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동 무 이야기

큰밭 월동무 작업 : 이세종과 무교회

mamuli0 2023. 12. 12. 15:41

 큰밭 월동무 수확하다가 비가 와서 지장이 되고 있다. 무를 거두어 들이지 못하고 무청도 덕장에 널다 중단 되었다. 금년산 울금을 출하하려고 포장을 하고 있다.

 

 유인호씨의 <이세종 생애와 영성 사상에 관한 연구> 논문 일부를 올려본다.

 

 

엄두섭에 의하면 이세종은 이 동산교회에서 3년이나 설교를 했다고 한

다.32 또한 이세종은 등광리의 자신의 산당에서 주로 가정예배 형식의 예

배를 드렸다.33 당시 등광리에는 교회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산당에서

홀로 혹은 제자들과 함께 가정예배 형식의 예배를 드렸다.

 

이세종이 활

동하던 당시 일본의 무교회주의자 우찌무라 간조에게 영향을 받은 화순

지방의 안학수와 한국의 젊은 평신도 지도자들, 특히 김교신을 비롯한

여러 무교회주의자들이 활동하던 시기에 이세종은 이들과 같이 평신도

로서 성경을 가르치며 독자적인 성경공부 모임을 이끌었지만, 무교회주

의를 주장하지 않고 교회에 출석했다는 점은 그 당시 다른 평신도 무교회

지도자들과 차이점을 보인다.

 

 

그러나 이세종은 당시 기성교회가 행락주

의로 흐르고, 환난당하면 안 모이고 평안하면 갈아치우는 것과 행위

없음에 대해 비판하기도 했다.

 

 

비록 그가 당시의 무교회주의자들과 비

교해서는 교회를 긍정적으로 보았지만 기성교회에 대한 태도는 비판적

인 성향을 보인 것 같다. (유은호씨 논문/이세종 생애와 영성 사상에관한 연구에서 발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