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년 동지 일주전이다. 눈대신 비가 내렸다. 온돌 안방에서 지내는 일이 많아졌다. 테마기행 베베수엘라 테이블 마운틴 2ㅓㄱ년전 모습을 보아ㅛ고 드라마 겨울연가 재생을 보았다. 첫눈은 왔지만 눈은 쌓이지 않았다.
베네수엘라 지질학 기행 스톤테이블 세계테마 기행을 보았다.

그 요한복음 4장 25절 이하의 말씀을 볼까요? 다른 말씀을 다 아시니까 시간도 없고 생략하고 25절 26절 보겠습니다. 여자가 가로되 메사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 제가 아오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그 부인에게 물을 청하시고 또 생수를 주시마고 말씀하신 다음에 그 부인이 감격적으로 인제 예수님에게 말하고 있는 장면이지요. 그러니까 앞으로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하는 그리스도가 오시면 이렇게 죄가 있든지 없든지 마음속에 있는 비밀을 다 아시고 그 억울함도 다 풀어주시고 이 서러움을 다 눈물을 씻겨주실 분이 오신다는 예언이 있습니다. 그분이 오신다면 이 기가 막힌 저 같은 여자의 서러움을 알아주시겠지요. 또 얼마나 이 죄에 고민하는 이 마음을 다 아시고 용서해주시겠지요? 그분이 오시리라고 저는 소문을 듣고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 말로 대답했군요. 그러니까 그 오시려하는 그리스도 메시아가 바로 나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부인과 말하고 있는 제가 바로 그 사람이오. 바로 납니다. 그래 감격적인 여기도 상면이지요. 아까 부활하시고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를 상면하신 상봉하신 장면은 너무나 극적이지요. 그러나 이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부인과 만나는 장면도 너무나 극적이에요. 여기도 예수님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여기도 전과를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던 것을 알았으니까 아마 어떠한 뜻으로는 인격차별 했겠지요. 아마 영혼을 그 그냥 아프고 서럽게 해주고 떠났겠지요. 그 영혼에 평안을 못주고 해방을 못주고 떠났겠지요. 그러나 이 부인을 찾아오신 분은 예수님이신데 그 영혼의 모든 상처를 낫게 하시고 그 영혼의 서러움을 없이해주시고 영원한 평안 영원한 평화 영원한 기쁨 영원한 희망을 안게 해 주셨습니다. 바로 자기가 예수님이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바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했다는 말은 그 부인에게 완전한 해방을 주었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그 여인에게 완전한 천상의 기쁨을 주었다. 땅위에 있는 모든 죄를 완전히 용서했다는 말이 되겠어요. 예수님을 안 만났더라면 죄가 서로 두 사람사이에 알고말지요. 부끄러운 죄나 알지 무슨 죄가 없어지겠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만났다는 사실은 모든 죄가 다 탕감을 받고 용서함을 받았다는 뜻이 있지요. 그러니 해방이지요. 이제는 천사와 동등이지요.

또 하늘나라에 가서 아버지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을 얻은 몸이지요. 구원 구원을 확실히 받았습니다. 고린도 전서 1장 9절 우리가 믿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또 이 부인이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만난 부인이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또 막달라 마리아가 극적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상봉했다는 그 효과는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믿음은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믿고 그 결과로 영혼의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감격적이고 그렇게 기쁜 것입니다. 그렇게 기념할만한 것이라. 그 말씀입니다. 따라서 읽으십시다. ‘베드로전서 1장 9절 말씀.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그래 우리가 오늘 성경에 상고한바와 같이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내 아버지가 네 아버지다. 내 하나님이 네 하나님이다. 그런 그 아주 중대한 약속을 하신 뜻이 네 영혼이 구원 받을 수 있는 것을 믿어라. 그런 구체적인 말씀이에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고 또 예수님이 우리 구주이시고 또 우리는 예수님의 형제간이고 그러면 땅위에 예수님이 와서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 자매를 만났다는 것은 네 영혼을 구원했다는 확실한 증거란 말씀입니다. 네 영혼을 구원했다. 라는 확실한 보증이란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 영혼이 구원 받았기 때문에 감격스러운 일이요. 기쁜 일이요.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을 믿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고 믿는 것은 우리 영혼이 구원 받았기 때문에 감사해야하고 찬미를 부르지 않겠습니까? 우리 영혼이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찬송을 불러야 하겠습니다. 여기 이미 우리가 이야기 줄거리를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 말씀을 잘 모르는 사람이 상식적으로 생각해본 끝에 그것을 더 가깝게 우리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이야기 그런 비유도 되고 예화가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이야기를 지금 생각나는 대로 다시 해 보겠는데요.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아주 영광을 누렸던 솔로몬과 더불어 그런 호화찬란한 나라를 가졌던 어느 임금님의 이야기이지요. 그 임금님은 아주 그 다윗의 영광을 누린 사람으로서 그들이 자기 왕비 사이에 자식이 없는 것을 슬퍼했어요. 자 우리에게 자식이 있어야 할 텐데 이렇게 나이들은 먹어 가는데 왕통을 이어갈만한 태자도 없고 공주가 없으니 우리의 서러움은 어디 가서 이렇게 위로를 받을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서 그 한나께서 한나 어머니가 사무엘을 기도로 받으신 것처럼 우리 자손을 얻어서 하나님께 바쳐야지요. 우리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많은 기도를 하셨던지 기도한 후에 자녀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꺼번에 하나님이 주셨던지 그 자녀를 낳을 때 쌍둥이를 낳았어요. 그런데 물론 대왕의 품위나 왕비의 품위가 아주 고상하고 그 잘난 인물이겠지만 오히려 그 대왕보다는 아주 그 수려하게 그 아이 쌍둥이가 아주 혈통이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아이들의 혈색이 너무나 백옥같이 희고 아주 백설같이 아주 아름다운 나비같이 그렇게 참 어여쁘게 대왕이 이름을 지을 때 눈 설(雪)자 눈같이 살결이 희다는 뜻으로 남자 아이는 설남(雪男)이라 이름을 짓고 여자 아이는 설녀(雪女)라 이름을 지어주겠다. 그렇게 해서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이 땅위에 영광이라는 것이 다 흥망성쇠가 있다는 것이지만 그 왕국에도 그 행복했던 대왕의 나라에도 흥망성쇠가 있는 것이지요. 갑자가 나라가 소요가 일어나고 전쟁이 일어나서 힘껏 전쟁에서 싸웠지만 아깝게도 그 왕국은 망했습니다. 그 대왕은 이렇게 생포가 되고 사형을 당하고 왕비도 사형을 당하고 모든 군신이 다 포로가 되고 그 나라는 항복을 하고 망했습니다. 그 나라가 망할 때 그 백성의 마음은 다 똑같은 것이지요. 나라는 망했더라도 혈손만 왕통을 이어갈만한 왕자의 자식이 있으면 그 망명을 해서라도 기어이 우리나라를 다시 독립을 해야겠다. 그런 충성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고 나라가 몰락이 되서 망하게 되니까 피난 갔던 대신들이 우리는 포로가 되고 이 나라를 다시 못보고 돌아올 길이 없다. 할지라도 어찌하던지 그 유모님에게 이 자녀들을 맡겨서 우리가 죽은 다음에라도 독립이 되고 이 자녀들이 왕통을 이어가도록 하라고 그렇게 다 회의를 해서 결의를 해서 그 유모들에게 그 자녀들을 맡겨가지고 망명을 시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인제 간단하게 좁혀 이야기하면 설남 이라는 남자 아이를 맡았던 유모님이 남쪽으로, 남쪽으로 참 꽃이 피고 아름다운 그렇게 아름다운 남쪽으로 피난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도우심인지 애기를 죽지 않도록 전쟁이 끝날 때까지 참 누더기 속에 감춰서 그 왕자를 자기가 잘 길렀습니다. 나라는 빼앗기고 임금은 죽고 나라는 없어졌다. 할지라도 그 당시 이 아이가 어느 날인가는 다시 왕통을 이어줬으면 하는 염원으로 그 유모님은 정성을 다해서 그 아이를 키워갑니다. 교양이 풍부한 유모님이라 그런 것 같아요. 이 아이를 보통으로 키워서는 안 되겠다. 아주 유명한 그런 수도원에 맡겨서 아주 덕이 높은 성인의 가르침을 받아서 앞으로 한 나라를 맡더라도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그런 성덕을 길러야겠다. 그런 뜻을 품은 양모님은 그 아이의 교육에 큰 관심을 갖고 꼭 성인이 되도록 가르쳤다고 합니다. 열 살 열다섯 스물 스물다섯 이렇게 키워갈 때에 꼭 자기는 자기가 낳은 아들로 키웠고 또 설남 이라는 아들도 꼭 자기 어머니로 믿고 양육을 받았지요. 그런데 망명하고 있는 이 왕자는 설남 이라 부르지 않고 가명을 썼다고 합니다. 설남 이라는 이름은 유모님만 알고 있는 비밀이에요. 그리고 가명을 쓰고 컸기 때문에 아직 설남 이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지요. 설남이가 누군지 세상은 몰랐지요. 그러면 그 아이가 이제는 스물다섯 삼십이 되지요. 한 삼십이 될 무렵에는 아주 도가 높았어요. 그 성인의 품에서 제 2의 성인이 될 만큼 덕망이 높고 믿음이 깊고 그렇게 완전한 그 인격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유모님이 나이도 먹고 그래서 임종하게 됩니다. 그 설남이 자기 엄마를 유모라고 하지 않아요. 친 엄마라고 믿기 때문에 친 엄마인줄 아는 엄마가 임종하는 마당에 유언을 합니다. 아무도 없는 방에 자기 아들을 불러서 이제 정체를 이야기 하지요. 바로 네 이름은 대왕께서 지어준 네 이름은 설남 이라고 한다. 그런데 내가 죽은 다음에 네가 꼭 내 말을 지켜야 할 일이 있는데 너는 쌍둥이로 태어났다. 그런데 한 아이는 여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름을 설녀라고 아버지가 주셨고 그 네 여동생은 북쪽으로 망명했으니까 만일 살아있다면 네가 반드시 찾아서 앞으로 네가 왕통을 잇고 대왕이 된다던지 할 때는 그는 분명 공주의 신분이니까 네가 공주를 보호해 주어라. 그렇게 임종을 유언을 하지요. 이 땅위에 모든 사람이 너를 하잘 것 없는 이 가난한 여자의 아들로 모두 알고 있으니까 이것이 누설되지 않도록 네가 왕자라는 것이 땅위에서 알려지지 않도록 조심해라. 나는 네 유모다. 생모가 아니다. 네 생모 그 왕비는 이미 돌아가셨고 대왕도 전사했다. 그래 사정을 다 이야기했지요. 그때 얼마나 그 설남은 자기 유모님한테 얼마나 감사했겠습니까? 아 우리 어머니는 참 충신이었다. 참 충절이 있는 어머니였다. 자기 자식도 아닌데 이토록 나를 키워주시고 이렇게 일을 다 마치고 가시는구나. 하고 자기 어머니 앞에 참 감사했겠지요? 그러면 이제 설녀, 설녀는 어디 가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어요. 그 설남은 어머니가 유언하시고 죽은 말씀을 명심합니다. 아 나는 그러니까 왕자, 내 신분은 왕자다. 그러면 나는 어찌할까? 과연 이 나라가 다시 독립이 되면 내가 왕통을 이어야하나? 아니다. 나는 이미 믿고 하나님 아들이 되었으니까 나는 아무리 임금을 시켜도 임금이 될 사람이 아니다. 나는 이 땅위의 모든 것을 영광을 다 포기하고 천상에 가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되겠다. 그런 결심이 섰겠지요? 그러나 어머님이 유언한 그대로 설녀 만은 자기가 천국까지 데리고 가고 싶은 동생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죄 많은 세상에 자기 동생을 혼자 두고 싶지 않았어요. 왕국을 포기하고 어떠한 영광을 포기했다손 치더라도 자기 여동생만은 기어이 찾아가지고 영원한 나라에 가서 같이 살아야 되겠다. 그런 참 사랑이 불 일듯 일어났습니다. 그 옛날 성현들이 전도할 때 그랬듯이 많은 제자를 데리고 이제 성인이 된 설남은 북쪽을 향해서 여행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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