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용대 화천서원 옥연정사 보기 : 무조건 순종
을사년 삼월 안동 하회마을 강건너 부용대와 화천서원 옥연정사를 돌아보았다. 3.1절 연휴로 많은 사람들이 안동 관광 명소마다 있었다. 병산서원과 도산서원은 전에 보았는데 화천서원과 옥연정사는 처음 보았다.
무조건 순종
오북환 장로 1992. 6. 15
마태복음 3장13절서 끝 절까지 보겠습니다. 세례를 받으신 예수
그 즈음에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리아를 떠나 요르단으로 요한을 찾아 오셨다. 그러나 요한은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텐데 어떻게 선생님께서 제게 오십니까? 하며 굳이 사양하였다. 예수께서 요한에게 지금은 내가 하자는 대로 하여라.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 하고 대답하셨다.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세례를 준다 말이야. 피조물이, 이에 세례요한은 아아 굳이 사양 했어요.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저는 피조물이니까 창조주께서 제게 세례를 주어야지. 세례 거꾸로 줄 수가 있습니까? 사양하자. 예수께서 요한에게 지금은 내가 하자는 대로 하여라.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 말을 듣고 세례요한은 이해가 됐는지는 몰라도 정말 그렇다니까 순종할밖이요. 이유를 알던 모르던 저건 순종을 해야 해. 그렇게 거꾸로 되는 것이 하느님의 원하신 뜻이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그 말을 믿을 것뿐이지. 참으로 그렇게 될지 어찌 그렇게 될까 생각하면 이해를 못한다 말이야. 세례요한은 이해가 됐는지 안됐는지 모르겠어. 그렇지만 인자 순종은 해. 그러자니까 순종을 해도 이해가 안 돼도 순종을 해야 하거든요. 이루어진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 그래 거꾸로 된다 말이야. 피조물한테 창조주가 세례를 받아야, 이루어진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제야 요한은 예수께서 하시자는 대로 하였어요. 뜻을 알건 모르건 좌우간 그것이 믿고 그냥 그러면 그것이 그래야 된다니까 그 말을 믿어버려.
예수님의 그 인격을 믿어버린단 말이야. 거짓말 하실 분도 아니고 어떤 유혹적으로 하는 말도 아니고 하느님의 원하신 뜻이 이루진다고 하니까 그 말을 믿어버린 거라 말이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시자 홀연히 하늘이 열렸다. 하늘이 열려, 하늘 한 번 열려 있는데 어디 막혀있지 않죠? 그게 하늘이 열렸다. 그 말은 마음이 열렸다. 그 말 아닌가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당신위에 내려오시는 것이 보였다. 그 때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그랬다 말이야. 하느님이 친히 성령과 더불어 예수님을 증거 하신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가장 내 마음에 아주 내 마음을 잘 알아서 맞추어 줄 사람이다. 이 사람이야말로 내게 내 마음을 맞춰서 나를 기쁘게 할 사람이고 내게 영광을 돌릴 사람이다.
이 하느님이 이 때 인자 그걸 증언 한다 증언, 예수에 비해서 진짜 당신을 사랑하는 그리고 당신의 마음을 맞춰서 알아서 순종할 분이라고 아들이라고 내 사랑하는 아들 그랬다 말이야. 이 증거를 했어요.
근데 하느님의 증거는 믿어야 되지요? 믿어야 돼. 근데 안 믿어진 것은 왜 안 믿어지냐는 거야. 하느님의 증거야 확실한 증거일 테니까 참 하느님이시니까 믿어야 할 텐데 안 믿어진다 말이야. 그것은 내 마음이 가려 있다 말이야. 하느님의 빛이 가려있어요. 내 죄가 하느님과 나 사이를 딱 가려버렸어. 내 욕심이에요. 이 안보인건 내게 원인이 있지. 하느님 편에서 안보여 주는 게 아니에요. 스스로 내가 가리고 있다. 나라는 생각이 가리고 있다. 교만, 그러면 하느님을 기쁘시게 할 사람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 참사랑, 예수 외에는 모두 거짓 사람이 되어 버렸다 말이야. 아담의 자손이니까 모두 거짓사람이야. 참사람은 예수에요. 왜 그러냐? 하느님의 거룩한 인성과 거룩한 신성을 지닌 분이니까. 바로 하느님이시니까. 그러니까 사람은 하느님을 어떻게 기쁘시게 하느냐? 성령을 통해서입니다. 성령을, 정의와 평화와 기쁨으로 이루어진 사람이, 그러니까 믿음이 없으면 하느님을 기쁘시게 못한다. 히브리11장6절인가 있다 말이야.
그리스도가 아니면 하느님을 기쁘시게 못한다. 그 말과 같아요. 믿는 사람 속에 그리스도, 그리스도가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지, 내 혈육으로는 기쁘시게 못해요. 반대가 된다. 아담 때부터 이어받은 옛사람, 땅에 속한 인간, 마음으로는 말로는 그렇게 한다고 해도 기도는 그렇게 막 영광 돌리게 해달라고 해도 그렇게 안 되는 거라고, 예수님만이 하느님 마음을 아셔서 그대로 맞춰 드리고 순종하실 분이죠. 그러니까 무엇이 하느님의 일이냐는 게 믿는 것이 하느님의 일이라. 믿는 것이, 예수의 마음을 갖는 것이 하느님의 일이에요. 그 예수님을 모시는 것이 하느님의 일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머리가 되셔야 할 텐데 내가 머리가 돼 있으니까 모시지 안했다 말이야. 근데 내가 머리가 되어서는 하느님께 욕만 돌리지, 영광 돌릴 수 없어요. 예수님이라야 하느님 뜻을 알고 순종하고 맞춰 드리죠. 성령이라야, 긍게 성령께서 하느님의 뜻을 알아서 우리를 대표로 우리는 빌 바를 모르지만은 성령이 우리 대표로 기도하신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 성령만이 하느님 뜻을 알지. 내 감정으로는 알 수 없다.
그 요 장면이 마가복음 1장9절, 11절에 있고, 누가복음 3장21,22절에 예수님 세례 받은 절이 다 이 증거가 있다 말이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또 어디가 있냐면 마태복음 17장5절이지. 그것도 세 군데가 다 있어요. 그러니 여섯 번 있는 셈이에요. 여섯 번.
여기도 예수의 영광스러운 변모 여기는.
엿 세 후에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만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다. 그 때 예수의 모습이 그들 앞에서 변하여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나고 옷은 햇빛과 같이 눈부셨다. 그리고 난데없이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와 함께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때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께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괜찮으시다면 제가 여기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에게 하나는 엘리야에게 드리겠습니다. (초막 셋 채를, 재료는 있던가보죠. 재산이 있었는가?) 하고 말하였다. 베드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덮더니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5절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말씀 하시려고 인제 변화산 있다는 말이요. 아까 저기는 내 마음에 들고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했지만은 여기는 하느님의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당신위에 내려오시는 것이 보였다.
그때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마음에 딱 맞다 말이야. 조금도 차이가 없이 일치고, 그러니까 한 쪽에서 슬퍼하면 똑같이 슬퍼하고 한쪽으로 기쁘면 똑같이 기뻐하고, 고로 삼위가 일치라 말이야. 마음에 들었다. 그러니까 그 일치되는데서 마음을 기쁘게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다.
이거는 한 가지 더 보태서 말이야 베드로가 이 말을 채 끝나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더니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아들이니 그건 똑같은데 말이야. 마음에 든 아들인 거라 아까 본 거와 똑같은데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아까 저기는 두 분이 나타나지 안했거든. 그 모세와 엘리야, 모세는 율법 대표고 엘리야는 선지자 대표고 대표로 하나씩 나타난다 말이야. 그러니까 이 두 분은 예수께 비해서 늘 증거 했거든. 예언에 나왔거든. 그러다가 언자 여기는 마지막으로 하늘에서 다시 내려와 가지고 인자 마지막이야. 그 이후에는 언자 예수에 대해 증거 할 일이 없어요. 마지막으로 왔기 때문에 그전에는 모세 율법을 지켜야 됐죠? 또 선지자들의 말을 들어야 됐죠? 그렇지만 인자 직접 그 예언하던 예언자들이 예언하던 예수는 언자 나타났으니까 언자 예수님의 직접 말씀을 들어야 된다. 선지자들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어. 인자, 선지자들은 예수를 소개했으니까 소개하신 예수님은 인자 오셨으니까 그 분의 말만 언자 순종해야 돼요. 그분을 머리로 모시고 그분의 지체로서의 충성을 할 것이지. 언자 누구, 누구 언제 사람 말 표준이 아니 된다. 예수님이 직접, 참지도자이신 예수님이 나타났다. 그러니 인제 그의 말만 들어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언자 모세 율법이나 예언자들이나 언자 다 끝났어요. 자기들은 언자 예수를 증거 한데 목적이 있으니까 증거 하는 예수가 언자 나타났으니까 율법은 끝났다 말이야.
로마서13,10장4절 보면 그래 아니요? 그리스도가 나타났으므로 언자 율법은 끝났다 말이야. 완성했다 말이야. 사랑은 율법완성이니까 사랑자체이신 그리스도가 나타났으니까 사랑덩어리, 사랑자체가 나타났으니까 율법은 언자 필요 없어요. 완성돼 버렸다 말이야. 사랑은 율법완성이라고 그러지 않았어요? 사랑이면 다 이룬 거예요. 여러 백 가지, 천 가지, 만 가지 법이 있더라도 사랑 없으면 다 소용 없는 것이고 사랑하나 이루기 위해서 법이 있지. 목적은 사랑이니까 사랑자체이신 생명자체이신 생명의 근원이신 모든 것이 근본이신 예수님이 나타나셨으니까 예수님의 말씀만 듣고 순종 할 거뿐이지. 사람들 말은 필요 없다. 말이야. 이미 소개받은 그 예수께서 나타났으니까요.
그 여기도 좀 영광스러운 대목도 마가복음9장에 있고 누가복음9장에 있다 말이야. 그 세간데 다 이렇게 증거 했어요. ‘그의 말만 들어라’ 끝 절 읽고 8절 보면 예수께서 그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손으로 어루만지시며 두려워하지 말고 모두 일어나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고개를 들고 쳐다보았을 때는 예수밖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예수 밖에는 아무것도 안보였다. 아무 사람도 없어 마가복음과는 예수와 자기들밖에, 이 신앙은 나와 예수관계지. 누구 다른 사람 문제가 아니란 거여. 개인 개인 예수와의 자기와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머리로 삼아서 지체로서의 그 머리에 절대 순종 할 거뿐이에요. 머리의 지시대로 살 거뿐이에요. 그 외 다른 거 아무것도 없다. 예수와 나, 믿는 사람과 예수뿐이에요. 오직 예수밖에 없어요.
그게 다 내용이 누가복음이 제일 자세히 있거든. 자세히, 절수도 많고 9장28절서 36절까지니까.
자아 여기는 뭔 말이 더 들어있는가 말이야.
누가복음 9장28절. 예수의 영광스러운 변모.
이 말씀을 하신 뒤에 여드레쯤 지나서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요한의 동생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 가셨다.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에 그 모습이 변하고 옷이 눈부시게 빛났다. 그 요게 뭐이냐면 우리 마음도 이렇게 변화를 받아야 한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 전에는 우리 행동과 생활을 고치려고 해도 고쳐 진거 아니에요. 흉내는 쪼금 낼지언정 근본적으로 고쳐진 건 아니야. 마음이 고쳐져서 마음이 변화를 받아야 생활은 필연적으로 되는 것이지. 행동만 꼭 뭐 성자들 행동만 본받아서 하고 해봤자 마음은 딴판인데 세상인데, 되겠어요? 겉으로 흉내만 낸 거뿐이지. 그림자와 같이, 생명 없는 그림자 같이 흉내만 내지 생명은 없다 말이야. 그러니까 이 변화는 우리 마음이 이렇게 변화해야 된다.
마음이 변하면 예수님의 그 모습도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보이겠죠? 변한 마음에는, 죄인을 구원 하시려고 죄인 모양으로 오셨지. 또 죄 있는 몸으로 오셨지. 실상은 하느님이시니까 얼마나 영광스러워요. 긍게 우리 마음이 변화를 받으면 아 모든 제일 천한 것이 영광으로 보인다는 거야 .그것이 달라요. 세상 사람들은 제일 쓸모없고 저주꺼리고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영의 눈으로 보면 제일 그 가치 있는 거라 말이요. 그렇게 보이는 거는, 예를 듭니다. 너무 많이 말해서 미안. 허허허. 나사로 생활보고 누가 행복한 사람이라 ‘저 사람은 참 행복하다’ 그럴 사람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결과가 그러니까 행복했겠다. 그러지 하나도 없을 거예요. 그런데 하느님의 눈에는 행복으로 보이죠? 성령의 눈에는 그렇게 본다. 그 생활을 하는 사람은 똑같이 그렇게 볼 것이지만은 세속적인 면으로는 그 불행이라고 한다 말이야. 어쩌면 저렇게 복을 못타고 나와서 저럴까? 누가 그 잘 믿는 사람이라고 볼 사람 없어요. 근데 그 신앙이 있다면 그 거지가 신앙이 있다면 행복 중에 지낸 것 아니요? 불행이란 불행은 독차지했지만은 그 불행이 행복이에요. 행복, 인간적으로, 육체적으로는 불행인데 영적으론 행복이라는 거야. 거꾸로 돼. 반대라. 그래 반대, 세상에서 제일 영광으로 생각하는 것이 천국에서는 제일 못 쓸것이 예요. 세상 사람들 눈에는 제일 못 쓸것이 천국에서는 가장 귀한 것입니다.
이 여기 귀일원식구들 세상으로는 아무 쓸데없다 말이야.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가치가 있어요. 보배들이예요. 그리고도 제일 가련한 사람이 제일 가치가 있다. 제일 천대 받는 사람, 천대 받은 만큼 언자 그 존경을 받죠? 그게 하느님의 공의의 하느님이거든요. 그래서 하느님은 공평하셔요. 사람한테 천대받은 사람은 하느님 앞에는 높임을 받는다. 천사들한테 높임을 받아요. 이거 사람한테 존경을 받은 사람은 천사들한테 멸시받고 가치 없어. 그러게 반대 라요.
그건 내가 욕정이니까 하여튼 높임을 받고 싶지. 천대를 받기 싫다 말이야. 그것이 불신앙이에요. 예수의 마음이 아니야. 누가 제일 땅에서는 누가 제일 천대받는 사람 누구죠? 예수님? 하하 창조주가 피조물한테 뺨을 맞고 말이야. 발질로 채이고 조롱을 당하고 말이야. 육체에 창으로 막 찌르고, 하느님이 창조주가 피조물한테 얼마나 천대를 받아버려. 그러니까 천사들이 옹호하고 성령이 늘 같이 하셔서 그게 영광이 되지 않습니까? 긍게 땅에 오시기 전에도 영광의 자리에 계셨지만은 인자 미물 곤충까지 다 높일 수밖에 없어요. 다 자기를 사랑했으니까.
만물이 예수를 높일 수밖에 없어요. 만물을 사랑했기 때문에, 제일 낮은데 내려가기 때문에 내려가서 제일 낮은 것을 다 올려줬기 때문에 그리 때문에 언자 그 이상 어떻게 영광은 없죠. 그 이상 천대도 없었는데 영광도 그 이상 영광이 없어요. 얼마나 천대를 받고 살았냐? 그러면 하늘나라에서는 제일 높임을 받는다는 거야. 그 책엔가 어디 보면 그런 게 있어요. 천국에서 누가 제일 빛난 옷을 입었냐? 성 프랜시스코가 가장 빛나는 옷을 입었다 말이야. 왜 그냐? 세상에 살 때는 제일 못 쓰는 옷을 입었기 때문에 더러운 옷을 입었기 때문에, 거지로, 깃 떨어진 거, 모두 땀 냄새난 거. 그러기 때문에 거기 가서는 언자 제일 빛나는 옷을 입었다.
또 그 세상에서는 무엇이 제일 기쁜 일이냐? 그 네오 형제와 그 대화하는데 있거든. 근데 그걸 한 여섯 번이나 했던 가 모르겠어요. 뭐 기쁘고 할일이 뭐 여러 가지 많이 들어있죠. 한 번에 뭐 기적을 행하고 뭐 또 수천 명 회개를 시키고 모두 병자를 다 건강하게 해주고 또 모르는 거를 다 알고 그래도 그거는 기쁜 게 없다 말이야. 한 대 여섯 번 했어요. 이 그러니까 나중에는 네오형제가 아 그러면 도대체 세상에서 무엇이 기쁜 일이겠습니까? 그런데서 기쁨이 없다면 진정한 기쁨이 없다면 감정적인 기쁨은 있지만은 영적인 기쁨은 없다. 뭣이 진정한 기쁨일까? 궁금할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잘 기억을 하시지만은 가장 칭찬을 받고 달게 환영을 해야 할 그런 형편에서 가장 멸시천대를 받아버렸다. 천대를 받았다면 이만저만 아니라 말이야. 살인강도같이 취급을 당하고 뺨을 맞고 추운겨울에 밖에 내동댕이쳐지고 자기 집에 좀 왔는데도 환영하지 않고 거짓말하고 도둑놈들이라고 막 이렇게 억울한 소리를 하고 말이야. 그 런 것을 어떻게 참았냐? 그 신앙이요. 문지기 입을 빌려서 하느님이 그렇게 시켰다. 하느님이 문지기 입을 통해서 그렇게 시험해봤단 말이야. 가장 환영받을 그런 좋은 일도 하고 했지만은 그 때가서 막 억울하게 도적놈들이라고 막 뚜드려 맞고 몇 번 맞고 말이야. 몇 번 사정해도 당신 형제라고, 좀 용납해주라고 사정해도 안 돼. 도적놈하고 막 욕해.
그런 억울하고 억울한 학대를 받을 때에 그 때만이 예수님의 그 고난에 백분의 일이라도 참석한 것이라는 거여. 예수님의 억울하심에 참석, 쪼금 동참한 격이 된다 말이야. 다는 아니고, 그러니 그것만이 진짜 기쁨이다. 다른 기적이나 모두 이런 거 하는 거는 다 주님의 은총으로 되는 일이니까. 그건 누구든지 은총을 받으면 다 될 일이고. 내 것은 아니라는 거야. 거둬버리면 그만이야. 교만하면 그냥 거둬가 버려. 언자 천국까지 갖고 갈 재산은 멸시 천대, 얼마나 천대를 받느냐? 그게 성도의 재산 아니요? 그 말씀 어디 있어요?
히브리11장25-26절, 그 모세의 신앙도 그런 정도 아닙니까? 모세의 신앙, 구약에는 모세가 가나안도 못 들어갔죠? 이 신약으로 가서는 성공으로 나타나잖아요? 거기서 애급에서 나오지 않고 참았으면 왕이 될 것이 거든. 왕이, 그 세상영광은 독차지 할 텐데. 그것보다도
예수를 위해서 멸시천대 받는 것이 애급의 모든 부귀영화보다 더 값진 재산 이라 그래. 또 세상에서 제일 멸시천대 받는 이는 예수님이고 그 다음에 성모님이고, 성모도 다른 성자들이죠. 그 점은 어느 성인성녀든지 공통된 점이요. 또 그러게 또 얼마만큼 큰 성인이냐면 얼마나 많은 멸시천대를 받았냐? 그거야. 그기에 언자 그 가치가 더 차이가 있어. 차이가 있다면 멸시천대 받은 것을 다 원한 것은 공통적이야. 다 똑같아 그런데 얼매나 더 천대를 받았느냐에 따라서 가치가 다르다.
여기서 더 보고, 아아 저번에 길에서 어떤 청년이 와서 아 저 건강하시오. 아 참 건강하시 구만요. 그전엔 나 건강했는데. 아 저 그때보다 더 건강 하시 구만요. 하하 아 오래 사시오. 아 그 육으로는 좋지만 말이야. 오래 살라. 그러고 오래 즐기라, 하하 그러니까 이 감정으로는 달게 받아요. 그러지만은 신앙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그건 아닌데. 아닌데. 얼마나 병치레 고생했냐? 그것이 인자 천국 갈 가치인데 말이야. 얼마나 억울함을 당해고 얼마나 고생했냐? 그건데 아 건강하니까 얼마나 활발하고 그냥 자유롭고 막, 자기 멋대로 살고 그러잖아요? 건강하니까 아픈 사람 사정을 알겠어요? 건강한 것이 육으로는 오복 중에 하나 들어가지만은 영으로는 그렇지 않다. 영으로는 얼마나 병을 달게 여겼냐? 달게, 얼매나 고생을 꿀과 같이 여겼는가? 환난을 떡으로 여겼는가? 그게 있다고, 내 믿는 것은 무엇으로 아냐? 환난을 기쁨으로 여기는 것 아닙니까? 로마서 5장3절 이하를 보면 환난일수록 기뻐하는 것이 믿음이란 말이야 그런 게 환난을 싫어하는 것이 어디 믿음이냐? 아니란 말이야. 나지 나, 내 감정의 요구지. 영의 요구는 그렇지 않다. 환난을 기뻐하는 거다.
환난의 떡, 고생의 물, 어디 있죠? 그런데 실지는 그렇게 받아지지 않는다 말이요. 성경말씀은 진리인데 참말인데 왜 그래 받아지진 않으냐? 그래 그 감정의 요구가 강하다 말이야. 영적요구는 참 믿음은 그래야 될 텐데, 환난을 떡으로 알고 고생은 물로 알고 또, 그것만이 축복이 아니라 거기다가 더 큰 축복이 뭐라고요? 환난을 떡으로 여기고 고생을 물로 여기는 것이 그것도 복인데 참복인데 영적 복이, 그거보다 더 복은 뭣이냐면 정로를 가르쳐주는 스승, 그 이상 복은 없어요. 정로, 바른길, 참으로 살길, 가르쳐주는 스승, 그 스승을 만나게 되면 만나는 사람의 태도로 어떻게 된다고요?
자기를 완전히 부정하는 부정, 22절에 있어요. 자기를 완전히 부정, 아까 누가복음28장 다시 봅니다.
예수께서는 기도하시는 동안에 그 모습이 변하고 옷이며 눈부시게 빛났다. 그러자 난데없이 두 사람이 나타나 예수와 함께 이야기하고 있었다. 여기 다른데 보다 다른 건 인자 이야기 무슨 이야긴가? 이야기 내용이 뭐인가? 삼인대화, 세분이 만나서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야기 내용이 뭐냐? 그야 무슨 얘기를 했냐?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와 영광에 싸여 나타난 그들은 예수께서 멀지 않아 예루살렘에서 이루시려고 하시는 일, 곧 그의 죽음, 인제 죽음으로 이루시거든,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 그러지 않았어요? 십자가에서 언자 죽을 자리 올라가셔가지고 다 이루었다는 게야. 죽는 것은 언자 다 이룬 거예요. 세상 다 졸업이에요.
십자가상에 칠언 중에 하나에요. 다 이루었다. 예루살렘에서 이루시려고 하시는 일, 곧 그의 죽음에 관하여 예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얼마 안 되어서 당신은 언자 목적하고 바라고 나왔던 것인데 이뤄졌습니다. 십자가상에서 다 이룹니다. 인제 별세하십니다. 인제 할 일도 다했습니다. 인자, 두 사람일도 다하고 끝나고 올라가야 돼. 마지막 증거로 땅에 한번 와서 다시, 하늘에 갔다가 다시 와서 인자 마지막 증거입니다.
그 때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은 깊이 잠들었어요. 그런 변화산에서 잠이 들고 있어요? 잠들었기 때문에 뭔 얘기를 했는지 몰라. 무슨 말을 세분이 얘기를 하고 계셨는지 모른다 말이여. 깊이 잠들었다가 깨어나 예수의 영광스러운 모습과 거기 함께 서있는 두 사람을 봤어요. 얘기는 잠 들었으니 잠들었을 때 얘기를 했으니까 못 들었다. 얘기는 못 들었는데 깨 보니까 그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였다는 거야. 그 두 사람이 떠나려할 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선생님, 두 분 선생님도 잠깐 좀 지체하시오. 내말 듣고 떠납시다. 그런 셈이죠.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땅에서는 최고 이상이라 말이야. 바라고, 바라고 하던 이상이야. 참 요런 별천지 딴 세계라 말이야. 땅에서 요런, 요런 장면이 있다니 여기 천국 아닌가 말이야. 뭐 다른 거 바랄 거 없습니다. 우리 여기서 우리 삽시다. 떠나지 말고 삽시다. 영원히 같이 삽시다. 뭐 그런 생각이 나겠죠? 말할 거 있겠습니까? 어디에다 비할데 있겠습니까? 이이상 어디 좋을 수 있겠습니까?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선생님께, 하나는 모세에게 하나는 엘리야에게 드리겠습니다. 하고 예수께 말하였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자기도 모르고 한 말이었다. 요 말이야. 지금 33절이요 금방 해놓고 그 소리를 잊어버렸단 말이요. 초막 셋 지어서 세분에게 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잊어버렸단 말이요, 해놓고. 그 잊어버렸어요. 얼마 안 되어서 예루살렘에 이루시는 일, 곧 별세하신다는 얘기 못 들었거든요. 곧 별세하실 분 누구 그 사시라고 사시되 초막 속에다 가둬놓을라고, 하느님을, 하느님을 말이여. 창조주를, 초막 조그만 한 오두막 하나 지어놓고 거기 사십시오. 갑갑해 어떻게 살아? 아 우주가 집이고 우리 마음이 당신집인데 말이야. 사람들의 마음이 다 집, 사방 훨훨 날아 댕기고 뭐 번개보다 빠르게 왔다 갔다 하실 분인데 초막에다 딱 가둬 놓으면 그 어떻게 돼요? 꼼짝 말고 여기 사십시오. 그러면 징역살이 해버리지. 그게 사람마음이 좁아요. 좁아, 하느님의 자녀라면서 쪼그만 물질 놓고 싸워, 싸워, 네 집 내 집 막 한계를 그려놓고, 우습죠?
<~끊김>
베드로가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사이에 구름이 일어나 그들을 뒤덮었다. 구름, 그들이 구름 속으로 사라져 들어가자 제자들은 그만 겁에 질려 버렸다. 아까 말하던 소리도 허망하고 말이야. 그런다든지 말도 없이 그냥 사라져 버려. 말도 아닌 소리야. 또 모든 걸 버리고 따라다닌 제자들의 태도도 아니야 말이야. 도로 세상이야. 얼마나 쪼그라지느냐? 도로 세상이야. 하늘에서 있다가 온 분들을 또 초막에다 가둬논다 말도 안 되고. 창조주를 거기다 붙들어 둔단 말도 안 되고 또 자기들 태도로 봐도 다 버리고 따라 댕기는 사람들이, 세속을 다 버리고 욕심 버리고 따라 댕기는 사람들이 거기다 또 뭣을 한다는 거 말이야. 땅에다가, 긍게 마음이 변화되라는 것을 보이는 거뿐인데. 너희들이 마음이 변화를 받아라. 이런 뜻인데.
그 소리가 그친 뒤에 보니 예수 밖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 영혼은 빠졌네요. 그 때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아들, 내가 택한, 요 말은 또 다른 말이네요. 내가 택한 내 마음에 든 내가 택한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어라. 언자 누구 말을 들어? 진리 참말, 예수의 말만 들어라. 그의 말만 들어라. 그를 참지도자와 참 임금과 참 머리로 모셔라. 그 말이야. 들어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그친 뒤에 보니 예수 밖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 생활은 앞으로 요렇게 되는 예수밖에는 누구를 보나 그 속에 예수밖에는 안보여야 돼, 그 사람 행동을 안 봐야 돼. 행동을 따지는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 속에 예수만 봐라. 그 말이에요. 모두가 다 예수다.
이 귀일원은 전부 예수에요. 모두 불구자 전부 예수라. 나만 빼놓고 전부 예수여. 그 속에 예수가 있어. 예수밖에는 안 보이는 생활이에요. 예수 밖에는 언제든지 예수가 나와 선별해야지. 그 왜자는 빼버리고 왜? 왜? 왜, 그 사람 잘못을 통해서 지금, 예수님이 지금, 그 속에서 지금 실패 시켜가지고 길을 돌이키려는 거지. 왜 저사람 저렇게, 충성스런 사람에게 갑자기 저렇게 불구자를 만들어가? 왜 저럴까? 하느님이 하시는 일인데 하느님이 그 영혼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거거든요. 아 아 인자 좀 조용히 기도하고 성경보고 그래야지. 내 지금 마음 닦아야지. 그것을 목표로 해가지고 최선, 있는 힘을 다 하다가 그렇게 됐으니 그 소원이 이루진거에요. 건강해가지고는 그 소원대로 안 되거든요. 사방서 뭐 이거 해도라 저거 해도라 하는데. 그 뿌리치고 못 오겠어요? 또 스스로도 그럴 수도 없고 건강한 몸으로는, 그러잖아요? 건강한 몸으로 말만 들으면 이거 잠이 오고 설교도 하면은 잠 오고 다른 때는 괜찮아도 설교하면 잠 오는데, 혼자 우리 돼요? 안 된다 말이야. 이러니까 그 영적 소원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 몸이 좀 약하게 만들어가지고 인자 일을 못하게 해가지고 네 소원대로 하라 인자, 마음대로 기도하고 마음대로 책보고 해라 그거 아니겠어요?! 이 소원은 이뤄진 거예요. 그러 안 합디까?
이현필 선생님이 큰 사랑은 영혼이니까 얼마나 기뻐할까? 예수님이 얼마나 기뻐할까? 우리 말은 그 믿어지지 않죠? 그러면 이 김 선생님 자신이 기뻐하는 것이에요. 차마 표정이 기뻐한 것을 표정으로 나타내지 못하지. 다른 사람 미안하니깐, 다른 사람 슬퍼하고 있는데 나 혼자 미친것같이 그러겠어요? 속으로는 춤을 출지언정 표정으로는 그러잖아요? 그러나 진정은 기쁜 거예요. 지금까지 지도한 결과가 그렇게 된 것이에요.
돼지를 잘 길러가지고 자매원에 큰 도움을 줘야겠다. 큰 좋은 생각으로 했죠? 그래 김 선생이 보기는 아 이건 안 될 거야. 뻔 한일, 이 빚만 몽땅 질 것이다. 예측했단 말이야. 그랬지만 자기가 체험을 해봐야 되니깐 냅둔 거여. 그래 그 결과 빚만 몽땅 져버렸어. 이제 어쩌냐? 하지 말란 말도 안했지만은 그렇게 해서 깨달아야 되니까 손해보고 그리해야 되니까 그래야 돌아오니까. 빚 안지고 하려면 할 수가 있지만은 그렇게 안 빚을 지라 그래야 빚을 김 선생이 책임 책임졌죠? 제법 하느님 아버지한테 편지를 했다고 그러잖아요? 신부, 하느님아버지 아니요? 언자 그렇게 해서 빚을 안아가지고 있는 힘을 그러니까 그랬으니까 또 충성을 다하죠. 빚에 째이니까 감격해서요. 그러나 깊은 속으로는 나 이것 아닌데. 내가 말씀을 연구하고 기도를 해서 실력을 얻어야 하는데, 그러니까 또 그 소원도 이뤄진 거라 말이야. 언자 구원대로 다 주신 거예요. 그리 왜 지금 아이고 아니다 그래 아니다 후회 했는데 그것이 바로 된 건데 하느님이 하느님의 방법이 가장 옳지. 내방법대로만 틀린 거뿐이지. 그게 하느님 방법이에요.
좀 더 끝에까지 보겠습니다.
베드로가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사이에 구름이 일어 그들을 덮었다. 그들이 구름 속으로 사라져 들어가자 제자들은 그만 겁에 질려버렸다. 이 때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아들 내가 택한 사람이니 그의 말만 들어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그친 뒤에 보니 예수밖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건 다른데 두 군데는 여기까지가 끝인데 여기는 쪼금 더 보탰죠? 36절에 가서는, 제자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자기들이 본 것을 얼마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 할 수 없죠? 말할 필요도 없고 말해도 안 되고, 그러니까 이거 언자 말로 할 문제가 아니고 인자 생활로 증거를 해야죠? 변화를 받아가지고 마음의 변화를 받아가지고 생활로 증거를 해야지. 부활한 자기들도 부활한 체험을 가지고, 그래야지. 이때 그때 내용을 얘기해서는 안 된다 말이야.
그럼 여기서 예수님만이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실 분 그럼 인자 믿음은 예수님이니까 나는 없고 그리스도 계시니까 그리스도만이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릴 분이니까 믿음이 없으면 하느님을 기쁘시게 못 한다 그 말이 그리스도가 아니면 하느님을 기쁘시게 못한다. 그 말이나 같다 말이요.
믿음은 나는 없고 내안에 그리스도가 있으니까 그리스도만이 하느님을 기쁘시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