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의 봄
화창한 봄, 무등산 소화원에 찾아갔습니다. 야생초 소화가 많이 피어 있었습니다. 연초록 나뭇잎들도 함께 어우러지고 있습니다.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오늘은 60여 년전 이곳에 소화원이 세워진 내력을 적어보렵니다.
하느님의 섭리와 은총
갈대가 부러졌다 하여 잘라 버리지 아니하시고, 심지가 깜박거린다 하여 등불을 꺼버리지 아니하신 주님(이사 42:1-3 참조).
해방 후 50여 년을 돌이켜보면 어둔밤 같은 제 인생길 영혼에 두 줄기 불빛을 비춰 주셨나이다. 첫째 등불은 1946년 작은 예수 성 프란치스코를 알려 주신 섭리입니다.
<완덕의 거울>(하천풍언 번역)을 책방에서 구하여 감추어진 보배 '성스런 가난'을 가슴 속 깊이 품게 하시어 큰 열망을 안고 광주천 다리 밑으로 들어갈 지혜를 주시고 걸인 형제들과 생활하게 하시었나이다. 주께서 친히 주신 은총! 그 가난의 신비는 얼마나 큰 평화와 기쁨을 주었던지 10년이 하루같이 잠깐 흘러갔나이다.
그때 그렇게도 평화로운 주님의가난과 사랑에 눈뜨게 해주신 또 한 분, 은인이요 스승이신 이현필 은자께서는 진정으로 기뻐해 주셨나이다. '덕지불고(德之不孤)'라고 스승의 영성은 꼭 성 프란치스코와 같았나이다.
둘째 등불은 1956년 작은 꽃! 성녀 소화 데레샤를 알려 주신 섭리입니다. 그 시작은 폐결핵 때문에 병실에서 만난 젊은 청년 이름은 전건식이었나이다. 그는 열이 올라 숨을 가쁘게 쉬면서 시 한 수를 읊어 주었나이다. 그 얼마나 감격 스러웠던지! 그 시가 젊어서 죽으신 성녀 소화 데레사의 시인 줄 제가 어떻게 알앗겠습니까?
사랑으로 죽는 것
제 희망 오직 이것뿐
주님의 사랑의 불에
제 마음 타고 싶어요
주님과 함께 보고파요
영원히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고파요
오! 사랑을 사는것!
제가 ?형제의 시요?" 하고 물어봤을 때 제가 생전 처음 들어 본 이름! '성녀 소화 데레사' 라고 하였나이다.
폐결핵으로 죽으신 그 젊은 성녀를 안 후부터는 가난이 성스럽고 병도 성스럽게 보였습니다. 성녀의 시는 제 영혼 속에 희망의 불을 질렀고 생사를 초월한 영원한 사랑에 눈뜨게 하였습니다.
무료 병동에서 만났던 수많은 아품들! 그리고 절망! 고통하는 환자들에게 마음이 끌려 결핵 요양소를 창설케 섭리해 주셨나이다. 저는 다리 밑에서 보금자리를 무등산으로 옮겼나이다.
그 까닭은 오갈데 없는 이들을 산이 어머니의 따뜻한 가슴으로 품어주었기 때문이었나이다. 깊은 산속은 외로운 섬마냥 격리되었으며 '섬기는 사람, 섬김을 받는 사람들 백여명' 에게 봉쇄된 은둔소 같았습니다.
영혼의 양식은 성경과 성녀의 자서전 둘 뿐이었습니다. 의지한 지도자는 예수님 한 분이요, 의지할 영적 안내자는 성녀 소화 데레사 차지가 되도록 하시고 말았습니다.
성녀님은 동병상린으로 유일한 친구요, 어머니로서 예수님께 향하는 사랑이 자연스럽게 같아지게 하였나이다. 성녀의 은총이 배인 자비의 사랑에 같은 성령으로 눈뜨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실로 하느님의 작품이요, 기묘한 사건입니다.
격리된 산 속에서 자나깨나 예수님과 성녀님 만이 위로자요, 스승이요, 유일한 친구요, 한집 식구가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녀님께서 "나의 성소는 사랑입니다" 라고 기뻐하셨음을 알고 "제 성소도 사랑 입니다" 라고 성소에 눈뜨게 하시어 평생을 봉헌케 하였나이다. 한 사람, 두 사람, 다섯 사람, 열 사람..... 수도 성소를 받도록 섭리 하셨사오니 이는 하느님 아버지의 은총입니다.
천하보다 귀하고 보배로운 인재들을 모아 성소자를 보호하고, 또 새롭게 뒤따라오는 새로운 성소자를 보호하고 교육을 아니 할 수 없게 하시니 이제는 질서와 울타리를 필연적으로 발생케 하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친히 이루신 일이요, 손수 하신 일임을 깨닫고 공손히 삼가 적었습니다.
주님께서 저희들에게 은총과 자비와 평화를 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뜻하신 바를 깨닫게 하시고 그 죄 없으신 분을 알아보게 하시고 또 친히 하시는 말씀을 듣게 하시려고 당신을 택하셨습니다. 당신이 보고 들은 일을 그분을 위해서 모든 사람 앞에 증언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사도 22:14-15 굥동).
하느님의 섭리와 은총(상) p 10-13