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일

연이 다녀가다 : 박공순 언님 증언

mamuli0 2023. 2. 23. 13:03

 해외에서 돌아온 연이가 다녀갔다. 오는날에는 비가 내렸고 가는 날은 맑았다. 제때에 수확하지 못한 무우를 수확했다. 개알꽃이 활짝 피었다.

 

 

박공순 언님 증언

 

이 시간에는 공순 언니가 나오시는데요. 희옥 씨 어머니하고 같이 계명산에서 오셨습니다. 한 짐작으로 한 30년 좀 넘었는가 싶었는데 그때 한나 씨 어머니 희옥 씨 어머니 모시고 계명산에 들어가셔서 한 30년 이상을 거기 어머니들 모시고 수고한 사람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수고와 희생을 치르시면서 수고하신 언니입니다. 이 선생님 시간제한 없이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말씀 드릴 줄도 모르고 말씀은 드린다 해도, 동으로 왔다 서쪽으로 왔다 그럴 겁니다. 선생님 만난 동기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제가 선생님 만나기는 19살 때 6.25전에 만났습니다. 뵈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6.25 직전에 선생님이 저를 찾아 오셨어요. 그 전에 두어 번 뵈었는데 뵈옵고 6.25 직전에 찾아오셔서 그때 제가 외롭게 지내던 판인데 선생님 만나 뵈옵고 얼마나 반갑고 참 눈물로 뵈옵고 선생님 떠나시면서 저한테 대해서 상당한 관심을 갖으시는 것 같아요. 가시다가 길을 못가시고 도로 가자고 하시더래요. 그러다가 쉬고 앉아 계시다가 그 길을 떠나셨는데 그 후로 6.25가 났는데 제가 6.25후에 선생님을 아무리 뵈려고 해야 뵈올 길도 없고 내가 예수는 잘 믿고 살아야겠는데 어느 길을 가야할까 방황중인데 어머니께서 교회를 다녀오셨는데 광주는 여자들만 모여서 사는데 직조도 짜고 남자 하나도 없이 그런 데가 있다더라고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래서 이야기가 얼마나 귀에 번쩍 뜨이던지 교회도 안 나가고 있다가 그런 다음부터는 이 선생님만 생각하고 그래서 교회도 안 나가고 있었어요. 어머니만 나가시고 그 소리 듣고 귀에다 붙어서 여기저기 알아봐가지고 광주를 나와 가지고는 시골에서는 살수가 없어요. 젊은 사람이, 그래서 시내에 나가서 살면 누가 누군지 모르니까 공장 생활이라도 하면서 예수 좀 잘 믿고 살아야지 이 선생님을 만나면 다행인데 못 만나면 어쩌나 그리고 나왔는데 그때 수피아 학교 정문 앞에서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때 참 어려운 때인데 선생님이 아주 어떻게 반가운지 그때 YMCA 양림동 회관인데요. 거기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가지고 선생님하고 어떻게 살겠냐고 그래서 쑥 죽만 먹고 사는데 어떻게 살겠냐고 그래서 ‘그래도 살아요.’ 하니까 막 웃으시면서 그래도 살겠냐고 그래서 그때부터 살게 되었는데 그때 고아원이 시작이 되었는데 고아원을 하는데 제가 시골에서 자라서 배운 것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데 아주 험한 학생들을 한 16명을 저한테 맡기셨어요.

 

 

그래서 그 사람들하고 같이 사는데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는데 더 잘하시는 언니들이 있는데 왜 저한테 이런 일을 맡기시냐고 금남언니한테 늘 말씀을 드리면 또 바꿔도 봤다가 또 제가 들어가고 그런데 그 천사들 덕분에 제가 사랑을 선생님한테 특별히 많이 받았습니다. 그분들이 늘 사회에서 살면서 잘못 된 일이 많아가지고 저녁이면 각 반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예배드리면 그 사람들이 다 자복을 해요. 자복을 듣고 이 선생님한테 가서 말씀을 드리면 다 옛날에 잘못된 것들 무엇 좀 가지고 가서 그 댁에 가서 사과하고 오라고 그러고 제가 처음 만나 뵈올 때에도 육이오 직전에 나가시면서 제가 다른 말씀은 기억이 안 나고 나가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참 쓸 나무가 되어야 할 텐데 쓸 나무가 되지 못해서 지금까지 의인들의 기도로 제가 오늘 이만큼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큰 나무를 비유 하세요. 그 말씀만 기억이 납니다. 그때 하신 말씀은 넓은 들판에 큰 나무가 있는데 그 사막 같은 길을 가다가 그 나무 밑에 가서 쉬면 얼마나 좋겠냐고 그런 말씀도 하셨고 그 안에 받은 사랑도 많지만 제가 다 말로다 할 수 없고

 

 

그리고 선생님이 항상 제가 계명산에 간지가 37년이 되어 가는데 선생님이 세상 뜨시겠다고 소식이 오면 저 같은 사람은 뵈옵지도 못하고 세상 뜨시겠다고 해도 눈물로 기도를 드리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계명산에 오셔서 가실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윗집에서 세상 뜨셨는데 유언하시기 전에 세상 뜨시러 오셨는데 그 안에 주일날 예배를 드리시면서 고린도전서 7장을 사람들보고 다 돌려가면서 읽으라고 그러셨어요. 그래서 맑은 마음으로 성경을 읽어주셔서 참 내 마음이 시원하다고 그러시면서 여러분들은 동정 잘 지키라고 가난과 동정을 사랑하고 동정을 잘 지키라고 그런 말씀을 하시고 아 기쁘다고 하시면서 찬송을 부르면 손이 무릎에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시고 그러시는데 그때 세상 뜨시기 전에 유언을 하시는데 제가 아랫집에서 올라가고 싶어요. 막, 올라가다가 캄캄하니 암흑 속인데 올라가다가 도로 내려오다가 또 언덕에 올라가니까 그쪽에서 환한 광채가 그렇게 밝을 수가 없어요. 환하게, 제가 넘어졌어요. 그랬다가 또 다시 용기를 내서 올라갔어요. 선생님은 숨이 차서 그렇게 하시면서도 그때 유언을 하셨다고 그래요. 식구들 다 둘러 앉아 있는데 모아놓고 저는 그것도 모르고 가서 봉창에서 가만히 듣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냐 하면 내가 살아도 영혼이 여기서 살고 죽어도 영혼이 여기서 산다고 그 말씀을 듣고 얼마나 기뻐서 아래채로 뛰어 내려왔는데 듣자니까 18일 새벽에 3시에 간다는 말씀이 들려요. 그래서 그날 저녁에는 이것이 참말인가? 참말 가실까? 그러면서도 가서 꼭 지켜봤어요. 그날 저녁에 하루 밤이라고 내가 선생님한테 가서 새워야지 하고 지켜보고는 정말 3시 되니까 가시대요. 정말 선생님 세상 뜨시니까 다 그렇게 마음이 칼로 이어내는 것 같이 마음이 아프고 이런 죄인을 위해서 희생하신 것이 생각할 때 이렇게 참 그 시간만큼이라도 무척 마음이 아팠습니다. 말씀을 잘 못하고 이만 그치겠습니다.

(성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