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동 무 이야기

대설특보 : 그대로 사랑

mamuli0 2021. 12. 26. 11:56

 성탄절 오후부터 내린 눈이 다음날 까지 내려 온누리를 하얗게 덧씌워 장관을 이루었다. 지난 40여년 동안 서너번 있었던 같다. 아직 수확하지 않은 월동무 포장에도 하얀 이불을 덮어줬다.

 

 

 

 

그대로 사랑 

2000.08.16 김준호 선생

 요한복음 13장 1절 말씀 제가 먼저 읽겠습니다. 과월절을 하루 앞두고 예수께서는 이제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이 세상에서 사랑하시던 제자들을 더욱 극진히 사랑해 주셨다. 저녁에는 13장 1절서부터 하시던 예수님의 말씀을 회상 합니다.  이제 과월절 하루 앞두고 이제 예수께서는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이제 이별의 시간 이지요. 사랑하시던 제자들을 더욱 극진히 사랑해 주셨다. 그렇게 발을 씻기신 다음에 이제 13장 20절 보겠습니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내가 보내는 사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고 또 나를 받아들인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인다. 이렇게 참 이별에 앞서 타이르는 말씀을 특별히 이날 밤에 실감 합니다. 한분, 한분 먼데로부터 경기도로부터 혹은 지방으로 오셨는데 주님이 친히 부탁하신 말씀대로 내가 보낸 사람을 받아들인다면 예수께서 친히 여기 보내주신 목사님 장로님 전도사님 또 교회 재직하시는 어른들 내가 보내는 사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고 친히 한분, 한분 오셨다하지만 친히 예수님이 오신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한분, 한분 몸을 빌려서 또 예수님이 친히 와계시지만 또 나를 받아들인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인다. 참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친히 여기 와 계신 것으로 그렇게 느껴집니다. 느낀다는 건 경솔하지요. 그렇게 감격스럽습니다. 

 

 

이 말씀은 기념으로 같이 따라 읽어 주십시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내가 보내는 사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고 또 나를 받아들인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인다. 이렇게 떠나심에 앞서 스승 예수님이 우리들 죄 두고 먼 날을 바라보시는 사랑이 꽉 배인 사랑이 뚝뚝 떨어지는 말씀이에요. 다 한 몸인데 한마음인데 그런 그 예수님의 아주 간곡한 부탁 말씀을 보면서요. 이제 14장 20절에 봤지요?  20절에 보면 말씀을 시작하시고 14장 1절에서부터 이제 말씀을 시작 하시지요. 너희는 걱정하지 마라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이 많다. 그래 떠나시는 말씀이니까 이렇게 간절하고 간곡 하시지요. 참 눈물겹지요. 철모르는 제자들은 천년만년 스승이 함께 살줄알고 믿고 있는데 본인은 떠나는 겁니다. 지금 그리고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만일 거기 있을 곳이 없다면 내가 이렇게 말 하겠느냐?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같이 있게 하겠다. 그 절절이 그 사랑이 복 바쳐서 우는 통곡 소리에요. 떠나심에 앞서 그러니까 13장에 발을 씻겨 주시고 14장 1절부터 16장에 끝으로 가면 말씀이 끝나시지요? 그런데 17장은 기도해 주시는 기도기 때문에 그럼 20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그날이 오면 오늘밤 같은 밤이에요. 그날이 왔어요. 탁 영적 눈이 떠져 있다면 바로 지금이지요? 그날이 오면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과 너희는 내 안에 있고 내가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보내는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니다. 바로 예수고 또 나 예수가 아니고 바로 하나님이다. 그렇게 영성적인 해석을 하시지요? 그 말이 틀림없지요? 우리 영적 눈을 떴다면 지금 여기 하나님이 계시지요? 여기 예수님이 계시지요? 무엇을 봐서 주님이 보내신 여러분을 봐서 여러분 한분, 한분이 주님이 보내신 분인데 이 사람을 우리가 맞이했다면 예수님 이예요. 한분 한분이 예수님이 와계신 것 이고 예수님이 친히 와계신 것 이 사실이라면 나를 보내신 분이 함께 계신다 하셨으니까 예수님의 말로 하면 바로 지금 여기 계신다고요. 여기 그러면  오늘이 아니면 내일 이겠지요? 각 사람은 깨달아야 하니까 그날이 오면 오늘밤이 아니면 내일 밤에 혹 내일 새벽에 깨달으면 너희들이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소위 말하면 함께 계신다. 그 말씀이겠지요? 상이 상종한다. 서로 의지해서 서로 있다. 그 말이에요. 예수님만 안 되어요. 여기 오신 목사님만 아니에요. 하나님만 아니에요. 목사님을 보내시고 예수님이 같이 오시고 예수님이 오시면 하나님이 같이 오시고 이렇게 삼위적인 분이 함께 하신다는 것 이지요. 깨달으면 그 말이지요. 깨달으면 그날이 오면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 또 너희가 내 안에 있다는 것 또 내가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번역도 이렇게 잘해주신 때가 왔으니까 알아듣기 쉽지요. 옛날 번역은 말씀은 같으나 확실치 않지요. 그러면 15장에 사랑하라 부탁하시고 12절 계명주시지요? 오늘은 번역된 말 들었어요. 동체대비, 똑같은 말씀이지요? 15장 12절 동체대비, 가사 11절부터 예수님은 감격해서 미리 말씀하는데요. 그 떠나시는 말씀이기 때문에 더 마음이 떨리시는 것 같아요. 곧 일을 하실 테니까 내가 이 말을 한 것은 지금 3일 후를 두고 하신 말씀이에요. 자기는 십자가를 지실 텐데. 내가 이 말 한 것은 내 기쁨을 같이 나누어 너희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니까 걱정하거나 울지 말라는 것이지요. 기쁨이 충만해서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다. 하시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계명이라는 말씀은 마지막 부탁이라는 것이지요? 마지막 정리하신 말씀 이 말씀을 동양적인 어법으로 말하면 동체대비라. 그랬어요. 납이 없지 않아요? 예수님이 오시려면 여러분의 몸을 입고 오셨고, 여러분이 와 계시면 하나님이 와 계시고 인류는 한 몸이지요.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이시고 한 분이시고 그러니까 모든 인류가 한 몸이고. 한 몸인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느냐 는 거예요. 예수님이 말로 말하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예수님은 전 인류를 자기 몸같이 사랑하셨기 때문에 표준이시지요.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한 몸이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이것이 신신부탁하는 나의 최후의 부탁이다. 그러셨으니까 그렇게 이르신 말씀을 기억하면서 저녁에 우리가 팜프렛 나눠드렸는데, 16장 1절 33절 한절 처음절과 끝 절을 우리가 봤어요.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을 이런 말 하는 건 내가 너희에게 이 말 하는 것은 너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개역은 내가 이렇게 죽 이야기 하셨지요. 14장 1절부터 죽 말씀해 오는데 어린 자식이 아니에요. 어린것들이야. 이 어린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 같이 놔두고 가시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걱정이 되시지 않아요? 내가 이 말한 것은 너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잖아요? 최후의 말씀이니까 그런데 계약은 실족하지 않기 위해서 이 말을 하는 것이다. 그래요. 실족, 눈이오나 비가 오나 점잖은 분이 누가 미끄러지고 싶습니까? 불의에 미끄러지는 거예요. 아무리 점잔해도 죽 미끄러지면 어떻게 해요? 온 옷이 다 버리고 몸이 상처 나지요. 참 예수님  으로서는 너무 사랑에 겨워서 미리 부탁하시는 것이지요. 실족하지 않기 위해서 이 말을 해둔다. 이렇게 말씀을 시작하시고 우리 다 볼 필요 없지요. 이제 16장 33절 마지막 말씀으로 끝내요. 나는 너희가 나에게서 평안을 얻게 하려고 이 말을 한 것이다. 결론 이지요. 근심  스러운 이야기, 부탁, 조심하라는 이야기 다 했지만 내 심정은 뭐다. 너희들이 평안 얻게 하려고 이 말을 했다. 결론이에요. 14장 1절에서부터 말씀이 끝났으니까 쭉 부탁했어요. 죽 말씀 읽으시고 나는 너희가 나에게서 평안을 얻게 하려고 이 말을 한 것이다. 그래 눈물 없이 이 말씀 못하는 거예요. 

 

 

그래 듣는 사람은 멀쩡해요. 선생님이 유월절 후에 죽으실 걸 전혀 모르고 있잖아요? 제자들은, 본인은 알고 있지 않아요. 본인은 떠나는 것이니까 이 말 한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겠지만 용기를 내어라. 그게 어머니로서의 부탁,  아버지 같은 부탁이시지요. 내가 세상을 이기었다하고 말씀하시었다. 그래 이게  내가 세상을 이기었다. 이 말씀을 해석하는 글이 아까 유 영모 선생님의 진달래 노래입니다. 그래 예수님이 지지 않아요? 이 세상에 와서 몸을 사형대에 내 맡기고 지고가신 것이거든요. 그런데 그것이 이기는 거예요. 유명한 말이지요. 그 젊은 청년 33세 병도 없는 건강한 몸이 못에 박혀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이기는 거라고, 그걸 이겼어요. 그러니까 진다는 것, 진달래, 진달래 나는 진달래 그러니까 진다는 것은 져주는 것이지만 인류의 죄 짐을 진다는 뜻과 같이 봐요. 같은 말 하나를 가지고, 모든 인류의 설움을 내가 짊어지고 간다. 그 자기가 져주는 것이지요. 짐을 진다. 내가졌다. 똑 같아. 노예들이 인류의 짐을 졌지요. 자기 부모는 양반이지만 가산이 망하고 몸이 팔리면 노예가 되지요. 그러면 전 인류의 죄 짐을 져요. 노예들이, 그럼 인류의 문명은 지금 노예의 문명 아닙니까? 노동자들 노동자를 위해 싸우신 목사님들이 오셨더라고요. 이번에, 감격스러웠어요. 일선에서 생명을 내놓고 노동자를 변증하고 그 사랑하던 목사님들이 여기 오셨다 그러데요. 그 본인은 다 졌지요. 그 불쌍한 사람을 대변 하려면 본인들이 희생하지요. 우선 먹을 것이 없잖아요? 또 신자가 적고 그러니까 목회하실 때 신자 다섯 사람 열사람 가지고 투쟁하는 거예요. 불의와 투쟁하는 거, 그런 목사님들이 여기 찾아오셨다 그래요. 이분들이 세상을 이겼지요. 내가 세상을 이기었다.  분명히 십자가 지고 죽으신 사람인데 그것이 이기는 것이다. 그건 참 신비한 거지요. 졌다.  내가 십자가를 지고 졌다. 진달래, 나는 십자가를 지고 왔다는 뜻으로 한국 꽃 이름이 진달래니까 그것도 상징이고 노래니까 그래요. 비유고 비사고, 그러니까 나는 진달래 너만 홀로 진달래냐? 산천에 피는 꽃 너만 지고 낙화가 되는 것이냐? 나도 진달래. 내가 예수 제자가 된 것은 나도 한 떨기 꽃이 되어야 되겠다. 나도 지기위해 피어났다. 그런 노래지요. 유명한 노래입니다. 그 노래 한 번 다시 불러야겠어요. 진달래 곡은 옛날에 봉선화 곡이니까요. 큰소리로 한번 불러보세요.

 진달래야, 진달래야
진달래야, 진달래야 어느 꽃이 진달래야지 내 사랑의 진달래 너만 홀로 진달래야
진달래 나는 진달래, 임의 짐은 내질래
진달래에 앉은 나비 봄 보기에 날 다지니  앉은 나비 갈데없음 지는 꽃도 웃는 고야
안진 꿈 다 늦게 깨니 어제 진달래 도다
진달래서 핀 꽃인데 안 질랴고 피운다 마소 피울 때에 안 이울랴 웃음 한갖 진달래야
님 때 맨 한 갖 진달래 봄 앞잡이 하이셔  
   
 그럼 여기 나눠드린 인쇄물인데요. 물론 성경말씀 이지요. 여기 적어드린 것이 있어요. 바쁘신 분들이니까 이 쪽지만 잊지 않으신다면 어디 꼽아 놓으시겠지요? 일 년 후에 십년 후에 어느 때 지금은 몰라도 이 쪽지가 눈에 보일 때는 얼마나 큰 재산이 될까요? 성경말씀인데 지금 기록한 말씀은 요한복음 16장 1절과 33절을 쓴 것이고요. 그 사연이 속에 조금 있지요. 그러니까 내가 세상을 이겼다. 그래 안심하라. 그 사연이 비밀이 있어요. 그러니까 성령을 보내주시고 너희들도 나와 같이 승리자가 되도록 예수님이 보증한다는 거예요. 보증 걱정 말라는 거예요. 물론 넘어지겠지요. 아프겠지요. 울겠지요. 절망도 하겠지요. 그러나 안심하라. 내가 이기었다. 그래 이 말을 받아들일 때가 있어요. 30년 후라든지 50년 후라든지  임종할 때라도. 그런데 지금은 무의미해도 그때는 이것이 아 예수님이 이 말씀하셨구나. 기념이 되시기 위해서 이 기록을 드린 것입니다. 그러면 적혀 있으니 제가 보겠습니다. 

 


 그분은 곧 진리의 성령이시다. 그러니까 세상을 내가 이겼다. 이렇게 생각하시지요? 안심하라. 그러니까 여러분이 안심하라고 이 말을 한다는 말이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안심이 안 되지 않아요? 내일 부터는 일터에 계실 텐데 나는 너희가 내게서 평안을 얻기 위해서 이 말을 하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했지만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다. 타이르시고 가신 말씀은, 말씀은 능력이 있으니까 그대로 실천 하시지요. 예수님이 그러니까 그 사이사이에 타이른 말씀이 실제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16장 13절에 보니까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이끌어 온전히 진리로 깨닫게 하여 주실 것이다. 그 분은 자기 생각대로 말씀하시지 않고 듣는 대로 일러주실 것이며 앞으로 다가올 일들도 알려주실 것이다. 이런 말씀이지요. 진리의 성령이 오신다는 거예요. 이 약속이 분명히 이루어지지요. 한분, 한분 시간은 다르겠지요. 오늘 밤일지 내일 새벽일지 5년후 일지, 분명히 진리의 성령이 오십니다. 그렇게 되면 너를 이끌어 영혼을 이끌어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하여 주실 것이다. 그렇게 약속 하십니다. 그 분은 진리의 성령이시다. 그래 세속적인 영은 아니시거든요. 미신의 영은 아닙니다. 진리의 영이십니다. 세상은 그 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일 수 없지만 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 그분을 안다는 것은 예수님 말씀과 똑 같아요. 고난을 당하겠지만 고난은 당하겠지만 알 수 있는 협조자이시지요. 그러니까 그분이 너희와 함께 사시며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저는 한번 간증 했지요. 20대 이 현필 선생은 처음 만났던 어느 날 인제 아직은 초면 인사도 안하고 얼굴만 알았기 때문에 친한 분이 아니시지요. 엄동설한 아주 추운 어느 날 일본사람 방이니까 불기가 없어요. 선생님이 방에 계신 걸 발견했는데 원체 영양부족이신지라. 30대 인데도 얼굴이 파래요. 핏기가 없어요. 손톱이 끄트머리가 검어요. 벌써 아주 몸이 아주 그렇게 약하세요.  그러니까 그 큰방에 계신분이 연탄 때지 않던 시대니까 장작불을 담아드렸어요. 손이 아주 차니까 손을 녹이고 계시더구만요. 방에서 자꾸 손을 녹여도 손이 다시 이렇게 차지지 않아요. 다독다독 이렇게 불을 여미고 계신데 약 한 시간 반 앉아있었어요. 옆에 그게 초면이에요. 초면, 친한 분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 어른을 만나기 위해서 육 개월 이상을 기다렸습니다. 광주 와서, 한 달 양식을 가지고 와서 육 개월 살았으니 얼마나 거지여. 옷을 다 헤어지고 친구 집에서 얻어먹고 육 개월 되어버렸으니까 얼마나 추리합니까? 

 

 

저는 그런데 전혀 말씀이 없어요. 그런데 드릴 말씀이 없어요. 너무 앉아있는 꼴이 너무 불행해. 너무 불쌍해. 너무 처량해. 불기 없는 방에 앉아계신데 파래. 얼굴이 영양부족으로, 그런데 제가 얼마 안 되서 선생님을 찾아와 육 개월을 기다렸습니다. 그 말을 할 수가 없어요. 가슴이 아파서요. 말, 한말 못하고 한 시간 반 앉아 있었어요. 그런데 참 냉정한 분이야. 쳐다 보도 안 해요. 불만 쬐고 앉아계세요. 그런데 한마디 했어요. 불이 다 꺼져가니까 불삽으로 불을 여미시고 이것만 알면 다 알 텐데. 그 원체 굶었던지 음성이 쪼그매요. 입속에서 나온 소리야.  여자소리 같아 이것만 알면 다 알 텐데 혼자하신 말씀인지, 들으라고 하신 말씀인지 알 수 없어. 그리고 갈렸어요. 그 영원히 잊지 못하지요. 너무 육 개월을 기다린 손님으로 손님인데 손님방에서 만난 선생님인데 한 시간 반을 무언으로 앉아 있어. 둘이 바라보고 앉아있어. 찬방에, 입을 서로 떼지를 못해요. 그게 초면인사 인데 말하자면 그런데 그 정분이 지금까지 계속되는 것뿐이에요. 이것만 알면 다 알 텐데. 그 말 한자리 얻은 것이지요. 그런데 살다, 살다 보니까 아 요한복음 14장 17절로 정리하겠다. 그렇게 정리 한 겁니다. 내용이 뭐냐? 얼마나 중대한 말인가? 이것만 알면 다 알 텐데, 이것은 물질 아니고 성령이었구나. 이것이 그 분이었구나. 그분, 그분, 이것이 아니다. 불을 빨간 불을 쬐면서 하시는 말씀이니까 빛 이야. 빛, 따뜻한 사랑, 그분은 진리의 성령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일 수 없지만 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 그분이 너희와 함께 사시며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자 우리 인제 제자라고 하니까 부끄럽습니다. 하도 못난 사람이 제자라고 하니까 그때 얼마나 똑똑한 사람이 백 명도 되어요. 남자 제자가, 여자는 몇 백 명도 되지요. 그러니 얼마나 시절이 험하던지 다 떠났어요. 저는 왜 못 떠났냐? 결핵환자니까 어떻게 떠나요? 환자가 올데갈데없는데 저는 결핵 환자니까 남아있던 것뿐이에요. 진짜 제자도 아니에요. 자기가 아쉬우니까 찾아있는 것뿐이에요. 참 길이 좁기는 좁은가 봐요. 그러나 주신 말씀은 진리의 성령이에요. 지금 오신 것 보면 여러분은 모르는데 우리는 감격해서 웁니다. 여기가 어디야? 거지들이 살던 곳이거든. 아무 없는 산이야.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 먹을 것이 있어요? 입을 것이 있어요? 땅이 있어요? 그렇게 모여 있던 사람들인데 전국적으로 유명하신 목사님, 전도사님 장로님이 찾아오신다. 그건 기적 아니에요? 기적이지요? 보통일이 아니에요. 신비에요. 신비 이건 진리의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럼 여기 삼무 동산 이라고 이 많은 스님 없지요? 여기 공동체인데 이 많은 목사님은 와 계시지 않아요. 이렇게 목사가 많은데 이렇게 많은 신부가 안계시지 않아요? 이 삼무(三無) 동산이야. 지도자가 없지 않아요? 아무도 없는 거예요. 그 못난 사람이 쳐져있어요. 그런데 여러분이 찾아오신다는 거예요. 눈에 안보이지 않아요. 하도 존경을 하거든 동광원이라고 존경을 하거든. 우리가 볼 때 신비에요. 불가사의한 일이야. 이런 기적이 없어요. 그렇지요? 그래서 17절로 정했습니다.  따라 읽어 주십시오. 그분은 곧 진리의 성령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 분을 받아들일 수 없지만 너희는 그 분을 알고 있다. 그분이 너희와 함께 사시며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제가 혼자 다른 말씀 보겠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청하여 너희에게 보낼 협조자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분이 나를 증거 할 것이다. 이 비참한 사람들이 모인 곳인데 여기 표어가 그래요. 과부 고아를 불쌍히 보란 말씀으로 모였던 동산이거든요.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요절이 있지요. 야고보서 1장 27절이니까 참 과부와 고아를 너희들이 돌봐야 할 것이다. 그 이 선생님이 관계 맺었던 사람은 전부 과부에요. 실지로는 과부고 실지 사람은 고아에요. 그분이 적나라하게 그렇게 하셨거든요. 그렇게 하시고, 그렇게 살았던 사람들이에요. 일전에 이야기 했어요. 이 남원 땅에 과부 한분이 20청춘에 이 선생님을 만나가지고 재혼 말고 수절 하십시오. 그 말을 받아가지고 산분이야. 그 어머니가 지금 70이 넘었는데 그분 덕을 우리가 모여 있는 거예요. 그분 한 분뿐이에요. 후보가 없어요. 목사도 없고 장로도 없고 일체 없거든요. 그 과부 한사람의 치맛자락의 힘을 의지하고 우리가 여기 모여 있는 거예요. 현재까지도, 왜 그 분을 주민들이 믿어주니까요. 지서장이나 면장이나 그 어머니가 말하면 그냥 예, 그래요. 아이고, 아주머니가 말씀하는데 어떻게 순종 않겠습니까? 그거에요. 그 덕이지요. 덕, 그 진리의 성령이 함께 하신다는 말이지요. 볼품이 있거나 무엇이 있지를 못해요. 아무것도 없는데 그 분이 함께 사시며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약속이 이행되는 것이지요. 약속이, 그러니까 열두 제자도 그런 줄 압니다. 지지리 못난 사람들이지요. 열두제자가 예수님이 그 사람들한테 부탁하시고 가신 것이 예수교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받은 성령은 세상이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총의 선물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 이 은총의 선물을 깨달았다는 이야기에요. 전부 하나님의 크신 역사의 신비가 드러난 것이지 사람이 이렇게 오시라 할 수 없고 어떻게 우리가 여러분을 오시라 해요? 여기 그런 곳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오시게 했어요. 하나님이, 우리는 그 은총의 선물을 전하는데 있어서도 인간이 가르쳐주는 지혜로 말로 하지 않고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말씀으로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영적인 것을 영적인 표현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영적이 아닌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주신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리석게만 보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것은 영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으므로 그런 사람은 그것을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그렇게 해설하셨지요? 해설, 쭉 내려 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거룩하신 분께서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두 참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으로 말하자면 그리스도께서 부어주신 성령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살아계시는 한 아무에게도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부어주신 성령은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진실하셔서 거짓말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시오. 이제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주실 성령 곧 협조자는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실 뿐 아니라 내가 매일 한 말을 모두 되새기게 하여주실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는 것이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르다.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 그래 직접 주님이 하시던 음성은 능력이 있으니까 능력이 평화가 있지요. 평화가, 나는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주겠다. 그러나 그러니 너희는 위에서 오는 능력을 받을 때 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라. 하고 말씀하신 거예요. 예루살렘은 각 목사님 각전도사님 장로님이 계신 곳이겠지요. 현재 계신 곳 거기서 성령이 오실 때까지 머물러 계셔야지요? 약속하셨으니까, 해설은 여러분이 친히 하실 것이고 저녁에 조그만 말을 이렇게 여러 가지 말을 보려고 그래요. 쪽지에 ‘그대로 사랑’을 보십시다. ‘그대로 사랑’ 이 말씀은 김 흥오 교수님의 글인 데요. 물론 그 선생님도 글이니까 이 쪽지만 안 잊어버린다면 한번은 다시 볼 겁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82세인데 금년이 그분도  83세인가? 80평생에 배우고 듣고 믿고 총 재산을 한약 짜듯이 대려가지고 짠 것 같아요. 같은 말 또 나오게 했어요. 그러니까 금년에 와 주시라고 자꾸 그렇게 했어요. 그러니까 거기 가 있소. 다 책에 있습니다. 그렇게 부탁하셨어요. 그 부탁대로 제가 봅니다. 못 오셨으니까 오시면 이런 말하시겠지요? 모든 동서양고금 경서를 다 보시고 말했지만 그걸 그분은 잡수시고 내는 젖이니까 경서 말 없잖아요? 성경말씀 없어요. 그러나 이건 진액이지요. 그분이 세상에서 먹고 배우고 총 결산이거든. 총결론 아니겠어요? 그래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교수님의 말씀 이니까, 그대로 사랑. 사람은 생사로 싸우다가 생사에 죽었다가 생사로 살게 된다. 생사와 싸운다는 것은 생사에 끼어있다는 말이요. 생사에 죽는다는 것은 생사를 넘어섰다는 말이요. 생사로 산다는 것은 생사가 그대로 생명의 필수가 된다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생사와 싸우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생사가 언제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사는 것이 좋을까? 죽는 것이 좋을까? 하고 고민해보지 않는 인생이 있을 수 있을까? 사람의 혈기 왕성한 젊은 시절에 마음껏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고민은 젊은이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고민이란 별것이 아니다. 인생의 의미를 찾는 일이다. 사람은 삶의 의미를 찾기까지는 언제나 마음에 안심이 없다. 삶의 의미를 찾기까지 인생은 고민하기 마련이다. 있는 힘을 다하여 생사와 싸워가는 것이다. 그러면 싸움이 끝날 때가 있다. 그때 생사는 이미 생사가 아니다. 생사가 죽고만 것이다.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면 생사는 없어지고 만다.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다. 인간은 생사의 싸움 끝에서 죽어도 좋다고 눈을 꼭 감는 때가 있다. 그때가 바로 생사를 넘어서는 때이다. 이때부터 생사는 문제가 안 된다. 죽을 테면 죽고 살 테면 살아라. 그보다도 사람에게는 할 일이 더 중요하게 된다. 인생의 할 일을 발견한 것이다. 이 할 일을 위해서 인생 생사를 이용하게 된다. 삶이 일에 도움이 되면 살고 죽음이 일에 도움이 되면 죽는다. 생사는 결국 구원의 도구인 동시에 사랑의 수단이 되어 버린다. 나는 죽을 능력도 있고 살 능력도 있다. 이것이 십자가요. 부활인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에게는 사는 것도 사랑이요. 죽는 것도 사랑이다. 생사, 살아야겠으면 살고 죽어야겠으면 죽는다. 백번 살아서 구원하고 백번 죽어서 구원하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다. 생사는 그들의 생명이 되었다. 생사는  영원한 생명의 한토막이다. 올 때는 오고 갈 때는 간다. 오고 가고 살고 죽는 것이 그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이 결론을 그렇게 내리셨어요. 그러면 결론은 간단하지만 아주 생기가 있지 않습니까? 오고 가고 살고 죽는 것이 그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오고 가고 하신 말씀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비슷하지요. 아까 마지막 이별의 말씀 하실 때에도 예수님이 말씀 하셨어요. 제가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6장 28절이지요. 나는 아버지께로부터 나와서 세상에 왔다가 이제 세상을 떠나간다. 떠나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간다. 이게 예수님의 말씀이에요. 그러니까 그 어른이 모든 동서양 고금 학문을 따랐고 성령을 받았지요. 여러 말씀이 성경말씀이 들어있어요. 하신 말씀이, 몇 절만 안 들어 있지요. 그러니까 오고 가고 인생은 그것뿐이지요. 그거 말고 뭐 있어요. 오고 가는 거지요. 살고 죽는 것이 그대로 사랑이라. 그대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거예요. 그 결론이 이건 대극이지요. 절대로 인생은 불행이 아니에요. 죽음이 아니에요. 눈물이 아니에요. 그대로 사랑이다. 결론인데 예수님도 결론을 이렇게 내려요. 이제 제자들에게 다 이야기 했어요. 너희는 이미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믿고 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친히 너희를 사랑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나는 왔다. 나는 간다. 그 말이에요. 나는 아비께로부터 나왔다. 세상에 왔다가 이제 세상을 떠나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간다. 얼마나 시원시원해요? 예수님은 죽음이 없지요? 왔다 가신 것뿐이라고. 그 종교상으로 교리 만들 때 죽었다고 그래야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 죽음이 없어요. 왔다 가신 것뿐이라고 왜 영혼이기 때문에, 영혼은 왔다 간 흔적뿐이지, 죽음이 없잖아요? 영혼은 영혼을 두고 하신 말씀이지요. 그러니까 오고 가고 살고 죽는 것이 그대로 사랑이다. 

 

 

그래 이 말씀을 설화를 가지고 있어요. 예화지요. 살아있는 사람 이야기에요. 그런데 김 흥호 선생님이 그 이야기를 듣고 본인을 찾아간 적이 있어요. 4년 전에 본인이 그 이야기 듣고 찾아가 보고 다시 보고 하셨어요. 나는 그리스도를 만나고 왔다 그랬어요. 그런데 금년은 36세 전신불수에요. 태어나서 36세가 되도록 한 번도 일어난 일이 없지요. 누워있지요. 막 낳아서 누워 지금까지 누워있어요. 그런데 그 영혼이 발달하기를 전혀 손상이 없어. 전 인격을 갖추고 있어. 그럼 희로애락을 매일 겪을 것 아니에요. 부모가 어린 자식을 똥오줌 가리다가 죽었어요. 오빠가 똥오줌 가려주다가 도망가 버렸어요. 그러니까 20대에 홀몸 된 거예요. 지금 36세 되니까 남의 손에서 밥 얻어먹고 이 닦고 몸 닦아주고 대소변 가려주거든. 남이 남남이, 그런데 본인이 아주 행복해요. 그럴 수 있냐는 거예요. 그래 김 흥호 교수가 가본 거예요. 직접 가서봤어. 너무나 행복해. 야, 이분이 예수다. 예수가 어디가 따로 있냐? 요 몸속에 예수가 계시다. 그 몸속에 예수가 안계시고야 그걸 어떻게 참느냐는 거예요. 이 고통을 자결하고 죽어버리든지 굶어 죽어버리든지 절망해 죽어버리든지 통곡을 하고 죽어버려야지. 그런데 그것이 없다는 거예요. 어떻게 평안한지, 그 말씀 했어요. 그런데 그런 사연이 있어요. 그분이 누워 계신지 우리가 몰랐거든요. 한 10년 전에 그 돼지막인데 누가 누워있어요. 걸레 속에 널 부리고 안 보였어요. 장로님을 제가 모시고 들어갔습니다. 그날이 눈이 온 날이에요. 너무 추워요. 그래 불쌍한 집에 왔으니까 한번 들어가 봅시다. 들어갔는데 연탄불이 꺼졌든가 방이 차요. 덮어놨어. 걸레로, 사람이 있는 것 같기는 해요. 이왕에 왔으니까 장로님 모시고 오 장로님 모시고 방에 들어갔으니까 들은 것 같아요. 이불 속에서, 그래 제가 그 이야기를 했어요. 금년 나이 30세입니다. 그 이야기 토막이지요. 그 어머니가 과부신데 그건 딸이에요. 딸인데, 그날따라 여름날 남의 집 밭을 매러 갔어요. 그런데 쉴 시간에 집으로 쫒아 와요. 왜 딸의 오줌똥을 가려주려고, 아주 전신불수니까. 그래 쉬는 시간에 땀이 몸에 땀내가 나겠지요? 땀내가 나서 엄마가 쫒아 들어와서 오줌똥을 가려주고 나가니까 30먹은 처녀 딸이니까 감격스럽고 황송하고 미안하잖아요? 그러니까 ‘어머니, 나는 왜 이렇게 되었지요?’ 질문했다는 거예요. 내가 왜 전신불수냐 고 ‘엄마, 나는 왜 이렇게 되었지요?’ 그 어머니가 참 성녀에요. 예수 잘 믿어요. 자기 딸을 안아주면서 ‘아, 내 딸아 하나님이 너를 사랑해서 이렇게 하셨단다.’ 그랬다는 거예요. 그런데 너무 엄마가 완전한 사랑을 했기 때문에 그 딸이 의심을 못해요. 엄마가 거짓말을 한번 했으면 거짓말 일 텐데 한 번도 거짓말 한적 없거든. 너무 진실한 사랑을 했기 때문에 엄마의 말씀이 그대로 예수의 말이야. ‘얘야, 하나님이 너를 사랑해서 이렇게 하셨단다.’ 그래 완전히 행복한 여자에요. 전신불수 처녀가 그 이야기를 했어요. 그걸 공중에 대고 했어요. 그런데 이불 속에서 웃는 거여. 듣고 이게 바보가 아니야. 웃는데 얼마나 웃던지 이불이 들썩해. 하하하하 감격해서 웃더라고요. 아 인격이 있다. 여기 이속에 인격이 있다. 그걸 발견했어요. 아 여기 예수님이 살아계신다. 남이 보기에 거지고, 똥오줌을 못 가리고 전신 불수지. 그 영혼이 확실해. 그 이야기를 받아들였어요. 그런 이야기를 우리가 했으니까 김 흥호 교수님이 하도 호기심이 났던지 쫒아 갔어요. 찾아보고 오셨더라고요. 그 이튼 날 전도사님도 찾아갔어. 몇 분이 보고가 그래 아 김 교수님이 예수가 있다더니 가보니까 거지가 있더라고, 다른 사람 눈에는 거지가 있잖아요? 김 교수님이 보니까 예수지. 그래 소위 말하면 참 성인이 성인을 알아본다고 깨달은 사람이 봐야 깨달았지. 못 깨달은 사람이 보면 못 깨달았지요. 자기 눈 있는 대로 보는 거지요. 그거지요. 깨달았다면 예수님도 깨달았으면 오늘이 그날이라는 거예요. 깨달았으면 못 깨달았으면 남의 날이지요. 내 날이 아니지요? 그런 뜻으로 이 말씀이 살아 있다는 거예요. 김 교수님이 깨달은 것이 그거예요.  (끊김)

 


 그건 전신불수다. 똥오줌 못 가린다. 고아다. 사람들이 구별하지, 예수님은 구별해요? 자기 딸이신데, 성스러운 자기 지체이지요. 지체, 예수님이 그 속에 들어와 계신데 완전히 하나님의 작품 이지요? 그래서, 그걸 깨달았다는 뜻이겠지요. 그러니까 우리에게 부닥친 사건이 나 혼자 살면 일등 아니요? 두 사람이 있으니까 내가 이등이지 오늘 하신 말씀이 그 말이에요.  둘로 보지 마라. 하나로 보라. 하나로, 동체대비여. 전식구가 내 몸으로 봐라 내 몸이야. 전부 우주가 내 몸이야. 나 혼자 살아. 나 혼자 사니 내가 제일 행복해요. 그런데 비교를 해 보거든, 누가 더 건강 하더라. 누가 더 젊더라. 누가 더 얻었더라. 그건 불행한 일이지요. 분별 한다는 것, 그러니까 제일로 슬픈 것이 분별이야. 그러니까 창세기 1장 3장에 분별의 떡을 먹지마라. 그게 하나님의 서러운 이야기지요. 부탁이에요. 선하고 악하고 그거 먹지마라. 분별하지 마라. 그대로 사랑이다. 이거야. 그 전부 아버지 사랑이야. 30세가 되는 전신불수나 건강체나 다 아버지 사랑이에요. 그대로 사랑이다. 분별하지 마라. 왜 분별 하냐? 그게 타락성이지요. 이해타산 이니까. 이해타산을 초월하면 그대로 생명이에요. 그대로 꽃이지요. 그대로 영혼이지요. 그러니까 생산은 영혼의 한토막이다. 잠깐 30대 50대 잠깐 나타난 것이지만 올 때는 오고 갈 때는 간다. 오고 가고 살고 죽는 것이 그대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인제, 어제 저기 와계시네요. 수지 김 장로님이 이 순신 장군 그 해전 하는데 거기 섬에 갔어요. 기념으로 김 순신 장군 필적으로 있는 유적 그걸 하나 사줍디다. 그 말이 필사즉필생(必死卽必生)  이 장군이 직접 쓰신 붓글씨이지요. 이 순신 장군이지요? 이 순신 장군, 잘 못했습니다. 이 순신 장군 필사즉필생(必死卽必生) 죽으면 반드시 죽으면 산다는 것이에요. 똑같아요. 필생즉사에요. 살면 반드시 죽는다는 거예요. 사는 것은 반드시 죽고 거꾸로 이야기 했지요. 예수님 말이지요. 살고자하면 죽는다. 죽고자하면 산다. 그럼 이 순신장군이 예수님 만났는지 몰라도 깨달음이 똑같지 않아요? 그래 이 순신 장군 안 죽었지요? 그러니 그 말씀이지요. 오고 가고 살고 죽는 것이 그대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올 때는 오고 갈 때는 간다. 기념으로 따라 읽어 주세요. 오고 가고 살고 죽는 것이 그대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래 요분이 82세니까 이건 가겠지요? 깨달았겠지요? 그런 결론을 그분이 얻은 거지요. 모든 불경도 보고 예수경전 봤지요? 성경 많이 봐야 깨닫지 못하면 뭣해요? 아무 유익이 없지요? 탁 깨달아야지. 그럼 예수님만 오고 갑니까? 우리도 오고 가지. 그래서 그 말이에요. 예수님 말로하면 더 쉬워요. 나는 아버지께로부터 왔다. 세상에 어디로 왔냐하면 세상에 왔다가 이제는 아버지께로 돌아간다. 그래 울지 말라는 거예요. 걱정하지 말라. 깨달으라는 말이에요. 깨달아, 그러니까 우리는 알아요. 절대에서 오신거지요. 시간도 공간도 없는 세계에서 오셨어요. 어디로 시간도 공간도 있는 유한한 세상에 오신 거예요. 유한한 세상을 떠나니 얼마나 통쾌해요? 아 기쁘지요. 그리고 다시 영원한 시공이 없는 절대계로 돌아간 거지요. 

 

 

그래 16장 7절은 유 영모 선생님이 전주 진달래 교회라고 있어요. 그 분이 옛날 절을 사가지고 있는데 거기 오셔가지고 일주일 동안 강의 하셨는데요. 그때 유명한 말 남겼습니다. 전주 오셔서 16장 7절에 그러나 사실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들에게 더 유익하다. 그 말이지요. 예수님이 죽는 겁니다. 지금 십자가형을 유월절 그 담에 죽어요. 죽음이 아니에요. 떠나가는 건데, 사실은 내가 죽는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사실은 내가 떠나간다. 떠나가는 겁니다. 왔다가 사실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더 유익하다. 그러니까 우리를 도와주려고 가시는 거예요. 빨리 가서 준비하려고 도와주려고 가신 것이란 말씀입니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는 유익하다.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아까 그 성령 주시마고 그랬어. 보내마고 그 협조자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 분을 보내겠다. 이 약속이지요. 그래서 걱정하지 말라는 거예요. 걱정하지 마라라. 오해하면 울겠지요? 오해를 풀어라. 그래 유명한 말씀입니다. 그분 사적 해설이 그래요. 평생을 집에서 사는데 모처럼 광주서 가면 전주서 오십시오. 하면 그렇게 행복하답니다. 떠난다는 것 그러니까 집에서 떠날 때에는 광주 간다. 그러지 않는대요. 아 떠난다. 아 나는 떠난다. 그래요. 부인하고 이야기해요. 아 나는 떠난다. 그럼 못 올지 모르니까 마지막 떠나는 거예요. 서울에서, 그런데 인제 광주 와서 날짜가 차지 않습니까? 서울 간 것이 아니에요. 광주를 떠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훈련이 제일 좋다는 거예요. 어디를 가든지 가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나는 떠나러 가는 훈련 죽는 훈련이지요. 그러니까 죽을 때 섭섭할까봐 미리 훈련해요. 여러분 내일 가실 때 떠나는 훈련 해 보세요. 떠나는 훈련 나는 떠난다. 그래 죽을 때 훈련을 미리 하는 거예요. 나는 떠난다. 기회가 좋지 않아요? 그러니 광주로 갈 때는 자기는 떠나기 위해서 떠난답니다. 서울 가기로 떠나지 않아. 항상 그러셨어요. 어디를 가든지 가는 것이 아니야. 나는 떠나는 훈련이다. 그렇게 이야기 하셨어. 

 

 

그 어른이 취미가 있어요. 젊어서는 육체미가 좋더니 나이가 80이 되니까 골체미(骨體美)가 좋다. 뼈가 엉성해야 어여쁘다는 거예요. 건강상이 골체미(骨體美) 아니요? 금강산이 돌이 많다고 좋아하지 않아요? 얼마나 엉성한 돌덩이 아니에요. 그게 좋다는 거예요. 나이가 늙을수록 골체미(骨體美)가 좋다. 그래 보기 싫은 것이 좋아요. 보기 싫은 거 그러니까 젊어서는 어여쁜 것이 제일 좋고 나이가 늙을수록 골체미(骨體美)가 좋다. 나이가 들수록 떠나는 것이 좋다. 그거에요. 깨달은 사람이지요. 젊어서는 상봉이 좋지요. 서로 만나. 이렇게 그런데 나이가 늙으면 떠나는 것이 좋아요. 이별, 그렇게 이별이 좋답니다. 통쾌해. 그것도 감정이 훈련이 되어야해. 평소에 이별을 연습해놔야 죽을 때 안심하고 죽지. 갑자기 부탁 치면 안 되지요? 그래서 이별의 그 고마움, 그래서 7절이지요. 유명한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는 더 유익하다.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그 협조자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 분을 보내겠다. 그 떠나는 것이지요. 그래 한 영운 스님이 33인중에 한사람 애국자 아닙니까? 그분의 시가 있지요? 이별의 눈물은 진주라고 그랬어요. 상봉의 눈물이 아무리 달가워도 그것은 눈이야. 곧 녹아버려요. 아무리 만난다고 감격하지만 그것은 곧 식어버려요. 그러면 이별은 진주와 같단 말이야. 이별같이 진주는 영원한 것이지요. 썩지 않으니까 그래 예수님은 을 좋아하지요. 구태여 성경을 찾아볼 필요 없지요? 누가복음 6장 20절이지요. 다 아시는 말씀 이지요. 제가 보겠습니다. 예수님도 철학가라면 비관철학 이지요? 슬픈 걸 좋아하시니까, 이렇게 말씀했어요. 그때 예수께서 제자들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나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지금  굶주린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지금 우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영원한 것을 두고 하신 말씀이지요. 땅에서 잃으니까 단편적인 것은 이별이 슬프겠지만 영원한 것은 이별이 없지 않아요? 그런 뜻으로 예수님은 울었다는 말은 있어도 웃었다는 말은 없지요. 자 그렇게 더듬어서 생각해 봤습니다. 그대로, 그대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점. 

 

 

그럼 그대로 사랑이라면 빈부를 초월하지요? 아무 관계없어요. 가난하나 부자나 아무 관계없어요. 하나님의 사랑인데 몸 건강 병이 그걸 초월해요. 그대로 사랑이야. 병이 있던지 건강하던 아무 그 관계없잖아요? 그러니까 빨리 죽든 오래 살든 그거 아무 관계없잖아요? 세 살 먹어 죽든, 80에 죽든 생사를 초월하니까 그대로 사랑이라고요. 그것이 소위 말하면 예수님의 철학이라고요. 예수님의 사랑 오고 가고 살고 죽는 것이 그대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런 뜻으로 예수님이 우리들의 스승이겠지요? 자 그만큼 생각해 보고요. 그 다음에는 이제 이 다른 글이 있어요. 그럼 십자가의 부활이라는 글 까지 제가 보겠습니다. 일전에 쪽지를 드렸는데 그 말을 깨달았다. 그럴까? 느꼈다. 그럴까? 글로 표현이 안 되어요. 글로는, 오나가나 얼마나 십자가가 많아요. 예수님의 십자가, 여러분도 가시면 집에도 십자가 있겠지요? 천주교 쪽에서는 예수님의 몸을 드러내 가지고 앞에 걸어놓았지요? 쓸 고(苦)자 고상(苦像)이야. 아주 참혹하게 죽어가는 장면을 딱 걸어놓고 그 보고 있더라고요. 항상 그걸 보면 마음이 아파요. 왜 저럴까? 왜 저럴까? 참 왜 저렇게 그걸 내렸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안 보게 왜 드러낼까? 그렇게 생각 했는데 이번에 봤어요. 그 십자가를 봤는데 요새는 예술 미술이 발달하니까 같은 십자가라도 여간 형을 좋게 만들지 않아요? 그런데 꺼먼 바탕 나무에다가 흰 석고로 예수님을 만들어 가지고 탁 걸어 놨는데 꼭 엄마가 누에 키울 때 보면 누에가 죽어가지고요. 하얀 백태가 나지요? 곰팡이가 피어. 딱 죽어있으면 걸려요. 걸려있으면, 얼만 모양이 죽은 형태가 자연스럽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잘 만들어 놓았던지 예수님의 몸이 십자가에 걸려잇는데 백색이에요. 백색 석고인데, 축 늘어져서 완전사야. 누가 보던지 완전히 죽었어. 억지가 아니야. 야, 그걸 볼 때 생각을 달리했습니다. 보기 싫은 예수가 아니다. 아 십자가 그래 십자가가 유명한가 보다. 완전 평화라고 그래. 그 제가 나이가 77세에요. 77세 되니까 그게 보인다. 그 예수의 평화.

 

 

 야, 그래 십자가가 좋은가 보다. 외형을 보면 무섭지 않아요? 아프고 쓰리고 피가 나는데 외형을 떠나서 속을 보니까 얼마나 평화스러워요? 그래서 그 말이에요. 역시 십자가가 아니고는 안 되겠다. 아 그래서 십자가를 보는구나. 눈에 보이는 십자가가 아니고 십자가는 무아다. 자각이지요. 한문 글이 좋아요. 없을 무(無)자 나왔지요? 내가없어. 그런데 모든 종교의 특징은 이겁니다. 불교의 총 투쟁은 그 사람들이 있어요. 자아를 죽이려는 훈련이야. 무릎을 꿇고 십년 사십년 칠십년을 앉아있어 자기를 죽이려고 아상을 죽이려고 그게 그 사람들의 투쟁이거든. 그쪽은 자력이야. 절대 혼자 자기 힘으로 죽이려고 무릎을 꿇고 나이가 늙도록 앉혀놔요. 자기를 죽이려고 꼼짝 못하고, 그런데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말씀이 자아를 죽이라는 거예요. 그게 너희들 행복이며 천국이다. 야, 예수님 멋진 선생님이요. 30대 청년이니까 정말 멋진 선생님이에요. 자아를 죽이라.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자아를 죽이라.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그 말인데 그러니까 그 결론은 나와 있어요. 성경은 쉽더라고요. 과정이 어렵지 성경은 쉽더라고 성경 한절 보겠습니다. 그 빌립보 3장 15절입니다. 골로새를 봐야겠네요. 골로새 3장 15절.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들의 마음을 다스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번역이 잘 되었어요. 그러려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아 한 몸이 된 것입니다. 그러려고 여러분을 선택했다는 거예요. 그러려고 여러분을 왜 불렀는가? 너는 내 제자가 되어라. 그러려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다. 무엇을 그러려고 평화가 있으라고 그것이거든요.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구도자의 최고 목적이에요. 구도한다. 도를 닦는다. 신자가 된다. 신자의 구도 목적이 무엇인가? 그러려고 여러분이 부름을 받았다는 거예요. 어떻게 하라고 평화를 얻으라고 그러니 평화를 얻은 것은 소위 말하면 얼마나 행복해요? 그 다음에는 감사뿐이지요.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오. 그래 이런 말씀이 번역을 늘 하니까 나와요. 

 

 

옛날 번역은 그렇게 안 나오거든. 그러려고 한번 이것도 기념으로 따라 읽으세요.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려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아 한 몸이 된 것입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오. 골로새 3장 15절 말씀.’ 그래서 이번 모임은 이거지요. 평화 얻으려고 그래서 와 계신 것이지요? 평화를 얻었으면 감사뿐이지요? 다른 게 뭐 있겠어요? 그런데 평화가 언제 오냐? 아상이 죽어야 한다. 불교 쪽에서는 평생 자유해요. 예수님 덕도 안보고 혼자 한다는 거예요. 자기를 죽여. 차갑게 자기를 죽여. 아상을 죽여. 그게 최고 목표에요. 그 사람들은 죽은 다음에 있답니다. 탁 죽는답니다. 그건 자유해방이야. 이 몸이 날라버려. 우주를 날라버려요. 자기 해방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그때 우리는 예수님 덕을 보지요. 자력으로 안 되니까 예수님 덕을 빌려가지고 나를 정복 해야지요. 자기 십자가를 져야지요? 그러니까 그 비밀이 무아(無我)다. 야, 무아의 평화. 임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의 비밀은 평화였나이다. 임께서 친히 못 박히셨기에 우주가 그토록 고요합니다. 언제 해와 달이 불평해요? 딱 못 박혔거든요. 언제 앞산 뒷산 나무가 불평 합니까 못을 꽈 박아놨어요. 이미 그들은 십자가를 완성 했더라고요. 천지만물은, 그러니까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무아가 곧 십자가입니다. 이건 자각이야. 아 결국은 무아가 십자가 구나. 죽기까지 아팠겠지요? 딱 죽어버린다면 얼마나 평안해요? 아 우주가 조용해요. 얼마나 평안하고. 그런데 죽기까지 고통입니다. 아까 그러지요? 젊은 사람들은 죽도록 고민하라는 거예요. 죽도록 고민하라. 그럼 어느 날 탁 죽을 거 아니에요? 내가 죽었기에 나는 무아이다. 도란 무엇입니까? 그는 십자가입니다. 진리는 무엇입니까? 그는 무아입니다. 내가 없는 거야. 내가 없어. 생명이란 무엇입니까? 그건 사랑입니다. 자기 부인한다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아상을 버린다는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욕망을 버리라. 욕망을 버린다는 거는 바로 그것입니다. 그곳에 평화가 있고 안식이 있고 그곳에 기쁨이 있고 바로 사랑이 있었나이다. 오, 바로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고 예수님이 계시고 성령이 계셨나이다. 와, 그것이었구나. 무아라는 거지요. 똑같은 소리요. 아무리 말해 봐도 그걸 눈으로 보고 느낀 걸 글로는 표현 못해. 언어도단이야. 평화를 어떻게 말로 그려요? 백번 글을 써 봐도 평화는 아니에요. 말로 못해요. 이심전심이야. 마음으로 성령을 느낀 것뿐이지 말로는 못해. 그곳이 천국입니다. 그랬어요. 그곳이 곧 천국입니다. 나는 길이다. 요한복음 14장 6절 상, 이 말씀이 곧 십자가의 길이었나이까 십자가는 곧 도요. 십자가는 곧 진리요. 십자가는 곧 생명입니다. 

 

 

못 박혀있는 저 푸르른 하늘 태양은 그 아득한 날에 벌써 아상이 죽어 있었나이다. 만물은 벌써 십자가에 못 박혀있었나이다. 만물은 벌써 자아가 죽었기에 그토록 고요하였나이다. 자기가 죽고 빛을 내는 태양은 열을 발하여 사랑이 되고 빛을 발하여 지혜가 되었나이다. 이것도 예수님의 자각이에요. 해를 보고 아버지의 편지를 봤던 것이고 성 프란치스코도 해를 보고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은 것이지요.  해를 봤어요. 나는 빛이다. 나는 빛이다. 그랬어요. 그래 태양이 죽는 거지요. 열을 내려면 빛을 내는 태양은 열을 발해요. 빛을 발하는데 열은 사랑이고 빛은 지혜입니다. 인류 역사에 성인은 전부 두 가지뿐이에요. 지혜를 얻은 사람 사랑을 완성한 사람 그게 예수지요.  그러니까 태양의 계시를 인격화 한사람이 예수지요. 그렇다면 도(道)가 임이야. 도가 예수님이시고 진리가 임이야. 생명이 예수님이야. 그것만이 곧 진리야. 진리의 성령을 보내지만 그것도 태양이에요. 빛이에요. 그분이 곧 진리요. 도요. 생명이었나이다. 그분의 덕이 곧 사랑이요. 기쁨이요, 평화입니다. 오, 그곳이 곧 천국입니다. 그러니까 이 덕이라는 거 빛인데 인격이 되면 덕이 되지요. 이걸 최초에 정하신 분이 예수 엄마에요. 거기보고 시간 끝내겠어요. 누가복음 1장에 나오지요? 예수 엄마 성모 자격 있어요. 그냥 예수 낳아서 엄마 아니에요. 그냥 덕이 빛나요. 17세의 소녀로서 아직 약혼만 했지, 남자를 모르는 처녀, 어느 날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하지요. 성령의 빛이 들어왔지요. 지혜와 사랑이 들어왔지요. 성모님 몸에 그때 그 감격해서 부르던 노래, 마리아 어머니의 36절이지요. 빛이 확 들어왔어요. 성령이, 느껴요. 이 말씀을 듣고 마리아는 이렇게 노래를 불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나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레 입니다. 미치겠다는 거예요. 설레 인다는 것은 미치겠어.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역사가 예수 엄마라 합니다. 예수님의 외할머니가 90객이고 예수님의 외할아버지가 100살 객이에요. 그러니까 아주 늙어서 딸을 낳은 것이 마리아거든요. 역사가 있어요. 확실히 늙어서 난 자식인데 그 애기를 보고 죽은 거란 말이에요. 

 

 

그래 벌써 아이 때 고아가 된 거에요. 요새말로하면 목사님이 데려다 키운 거예요. 제사장이, 제사장이 매일 이 그 사람들 유대교는 매일 성경을 보지 않습니까? 매일 그 말을 듣고 컸어요. 이 소녀가 거기 성령이 오신 거예요. 너는 은총을 받았다. 그 얼마나 성경에 풍부한 분이에요. 이 어머니가,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행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덕이라 번역 했어요. 덕, 사랑 이 성모가 17세인데 예수 엄마가 된 것은 덕을 세웠다는 거예요. 본인이 덕이 있는 것이 아니에요. 성모 자신이 덕이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 분의 덕을 입었다. 그러니까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해주신 덕 뿐입니다. 그 말이에요. 덕 뿐입니다. 자기 신분은 비천해요. 이 말씀을 따라 읽어 주세요.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행해 주신 덕분입니다. 누가복음 1장 48절로 49절 말씀입니다. 물론 여러분 기념 할 거예요. 오늘밤에 기념하세요. 그럼 성모만큼 여러분이 비참하지 않을 거예요. 다 행복하셔 예수님 어머니 보다는 다 위치가 행복하세요. 그럼 성모님이 불행한 것 아니야. 그대로 사랑했어. 또 예수 낳았다는 죄로 예수 하늘나라 가신 다음에 고향에서 못 살아요. 하도 원수가 많고 죽이려고 하니까 에베소라는 타국에 가서 종신하지 않아요? 여생을 마치지 않아요? 지금 에베소에 가면 성모가 피난했다는 집이 현재 남아있다 합디다. 성지순례하면 가서보면 있다 합디다. 조그마한 돌집이겠지요? 그래 예수 엄마같이 고생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덕을 입은 여자였다. 이 말씀만 설명하고 그치겠습니다.  
(찬양)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