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사전 투표 날 : 병상수종 간증

mamuli0 2020. 4. 10. 07:45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사전 투표 날, 남도의 농촌은 묘종 이식이 한창이다. 가까스로 일군을 얻어 울금 심기와 다호박 묘목 이식 작업을 하고있다. 투표 날과 치과에 가는 날이 여의치 않아 사전 투표를 하기로 했다. 마스크 거리두기 열 체크 손 소독 신분확인 투표용지 받아 기표 투입 절차다. 한산했는데 나오니 군인들이 탄 버스가 도착하여 행열이 길어졌다. 아직도 가로수 벚꽃이 화려하다.


 


 병상 수종 간증


김 금남원장 1993.7.11


 베드로전서 4장 1절서부터 보겠습니다.
공동번역으로 읽겠습니다. 은총의 선물을 잘 관리하는 자 그리스도께서는 육체적으로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여러분도 이와 같은 정신으로 무장하십시오. 육제 적 고통을 받은 사람은 이미 죄와 인연을 끊은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여러분은 지상의 남은 생애를 인간적인 욕정을 따라 살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7절 세상의 종말이 가까웠으니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앞서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용서해 줍니다. 여러분은 다 나그네들이니 귀찮게 생각하지 말고 서로 극진히 대접하십시오. 각기 서로가 은총의 선물을 받은 대로 서로 남을 위해서 봉사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의 각가지 은총을 잘 관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12절 그리스도인이 받을 고난 
 사랑하는 여러분 시련의 불길이 여러분 가운데 일어나더라도 그것은 여러분을 시험하려는 것이니 이상한 일이나 생긴 것처럼 놀라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니 오히려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실 때에 기뻐서 뛰며 즐거워할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때문에 모욕을 당하면 행복합니다. 영광의 성령 곧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에게 머물러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아무도 살인자나 도둑이나 악한이나 사기한 따위가 되어 고난을 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고난을 당한다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심판의 때는 왔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먼저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인 우리를 먼저 심판 하신다면 하나님의 기쁜 소식을 믿지 않는 자들의 말로가 어떠하겠습니까? 올바른 사람조차도 겨우 구원을 받는다면 경건치 못한 죄인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고난을 받는 사람들은 선한 일을 행하면서 자기 영혼을 진실하신 창조주께 맡겨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육체적으로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여러분도 이와 같은 정신으로 무장하십시오. 육체적 고통을 받은 사람은 이미 죄와 인연을 끊은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여러분은 지상의 남은 생애를 인간적인 욕정을 따라 살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종말이 가까웠으니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앞서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용서해 줍니다. 모든 일에 앞서 서로 진정으로 사랑 하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용서해 줍니다.


 


 몇 번이나 이 자리를 사양했습니다, 제일 사랑의 빚을 많이 진저로서 안 나오면 뒤에 오실 분들의 길을 막는다기에 할 수없이 나왔으나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습니다.

오늘 드리고 싶은 거는 우리 기억에서 이미 사라지신 분입니다. 세상 떠나신 지가 오래되신 분이지요. 이미 고인이 되신 화선씨 이모님 강화선씨 저로서는 큰 이모님이 되시지요. 그분을 제가 병상에서 7년을 모시고 있었어요. 그 동안에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조금 간증하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이미 고인이 되신 이모님 이모님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와 그 교훈이 생각이 되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원래 화선씨 이모님은 어머님 때부터 신실한 불교신자였습니다. 제가 어려서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이지요 그때는 일제강점시대였습니다. 그래서 누구나가 할 것 없이 전부 생활이 어려웠을 때였어요.


 


그때 이모님 집을 가봤어요. 근데 이모님은 그때 굉장히 부자로 살고 있으셨습니다. 그 건물을 보면 아람 진 통나무로 기둥을 세워 집을 지었는데 절간인지 가정집인지 모를 정도로 그렇게 잘 짓고 대문도 안대문이 있고 바깥 대문이 있고 그랬어요. 가서 식사시간이 되면 조금 말을 보태서 제사상만큼 채려놓고 드십니다. 그래도 입맛이 없다고 그래요. 이것도 맛이 없고 저것도 맛이 없다고 그래요. 그렇게 호의호식하고 사셨습니다. 이모님 집에 가보면 그 집은 스님들이 자주 드나드셨어요. 그래서 어릴 때 가보면 여기가 절인가 이모님집인가 생각할 때도 있었었지요. 아주 불교에 젖어가지고 신심이 깊어서 도저히 그분을 예수교로 개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 이었습니다. 생각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는 참 오묘했습니다. 이모님 형제간이 4녀1남이었지요. 5남매 중에 제일 장녀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전라도 광주에서 셋째이모님이 사셨는데 그 이모님이 큰 이모님 집에 오셨어요. 그런데 정신이상이 돼서 오셨지요. 큰 이모님은 형제간 중에서도 유달리 셋째동생 차남씨라고 하는데 셋째동생을 사랑해서 아낀 동생이에요. 그 동생이 정신이상이 돼서 찾아오시니까 기가 막히지요. 어떻게 해서라도 저 동생 병을 고쳐줘야지. 내 재산이 다 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라도 동생 병을 고쳐줘야만 한다. 그렇게 마음먹었던 모양이라 그때부터 병을 고쳐보려고 좋다는 약은 다 쓰고 불공도 드려보고 또 점도 가서 해보고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서 낳게 해 보려고 애썼어요.


 


그러지마는 이모님 병세는 나날이 더해갑니다. 그러니까 세월이 일 년이 넘어갔지요. 하도 애가 타요. 어떻게 고칠 길이 없어 갖은 고통을 하시고 계신데 그때는 우리 집은 예수를 믿었었어요. 그 이모님이 저의 집에 오셨어요. 오셔가지고 계신데 저의 집에 오시면 조용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나대고 돌아다니고 떠들고 하시는데 저의 집에 오시면 조용하신 편이었어요. 이상하게도 큰 이모님이 동생을 맡겨놓고 매일같이 출근 하세요. 동생 병세가 어쩐 가하고 매일같이 출근을 하시는데 그 큰 이모님이 오실 때가 되면 작은 정신 이상 되신 이모님이 손을 이렇게 부처님같이 하고 앉았어요. 그러면 저도 어릴 때니까 어째 이모님이 부처같이 저러고 앉아게실까 쳐다보지요. 그러고 한참 있으면 큰 이모님이 들어오세요. 그렇게 세월을 보냈는데 큰 이모님이 집에 오실 때 그때 금요일 구역예배 시간이었지요.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큰 이모님이 정신 이상 되신 이모님을 보시니까 그 동생이 조용하니 앉은 것을 보니까 마음이 기쁘지요. 그 시간만이라도 예배자리에 앉아계시니까 그때 큰 이모님 머리에 스쳐가는 생각이 ‘아 내 동생은 약으로 고칠 병이 아니다.’ ‘분명히 저 동생은 내가 믿어야 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당시 개종할 생각은 꿈에도 못하지요.


 


 내가 어떻게 동생을 달래봐서 동생 마음을 안정을 시켜가지고 교회로 끌고 나가가지고 데려다 놓고는 내가 절에를 가야겠다. 그런 생각이 드셨어요. 그래서 하루는 동생보고 ‘동생 우리 나란히 동생 병 나으면 나란히 교회 나가세.’ 그렇게 고개를 끄덕끄덕해요. ‘하루빨리 나아서 하루빨리 나서 나란히 교회에 가자고.’ 그때부터 보니까 차차 마음이 안정이 오기를 시작했어요. 그 동생이 그래 가지고  나대고 설대고 하던 마음이 잡혀지죠. 언니는 참 기회를 놓칠세라 다음 주부터는 동생하고 나하고 나란히 교회를 나가자고 그러고 약속을 했어요. 그 다음 주부터 동생을 데리고 교회를 나갔지요. 나갔어도 안심이 안 되니까 문간에서 바깥 겨우 문턱에 앉아 계시다가 발작하면 데리고 나오려고 조마조마 하는 심정으로 동행을 하셨는데 한주일 나가, 두주일 나가 자꾸 나가시다 보니까 차차 좋아지셨어요. 병세가 그러니까 이모님은 또 딴생각이 드시지요.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되었으니까 그만 이제 나는 절로 가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 동생이 더 아프기 시작하는 거예요. 또 발작을 해요. 그래서 동생을 어쨌든 병을 회복시키는 방법을 위해서 그렇게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 교회 나가는 첫날부터서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면 그 설교가 그렇게 마음에 와 닿더랍니다. 그래서 그리고 몇 개월을 교회를 나가다 보니까 당신도 모르게 딱 개종을 해버렸어요. 동생은 병이 나았고 언니는 불교에서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주님께서는 인도해 주셨지요.


 


 우리의 판단으로는 동생이 미쳐서 언니의 많은 근심과 걱정의 대상자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동생의 병을 통하여 언니를 전도하는 전도자로 쓰임을 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이러하신데 우리는 감히 남을 함부로 평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들의 부닥치는 슬픔이나 괴로움이나 아픔이 우리의 영혼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애타는, 주님의 제자가 되고파 빈손 들고 초창기에 동광원에 오셔서 주님의 그 사랑과 그 은혜에 감격하여 남은여생을 참회와 봉사의 생활에 마음과 몸을 바치시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영원한 안식처에 성녀들의 찬송 속에 고요히 잠 드셨습니다. 누구든지 내게 올 때에 자기 부모나 처자나 형제나 자매나 심지어는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소년이 보리떡 다섯 송이와 물고기 두 마리를 주님께 바침으로 주께서 축복해 주셔서 오천 명이 배불리 먹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은 기적의 말씀이 생각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바치는 생활에 인색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적은 정성이나마 날마다의 삶이 주를 위해 최선을 다할 때 주님께서 기뻐하시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병든 몸이라 해서 멸시천대만 받는다 해서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의 편이십니다 더욱 사랑합시다. 더욱 사랑하신다는 하나님의 표십니다. 특은을 받은 우리들은 날마다 감격하여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 언니가 특별히 형제 중에서도 특별히 아끼고 사랑했던 그 동생 차남씨 이모님 아시는 분은 아시고 모르시는 분은 모르실 겁니다. 이 이모님도 이 선생님을 통해 하나님 말씀을 하나님 말씀에 크게 감화돼서 언니와 같이 초창기에 동광원에 오셔서 사셨습니다. 그런데 동생은 육이오 동란 때 순교를 하셨어요. 이 선생님과 김 선생님께서 화순군 도암면 깊은 산중에 피난하시고 계셨을 때 두 형제가 수종을 들고 계셨습니다. 동광원 전 식구도 같이 피난을 했지요. 그런데 사태가 바뀌어져서 광주에 국군이 입성하므로 피난했던 우리 식구들이 다 광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바뀌어서 인민군들은 산으로 피난을 하게 되었지요. 먼저 식구들은 다 광주로 나가고 뒤처리 때문에 두 선생님만 산중에 남아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들이 안 나오시니까 수종 들으셨던 두 형제는 서로 광주로 나가라고 그럽니다. 동생은 언니 보고 언니는 동생보고 내가 선생님들 수종을 맡을 테니까 언니라도 나가라고 그러시고 언니는 동생보고 내가 맡을 테니까 동생 나가라고 그러고 서로 그러시다가 동생이 남게 되고 언니가 광주로 나오시게 되었습니다.


 


그 뒤에 수종을 드리다가 인민군들에게 체포 되셨어요. 거기 서울어머니라고 산중에서 잘 믿으신 어머니 한분이 계셨는데 그 어머니하고 두 분이 인민군들한테 끌려 가셨답니다. 끌려 가셔가지고 대창으로 찔려 죽이는데 어느 산골에 끌려갔을 때 두 분 다 그때 그 고무신이 고무신 얻어 신기도 어려울 때지요. 근데 신든 다 떨어진 신을 나란히 벗어놓으시더래요. 그리고 두 분이 딱 가서 죽음 앞에 무릎을 꿇고 손을 합창하고 기도하고 계시는데 창을 가지고 달라 들어 찔러 죽였다고 그래요. 그 소식을 그 동네 사람들한테 뒤늦게 들었었습니다. 그런데 이모님이 순교하시기 전에 몇 넌 전이었었어요. 저한테 자주 그런 말씀을 하시데요. 이렇게 편안할 때 예수 믿는 것은 누가 잘 믿는 건지 알 수 없다고 어려운 일 당해가지고 총 칼을 들이대면서 너를 죽이려고 해도 네가 예수를 믿으려고 하느냐고 그렇게 달려들 때 그때 봐야 진짜의 신앙을 알 수 있다고 그러면서 늘 저 만날 때마다 순교에 대해서 말씀하셨어요. 그때 제 생각에 어찌 저렇게 순교의 말씀을 하실까? 그렇게 생각했지요.


 


순교 당하신 뒤에 하나님께서는 미리미리 그렇게 준비를 시키셨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다음에는 화순씨 이모님을 7년 동안 수종들 때에 그때 은혜 받은 그 말씀을 잠깐 드리겠습니다. 제가 적어온대로 그래도 읽어드리겠어요. 청청벽력과 같습니다. 84세의 노인이지만 장작을 텅텅 쪼개시던 40대와 같던 건강하신 이모님이셨어요. 갑자기 혈압으로 쓸어 지셔서 세월이 흐를수록 전신불구가 되어 가시니 얼마나 절망하실 일입니까? 얼마나 놀랄 일입니까? 그런데 죄인으로서 올 것이 왔다는 듯이 낙심도 절망도 근심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몇 년의 병상생활 에서도 불평 한 말씀이 없었습니다. 수종들고 있는 저는 하도 이상해서 여쭈어 봤지요. ‘이모님 전신불구가 되셨으니 어떻게 하시지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리 주님께서 좋게만 해 주실 것이니 걱정 말고 믿고 맡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기막힌 처지에서 이런 말씀과 행함과 전적으로 신뢰하신 그 모습이 참 전능하신 분을 믿는 믿음이 아니고는 이런 기적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제 자신 날마다 큰 마귀 씬 죄인이지만 화선씨 이모님은 평소에도 남의 인격을 헐뜯거나 비평하시지를 않으셨습니다.


 


언제나 나같이 큰 죄인은 세상에 없다면서 겸손한 마음  자리에서 조용히 참회하는 생애를 보내셨어요. 종종 제가 깊은 잠에서 깨고 보면 초롱같이 맑은 눈으로 온 방안을 둘러보시면 황홀해 하신 그 모습 말씀을 하실 줄 알면 여쭈어 보겠는데 딴 세계 하늘의 계신 듯싶었습니다. 이모님의 수종을 들면서 부자와 나사로 말씀이 깨달아 졌습니다. 가장 가난한 나사로가 제일 큰 희생을 하셨다고요. 이모님을 뵈옵고 있노라면 인간의 육의 행복은 다 빼앗겨 버리고 산송장과 같이 뼈만 앙상하고 손끝 발끝하나 까딱도 못하시고 그나마도 말씀 한마디도 못하는 벙어리가 되어가며 7년이란 긴긴 세월을 방 돌에 못 박아 손끝 발 끝 한 까딱 못하신 몸 식물인간과 같은 그러나 감각은 살아 통증은 예민하시어 살이 떨릴 정도로 고통을 느끼시면 서도 공의의 하나님께 의탁하시고 아픔을 감수하신 마치 잔잔한 호수와 같이 고요한 그 모습 나사로를 보면 어떠한 무자비한 자라도 자비의 마음이 일어나듯이 이모님을 뵈면 자비의 마음을 일으키게 됩니다. 제가 육신이 고되고 피곤해도 방 돌 형틀에 십자가를 지고계신 이모님을 뵈올 때마다 모든 유혹과 시험과 괴로움이 사라졌습니다. 깨닫고 보니 이모님이 병상에 계신 것은 제 마음이 회개하기를 기다리시고 제 영혼을 붙들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깨달아졌습니다.


 


내 죄 대신 이 고통을 당하신다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좀 편하게 해 드릴 수 있을까 하여 주님 제 죄 짐은 제가 져야겠습니다. 이모님을 해방해 주세요. 하고 눈물로 애원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갈등이 심한 제 가슴에 주님의 평화가 오기까지 저를 붙들기 위하여 쓰임 받고 계신 것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병상에 계신 그분도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수종드는 저만이 알려주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내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내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제가 나음을 입었고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제가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내 죄 대신지고 계신 이모님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7년이란 긴긴 병상생활 이었으나 근심 걱정 원망 병들어 한탄하신 소리를 못 들어봤습니다. 마치 우편강도와 같이 평소에도 공의의 하나님을 믿으시어 당하시는 환난고통을 언제나 당연한 것으로 더 받아야할 죄인이라고 감수해 오셨지만 긴긴 병상의 혹독한 고통 중에서도 여전히 더욱 감수하셨습니다.


 


 마지막 고통만 견디면 좁은 태안에서 밝은 세상을 보듯이 이 지루하고 무서운 육체 감옥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진통 조금만, 조금만 남았습니다. 영원한 해방입니다. 영원한 낙원입니다. 마지막 숨을 쉬실 때 그 영혼이 훨훨 날아가신 것 같아 승리의 노래를 부르고 싶었습니다. 병상생활 7년 7일 금식 아침 7시20분에 영원한 부르심을 받으셔서 91세 육신의 감옥에서 해방되어 괴로움도 아픔도 슬픔도 없는 영원한 세계에 탄생, 얼마나 그 영혼이 기뻤겠습니까? 얼마나 시원하셨겠습니까? 저도 수종을 들다보니 젊은 나이에 갈등이 심한 마음에 긴긴 싸움에서 해방을 받아 저를 그렇게도 괴롭혔던 원수가 마음의 적이 형제가 아니라 네가 아니라 내 자신임을, 형제의 티는 내안의 들보임을, 남의 허물은 내 죄가 반사되어 내 얼굴이 거울에 보이듯이 보인 것을 오해했었습니다.


 


늘 배운 말씀이었지만 지식뿐이요. 믿어지지가 않았었습니다. 내 안에 들보를 모르고 형제의 티가 보일 때 나 자신이 흔들렸습니다. 도망만 가고 싶은데 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 적으로 보이는 상대는 원수가 아니라 내 영혼의 은인임을 깨닫고 보니 ‘주여 이때까지 은인을 몰라보고 원수 시 했으니 이 죄인을 용서해 주소서.’ 영혼이 어두웠습니다. 땅위에는 원수가 없습니다. 원수가 있다면 멸시 천대 조롱을 싫어한 내 자신 내 자고 심 이었습니다. 탐심이었습니다. 모두가 깨닫고 보면 영혼이 깨라는 종소리였습니다. 내 영혼을 위해 쓰임 받은 천사들 이었습니다. 모 나는 내 성격을 원만하게 하기위한 쓰임 받은 천사들이었습니다. 우리들은 불쌍한 나그네들 서로 헐뜯고 시기하고 미워하니 웬 말입니까? 이것이 모두가 내안에 간교한 뱀의 짓인데 남만 원수로 여겼습니다. 혈통이 부정하여 불쌍한 신세들이 되었습니다. 사랑하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대신 울어주며 죽어주신 주님 품만이 참 기쁨이요, 평안이요, 영생이요,


 


 천국인 것을 불쌍한 우리 나그네들 평안을 주시고자 만유 주께서 기다리십니다. 마음이 교만하여 내 로라 하여 높은 자리 대접받을 자리 편안한 자리에만 마음이 유혹받을 때는 이 세상은 넓은데 갈 곳이 없고 적은 몸 하나 백일 데가 없어서 마음으로 이리저리 헤매며 고민을 했었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보혈이 아니고는 얼굴을 들 수가 없는 중 죄인을 깨닫고 보니 그 크신 사랑에 감격되어 주님이 주신 내 자리는 죽는 자리 멸시와 천대와 조롱받는 자리, 가장 낮은 자리, 용서와 이해한 자리, 섬기고 희생한 자리, 이길 만이 제가 주님 뒤를 따라가는 길 임을 마음에 정하고 나니 온 세상이 다 고요하고 잠잠한 것 같았습니다. 설레던 젊음이 고요해지고 평온하기만 했습니다. 마음에 38선이 트인 듯 가는데 마다 제 자리입니다. 주님 가신 길 가장 낮은 자리에서 사랑하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섬기는 일 생각만 해도 마음이 뿌듯 하는데 생활화 된다면 얼마나 기쁘고 만족하겠습니까?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은총 주시기를 빌면서 마치겠습니다.
찬송
 


https://youtu.be/JFCNsObXf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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