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모도 친환경 농법으로 육묘한 모종을 사다가 오늘 먼 곳에서들 와서 도와주어 심을 수 있었다. 논에 고인 물을 경운기로 뿜어서 물을 먼저 주고 심었다. 새벽 부터 서들러 오후 일찍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자급자족 농사
농사는 이현필과 동광원 식구들에게는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이들이 추구하는 농사는 오늘날 유기농업 혹은 자연농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전통적 농법에 따른 농사였다. 일체의 화학비료는 거부하고 퇴비와 인분으로써 유기농 농사에 주력하였다.
이와 동시에 이들은 또한 생명 사랑에 주력하였다. 이세종과 이현필 그리고 김금남이 다같이 경험하였듯이 온갖 벌레를 죽이지 않았으며 길을 가다가 뱀이 보이면 막데기로 들어서 옮겨주고 갔으며 쥐가 들어도 문을 열어서 내보냈으며 몸에 있는 이도 옷을 뒤집어서 털어버리곤 하였다.
이 뿐만 아니라 길가에 칡넝쿨이 도로 쪽으로 뻗어 있으면 낱낱이 옮겨서 사람이 밟거나 혹은 소 달구지가 지나면서 짓누르지 않도록 하였다.
따라서 이현필과 동광원은 자연과 하나가 되는 생명의 일체로써 농사이며 동시에 농사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며 하나님과 통하는 방법이었다.
노동은 기도요 기도는 노동에서 나오는 기도가 진실이다. 우거지 밥은 기도입니다. 땅파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도입니다.
마지막이 가까워지면서 마음이 개방되어서 기쁘게 되었으며.... 농부가를 손벽치며 부르기도 하였다. 농촌에 가서 농부들과 함께 살면서 농사로 자급자족하고 짚신 지어 신고 화로에 불 담아 몸 데우고 잿물 받아서 빨래하고 유채로 기름 짜서 성경책을 읽고 목화 심어서 옷해 입고 .... 는 동광원의 식구들이 지금까지 실천하는 삶이다.
그리하여 동광원 식구들은 무명베로 옷을 만들어 흰저고리에 검정치마 겁정고무신에 단발머리로 여자들은 모든 단장이 끝나고 남자들도 비슷하였다. 그리하여 외형적인 미적 감각은 전혀 없었다. 그럴지라도 내면적으로 흘러내리는 삶의 모습에서 동광원은 살아 있을 수 있었다.
<성자 이현필의 삶을 찾아서> p288-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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