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만에 해가 비치고 날씨가 누그러졌다. 밭이 질고 미끄럽고 잔설이 있다. 농사는 그래도 이어진다.
아래 이야기는 김준호 선생 증언입니다.
정인세원장님이 한소리에요. 그분이 보셨으니까 유 영모 선생님이 오신다고 해서 이 선생님 모시고 두 분이 나갔다고 그래요. 광주역으로요. 지금역이 아닙니다. 방림동 우리 집에서 거기까지가 4키로 못 되어요. 3키로 넘을 거예요. 그때는 택시 탄다는 생각을 못해요. 동광원 사람들이 그때는 죽을 먹고 살던 때라 걸어서 오신거지요. 택시 안타고. 그럼 본래 유 선생님은 그런 분 아닙니까? 혼자 앞에 걸어가시면서 하나님과 나 사이에 이이철학을 하신 거예요. 이이이이 읊고 앞에 걸어가시니까 뒤따라가던 이 선생님이 아아아아 하고 뒤에 따라오시면서 정인세원장님이 감격했다는 거예요. 야, 하나님은 앞에 가신 유 선생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기쁨을 노래를 부르는 거예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어. 그 이이이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니까 기뻐서 막 기뻐하는데 이 선생님은 뒤따라가면서 아아아아 그러니까 종적 관계 인류문제 현실문제 사람문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아니겠어요? 현실 문제에 마음을 둔 것 이지요. 그 걸음 그것이 유 선생님과 이 선생님의 흐름이다. 지금까지도 그거에요. 그걸 정 원장님이 보시고 감탄하셨어요.
그럼 옛날에 현 선생님이나 유 영모 선생님이 왜 강론을 들으러오느냐 이거에요. 이것은 광주사건이 아니다. 동양이면 동양, 한국이면 한국에 씨가 떨어졌는데 너무 잡초가 많이 나니까 풀을 매주러 온 거에요. 풀을, 그러니까 춘추로 오세요. 정월에 오시고 8월 달에 오시고 와서 풀을 매주고 가신 겁니다. 협력하러 오신거지요. 협력, 그러니까 이거 하나님이 심어 논 나무가 있어요. 주인이 없단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사랑 있는 분들이 와서 돌보는 것이지요. 돌보는 것인데 이제는 돌볼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젊은 분들의 관심을 주신 거 같아요. 이거 나무가 하나 심어졌는데 이걸 누가 키우느냐?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돌봐주라. 그런 뜻으로 이번 모임에 만나게 하신 것이다. 그렇게 느낌을 받습니다. 이제 아무도 이 사실을 몰라요. 말씀을 들은 분들은 전부 서울 아니면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타지에 계신 분들이 와계시거든요. 여기 계신 분들은 할머니들뿐이에요. 그러면 들은 분들도 밖에서 서서 들으시고 말씀하시는 분도 밖에 서서 말씀하셨어요. 이거 하나님의 섭리로 이렇게 만나게 하신 겁니다. 동기는 동광원이라는 곳에서 이루어진 사건이지만 진리를 전하시고 받은 것은 이 섭리 안에서 받으셨어요. 그러면 인제 시간이 다 됐으니까 제가 이야기 하겠습니다. 아까 이 선생님의 사명은 아아 야. 동란이 일어나니까 아버지 엄마가 죽으니까 고아들이 쏟아졌거든요. 그때 고아들을 누가 돌보냐는 거예요. 광주 도청 안에는 고아원이 없었어요. 시집 골 하나있었지요. 그때 이 선생님이 지리산에 계셨거든요. 그러니까 지리산에 가다가 잠깐 꽃이 시들어 가니까 지금 물 좀 주고 가야겠다. 그 심정이었거든. 구호사업을 하려는 게 아니에요. 전쟁이 일어나가지고 사람들이 애기를 내버리고 부모가 죽어버리니까 막 길거리에 쌓아지거든. 그런데 자기는 광주 자선사업 할라는 것이 아니에요. 지리산에 계시다 오셨으니까 가서 수도를 하려고 가는 길인데 너무 동족이 피가 흐르고 불쌍하니까 잠깐 손을 내주고 떠나려는 것이 못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러셨지요. 사업하려는 뜻이 없으셨어요. 그러면 왜 윤영윤 이라는 아주 젊은 사람이 죽었거든요. 그럼 마지막 젊은 사람이 죽었냐? 그건 확실한 역사에요. 이 일이기에 이 이일을 하는 곳이 아니거든. 현실 모두 죽어가니까 동참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젊은 사람이 혼자 차하나 어떻게 구해가지고 여기 말하자면 여기 집 있어야지요. 여기 돌봐줘야지요. 도청에 가야지, 군청에 가야지, 면사무소에 가야지 측량해야지 또 광주 쫒아가서 도와줘야지요. 그러니까 일선이니까 총 맞아 죽거든요. 괜히 죽는 것이 아니라 일이 바쁘고 현세 하니까 희생이 되어버렸어요. 나는 순교라고 생각합니다. 죽은 것이 아니에요. 사랑의 순교에요. 그러면 동광원 사람이 왜 빨리 죽느냐? 이거 사랑의 희생이에요. 그럼 우리 식구는 황송한 말씀이지만 식구가 백 명이라고 합시다. 아버지는 정 원장 한분이에요. 자식은 99명이에요. 99명 자녀들이 각각 소원이 달라요. 그럼 아버지는 한사람인데 그럼 들어줄 것이 있으면 이렇게 해라. 그런데 못 들어줄 것이 있어요. 그러시면 말로는 안 되어요. 아버지니까 남이면 말하는데 친아버지니까 나 어떻게 하렵니다. 하지 말라고 못하시는 거예요. 그냥 굶으시는 거예요. 마음이 아프니까 그러니까 원장님 학교 보내 주세요. 그랬다 합시다. 그럼 말 않고 굶어, 밥을 못 잡수세요. 돈이 없단 말입니다. 학비가 없어. 그럼 가만히 눈치를 봐요. 왜 원장님 식사를 안 하십니까? 한 삼일동안 눈치를 보면 자기가 학교를 보내달라는 그것 때문에 걱정하시는 것을 알아. 막 울어요. 원장님 나 학교 안 갈 랍니다. 그럼 마음이 풀어지면 식사하시는 거예요. 그럼 자식이 많으니까 또 어떤 놈이 뭔 말해요. 나 서울 가렵니다. 가지 말라 그 말을 못하고 또 굶으시는 거예요. 일 년 열두 달 매일 굶으시는 일이 일어나요. 그리고 도망가 버려요. 무정한 원장님 무정하다. 보따리 싸버려요. 보따리 못 싸게 하려면 굶는 거예요. 굶어, 그래 무저항 사랑이에요. 절대 그러지 마라. 그럴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그분이 일찍 죽어요. 안 죽을 수 없어요. 층층이 다 그런 겁니다. 젊은 나이에 탁탁 쓰러져요. 일은 많고 손발이 모자란단 말입니다. 희생이 되시고 순교적인 죽음을 한 사람들이지 괜히 죽은 게 아니라는 겁니다. 이 어른들은 성공했다고 봐요. 이 어른들이 이렇게 하늘나라로 가버리고 뒷일은 여러분의 몫이라고 여러분 가슴에 떨어지면 거기가 동광원이라는 거지요. 빛 동쪽 빛 이라고 그러거든요. 동광원이 어디가 있습니까? 물으면 웃었어요. 동광원은 땅이 아니다. 이 건물이 아니라는 거예요. 누구가슴에 떨어지든지 하나님의 복음이 떨어진 곳이 동광원이에요. 동쪽 해가 뜬다. 그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선생님은 일전에 쪼금 뜻을 보였지요. 선생님 이렇게 돌아가시면 후계를 정하세요. 인재를 양성하세요. 자꾸 부탁 했어요. 목사님들이 오셔서 절대 거절하셨어요. 이것은 사람이 만든 공동체가 아닙니다. 사람이 만든 기업체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필요해서 잠깐 이렇게 나타난 것뿐인데 하나님이 필요하시면 사람은 하나님이 보내신다. 그거에요. 여기서 누구를 길러내서는 안 된다. 그거에요. 왜 그러냐?뿌리면 생명이 난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직접 보내준 사람이 한다면 정상적이지만 인공적으로 우리가 누구를 가르친다. 신학교 보낸다. 이건 안 된다는 겁니다. 이 운동은 그런 운동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 시대에 필요해서 잠깐 나타난 것뿐이고 필요 없으면 끝나는 것이지, 인공적인 공동체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 힘과 목사님한테 말하세요. 이곳은 인조 깨를 한말 볶아가지고 땅에 뿌린다면 나겠습니까? 병들었더라도 살아있는 참깨를 심어야 나지요. 하나님이 보낸 사명을 받고 온 사람이 일을 하던지 인공적으로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거든요. 그렇게 하신 겁니다. 그런 뜻으로 제가 그냥 하는 말 아니에요. 이 선생님의 유언대로 성령이 그 일 맡은 엄 목사님을 들어서 ‘이것이 참 빛이다. 참 진리가 여기 있다’고 엄 목사님을 들어서 일 하신 것이지요. 그것뿐이고 이번에 좋은 이야기 하고 갔어요. 어느 청년이 가면서 앞으로 씨가 안에서 날지 밖에서 날지 누가 압니까? 그러고 떠났어요. 며칠 전에 한 이틀 계시다가 유망한 청년들이 있어요. 다시 말하면 불똥이 떨어졌어요. 묵시로 말해. 참 씨가 안으로 날지 밖으로 날지 누가 압니까? 나는 3년 후에 출가 할 테야. 그랬다는 거예요. 아주 장래가 유망한 청년이에요. 씨가 어디에 날지 누가 알아요? 안에가 날지 밖에가 날지 하나님이 하신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 맥을 이어갈게 아닌가? 함께 탄탄대로고 안심이란 말씀입니다. 우리가 기도가 있을 뿐이고 여기에서 무슨 후계자가 난다. 그건 그럴 수 없지요. 이 흐름이 그렇단 말입니다.
엘리야가 돌아가시고 그냥 끝나버린 겁니까? 엘리야가 돌아가시고 엘리사가 나오지요. 그러면 세계적으로 봉쇄 수도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엘리야가 세운 공동체가 있지요. 그럼 수천 년 지난 지금까지 있어요. 연맥이 무슨 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이니까 후코가 사막에 가서 죽어버렸어요. 수사는 자기혼자 뿐이에요. 수도원장도 죽어버렸고요. 이제는 자기 혼자뿐이고 그분은 누구한테 강도가 살해해 버렸거든요. 땅을 뺏어가다가 죽여 버렸어요. 신부를 한 50년 동안 단절 되었지요. 지금 수도원이 생겨요. 정신이 살아있으니까 참 진리가 있다면 그 후계자가 있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겠다는 것이에요. 진리가 있다면 그런 뜻으로 제 말씀을 이제 그만두겠습니다. 여기 노래한번 부르고 마칠까 합니다. 숨은 꽃인데요. 곡조는 여러분이 아실 것이고 이것은 이 선생님을 두고 하는 노랜데 계명산 숲속에 피어난 진달래라는 것은 계명산 속에 그때 이 선생님을 몰래 묻었어요. 국유림에 그래 누가 안 가봤어요. 그런 뜻이고 그럼 인제 2절에 순결 목말라하는 것을 죄의 못자리라 깨닫고 이 선생님은 성인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이 사람이 속죄의 은총의 감격한 마음은 늘 겸손히 통회하는 그 사람의 발자국마다 통회하는 것이지요. 왜 맨발 벗었느냐? 발자국마다 울었어요. 왜 스승이 계시거든요. 이공이요. 스승이 이렇게 하라. 그 것을 거역해 버렸어요. 스승의 말씀을 거역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훗날 자기가 깨달았어요. 아 이 사랑을 내가 거절했다. 그 통곡이지요. 나는 어째 스승의 사랑을 내가 거절했던가?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분 일생이 그건데 그러면 이 선생님이 자필로 쓴 마지막 일기가 있어요. 아무 말 없어요. 저는 죄의 못 자리올시다. 그렇게 써져있어요. 죄의 못 자리올시다. 본인의 죄도 있지만 죄를 생산하는 근본 원인이라는 거예요. 자기가 공동체가 지어져있기 때문에 자기가 뿌린 씨앗이라는 겁니다. 어떤 뜻으로 그럼 이 말은 일전에 제가 말했지요. 막달라 마리아의 죄는 모두 사함 받았다면 나 소화의 죄는 막달라 마리아의 죄는 많이 사함 받았다면 나 소화의 죄는 모두 사함 받았다. 그러니까 아무리 죄가 많더라도 많은 죄가 있지 모두는 죄가 없지요.
이 선생님 생각은 자기는 전부 죄인이라는 거예요. 자기는 쪼끔 죄인이 아니고 전인적인 죄인이니까 죄의 못자리라고 깨달았다.
'월동 무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년 초하룻날 월동무 수확하다 : 하나님의 뜻 (1) | 2023.01.01 |
---|---|
산밭 뒷밭 월동무 수확 : 이 현필 스승을 기리며 (1) | 2022.12.30 |
월동무 가공하다 : 순교자 (1) | 2022.12.24 |
눈 덮어쓴 월동무 : 마음이 깨어있어야 한다 (0) | 2022.12.23 |
눈속에도 월동무 작업 : 아빠 아버지 (0) | 2022.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