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손자 영현이가 대학을 졸업했고 손녀 지민이가 해외로 출국했다. 손자와 손녀에게서 전화를 받고 보니 10년전 영현이가 초등학교를 지민이가 종학교를 졸업했고 산들이가 유치원을 졸업했고 그때 모습들을 블로그에 올린것이 생각 나서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사진과 동영상을 올려보기로 했다.
졸업식 : 삶과 죽음은 배를 갈아타는 것일 뿐이다 그때 그일
2013. 2. 15. 18:38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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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일에 끝이 없는 것이고 태어나서 죽음을 맞이 할 그때가 졸업 인데, 우리네 학업에 졸업이 그리 많은지 모를 일이다.
집안에 산들이가 유치원 졸업, 영현이가 초등학교 졸업, 지민이가 중학교 졸업을 13일 부터 연이어 했다. 시간이 있어 진도, 곡성, 평택 세 곳을 다녀왔다.
지민이가 초등학교를 졸업 하고 중학교에 간 것이 엇 그제 같은데 중학교를 졸업했다. 세월이 살과 같다더니 정말 실감이 난다.
★졸업식 모습을 동영상으로 한자리에 올려 본다.
★처음 들어 본 졸업의 노래 가사와 곡이 마음에 들어 올려 본다.
졸업의 노래
하늘빛이 가득한 이 곳에 나도 몰래 발길이 머물고
교정 가득히 숨쉬는 추억에 지나온 날 생각나죠
아름드리 나무아래 앉아 함께 웃던 그리운 얼굴들
이제 어느새 희미해진 기억 아쉬움에 눈물 고이죠
* 소중하고 아름다운 그날이
다시 올 순 없지만
예전 모습 그대로 푸르던 꿈들
부디 간직해주길
수줍은듯 얼굴을 붉히던 저녁놀은 변함이 없는데
우리 어느새 시간에 밀려와 소식조차 멀어져가죠
* 소중하고 아름다운 그날이
다시 올 순 없지만
예전 모습 그대로 푸르던 꿈들
부디 간직해주길
소중하고 아름다운 그날이
다시 올 순 없지만
예전 모습 그대로 푸르던 꿈들
부디 간직해주길
소중하고 아름다운 그날이
다시 올 순 없지만
예전 모습 그대로 푸르던 꿈들
부디 간직해주길
다시 만날 때까지..
씨제이이앤엠주식회사에서 제공했으며, 엠넷닷컴회원이 작성한 가사일수 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졸업을 생각해 보도록 다석 유영모 선생의 말씀을 올려 본다.
삶과 죽음은 배를 갈아타는 것일 뿐이다
중략...
이 사람이 이 세상에서 몇 십 년 동안 인생에 참여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6.25동란을 겪으면서 거듭 알게 된 중요한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알아주어야 하는데, 사람을 알아주려면 그 사람의 말을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람의 말을 알면 그 사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중략...
이 사람은 모름지기 지금 이 세상을 떠나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죽어도 좋다는 생각을 갖고 지냅니다. 이 사람의 나이는 일흔 살에 가깝습니다. 일흔이란 말은 인생을 잊는다(忘)는 것을 뜻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 사람에겐 이 세상에 좀 더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없습니다.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으나 더 살고 싶다고 소리소리 지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말을 하고 말씀을 알려하고 말이 이 사람을 심판한다는 사실을 믿고 있기에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이 사람이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선 것도 말씀을 알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시간까지 살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인지 모릅니다. 참으로 말씀을 알고 세상을 떠나면 악을 면케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알고 가면 심판 받는데 근본을 다 준비해 가는 것이 됩니다.
중략...
이 세상에서 바로 살줄 알고 말씀을 아는 사람은, 자기가 사는 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기쁜 것인지 슬픈 것인지 모르고 삽니다. 이를 부지지생(不知之生)이라고 합니다. 죽는 것이 추악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언제 죽어보았어야 알 것 아닙니까? 참(原, 元)말과 참삶을 아는 사람은 말씀을 알려고 할뿐 사는 것이 좋은지 기쁜지 모릅니다. 똥만 싸면서 사는 몸뚱이 삶을 좋은 걸로 알면 ‘너 좋으면 좋다’하게 됩니다. 참삶을 사는 사람은 죽이겠다고 해서 흔들릴 것 없고 살려준다고 해서 좋아할 것도 없습니다. 그저 죽어야 할 때 죽고, 살게 되면 사는 것입니다.
중략...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생명이 확실한 것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죽는 것 역시 모릅니다. 죽는다고 해서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살고 있는 이것이 사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여기(세상)를 떠난다고 죽는 것이 아닙니다. 배를 갈아타는 것일 뿐입니다. 이 사람은 60 여 년 전에 어머니의 배를 차고 나와서 지금 지구라는 어머니의 뱃속에 있습니다. 머지않아 이 배를 버리고 다른 배를 타게 될 것입니다.
중략...
조히 산다는 것은 세상을 쉽게 산다든지, 평생 빚지지 않고 산다든지 하는 것으로 되지 않습니다. 우주 안에서 참혹한 것이나 보기 싫은 것을 보지 않고 사는 것을 조히 산다고 하지 않습니다. ....
기왕에 어머니 뱃속에서 열 달을 조히 살았으면 잘 나와야 하고, 또 세상에 나왔으면 조히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나 혼자만 여기서 조히 살면 안 됩니다. 다른 쌍둥이마저 함께 나와서 조히조히 살아가야하지 않겠습니까? 이 세상에 수십억의 쌍둥이(인류)가 있는데, 이들이 모두 조히조히 살아가는 게 우리의 소원입니다. 이승의 배를 버리고 다른 배를 갈아 탈 때에 나 혼자만 탈 것이 아니라 다 같이 타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조히 살겠다는 것이 하늘의 큰 뜻입니다. 절대의 큰 정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자를 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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