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덕장 기초 공사 이틀째 : 거룩하고 순결하게

mamuli0 2023. 7. 7. 09:16

 농장 남쪽 덕장을 다시 새롭게 설치하려고 기초 공사를 이틀째 하였다. 잔가지는 분쇄하고 통나무는 감나무 밭 아래에 뫃았다. 굴삭기로 바닥을 정리했다. 이어 산집 벽 수리를 하였다.

 

거룩하고 순결하게

1998. 1. 2

순종을 못했다는 건데 여러 시간 말씀드렸습니다만 언자 한 가지만. 이제 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3절-4절.

제목이 이렇게 붙었다.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 언자 어떤 생활이 하느님을 기쁘시게 했느냐? 거룩, 순결, 구별, 나실 인(성별된 자), 완전히 몸을 바쳤어.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한 가지 더 덧붙여 당부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인지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께서 일러주신 바를 여러분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아니 주 예수 이름으로 요청합니다. 여러분은 그 길을 향해서 더욱더 열심히 노력하십시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 하느님의 뜻은, 뜻이라고도 되고, 원하신 것은 원하신 대로 거룩하고 순결하게 살아가십시오. 세상과 구별되게 순결하게 거룩, 순결, 예수님의 사명도 거룩해하라고 보냈다. 하느님께서, 요한복음 10장36절이라 말이야. 공동번역으로 거룩하고 순결하게 살아가십시오.

요것이 요대로 안 이뤄지면 모든 문제에 얽힌 겁니다. 거룩하고 순결한 사람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이걸 거슬리니까 모든 문제가 있는 거야. 원칙을 어기니까,

 

예를 들면 가톨릭은 그 원칙을 지키니까 지도자들이 쪼개지질 안 해요. 갈라지지 않지만 이 신교는 해방 후에 막 백 개가 있어. 그렇게 되잖아? 장로교회가 또 얼마나 쪼개집니까? 일제 때 모두 해방 후에 그 쪼개지거든. 원칙을 깨뜨려버려서 그래요.

하느님께서 원하신 것은 거룩하고 순결하게 살아가십시오. 성적인 모든 죄를 피하고 거룩하고 품위 있는 결혼생활을 하십시오.

 

5절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일반인들처럼 더러운 욕정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순결과 반대니까 욕정, 남의 아내를 가로채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남의 아내, 어떤 사람이 남의 아내를 가로 채겠습니까? 이 역시 주님의 명령입니다. 절대로, 전에도 엄중히 경고해 둔바 대로 주님은 이런 짓을 하는 사람에게 무서운 형벌을 내리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더러운 생각이나 욕정이나 정욕이나 말이야. 욕정에 빠진 삶이 아니라 거룩하고 깨끗한 삶을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를 두신 목적이, 만일 누구든지 이 계명에 따라 살기를 거부한다면 그는 인간의 윤리만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주신 하느님까지 거역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까 무엇을 알지 못했느냐? 하느님을 알지 못했다 말이야. 그 이교도처럼 색욕에 빠진 거야. 그게 하느님 알아진 거야. 하느님이 안 것은 부부간에도 거룩하게 순결하게 깨끗하게 대하는 거야. 몰랐을 때는 상관없어요. 이 한 번 알았다면 인자 그리스도가 남편이고 지도자고 스승이니까. 땅에 있는 자를 지도자를 말라. 스승이라도 말라 스승은 하나다. 지도자는 하나다. 그리스도다.

자 그리고 인자 고건 알지 못했어요. 골로 결론을 내리고요.

 

알아도 순종 않는 것. 알아도, 그 많죠? 그것도, 가령 예를 들면 마태복음 7장24절이거든요.

알아도 순종한다 말이야. 또 부자청년, 영생의 길은 물었잖아요? 해답을 듣고도 순종을 안 해요. 그 할 수 없어요. 근심만 하고 돌아가요. 양심은 있으니까, 알고도 순종 못하는 거 많지 않습니까? 양심 다 증거거든요. 그 죄는 뭣이 죄냐? 성경하나 대봐야죠?

 

히브리 10장22절 봅니다.

고 구역성경에는 양심이 자책하는 죄, 또 묵시2장21절은 그이 뭐이냐? 그건 개역으로 봐도 되는데 뭣이 죄냐? 이 죄가 뭐이냐? 하는 건 자기 양심에 물어야지. 어떻게 배우면 잘 못 배운다. 신학교 나가서 배운 거는 잘못 배운 거야. 자기양심에게 물어본다 말이야.

 

 

묵시 2장21절

무엇을 회개 하냐? 뭣을 회개 하냐? 예수님은 뭔 죄를 십자가 졌냐? 그 다 해답이 있어요. 근데 이 모르고 살잖아요?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언행을 회개하지 안 해요. 회개는 그 하나뿐이에요. 그것만 하면 회개 다 되는 거예요. 그 뭐 남에게 도적질했다 그런 것도 회개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회개하라 천국은 오고 있다. 우리가 간 것이 아니라 천국은 오고 있어요. 줄기차게 다가오고 있다. 그 회개하라는 거야. 다 비워버리라는 게여. 비우기를 힘써야 할 텐데, 더 채우려고, 욕심을 채우려고, 있던 것도 비워버려요. 이 내 멍에는 쉽고 가볍고 편하다. 왜 그러냐? 무거운 짐은 버려버리고 가니까 야. 요 털기가 힘들지만은 놔버리기가 쉽잖아요? 놔 버리면 힘이 안 들 것이거든, 들기는 힘이 들어도, 놔 버리고 오라. 무거운 짐 버리고 오라. 또 죄와 예수의 은혜를 바꾸어져버린다.

바꿀 역(易) 자, 쉬울 이(易) 자라 바꿀 역(易), 쉬울 이(易) 그리 하면 그 쉽고 쉽다 말도 할 것 없어요. 그냥 내 힘이 많이 드느냐? 안 드느냐? 쉽고 가볍고 그렇죠? 없다. 말도 없어. 사람 힘이 필요 없으니까 버려버렸으니까 버렸으니까 그러니까 그저 여. 그저, 그리스도 은혜의 힘으로 가는 거예요. 믿음도 은혜죠.

 

인간의 노력 그건 없어요. 그게 다 인간의 노력 보태면 방해가 되어버린다. 완전히 없어야 된다. 버리고 오라는 게요. 죄는 뭐냐? 26절은 인자 현대어성경으로 보면 끝까지 나를 기쁘게 하는 사람, 그 사람에게는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다, 만국통치권을 준다. 끝까지.

그리스도의 신비, 비밀을 깨닫지 못하고 배우지 않고 사탄의 비밀은 배우지 않고 따라가지도 않고, 하고 그리스도 비밀만 지킨 사람에게는 만국통치권을 준다. 그리 됩니다.

 

 

그러면 이 아까 히브리 그곳만 하나보는데 이건 공동번역을 봅니다.

히브리10장22절은 구역으로 봐야하고 양심에 자책하는 죄, 자기 양심이 스스로 자책한 거여.

누구한테 듣고 배운 거 아니고, 또 인자 히브리 9장14절입니다. 실력이 아주 중요한 거.

요번모임에 그 말씀 하나 기억해도 큰 수확이에요. 그 말씀, 히브리9장14절이요. 자 이 11절부터 갑니다.

 

그러니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존재하는 모든 좋은 것을 주관하시는 대 사제로 오셨습니다. 그분이 사제로 일하시는 성전은 더 크고 더 완전한 것이며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에요. 그리스도께서 섬기는 성전은, 아닙니다. 말하자면 창조된 이 세상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 그리스도는 단 한번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염소나 송아지 피가 아니에요. 아닌 당신의 피, 당신의 피로써 우리에게 영원히 속죄 받을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12-13절

부정한 사람들에게 염소나 황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를 뿌려도, 그 육체입니다. 육체, 육체를 깨끗하게 하며 그를 거룩하게 할 수 있다면, 할 수 있다는 말도 아니죠? 할 수 있다면 그, 육체에다가 재를 뿌리면 어디 깨끗하겠습니까? 더 시꺼멓게 해져 더 더럽죠? 그 뭐인가? 행동을 좀 조심 하는 거야. 마음은 하나도 변하지 않아요. 뭐 세례 받고 뭐 직분 가지면 마음이 다른가? 마음은 똑같아요.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똑같아요. 마음은, 그 외형으로만 그리스도에게 보인 것을 조심한 거뿐이지. 마음은 하나도 변함없는 거여.

하물며 성령을 통하여 당신자신을 하느님께 흠 없는 제물로 바친 그리스도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케 하는 거야. 첫째가 양심, 양심이 깨끗하고 밝아야 맑아야 뭣을 해야 할 것 안해야 할 것, 죄와 선, 알죠? 양심이 깜깜하고 더러우면 어떻게 압니까? 예수그리스도 피란, 그리스도 사랑,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첫째 양심을 깨끗케 하는 거야.

이 하난데 하나, 죽음의 행실, 정욕적인 생활, 하느님을 모르는 이교도들처럼 책임을 따라라. 이 말이야.

 

죽음의 생활을 버리게 하고 살아계신 하느님을 섬기게 하는데 얼마나 큰 힘이 되겠어? 이거요. 세 가지입니다. 양심을 깨끗케, 그리스도 보혈은 양심을 깨끗케 하고 죽음의 행실, 세속 안 따라간다. 육정을 지배하지 따라가질 안 해. 정욕에 끌려 사는 게 아니라 정욕을 지배해요.

하느님을 참되게 섬긴다 말이야. 살아계신 하느님을 참되게 섬겨요. 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느냐? 세 가지, 처음엔 양심을 깨끗하게 했죠? 죽음의 행실을 버려야 하는 게 힘이죠? 또 하느님을 섬기는 힘이죠? 하느님을 아는 것이 힘이죠?

 

 

그러면 여기 하나 공동번역으로 빌립보 1장29절. 그 삼대 특권이 있다 말이야. 그 세 가지 큰 힘을 특권이요.

빌립보 1장29절이요.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을 특권뿐 아니라 믿어진 것이 특권입니다. 기적이에요. 기적, 에베소1장11절 보면 그리스도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믿게 하셔야 믿어진 게 때문에 기적이에요. 기적, 사람은 못하니까 믿고 싶어도 믿어진 거 아니야. 하느님이 믿게 하셔야 돼요.

공동번역으로 보면 그리스도를 믿게 하셨어. 그리스도께서 그 기적 아닙니까? 은총이 아닙니까? 그리스도를 믿을 특권뿐만 아니라 그분에 의해서 고난당하는 특권입니다. 고난당하는, 용기 있게 기쁨으로 당한거지. 억지로 당한 게 아닙니다. 마지못해 당한 게 아닙니다.

자원하고 기쁘고, 이 참고로 믿음은 고난을 기쁨으로 받고, 안 믿으면 고난을 저주로 받는다. 말이야. 그분을 위해서 고난까지 당하는 특권, 그걸 다시 말하면 곧 그리스도를 섬기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믿어진 것도 특권이고, 섬기는 것도 특권이고 고난당하는 것도 특권이라. 삼대특권입니다.

 

자 그러면 인자 알아도 순종 못하는 거, 언자 그 다음에 하나 문제는 마태복음19장에 부자청년.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뭐, 뭐 한 너댓 가지 지키면 된다. 아 그 어려서부터 지켰습니다. 그 몇 가지 중에 마지막에 뭐이냐면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그 말 지켰어요? 이웃이 다 똑같이 부자여? 가난한 사람이 없어요? 그 거짓말이거든, 지켰다 그 말은 알긴 알았습니다. 그 말이지. 알면 뭣해? 지키지 않으면 모르는 것만 못하지. 알고도 지키지 않으면 모르는 것만 못해요.

 

 

이게 알아도 그 양심은 가책을 받으니까 근심하면서 돌아갔거든요. 이 몰라서 못한 것도 많지만 알아도 못하고 나 따라 오려면 자기를 부정하라. 그리 되어 있지요? 불순종해요. 자기 안보여. 기어이 자기 가지고 따라와. 끝까지, 요 숨 딱 끊어질 때뿐이지. 할 수 없죠? 이 끊어지기 전에 탕자는 버린 거 아닙니까? 죽었지 않습니까? 자기 죽은 거여. 그러니까 자기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단 말은 영원한 자기 위치 찾았단 말이야.

 

영원의 참자유와 평화와 기쁨, 형은 회개 못하면 탕자 형은 지옥살이에요. 항상, 또 회개를 안했다 말이야. 그 기뻐해야 할 날에 아우가 돌아왔으니까. 이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말이야. 아버지가 아무리 설득시켜도 소용이 없어요. 야 나 죽으면 다 네 것 아니냐? 소용없어요. 안 들어요. 그게 인간은 나도 그렇다. 말입니다. 나도, 불순종 하는 거야. 항상, 내 뜻을 고집하고 있다 말이야. 그러니까 복음삼덕이라면 그래요. 청빈, 가난, 그 흉내 낼 수 있어요. 참 가난은 못 하지만은, 동정, 몸은 바칠 수 있어요. 정결, 동정, 실제는 순종이거든. 숙명, 숙명, 이것만은 자기 뜻을 버린 건데 안 버린다 말이야. 자기를 버리려면 자기 욕심 버리라 자기 죽어라 부정해라. 버리고 오라. 그러는데 안 버려요. 불순종해요. 순종은 뭐이냐? 죽어야 순종이다. 예수님은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셨고 또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한 거야. 이 아담의 성품은 죽은 후에 순종입니다. 이 타락성은 죽어야 순종이에요. 살아있고는 순종이 아니에요.

 

 

믿음은 죽었다 말이야. 나는 율법의 손에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았다. 그게 참 믿음인데 믿는다 해도 내가 살았거든. 믿음이 아니라 말이야. 내가 머리에요. 그리스도가 머리가 아니고 알고도 순종 못한 거, 이런 거 하느님도 전능하신 하느님도 불가능이라 말이야. 순종 안하면, 에 이런 말 있습니다. 하느님도, 전능하신 하느님도 세 가지 불가능이 있답니다. 첫째가 뭐이냐? 자기 자신을 없앨 수가 없어. 자존자비 스스로를 없앨 수가 없어요. 그게 불가능이에요. 또 사람도 하느님을 떠날 수는 없는 거예요. 자기 마음이 떠나지, 하느님은 마음속에 계신데 말이야. 누구라도, 호흡 속에 있는데 생기는데, 어떻게 떠납니까?

그러니 인자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 안에 산다는 걸 확신한 거 아닙니까? 하느님하고 같이 있어. 하느님과 같이 산다. 그건 체험 아닙니까? 요고 한 가지는 자기 스스로를 없앨 수 없고 회개안한 인간이 자유를 줬기 때문에 회개 안한 영혼을 구원할 수 없어요. 또 같은 것이지만은 회개한 영혼을 버릴 수가 없어요. 그 세 가지입니다.

 

스스로 없앨 수 없고 또 사람도 아무리 그 힘이 있다 하더라도 하느님을 피할 수는 없어요. 자기 마음 피했지. 마음속에 계신 하느님인데, 이거 고 쯤하고 인자 거기다 언자 쪼금, 알고 알긴 알아, 또 하고 싶어도 되지 않은 거요. 알기는 알았고 또 하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도 안 되는 것, 그 아까 첫째 문제가 하느님을 알지 못했다. 하느님을 알지 못한 이방사람같이 이교도처럼 침소를 더럽히지 말라. 생각도 하지 말라. 하느님만 모른 거여. 양심에는 있는데 무시해버린 거여. 몇 해 전에 그런 일이 있지 않습니까?

미국서 공부해가지고 박사학위도 얻어가지고 한국에 나와서 대학교수 노릇하는데 또 그거다 무슨 욕심으로 장사를 하다가 빚이 몽땅 졌다. 그래 자기 아버지를 죽였다. 또 자기는 기독교 집사요. 아버지는 장로다. 근데 집사가 장로를 죽였다. 그러면 지식으로도 안 되고 돈으로도 안 되고 권력으로도 안 되고 종교로도 안 된다. 길이 없어요. 오직 그리스도로 된다. 믿음으로 된다.

그리스도로 되는 거지. 은총이지. 사람은 아아 필요 없다는 겁니다. 종교로도 안 되어요. 집사가 장로를 죽였어요. 평소에는 효자 말 들은 사람이 그렇게 돌변한 거여. 여 간단히 로마서 7장18절-19절서 봐요.

 

로마서 6장2절-3절 보고요. 그리스도와 함께 받은 세례.

절대로 그럴 수는 없습니다. 죄를 짓지 않고도 살 수 있었는데 계속 죄를 지어서야 되겠습니까? 5장20절에 대한 반문이거든, 죄 많은 것이 은총이 많다. 그렇게 볼 때는. 자 요 생각 좀 함 봐요. 로마서 5장 20절입니다.

십계명을 받은 결과 모든 사람은 스스로 하느님의 율법을 지켜낼 수 없는 존재란 거, 십계명이나 모세 율법 중에 줄여서 줄여가지고 열 가지만 냈어요. 근데 그걸 지키란 거냐면 아니라 말이야. 십계명을 받은 결과 모든 사람은 스스로 하느님의 율법을 지켜낼 수 없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신의 죄가 깊다는 것을 알게 될수록 우리를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넘치는 은혜를 더욱더 깊이 깨닫는다. 죄가 많이 드러날수록 자신의 죄를 들어날 수록 옹서해준 하느님의 은총, 더 깊이 깨달았다. 용서 받았어. 희망이 있어요. 용서, 그 죄와 은총과 바꾸어버린 거 아닙니까? 바꿀 역(易) 자라니까 쉬울 이(易) 자가, 죄가 더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용서받는다 하는 은총을 더 깨달았어. 희망을 갖죠?

 

아까 6장 2절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죄를 짓지 않고도 살게 해 주셨는데 계속 죄를 지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죽고 세례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 몸으로 한 부분이 되었어요. 되었을 때 이미 우리를 지배하던 죄의 세력은 부서졌습니다. 죄의 세력, 부서져서 버렸습니다. 부서져 버렸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는 산산이 부셔졌어.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가루가 되어버렸다. 부서진 것입니다.

죄를 사랑하던 우리는 세례를 받아, 세례, 죽었다 말이야. 옛사람, 아담의 옛사람이 죽었다 거야. 세례를 받을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묻혀서 그분과 더불어 장사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 같이 우리도 그분의 새 생명을 얻어 살게 된 것입니다.

 

자 그러면 언자 7장 대충대충 했어요. 7장4절. 요건 이제 돌아가서 대조해 보겠습니다. 사무엘상 25장1절서부터 끝 절까지 대조해봅니다. 에 여기 4절 봅니다.

지난날에는 유대교회 율법이 여러분의 남편이요. 주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위에서 죽었으므로 여러분은 율법과 한 결혼은 무효가 된 셈입니다. 이제 율법은 더 이상 여러분을 지배할 수 없어요. 지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여러분도 새해의 일군으로 언자 금년새해,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말하자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분과 결혼한 것이에요.

 

 

사무엘상 25장에는 아비가일이가 이룬 남편이 나발이거든. 그러면 인자 아비가일이 믿는 사람이라면 나발은 정욕입니다. 정욕적인 남편 죽었어요.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정배가 된 거에요. 다윗이 아내로 취했었거든. 아내가 있어요. 두 세 사람 있는데도 취했다. 그러면 인자 구약은 그런 정신으로 본다 말이야. 신약정신으로 구약을 봐야 하는데. 신약도 구약정신으로 본다. 말이야. 크게 틀린 거여. 육적인 것으로 봅니다. 영적으로 봐야 하는데, 그 분과 결혼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선한 열매를 맺게 하려고 다시 말하면 하느님을 위해 선한 일을 하게 하려고 이 결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에 매여 살 때는 죄 많은 욕망이 아직 우리 안에 있어서 하느님께서 명령하는 것은 무엇이나 그러겠어요. 육체 속에, 거역하고 죄에 물든 행실, 즉 죽음에 이르는 썩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율법이나 관습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것에 사로잡혀 있던 우리는 이미 죽었어요. 죽고, 지금은 하느님을 섬기는 참다운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전처럼 정해진 규칙에 무조건 복종한다. 규칙에만, 복종하여 살기보다는 새로운 방식으로 여러분의 마음과 뜻을 다해서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실제는, 믿음의 법과 육체의 법, 그렇다고 하느님의 율법이 악하다는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인 줄 아십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율법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죄를 알게 한 것이 율법입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거 거든.

 

로마서 3장9절서 20절까지 봐요.

만일 율법이 탐욕을 품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들 나는 내 마음속에 있는 죄, 잠복해 있는 악한 욕망, 탐욕,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8절입니다. 그러나 죄는 이러한 욕망이 악한 것이라는 것을 내게 알게 해줘요 죄가, 알게 해 주면서 내 속에 숨어있는 모든 근거 즉 욕망을 충동시켜요. 이 무슨 법으로 이기느냐는 거야 충동시켜요. 욕망을 충동시킴으로써 이 율법을 어기게 만들어 버린다. 양심에 끌려가 버린다. 어기게 만들었습니다. 이 법이 없었다면 죄가 범하는 일도 없었을 겁니다, 죄를 범하는 일도 없습니다. 법이 있었으니까 어기게 됐다는 말이야.

 

 

9절입니다.

나는 율법이 실제로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몰랐을 때 마음 편하게 살았어. 율법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을 때는 편하게 산다. 비록 모양만 지키고 편안히 걱정 없이 다 구원돼 있다. 예수님이 다 구원해 주셨으니 우리는 믿고, 믿기나 하간데요? 마음 놓고 살아도 된다.

근데 실제로 율법이 실제로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몰랐을 때 지금 말이야. 몰랐을 때 마음 편하게 지냈습니다. 걱정 없이 지냈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알았을 때 나 자신이 율법을 어긴 자이며 죽음을 선고받은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울사도가 그걸 알았지만 죄인의괴수인가를 발견했다. 그러므로 내 경우에는 생명의 길을 보여줄 것으로 생각했던 선한 율법이 그와 반대로 내게 중한 벌을 내려준 결과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언자 요고만 보고요.

 

18절-19절 봅니다.

여기 문제의 열쇠니까 나는 내 육신 안에 올바른 것, 선, 올바른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몸부림 쳐도 나는 나에게 올바른 일을 하게 할 수 없습니다. 의욕으로는 아무리 선을 하고 싶어도 안 된다. 선 자체가 원동력인데 선이 없는데 말이야. 어떻게 하느냐? 하느님이 역사 안 하는데 어떻게 하냐? 선한 분은 하느님 한 분 뿐이라고 예수께서 말씀 하셨는데.

나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되지를 않습니다.

19절 선한 일을 하고 싶어도 되지 않고 악한 일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되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20절

이제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문제는 분명해집니다. 죄가 아직도 나를 사로잡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 안에, 두 마음이 있어. 이중인격이라 말이야.

죄에 속한 나가 있고 그리스도에 속하고 싶은 내가 있다 말이야. 나를 살리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1절

나 스스로는 늘 올바른 일을 원하나, 원하나, 원할수록, 어쩔 수 없이 잘못된 일을 해버린 이것이 인생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같습니다할 것도 없어. 이것이 인생의 현실입니다.

왜냐? 스스로는 늘 올바른 일을 원해요. 원하나 어쩔 수 없이 잘못된 일을 해버린, 이것이 인생이라 말이야. 현실인 것 같습니다. 속으로는 속으로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살고 싶어 해요.

양심은, 싶어 하면서도 내 속 깊은 곳에 어떤 다른 법이 있어요. 죄의 법이 있다는 말이야.

다른 법이 있어서 그것이 죄가 내 마음속에 분란을 일으켜요. 나를 누르고 아직도 내 속에 도사리고 있는 죄의 노예, 우리가 이걸 발견했다. 바울사도는 이를 발견하기까지는 얼마나 전심전력을 다 쏟아가지고 발견한 겁니다. 죄의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나는 마음으로는 늘 기쁨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종이 되기를 원해요. 그 한문글자로요. 원 자, 근원 원(原) 자 처음에 써보죠? 근원 원(原) 자가 뭣이에요? 용서할 원(原) 자에요. 요 쪽으론 머리 혈(頁) 자 거든. 우리 머리로 새긴 건 항상 죄가 있기 때문에 하아아 죄를 좀 버려버렸으면 용서받았으면 그거든요. 사람, 또 하느님도 아아 어서 돌아오라. 어서 돌아와, 내가 용서하기를 얼매나 원하는지 모른다. 하느님도 우리를 용서해 주길 원하시고 돌아 오면, 그 안돌아 가니까 문제라 말이야. ‘돌아오라. 돌아와.’ 그 말씀 언(言) 자 정자, 근본 형은 사람에게 손을 따아악 두 팔을 벌리고 어서 오라. 그렇게 쓰여져 있어요.

 

그게 말씀 언자, 그게 로마서 10장 끝 절이죠. 끝 절 두 절.

돌아오라 게야. 이거 하느님은 용서해주기를 원하시나 인간이 돌아오지 안 해요. 회개를 않는다 말이야. 또 인간 스스로도 아아 용서를 받고 싶으면서도 길은 못 찾아. 헤매고 있다는 거야. 엄헌(잘못된) 길에 살아. 무장 더 벌 받을 짓만 한다는 거야. 하느님은 거역하는 생활, 성령은 육체에서 거슬리고 육정은 성령을 거슬린다 말이야. 육정으로만 살고 싶으니까 성령을 늘 거슬린 생활이요. 그도 죄 안 짓고 산다고 생각한다 말이야. 늘 죄를 지으면서 성령을 거시리니까 육정 따라 사는 거 성령을 거시리는데 거시리면서도 나 죄 없다. 그 예수하고는 상관없어. 율법에 의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은 사람은 그리스도와 관계가 끊어진다.

자기 행복만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예수하고 관계없다. 예수는 죄인 보러 오셨으니까 죄를 내놓아야지. 선을 내놓고 선이 어디가 있냐 말이야. 독사뿐인데, 시기, 분쟁, 그 뿐인데.

 

자 그러면 요기서 한마디 요성경요. 요 고린도전서7장25절이요.

다른 성경은 다 좀 잘못된 거요. 이해를 못해요. 그런데 요 공동번역 전에 가톨릭에서 본 성경에는 그 잘 된 겁니다. 뭐라 했냐면 고린도전서 7장25절요.

이것이 25절은 율법에서 죄를 깨닫고 손들고 언자 복음으로 들어가는 다리가 됩니다. 자 7장 다른 성경 그렇게 안됐거든요.

 

자 24절서부터

나는 불행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이 몸에서 구 하리요? 자신도 물론이고 자기의 아무 구할 사람이 없어. 하느님이외는 없어요. 언자 25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은총이란 말이 들었어요. 이건 여기 있는 게 아니라 이 로마서 7장을 해석한 책에 있어요. 내심낙원이란 책,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인하여 나 구원을 받았나니 타력으로, 내 힘으로 아니고 은총 타력 아닙니까? 받았나니 하느님께 감사할지어다. 감사만 하고 있을게 아니라 그러면 어떻게 결단을 내렸냐? 그런고로 나는 이성으로 깨달았다. 이성으로써 하느님의 법에 내 자신을 바쳐요. 이성으로서, 육체로서는 죄의 본질에 내 자신을 바친다. 십자가에 날마다 십자가, 육체는 십자가, 예수님 말씀도 십자가지고 따라오라고, 자기를 부정하고 따라오라고, 그래서 순종한다. 육체에서는 십자가지고 따라오라. 근데 십자가 안지고 버리지도 않고 주여, 주여 하는 거 뭔 소용이 있냐는 거예요. 입으로만 주여, 주여 뭔 소용이 있냐? 주여, 주여 한데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대로 순결하게 거룩하게 산 사람만 들어간다는 거야. 뜻은 하느님의 뜻 이것이 너희 거룩함이라. 거룩은 뭐냐? 곧 정욕인 나를 버린 거라. 그게 거룩이예요. 순결이라 말이에요.

 

그러면 인자 8장의 역사가 8장1절도 쪼금 해석이 붙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어 육체를 따라, 정욕을 따라 행치 아니하는 이는, 조건이 있다. 그냥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는 그게 아니고 육체를 따라 행치, 육체를 행치 아니하는 이, 육적을 따른다. 정욕을 따라 행치 아니하는 이는 이제 영벌, 영혼들이 받지 않을 거야. 영벌 받을 것이 없나니.

대저 인자 2절이거든. 대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생명을 주는 성령의 법은 나를 죄와 죽음의 법, 사망의 법에서 해방, 해방, 자유, 해방, 이것이 첫 현재구원입니다. 구원을 세 가지로 나누면 과거, 다 구원이 돼있어요. 또 현재, 미래 셋으로 나눈다면 이 구원은 현재가 문제야. 현재가, 과거도 돼있었고 돼있으니까 미래도 틀림없이 좋은 것 아닙니까? 그걸 보면 그것 또한 성경에 대야죠?

 

 

에베소1장4절 고것도 공동번역 보겠습니다. 자 시간은 가지만은

자 우리도 천국에서 막상, 천국에서 하느님께 우리에게 물으신다면 너 세상에 살 때 뭣하고 왔냐? 어쩌구 왔냐? 어째서 이러구 왔냐? 그러면 요 에베소1장4절대로만 대답하면 합격이라. 나 뭐 뭣 선한 일도 하고 뭣하고 왔다. 그 다 퇴짜야. 내가 뭔 일해서 여기 왔다. 다 퇴짜야.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우리를 뽑아 주셨어요. 뽑아 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거룩하여 거룩, 순결, 구별,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는 자가 되게 하셔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고 잘 왔다. 옳다. 합격이다. 내가 무엇, 무엇 선한일로 왔습니다. 퇴짜라. 요렇게 대답만 하면 된데요. 내가 무엇을 잘해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그게 다 해 주셨어요. 단지 했다는 게 순종만, 순종, 오라하면 예, 가라하면 예, 죽어라 하면 예, 그 뿐이에요. 그리스도 안에는 믿음 안에 이것뿐이지. 뭐 이유가 없어요.

무조건 예, 아멘이에요.

 

그러면 인자 디모데후서 1장9절이거든.

요것도 현대어성경하고는 쪼금 다른 게 있는데 내용은 같습니다. 순서만 조금 다르지요. 디모데에서 보내는 둘 째 편지 9절 자 요거 현대성경 한번 봐야죠. 볼 필요가 있어. 대조해봅니다. 9절이요.

후서1장 여기서 3절 하반을 좀 알아봅니다. 디모데후서 1장3절 하반.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내 삶의 유일한 목적이요. 인생의 목적이라 말이야. 유일한 목적, 우리는 하느님을 기쁘시게, 그것은 뭐냐? 거룩, 순결 그것 밖에 없어요. 그것만이 하느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예수님 오신 사명이 그거니까 그 사명에 따라 이루진거 게 우리 목적도 거룩이에요. 구원만이 목적이 아니라 거룩이에요. 순결입니다. 유일한 목적입니다.

 

인자 9절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거룩한 일을 맡기셨고, 여기는 거룩하게 하셨다. 그래요.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우리를 부르셔서 당신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주셨다. 이거 순서가 다르죠? 거룩한 백성이 됨으로써 이일을, 사명은 거룩한 일을 하라. 예수님 사명과 같다 말이야. 다른 사람도 거룩하게 하라. 네가 거룩하게 되었으니까 해라. 네 자신이 거룩하게 되지 않고는 될 수 없다. 거룩한 일을 맡기려고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우리의 그럴만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만 이 세상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하느님께서 세우신 계획이라 말이야. 계획, 제가 최근에 생각한 거야. 내 자신을 생각하면 도저히 누구한테 말할 자격이 없어요. 부끄럽고, 그러나 하느님의 계획이, 이건 내 것이 아니니까 기회 앵긴(닿는) 대로 전하자. 증거 하자 말이야. 이 아주 전하고 싶은데, 이해를 안 해주니까 쪼금 이해 된 데는 요번에 진도 가서 하루 여덟 시간까지 애기해드렸어요. 쪼금 이해되니까 통하니까 그 이야기 일주일간, 일주일 좀 못되나본데 그 몇 시간 했냐? 시간초월해서 한다.

하느님께서 세우신 계획과 은혜로 은혜를 따라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이시려는 계획은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에 오심으로써 우리에게 알려졌습니다. 창세전에 계획했던 것이 이 천년 전에 탄생한 것이 드러난 거여. 아들에다, 구원을 창세전에 해 놓았거든요.

에베소1장4절과 디모데후서 1장9절과 똑같은데 이제 하나 더 봐요.

요한일서 2장1-2절 그리스도는 우리의 중보자.

나의 자녀들이여 나는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기를 바라는 오직 한 마음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혹시 여러분이 죄를 지었더라도 아버지 앞에서 변호해 주신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모든 면에서 의로우신 하느님을 의로우시고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느님께.

2절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죄를 지어 받아야 할 하느님의 진노를, 벌을 대신 자신이 받아주셨어. 내가 받을 벌을 예수님이 받아주셔서 우리 죄을 용서하시려고 몸소 희생재물이 되심으로서 우리를 하느님과 사귈 수 있는 자리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우리만 위해서가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온 세상, 그러면 또 인자 베드로후서3장9절 구원해 놨지만은 하느님은 한 사람도 멸망하지 않기 위해서 오래 오래 기다리신다. 이 빨리 회개해야 된다.

베드로후서3장9절

비록 때로는 주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이 좀처럼 실현되지 않고 너무도 지연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주께서 공연히 날짜를 연기하고 계시는 것은 아닙니다.

주께서는 단 한 사람도 멸망당하지 않게 하시려고 죄인들이 모두 회개하기를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참고 기다리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할 일은 이미 구원해놨지만은 현재 죄에서 회개를 해야 한다. 우리 할일은 그것뿐이야. 다른 거 다 해주니까 우리 할일 없고 회개뿐이에요. 그래야 하느님 근심을 덜어드리는 거 아닙니까? 기다리니까 얼매나 근심하느냐 하면 하느님한테는 하루가 천년같이 기다린다. 게 막 애타게, 하루를 참는 것이 천년을 참는 거야.

 

이 8절 9절.

그 만큼 그 자비심을 표현한 거야. 하루를 참아준 것도 한 천년을 참은 겁니다. 어서 회개하라. 어서, 자 여기요 또 하나 이 성경은 무조건 번역이 잘됐다. 그런 거 아니고 잘 된데도 있고 잘못된 데도 있고 그래요. 사람이 한 거니까 게 그것하나 봅니다.

구원에 대해서 디모데전서 3장 끝 절이 16절인데.

하느님을 믿는 생활 신앙생활 종교 경건 역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것도 쪼금 쫌 이해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그러나 그 해답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고 성령께서 그분의 흠 없고 순결함을 입증하였으며 천사들에게 성경을 받으셨고 모든 민족에게 전파돼 온 세상 사람들이 그분을 믿게 되었고 다시 하늘의 영광에 싸여 승천하셨습니다.

요 하반에요 새 번역에는 뭐라 했냐면

온 세상 사람들을 믿게 하시고 승천했습니다. 믿게, 그렁게 하느님의 그 예수님은 초림 때 예수님 나셔가지고 십자가 질 때까지 그일 하셨어요. 그래 다 이뤘다는 거야 다 믿게 됐다 영생의 길을 터놓은 거 터놓았다. 성경휘장이 탁 갈라져버렸어. 하느님께로 들어가는 길이 문을 열어버렸어. 누구나 믿으면 다 온다. 된다 말이야. 율법을 지키면 안 된다. 자기행위에요. 구원 못한다. 믿으면 된다 말이야.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면 된다. 그 말인데.

 

자 여기에 대해서 누가복음 18장8절이요.

이 성경이 다 잘 된 것 아니다. 뭐 그 쫌 번역이, 성경이 틀린 거 아니라 번역하는데서 쪼금 잘못돼요.

누가복음18장8절.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이 모든 것에 대해 신속히 응답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다시 돌아올 때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과연 몇 명이나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로구나. 죄가 하나 더 보태면 걱정이 태산 같구나. 과연 믿는 사람이 하나나 둘이나 있을 런지 하아아 걱정이다.

이거 얼마나 이건 약화시켜버린, 하느님의 능력이 그렇게, 아까 온 세상 사람들을 믿게 하시고 승천했는데 재림 때에서 인자 과연 하나나 몇 명이나 있을까? 그 말이 될 말입니까? 왜 그렇게 무능해집니까? 이 번역이 잘못돼. 이건 사람의 노력으로 구원받는 것으로 정신서, 그 정신에서 번역한 것이 된다 말이야. 누가 자기가 잘해가지고 구원받아요? 다 독사의 자식들이, 회개를 해야지. 예수의 성품을 가져야지. 하느님의 성품을 가져야죠.

그러니까 초림 때 다 믿게 하시고 승천했다가 재림 때 한 사람도 있을지 걱정이로구나. 그건 요것은 어떻게 보냐? 초림 전 후로 보면 맞아요.

 

그건 인자 에베소1장11절로 보면

모든 것을 뜻 하신대로 이루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따라 우리를 미리 정하시고 택하셔서 그리스도를 믿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오시기전에 총 전에는 믿게 하시지 않고는 믿을 수 없어요. 그거는 그것마저도 죄인 되기 한 사람도 있을지 걱정이라고, 전연 그건 초림 때 다 믿게 하셨는데 말이야. 초림 전 같으면 말이야. 있었는데 탈이 나지. 전 같으면 오셔서 믿게 하게 하니까, 오시지 않고는 믿을 사람 없죠? 스스로 믿을 사람 없어요. 믿게 하셔야 믿으니까요. 그렇습니다. 그렇고 에 시간은 너무 빨리 가버리고 할 말은 많고, 자 인자 간단하게 인자 쪼금 다른 말로 합니다. 뭐냐? 아 여 안 갖고 왔는데 인자 쪼금만 말할 겁니다.

 

베드로후서 1장 참고는 1절서 해야 하는데 4절서 11절까지 내용을 가지고 천국에 올라가는 십 일 층이라 말이야. 십일 층, 제가 만들어 본거에요. 고대로 한 거 아니고 층계, 층계, 그러면 인자 첫 층계, 첫 층계 뭐냐?

정욕에서 이 공동번역입니다.

정욕에서 나오는 이 세상 부패에서 멀리 떠난 거요. 그러면 그 결과는 하느님의 본성을 나눠 받게 됩니다. 이 떠나야, 그러면 그 세 단계를 만들었습니다. 게 시작과 끝이라 말이요. 그 동기, 정욕에서 나오는 이 세상부패에서 멀리 떠나야 그게 첫 계단입니다. 이거는 사람이 할 일입니다. 정욕 떠나기 싫으면 못 떠나는 거죠? 안 한 건데 뭐, 떠나고 싶은 마음이 사람에게 한 말이야. 정욕대로 살면서도 그 해당 되잖아? 마음대로 두는 거야.

 

 

로마서 1장18,24,26,28절 하느님이 내버려뒀다는 거야. 그 하나 봐야죠?

로마서 1장24절 봅니다. 28절서.

하느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쫓아 나타나니 그랬고요. 언자 19절이요. 우리는 요것을 아직 안 봤는데요. 우리가 몰라서 못했습니다. 그 핑계를 못 대요. 왜 그러냐면 19절에서요.

이는 하느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느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분명히 보여 알게 돼있어.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할 길이 없어요. 알라고 하면 알게 돼 있는데 아예 알려고도 안하고 순종도 안 해요. 그게 문제라는 거야. 그런 사람은 길이 없어요. 고통만 당하다 말아요. 끝까지 인제 이 스스로 고통만 당하다가 결국은 인제 손들 때가 있지만은, 에 핑계할 길이 없어. 창세 이후로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이,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었다 말이야. 그런데 알려고 안 한 것이요. 인간의 자유이기 때문에, 그러면 24절.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저희를 마음에 정욕대로 내버려둬요. 자유를 줬으니까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느니라.

 

26절

이로 인하여 하느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부끄럽지 안 해요. 요기, 그 부부간만 부끄럽지 안하게 생겼다. 그에 다 부끄러운 거라.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로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영리로 쓴다.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에 불일 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하고 그릇됨에 상당한 부응을 만나리라.

 

28절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느님 두기를 싫어한다 말이야. 찾으려고도 안하고 싫어하매 자유에요. 하느님께서도 저희를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뒀어. 타락한 상처, 내 자유를 주면 그러다가 깨달으라고. 우선 벌이 없으니 뭐 이거 당연하다. 그러고 사람마다 벌이 아직 안 받으니까 그것 하나.

저기 출애급기 8장14절이요. 13절서.

모세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의 말대로 함이라. 개구리가 집에서 마당에서 밭에서 나와서 죽은지라.

14절

사람들이 모아 무더기를 쌓았어요. 죽은 개구리, 묻어 쌓으니 땅에서 악취가 나더라.

 

15절

그러나 바로는 숨을 통할 수 있을 만큼 있음을 볼 때에 그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그것을 듣지 안했어. 순종 안했어. 이사야선지도 보내지 안 해요. 그 열 번인가 이제 재앙을 내렸어. 나중에는 언자 손들었지만은 숨을 통할만하니까 숨 딱 막히면 인자 여 순종할 텐데 말이야. 이사야선지도 내놓을 텐데, 아직 숨이 통해. 숨이 막혀 죽지는 안 해. 그리고 또 불순종해. 마음이 완강해요. 그러면 여기 간주요. 전도서 8장11절인데.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단계다. 불이 아직, 매를 안 때리니까 매를 때리면 깜짝 놀라 뉘우칠 텐데 내버려둬요. 인제는, 인생들이 악한 악을 행하게 마음이 담대하도다. 죄인이 백 번 악을 행하고도 장수하거니와 내가 정령이 안 오니 하느님을 경외하여 그 앞에서 경외하는 자가 잘 될 것이요. 악인은 잘 되지 못하며 장수치도 못하리니 사람의 그림자와 같으리니 이는 하느님을 앞에 경외하지 아니함이라. 하느님을 섬기지 안 해요.

 

 

 

자 그러고 이게 첫 계단이요. 정욕에서 나오는 이 세상부패에서 멀리 떠나는 건 사람이 할일입니다. 그래야 하느님이 본성을 나눠간다.

그러면 둘째계단은 거기서 또 안심하고 주저앉는 것이 아니에요. 더욱더 힘써야 돼. 또 한 계단, 그 더욱 힘써서 믿음이라는 계단이야.

 

믿음은 갈라디아 2장19-20절이니까

나는 율법의 손에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 살았다. 그리스도에요. 믿음은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요. 사랑 안에 있죠. 생명 안에 있죠. 그리스도 안이니까. 그리스도가 머리라 이니까. 그게 믿음이에요. 믿는다고 해서 내가 머리된 거는 내 뜻이 있는 건 아직 믿음이 아니라 내 뜻이 있다는 말이야. 예수의 뜻은 예수의 마음을 가졌을 때 내 마음이 있다 말이야. 땅에 속한 마음을 가졌다 말이야. 안 된다. 그렁게 인자 믿어지면 믿음을 그리스도니까 인자 순종만 하면 되거든요. 반대만 안하면 돼요. 아멘으로 따라하면 돼요. 이 그저 예요. 인자 은총이에요.

그다 내 몸을 또 내 생각나면 또 안 된다 말이야. 한 번 예수님과 손을 맞잡았으면 놓지 말아야 하는데 내가 놓아버려. 자유로, 그러면 놔버려. 그러면 손과, 예수의 손과 내 손을 다 맞잡은 것이 믿음이야. 그리고 예수의 머리, 머리는 예수고 나는 내 몸은 없고 죽었어요. 율법에서 죽었어요. 게 둘째 계단만 올라가면 그 다음에 순종만 하고 찬송만 하면 되는 거야.

어떤 역경도 이길 수 있어. 예수님이 하시니까 그래서 자 이건 인자 믿음 세 개 단계는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생활을 하도록 말이야. 덕을 쌓아야 해요 믿음만으로 안 된다. 언자 그거다 하느님이 더 기쁘게 살 수 있는 덕, 덕, 네 번째 단계는 덕의 지식, 지식, 지식도 여 하나 대줍니다.

고린도전서 8장1절은 지식은 교만하게 된다. 이 세상지식은 교만하게 해요 육에 속한 지식은 교만해요. 하나 그리스도 안의 지식은 겸손하게 돼요. 자 그게 하나 대보면

 

빌립보3장 8절,12절 자 그것만 하고 고만해요. 자 그럼 그 보기 전에 빌립보 1장6절서11절까지 봅니다.

6절

여러분들에게 훌륭한 일을, 선한 일을 계획해 선한 일을, 선한 분은 하느님 한 분뿐이니까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느님께서는 그 일을 계속 하실 것이며 마침내 그리스도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왕성하실 것입니다. 일은 선하신 하느님 자신이 시작했어요. 이것이 나의 신념입니다.

여러분은 내가 갇혀 있을 때나 복음을 수호하고 입증할 때나 나와 함께 은총을 나누어 받으며 고생을 같이 해온 사람들로서 항상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어, 자리 잡고 있으니 내가 여러분을 그런 생각으로 대하는 것도 당연하니 일입니다.

 

8절

내가 그리스도 예수의 지극한 사랑으로 여러분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하느님께서 잘 알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이 주인이시라 말이야. 빌립보 교인들은 얼마나 사랑하는가는, 내가 여러분을 위해서 기원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참된 지식이 있어요. 사랑에 참된, 그래 갈라디아 4장에 보면 지식 없는 사랑이야. 눈이라도 빼줄라는 사랑, 열정이라면 그런 사람이 진리를 말하니까 원수지어버려. 그건 지식 없어. 사랑에 지식이 없다고. 믿음에 지식이 없어요. 참된 지식과 분별력, 분별한 지식이요. 또 무엇을 분별하느냐? 분별을 갖추어 점점 더 풍성해져서 가장 옳은 거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가릴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순결하고 순결한데에는 지식이 있어요. 순결하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랑, 사랑으로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말을 맞이하게 되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믿음으로써 올바른 일을 많이 하여 하느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최대의 목적이 뭐냐? 하느님을 영화롭게 해. 요거 11절요.

 

자 그러면 인자 아까 3장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어떻게 되느냐? 3장6절부터 봐요.

열심으로 말하면 교회를 핍박 하던 사람입니다. 율법을 지킴으로써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다면 나는 조금도 흠이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흠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유익했던 이런 거 율법, 모든 것, 유익했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장애물로 여깁니다.

 

8절

그 뿐만 아니라 나에게는 모든 것이 다 장애물입니다. 그리스도 외에는 장애물로 생각됩니다. 나에게는 내주 그리스도를 예수 아는 지식, 예수를 아는 지식이 무엇보다도 존귀합니다. 그러면 그 존귀한 결과가 어떠했느냐?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어. 그것들을 모두 쓰레기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려는 것입니다. 내가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얻는 것이 아니라 뭐 자기가 잘해가지고 얻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내 믿음을 보시고 하느님께서 나를 당신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신 것입니다.

언자 여기에 놓아주신 것입니다.

 

10절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지식,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리스도와 고난을 같이 나누고 그리스도와 같이 죽는 것입니다. 옛사람,

그러다가 마침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기를, 부활이죠? 다시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그만 찬송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