던 대선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고려사> 기록처럼 망루는 세울 수는 있었겠다. 하지만 ‘말도 달릴 수 있었다’는 <고려사> 기록은 과장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렇지만 그 정도로 배가 컸다는 비유의 표현일 것이다. 물론 ‘고려 나주선’은 고려말 여몽연합군의 일본 원정선일 가능성도 제기됐다.

2009년 나주시가 용역을 주어 20분의 1로 축소 복원한 ‘고려 나주선’. 그러나 정확한 고증에 따른 복원은 아니었다.

아무튼 유명 소목장에 의해 우연히 1000년 만에 발견된 이 ‘고려 나주선’은 나주의 한 폐교(영산포 서초등학교)로 옮겨져 그곳에서 보존처리 작업을 벌였다. 남은 밑바닥 판재만 9m가 넘는 대형선박의 부재였기에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공기 중 노출된 배의 부재는 갈라짐과 터짐 현상이 생겼지만 워낙 크기가 컸기 때문에 그나마 원형은 유지됐다. 선체의 수종은 느티나무이며, 나무못은 상수리나무를 사용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와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보존처리를 마친 ‘고려 나주선’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로 옮겨왔고, 10월31일부터 나주 연구소 전시홍보관에서 전시한다. 전시장에는 길이 5~6m, 너비 30~50㎝ 정도의 배 만곡부재 2점과 길이 약 9m, 너비 약 60㎝의 저판재 1점 등 나주선 일부였던 조각 3점이 선보인다. 김병근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과 전용호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은 “1000년 만에 빛을 본 영산강의 나주선을 보면서 그 배에 담긴 고려초기 역사를 더듬어보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