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꽃샘 추위 :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mamuli0 2025. 3. 19. 15:04

 춘분 삼일 전, 따뜻한 봄 날씨기 갑자기 눈보라가 치고 바람이 몹씨 불었다. 노인들 이동식 작업대를 신청한 날이었다. 마늘이 상추가 푸르게 올라오고 있었다. 겨울 잡초를 잡아주고 월동무 수확으로 다져진 포장을 로터리한 포장을 깊이 갈아주고 있었다.

 

 

날마다 십자가 지고

오북환 장로 1989. 7. 18

이게 복음이야 사랑이야 그러면 그런 것이 없는 줄 안단 말이야. 영을 사랑하니까 매를 때려요. 사랑하는 자식에게 채찍을 든다고, 그래. 징계해. 영만 사랑하니까. 육체적으로 마음대로 법도 없이 살면 거 어떻게 되냐고 개가, 영혼이 망하지 않냐? 긍게 예를 들면 부자는 법을 무시하고 산거예요. 배만 위해 살았어요. 그래 나중에 벌을 당하잖아? 나사로는 자기를 잘 다스린 사람이에요. 자기감정을 잘 길들여놨어요.

하느님의 은총의 힘으로, 성령의 힘으로. 게 외모만 보고 아 이거 비참하다, 불쌍하다 이래요. 아 부자는 뭔 복을 타서 저런가? 아 결과로 보면 어쩌냔 말이야. 엄하게 다스릴 것입니다. 저만 잘났다고 떠들어대는 그런 사람들처럼 지금 내가 내 서신을, 선전을 늘어놓고 있는 게 아닐까? 그들은 자기들이 만든 잣대, 잣대. 자를 가지고 자기 표준. 만든 자를 가지고 자기를 잰단 말이야. 나는 이 정도다, 나는 요만치 컸다. 재고, 한 치도 안 되는 생각들을 서로 견주어본다고. 얼마나 어리석은 것들입니까?

죄인들이 의인들을 함부로 잰다고요. 잰 몇 점밖에 못 받겠다. 죄인들이 모두 의인들을 판단하지, 의인들은 누구를 판단하겠습니까? 다 동지 한 몸으로 생각하는데. 아무 구별도 없고 한 몸으로 생각한단 말이야.

 

 

 

 

고린도후서13:1-2절 마지막 경고와 인사

내가 여러분을 방문하려는 것이 이번으로 세 번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인제 여러분을 방문하기에 앞서서 하는 세 번째 경고입니다. 미리 편지로 회개하라고 해놔야지 그때 당해가지고 그런 장면을 보면 못 참는단 말이야. 너무 서럽다 해. 그렁게 만나기 전에 회개하라. 편지를 써놔요. 딱 만나가지고 그 모양이면 그거는 어떻게 참느냐 이거야. 성경은 어떤 악한 일이든지 두세 사람의 증인만 있으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경고를 지난번에 거기 갔을 때에 죄에 빠져 사는 사람들에게 이미 말해두었습니다. 경고해놨어요.

 

그러나 이번에는 다시 그들에게만 아니라 여러분 모두에게 경고합니다. 이번에 내가 가면 엄하게 벌을 내릴 겁니다. 말로만 좀 엄하게 말하면 싫어하죠. 싫어해. 항상 감정 비우 받쳐주는 말을 좋아해. 귀를 즐겁게 하는 소리는 들어도 성경말씀은 진리니까 쓰다고 안 맞아. 감정이랑 안 맞거든요. 마음으로 믿어진 사람에게만 진리지 믿어지지 않은 사람은 진리가 아니에요. 안 맞으니까. 언제나 안 맞느냐 그러면은, 나 따라오려면 자기 버리고 부모처자 버리고 전토도 버리고 모든 거 다 버리고 날마다 십자가지고 따라오라 그래. 그걸 누가 감당해요? 누가. 누가 그걸 순종해요? 믿어진 사람만 해요. 안 믿어지니까 못 해요. 우리가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에요. 그 분명히 성경에 있고 들었고 알았지마는 내가 순종으로 안 한 것뿐이에요. 용서하지 않고 엄하게 벌을 내리고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그랬다고. 자 이건 언뜻 보면 참, 저 오늘 아침서 쭉 봤어요. 아~따 이거는 복음이 아닌데 그러면. 아 무조건 예수님은 용서하라 하셨는데 아 아닌가?

아 그 영혼을 사랑하면 버릇을 고쳐서 천국에 인도를 해야지. 자꾸 버릇 나쁘게 해가지고 부정한 길로 가버리면 어쩌겠습니까? 그거 사랑 아니거든요. 영혼을 깨우치는 것이 사랑이지. 영혼은 망해도 육만 육체만 좋게 해주는 것 사랑 아니란 말이야. 그 썩을 사랑이야. 스스로 속는 거야. 내가 나한테 속아요. 내 감정의 비위만 맞추고 살아. 그러니까 신앙이 뭐이냐? 자기감정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거거든요. 그런데 감정에 끌려 산다 이거야, 우상이 끈대로 끌려 산다. 이 신앙 아니지 않느냐? 나지 나. 겉 사람. 속사람 안 보이니까 속사람 있는지도 안 보이고 겉 사람 보이는 것만 따라가. 배고프면 인자 나무라도 그냥 할 수만 있으면 먹고, 값없이 먹고.

 

긍게 인자 거기서 계속 5절까지 보자면 3절.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전날 나를 통해서 말씀하신 것을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니 이번에 내가 가면 그 증거를 여러분에게 보여주겠습니다.

바울사도의 입을 빌려서 그리스도께서 말씀 하신 건가? 자기 생각인가? 그 증거를 보인다고.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약하게 대하시지 않습니다. 강하신 분이다. 오히려 여러분 안에서 강한 능력으로 나타나십니다.

우리 믿는 사람 속에, 우리 속에 강하게 나타난다. 인간으로 오신 그분의 연약한 육체는, 예수님도 몸을 가졌으니까 연약해요, 약해요. 연약한 육체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어요. 약해서. 권력을 안 써버렸어요. 맘대로 하라고. 그 십자가에 안 죽으셨으면 우리가 못 살죠.

우리 죄를 대신 지셨거든요. 내가 십자가 져야 할 것을 예수님이 져주셨어. 지금 그분은 하느님의 크나큰 능력으로 살아계십니다. 지금도 우리 영혼 안에 사신단 말이야. 각자 안에 계십니다.

우리도 그분과 같이 사도들도, 바울사도, 육체적으로는 약해요. 다 약해. 연약한 사람들이었으나 지금은 여러분을 대하기에 충분한 하느님의 능력을 받아 그분처럼 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함께 살아요. 여러분 자신을 잘 살펴보십시오.

우리 믿음은 항상 시험해보는 거예요. 시험해보지도 않고 믿는 줄 알고 있어요. 자기는 믿죠? 우리 예수님 믿었는가? 예수 믿었다면 그게 불순종이냐 그거야. 자기 버리라는 데 불순종하잖아? 안 버리거든. 그래 자기를 믿는 거야.

 

자신을 살펴보십시오. 여러분이 참다운 그리스도인입니까? 그리스도인이 되는 시험에 합격했습니까?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임재(臨在), 임재(臨在) 해 있다. 우리 마음속에. 임재(臨在)를 경험하며 다 계셔요. 아무리 소문난 죄인이라도 다 계시다 이거야.

누가복음 15장에 1절에 소문난 죄인들이 예수의 설교를 들으러 왔단 말이야. 거 계신 증거 확실하잖아요? 그리스도의 임재(臨在)를 경험하며 여러분 속에 역사해야, 늘 활동해. 역사하시는 그분의 능력을 더욱더 실감하고 있습니까?

그와 반대로 사실은 그렇지 않으면서도 그리스도인이 된 흉내만 내고 있어요. 제 자신이 지금도 그러고. 흉내만 내요. 흉내만 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내고 있는 것이지. 뭐 아닐 것도 없다. 시간 없으니까 저 10절로 가. 아까 2절을 10절하고 대조해보라고.

나는 내가 여러분에게 갔을 때 여러분을 꾸짖거나 벌을 내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이 편지를 씁니다. 게 미리 회개하면 꾸짖을 것이 없단 말이야. 긍게 회개해라 그런 뜻이야. 엄하게 한다는 건 그럴 테니까 회개하시오 그 말이야. 사탄, 마귀는 하느님이 채찍으로 쓸라고 낸 거예요. 채찍으로. 많은 사람 채찍으로 좀 회개시킬라고. 나는 주께서 내게 주신 권위를 여러분을 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분을 강하게 만들어주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요 2절 말고 내용이 아주 다르잖아요? 그런데 인자 2절에 미리 경고를 하는 것뿐이야. 그럴 테니까 회개하라, 회개를 재촉하는 말일 뿐이야. 그럼 인자 여기서 하나 더 대조합니다.

고린도후서12장에 가서 10장 10절에 보면요, 대조를 합니다. 바울의 편지는 무시해버려. 거 볼 것도 없다. 큰소리는 치지만 그건 으름장일 뿐이야. 여기 온 다음에 만나보면 뻔할 거, 알 텐데, 알 테지만 그렇게 별 볼 일 없고 형편없는 설교자도 없을 걸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12장은 1절서부터 보게요.

이 자랑을 늘어놓는 것은 모두 어리석은 짓이지만 조금 더 자랑을 하겠습니다. 주께서 보여주신 환상과 계시에 대해서입니다. 이 개역에는 다른 사람의 예를 들었어요. 한 사람을 봤다. 근데 여기는 직접 말했어. 자기가. 14년 전에 나는 하늘로 올라간 일이 있습니다. 내가 몸까지 올라갔는지 아니면 내 영만 올라갔는지는 묻지 마십시오. 그것을 대답할 수 있는 분은 하느님뿐이십니다.

또 대답해도 못 알아듣는다 이거야. 긍게 성령께서 마음을 열어줘야 안다 이거야. 어쨌든 나는 낙원으로 올라갔고 거기서 인간의 능력으로나 말로는 도저히 그려낼 수 없는 놀라운 사실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 또한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도록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 일이야말로 내게는 크나큰 자랑거리지요. 게 자랑해선 안 된다 그랬잖아. 게 부득불 자랑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깨우칠라하니까 하는 거예요. 자랑은 자신의 손해죠, 잘못 보니깐. 그러지만은 그 영혼을 깨우칠라하니까 할 수 없어요. 그래 부득불이란 말을 쓴 거죠. 안 할 수 없다 그 말이에요. 크나큰 자랑거리입니다.

하지만 내놓고 떠벌리고 다닐 마음은 없습니다. 내가 자랑하고 싶은 것은 한 가지 있어요. 뭣을 자랑해? 우리는 지금 무엇을 자랑합니까? 각기 다르겠죠? 사람은 자기 강함을 자랑하죠? 자기가 잘 했다는 것. 말하고 싶은 것은 다만 내가 약한 인간이라는 것, 어느 성인이든지 그 처사를 본다면 그것만이 공통점이에요. 약함. 가장 소화 데레샤 성녀 같은 분은 매일매일 새로운 불완전을 발견하는 거야, 그게 생활이야. 시간, 시간 자기 약함을 발견해. 그래 시간, 시간 의지할 수밖에 없죠. 한시도 예수 떠날 순 없어요. 너무 약한 걸 알았으니까. 근데 강해버리니까 의지를 안 해요. 야곱이 하느님과 씨름해서 이겼죠? 세례 받아. 이기는 법 을 가르쳐 준거지. 어찌 하느님이 피조물이 하느님 창조주 이기겠습니까? 져줬어요.

네가 내 은혜를 받아가지고 힘을 받아가지고 이렇게 죄를 이기라 그 말이야. 그걸 가르쳐 준 것뿐이야. 그리 이스라엘이라 한다.

근데 세 가지 진리가 뭐냐? 네 약함을 알아라. 그거야. 그러면은 의지한다. 의지만 하면 승리한다 그거야. 그 삼대진리입니다. 약함을 의식하면 의지하죠? 강해버리니까 의지를 안 해요. 믿을 필요가 없어요. 자기를 믿지. 약하다 그거에요 약함을 발견하라 이거야. 그러면 의지해. 얼마나 약했냐면 확실히 더 의지하죠. 조금 약함을 느꼈으면 안 먹히죠.

그래서 자기가 또. 확실히 깨달으면 의지 안 할 수가 없죠? 그 말이야. 게 야곱이 그만큼 약함을 알았고 의지를 했기 때문에 승리자라, 이스라엘아 승리자라 말, 얘기했단 말이야. 긍게 누구든지 야곱과 같이 자기 약함을 발견한 만큼 의지하게 되고 의지한 만큼 승리가 온단 말이야. 자기가 강해버리면 의지도 안 하니까 뭔 승리가 있느냐? 밤낮 죄의 종살이에서 못 벗어나요.

그러면서 자랑만 한다고. 다만 내가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 나약하다. 우주가 약하다면 나약이라 그래. 몸만 약한 게 아니라 뜻이 약하다. 인간이라는 것과 이런 나를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불러주시는 하느님이야말로 얼마나 위대한 분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거예요.

 

이제 5절에요, 내가 비록 이런저런 자랑을 한다 해도 그것이 모두 사실이니까 어리석은 자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사실이니까.

그러나 사람들이 나를 내 생활과 선계에서 실제로 보고 들은 것 이상으로 과장할까봐 싶어 그만두겠습니다. 자랑 그만둬요. 다만 이 말 덧붙여두고 싶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그 놀라운 경험 때문에 교만해질까 봐요. 왜 조금 좀 남보다 조금 뭣을 더 했다하면 그만큼 교만해져버려. 그래 지식은 교만한 거예요, 나 누구 알았다. 그것도 교만하다. 교만해질까봐 내 몸이 가시로 찌르는 것 같은 병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병은 뭔 병인지 몰라요. 우선 나타난 것은 안질 병이죠. 안질 병. 그러나 여러 가지 사람이 가진 병은 다 가졌다 해요. 뭐 심지어 간질병도 있고 다 있었어. 그 병은 사탄의 사자가 되어 내가 교만해지지 않도록 나를 괴롭히고 고통을 주었습니다. 나는 그 병에서 회복되기를, 해방되기를 세 번이나 간절히 하느님께 빌었습니다.

그때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 된다, 안 된다. 그대로 들어오면 너 망한다. 나는 언제까지나 그 가시를 주겠다. 그래야 겸손해지지. 들이면 교만해져버리니까 안 된다. 그러나 그 대신, 안 주는 대신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마. 그래요. 이보다 더 큰 축복이 또 어디가 있어요? 하느님이, 창조주가 이런 피조물 중에도 만물 중에도 때 같은 인간에게 함께한다는 건 얼마나 영광이냐 이거야. 너와 함께 있으마. 네게 내리는 은총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하느님이 함께해주시는 것 그걸로 충분하다는 거야. 다른 소원 다 안 들어준단 말이야. 거 위법 하는 일이라 이거야. 이 몸도 건강하면 좋죠, 그치만 병이 있어야 한다. 요 귀일원 식구들 모두 그 저만 빼놓고 모두 다 그런 은총을 받은 거예요. 병, 몸. 저는 근데 몸이 건강하거든요. 인제 그러면 좀 체험 못해요. 은총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 능력은 약한 사람에게 가장 잘 나타난다 말이야, 약한 사람한테. 이제 나는 내 약한 것을 기쁘게 자랑합니다. 약한 것. 나의 힘이나 능력을 나타내 보이기보다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생활로 증거 하는 것을 기쁘게 여기고 있습니다.

10절, 나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위한 것임을 알기에 그 가시, 육체를 찌르는 가시, 십자가죠. 십자가. 가시도 모욕도 고통도 박해도 어려움도 온전히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뭐든지. 다 내가 내 말도 다 버려 논 것이고, 버려놨는데 은총으로 바꿔진다 그래. 내가 약할 때 나는 강하기 때문입니다.

무력해질수록 나는 그만큼 더 그리스도를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요것 하나 다른데 한 대조보고 그만 보겠습니다.

 

 

베드로전서4장1-2절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생활.

그리스도께서는 고난을 받으시고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우리도 그분과 같은 각오로 언제나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견뎌낼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해두십시오. 아주 단단히 해두십시오, 어떤 고통이 오더라도 견뎌낼 수 있도록. 여러분의 육체가 고난을 받을수록 어떻게 되느냐? 받을수록 죄악을 그 힘을 잃어버려. 안 받으면 더 커져. 자꾸. 더 못 이긴다. 견뎌내야 자꾸 받을수록 죄악은 인자 힘을 잃어버리니까 나중에는 인자 놓아주죠. 아니 할 수 없다. 너 마음대로 하라. 자유죠. 여러분의 남은 생애를 악한 욕망으로 허비하지 말란 거야. 허비하지 말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도록 애쓰십시오.

 

창세기1장24절

‘하느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리라. 하느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느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느님이 자기 형상 곧 하느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느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3장15절-16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여자는 마리아를 가리킵니다. 마리아, 성모님. 너는 그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4장3절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 하셨으나 가인의 제물은 열납 하지 아니하니라.’

안 받아주셨어. 가인의 제물은. 아벨의 제물은 기쁘게 받아주시고 형 가인의 제물은 안 받았어. 왜 그럴까요? 이거. 아벨은 자기도 양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 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을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노하여, 자기 제물은 안 받아주시니까 성이 났어요. 심히 노했어. 말하자면 탕자 형과 같죠. 심히 노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한다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어요. 사람들에게 다 소원은 있다, 정욕이 있단 말입니다. 죄를 짓고 싶은 마음이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인자 믿음이 그걸 이긴다. 그래요.

 

세상을 이기는 것이 뭐냐? 믿음이라 해. 세상은 뭐이냐? 죄, 나, 육정이란 말이야. 이 상대세계.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려야 한다.

근데 8절 보니까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구하니라 그 후 하느님이 제물 안 받아주시니까 동생의 제물만 받아주니까 하느님을 어쩔 수는 없고 동생을 죽여 버려. 시기심이라고. 시기심. 잘못했으니까? 잘 하니까 죽여 버린다고.

그럼 인자 그 가인의 마음은 우리 사람이야. 사람, 나야. 나. 겉 사람. 시기에요. 시기했다고요. 선한 일에 대해서 시기심이, 자기가 악하다는 증거 아닙니까? 아 한 뱃속에서 난 아우를 죽이다니요? 큰 살인죄. 죄 중에 제일 큰 죄는 살인죄 아닙니까? 긍게 크게 많이 죽였다면 그 사람도 사형당하지요.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 사형 틀입니다, 죄수 사형 틀. 근데 예수님이 그걸 이용해버리니까 그렇게 가치가 있는 거예요.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한다.” 죽여 놓고 모른다고 해요. 그렇게 거짓말, 이 인류 시조 제 2대 사람이 아담의 큰아들이 거짓말했어요. 그 뭐도 거짓말해도 그냥 예사죠. 죽여 놓고 내가 아우를 모른다고 하고는,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이렇게 거짓말을 해요.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이까? 그래요. 내가 아우 지키고 다니는 사람입니까? 그렇게 막 잽싸게 항의를 하면서 잘못한 말 안 하고 말이야, 죽여 놓고도 모른다고 하고. 아 형님은 아우를 보호해주고 지켜야지요. 근데 안 지켰단 거야, 잽싸게 죽였단 거야. 다른 사람이 죽이려고 하더라도 못 죽게, 안 죽게 해야 할 텐데 자기가 죽였어. 거 그래놓고는.

그런데 하느님의 사랑은 얼매나 큰가 보라고.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 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라.’

긍게 예수님이, 하느님의 독생자를 하느님 자신이 가인이 범한 죄 때문에 저주받았어. 그 사랑이야. 저주를 받으리니, 긍게 가인이 저주를 받으라는 말이 인제 예수, 아들이, 하느님 아들이 저주 받는다. 그 예언입니다. 예고합니다.

 

 

갈라디아 3장3절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내어주지 아니하리라.’ 네가 아무리 노력 해봐도 평화의 열매는 못 거둔다, 썩을 것밖에 못 한다. 너는 땅에서 피하여,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고. 누가 잡으러 댕기지도 안 해도 스스로 피해요.

이 양심이 가책을 받아요. 어디 가있어 봐도 심심하면 무섭고 아유 누가 나를 죽이려는가? 도적이 제 발이 절인다. 그 말입니다. 누가 그런 사람 없는데 스스로 그래요. 그게 양심이죠. 양심은 아주 죽은 건 아니에요. 죽여 놓고도 그땐 죽일 때는 죽은 것 같았는데 있어요. 게 항상 두려워요. 어디에 무엇을 해봐도 안정이 없어요. 피하여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스스로 중하다 해. 스스로. 하 양심에 가책을 받고 못 살겠어. 자기가 범해놓고는 못 살겠다.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게 벌을 받는 거예요. 스스로. 아니 뭐 때리고 안 해도 내버려 둬도 벌을 받는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 온 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항상 만난 사람, 아 저 사람이 나를 죽일랑가 스스로 그런다니까요. 냅둬도. 그것이 양심이 살아있다는 증거예요.

 

그럼 인자 15절은요,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너 못 죽인다. 너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 것뿐이지. 내가 지키는데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인 사람은 벌을 칠 배는 받게 되겠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이 표가 받은 표가 있어요. 긍께 누가 못 죽인단 말이야. 이 얼마나 하느님의 사랑은 무한 하느냐 이거야. 아 이런 사람을 없애버려야 할 텐데. 그 편이, 가인의 편이 된다고. 못 죽인다. 그러면 저 가면 인자 하느님 사랑이 더 커져요.

26절에 보면, 라멕을 낳은 후 칠백 팔십 이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구백 육십 구세를 향유하고 죽었더라. 라멕은 일백 팔십 이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니라. 그 뒤에 아 잘 못 봤어요. 그건 5장이고

 

 

여기 4장 24절을 보면

가인을 위해서는 벌이 칠 배일 찐데 라멕을 위해서는 벌이 칠십 칠 배이리로다. 그래 벌이 더 많아지는 거야. 그러면 더 한 사람 더 크단 거예요. 가인을 죽인 사람은 벌을 칠 배를 더하고 라멕을 위해서는 벌이 칠십 칠 배니까 그만큼 하느님의 사랑이 더 크다는 증거란 말이야. 게 죄는 많을 수 록 은혜는 더 많다. 그 말입니다. 죄 많은 곳에 은혜가 많다. 죄가 드러났다는 것은 은혜가 많다는 증거다. 죄를 많이 깨달은 영혼에게 더 많은 은혜가 내려온단 말이야. 그래서 그러니까 죄는 많이 발견하고 회개를 해야 한단 말입니다. 죄 없는 사람 하나도 없는 거예요. 이야기를 못 하는 것뿐이지. 긍게 유명한 성자라 그러면 죄를 많이 깨달은 분이라. 그 말이에요. 긍게 죄를 많이 해도 하느님은 그렇게 크고 넓고 무한하고 아무리 큰 죄라도 뉘우치면 그냥 용서한단 거야. 더 많은 은혜를 주고 용서한다. 긍게 예수님 앞에는 자기 잘한 거 갖고 와선 퇴짜지만은,

 

갈라디아 5장4절

율법을 행해서 자기가 공로를 쌓아서 잘해가지고 그리스도와 올바른 관계를 맺은 사람은, 아 그리스도와 관계가 끊어졌다. 율법을 행해서 의롭다함을 받을 란 사람은, 옳다고 인정을 받을 사람은 되려 예수와 관계가 끊어져버려.

믿음으로 회개하고 은혜를 받아야지, 죄를 내 고백하고 은혜를 받아야지. 죄도 모르고 뭔 죄도 회개 안 하고 뭔 선행했다고 해서 거할려면 예수와 관계가 끊어져 버린다. 복음이 아니야 율법이라. 율법. 이 제대로 율법도 아니에요. 자기 공로야. 긍게 죄를 내놓은 사람에게 용서하는 것이 은혜거든요. 죄인에게 복음이에요. 예수님은 의인보고 하신 것 아니라고. 의인도 있지도 않지만은 죄인 보러 오셨다. 게 죄를 많이 발견해야 돼. 그래 회개하란 거예요.

가인을 위해서는 벌이 칠 배 일진 데 라멕을 위해서는 벌이 칠십 칠백이라. 사람이 죄를 보면 몇 번이나 용서해줄까, 일곱 번입니까? 일곱 번서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 무한이거든. 몇 백만 번을 지었다 하더라도 뉘우치면 그냥 용서하라 이거야. 그래 누가복음 17장에는 조건부에요. 잘못했다고 하거든 용서하라. 그게 달라요. 왜 그런가, 하느님은 무조건 용서를 하는데 잘못했다고 하는 건 이제 자기가 시인을 받는 거예요. 하느님은 다 용서해놨어요. 다.

창세전에 벌써 다 용서해놨고 구원해놨어요. 긍게 우린 할 일 아무것도 없는데 실상은 회개할 일만 있다 이거야. 뉘우치고 회개하라. 뭐 여러 가지 뭐 일을 해가지고 천국 간다. 그건 아니에요. 자기가 뭘 잘해가지고 천국 간다. 그건 복음이 아니에요. 율법은 자기를 죄를 깨닫고 자기를 다스리란 겁니다. 근데 율법을 잘 못써요. 그걸 지키란 줄 알아요.

 

 

로마서 5장20절

십계명을 받은 경우와 모든 사람은 스스로 하느님의 율법을 지켜낼 수 없는 존재란 걸 깨달았어요. 십계명을 지키려고 해보니까 받아놓고 해보니까 아 지킬 수 없어요. 이건. 십계명을 줄이면 두 개 거든요. 하느님만 사랑하고 이웃을 전부 사랑하라. 둘이에요. 근데 결국 하나야.

하느님을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도 그렇게 사랑한다 그 말입니다. 하느님이 하는 거 어떻게 그게 돼? 암만 알아도 못 지켜요. 왜 그러냐? 자기 힘으론 안 받아요. 믿음으로만 가능해요. 예수로만 할 게 하나요. 믿음은 내가 없고 내가 인자 그리스도니까, 그리스도 안에만 가능하지 내가 머리 좋아갖고는 불가능이라 이거야. 믿음은 내가 없는 것이잖아? 그리스도가 머리니까. 십계명을 받은 결과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 하느님의 율법을 지켜낼 수 없는 존재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죄가 깊다는 것을 알게 될수록 우리를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넘치는 은혜를 더욱더 깊이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창세기 1장 2절에 말씀이나 내용은 같다 이거야. 간주는 없어요. 흑암과 혼돈, 흑암과 깊음, 깊음 위에 하느님은 수면에 운행하시더라. 죄가 폭로된 데 하느님의 역사가 있다 그 말이야. 하느님이 은총이란 말이야. 하느님 자신이 은총이거든. 은총. 또 그리스도가 은총이고 성령이 은총이고. 자 그러면 다스린다, 다른데 또 있겠지마는 다스린다. 에 대해서 이 성경에 신약에서 좀 찾아봅니다요.

 

고린도후서 10장4절

나는 인간의 손으로 만든 무기가 아닌 하느님의 강력한 무기를 사용하며 악마의 요새를 무찌르고 하느님을 거역하는 모든 교만한 사상, 교만한 사상과 사람들의 눈에서 하느님을 가리 우는 온갖 장벽을 부수어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불순종, 내 지체 안에서 불순종했다. 이 감정은 저속한 감정은 양심에 대해 불순종해요. 말씀에 불순종해요. 자꾸 양심을 거슬려. 긍게 아까 가인도 그런 자기 양심은 있는데 자꾸 정욕에 그냥 못 이겼어요. 다스리질 못했어. 죄의 소원은 있어, 있지마는 그걸 다스려야 할 텐데. 내 힘으로 못 다스린단 말이야. 믿음으로만 다스려, 그리스도만이 다스려요.

불순종하는 자들을 사로잡아 하느님께 되돌아가게 하고 그들의 마음을 돌려 그리스도께 온전히 순종하게 할 것이다. 할 것입니다. 나는 이 무기를 써서 맨 먼저 여러분을 온전히 그리스도께 순종시킨 다음 나머지 모든 불순종하는 자들을 처벌하는데 사용할 것입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겉만 보고서 나를 연약하고 무력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데에 있습니다. 문제는 어디 있느냐? 여러분이 겉만 보고, 바울사도의 그 겉만 보고 외모만 보고 나를 연약하고 무력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데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내게 그리스도의 능력과 권위를 보여 달라고 요구해보십시오.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습니다, 바울사도가. 주께서 내게 권위를 주신 것은 여러분을 도우라고 주신 것이지 상처를 주려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내가 다소의 권위를 사랑하고 내세운다 해도 잘못된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 내가 편지로 여러분을 꾸짖는 것을 단순히 호통쯤으로 쉽게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막 겁을 주고 그런 정도가 아니다. 그건 마음을 고치는 것이지. 뭐 버릇만 조금 잘못했다고 내용은 모르고 말이야. 놀라게만 하려는 게 아니란 거야. 그래도 또 그 정도를 또 하거든 또. 그러니 내가 편지로 여러분을 꾸짖는 것을, 꾸짖었단 말이야. 꾸짖는 것을 단순한 호통쯤으로 쉽게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바울의 편지는 무시해버려. 이런 사람 있다. 그 편지 그거 형편없어. 설교도 형편없어, 무시해버린다고. 큰 소리를 치지만, 바울사도가 큰 소리를 치지만 그건 으름장이죠? 으름장. 개가 하는 소리여. 으르릉. 으름장일 뿐이야. 여기 온 다음에 만나보면 알 텐데 뭐. 만나면 끝날 건데. 근데 그렇게 별 볼일 없고 형편없는 설교자도 없을 거라고. 형편은 보면 알 것 아니냐? 그렇게 비난해요. 하고 말하는 사람

 

<~끊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